페소아는 베개에다 뺨을 갖다 대며 피로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랑하는 안토니우 모라, 페르세포네가 자기 왕국에서 나를 원해요. 이제 떠날 시간이에요,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이 이미지들의 극장을 떠날 시간입니다. 내가 영혼의 안경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당신이 알까요. 나는 저 위 무한한 공간 속에서 오리온의 버팀대를 보았고, 이 지상의 발로 남십자성 위를 걸었고, 빛나는 혜성처럼 무수한 밤을 가로질러갔고, 별들 사이 상상의 공간, 쾌락과 두려움을 가로질러갔고, 또한 나는 남자이자 여자, 노인, 소녀였고, 서양 세계 수도들의 커다란 대로에 모인 군중이었고, 우리가 평온함과 지혜를 부러워하는 동양 세계의 온화한 부처였고,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타자들, 내가 될 수 있었던 모든 타자였고, 명예와불명예, 열광과 쇠진함을 알았고, 험준한 산들과 강들을 가로질러갔고, 평화로운 양떼를 보았고, 머리 위로 햇살과 비를 맞았고, 타오르는 여성이었고, 길에서 노니는 고양이였고,
태양이자 달이었고, 모든 것이었습니다. 삶이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제 충분합니다. 사랑하는 안토니우모라. 내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무수한 삶을 사는 것과 같았어요. 이제 피곤해요. 내 촛불은 소진되었어요. 부탁해요, 내안경을 주세요.

1994년에 나온 이 책은 타부키가, 1935년 페소아가 죽기 전 사흘을상상하며 환상적으로 풀어낸 전기적 픽션이다. 다시 말해 페소아를 위한문학적 초혼제이자, 타부키식의 오마주인 셈이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1935년 11월 30일 리스본의 한 병원에서 간부전으로죽었다. 타부키는 임종 직전의 페소아 앞에 그의 수많은 다른 이름로서의페소아들(베르나르두 소아르스, 알바루 드 캄푸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히카르두 헤이스, 안토니우 모라 등)과 페소아의 주변인들(연인 오펠리아케이로즈, 이발사 마나세스 씨, 페소아 연구자 코엘류 등)을 불러들인다.
인도 야상곡]에 나오듯, 심한 근시였던 페소아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내 안경을 주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어쩌면 이 책 『페르난두 페소아의마지막 사흘은 멀리 있는 것이 잘 안 보였던 그에게, 그 먼 곳에서도지금 여기가 잘 보이도록 페소아의 마지막 눈에 건넨 타부키의 ‘문학(영혼)‘ 안경인지 모른다. 타부키 역시 2012년 3월 25일 리스본의 한병원에서 암 투병중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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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10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서 마지막을 보낸 시간은 고통과 고독의 시간이었을까요?

AgalmA 2020-09-12 20:50   좋아요 0 | URL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결말짓진 않았습니다. 담담히... 사고사가 아니라면 우리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
 
척하는 삶 - 개정판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좋은 소설은 가시권이 매우 넓다. 이 소설은 가족, 민족, 국적, 인종, 세대 갈등, 노년, 위안부, 양심 문제 등 인간 실존에 대해 많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한국인이었으나 일본인 부부에게 입양되었고 천황을 위해 일본군으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그는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가 미국인으로 살았고 한국인 소녀를 입양했다. 우리가 어떻게 보든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전혀 없다. 입양되어 미국에서 자란 서니(내 귀에는 자꾸만 '선희'로 들리던) 또한 그렇다. 애국심이나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지는 자긍심은 '상상의 공동체주의'다. 생존본능에 가까워 그 땅에서 태어나 살아왔다면 사실상 벗어던지기 어렵다.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내 피부 색깔과 성별, 언어로 인해 규정되는 틀은 타국에서 쉽사리 공격 거리가 된다. 숨기고픈 과거는 함묵하며 인정받기 위해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 우리는 평생 '척하기'에 골몰한다. 우리는 정말 당당하게 살고 있을까.

 

 

중산층의 노년에 대한 성찰은 필립 로스 『에브리맨』과 비슷하면서, 로스가 유대인이자 미국인의 삶을 그렸듯이 이창래는 동양인이자 미국인의 삶을 그렸다.

전쟁 중에 군의관 역할을 했고 전쟁이 끝나면 의사가 될 꿈을 꿨지만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클린이 되었다. Doc(doctor 약자) 하타로 불리며 평생 의료기기 판매상을 했고 은퇴했다. 위안부 K와의 일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되는데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굳이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두 사람은 원하는 가족이 되지 못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도 잘 살든 어렵게 살든 자신이 원했던 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 더 비참하게는 열심히 살고자 하고 사랑하려 하는 사람에게 죽음이 불운이 닥친다. 전쟁에서도 살아남았고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프랭클린이 지금껏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일본인 부모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고 싶었던 일본인의 삶을 떠나 미국에 왔어도 프랭클린은 지역에서 인정받는 주민으로 평생 체제에 순응해온 사람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에서 서니는 더 반항적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프랭클린과 서니의 어긋난 관계도 그들의 남은 생의 결과도 각자의 선택이나 잘못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삶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것들과 얽히게 되고 궤도가 달라지고 마니까. 삶을 '언제나 지금부터'라고 말하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것은 지난 삶의 변명이나 핑계가 아니라 다시 바꿀 용기와 각오를 위해서일 것이다. 프랭클린의 삶과 의지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노력이 아니었고 앞으로의 선택은 더 그렇지 않을 거라는 방향성은 이 소설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데, 둘러보면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과 개인의 영달만 꾀하는 요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 소설은 매우 올곧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소설이 다루는 문제, 그것을 담은 문장들은 변함없이 현실적이고 현재와 닿아있다.

 

 

ps) 가혹한 피해자였기에 그랬을 테지만 위안부 k, 여성을 너무 신성시 다룬 게 아닌가 싶다.

 

 

 

 

 

 

1. 어떤 사람이 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어떻게 해서 이런 행동은 하고 저런 행동은 하지 않게 되었는지, 과거를 기쁜 마음으로 돌아보는지, 아니면 평정한 마음 또는 후회하는 마음으로 돌아보는지, 내 생각에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성공이나 실패를 생각할 때조차 완벽한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다 아는 일이지만, 과거란 결국 매우 불안정한 거울이어서 너무 가혹하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비위를 맞추어 주기 십상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과는 달리 절대 진실을 비추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2. 히키 부인은 좋게 봐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뭐라고 토를 달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게 봐 준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이해였다.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비뚤어진 태도를 보일 수 있고, 심지어 충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보여 주는 모습 중 무엇이 진정하고 핵심적인 것인지, 또 무엇이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입장에서도 쓸데없이 되풀이해 생각하기보다는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 좋은) 순간적인 실수인지 아닌지를 분별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나 나름의 경험을 통해 그래야 함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3. 은퇴를 하게 될 때 부딪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리브 크로퍼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없다. 설사 그녀가 그녀 표현대로, ‘전방 180도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신경 쓸 것 전혀 없는 최고 수준의 콘도’를 찾아 준다 해도 그녀의 일은 거기서 끝이 난다. 내가 괜찮은 거처를 가지게 된다 해도, 거기서 어떻게 살지, 그리고 거기서 왜 살아야 하는지는 나 혼자 궁리해야 할 문제다. 흔히 말하는 은퇴 후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에는 쉽게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낚시를 하지 않고, 브리지도 하지 않는다. 작은 인형이나 이국적인 새나 골동품 장난감을 수집하지도 않는다. (중략) 전문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침대에서 책을 읽는 것 정도는 해 볼 수 있겠지만, 내가 그런 데서 듣고 보게 되는 것들 대부분은 나처럼 늙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냥 영원히 잠들어 버리는 것이 속 편한 일이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4. 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 내가 가장 크게 우려했던 것은 모두가 이따금씩 느낄 수 있는 어색함이었다. 예를 들어, 매일 다니는 거리나 가게에서, 또는 다른 경우라면 은은하고 푸릇푸릇한 공원 그 이상일 수 없는 곳에서 주변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저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그리한다)에 대해 의식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 궁리하는 것. 내 생각이든 남의 생각이든 나는 정말이지 이런 식의 생각을 좋아한 적이 없으며, 그래서 내가 이 타운에서 나 자신을 위해 꾸준하게 조성해 온 그런 상황 속에 들어가 있기를 늘 원해 왔다.

5. 우리는 그 말에 마음껏 웃음을 터뜨린다. 기침이 자꾸 나왔지만, 레니 바네르지 같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생의 순간들이라는 것이 꼭 적확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 그렇게 ‘가치’가 충만하고 묵직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그 순간, 있는 그대로이면 된다. 이 경우에는 나와 레니가 다시 한 번 농담을 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가벼운 시간을 보내는 순간일 뿐이다.

6. 사람의 유년기가 놀랄 만큼 취약한 시절이라는 것에 대하여 공적인 논의와 토론이 많다. 시기와 상황이 사람의 성격과 관점, 심지어 행동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멋대로인 아이가 공동체의 생산적인 구성원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도와야 하며, 이것을 무시하면, 기본적으로 훌륭한 본성을 가진 아이라도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 곤란을 겪을 수 있고, 심지어 병적이 되고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이 근래의 통념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버지 없이, 낙인찍힌 가족으로 살아야 했던 베로니카는 어떻게 이렇게 나름 훌륭하게 성장한 것일까? 아이의 어머니 코모 경관은 어떻게 했길래 딸의 마음에서 타고난 기품과 선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베로니카든 다른 사람들이든 실제로는 신의 뜻에 따라, 또는 약간의 우연에 따라 한 가지 기질, 딱 한 가지 기질만 지니고 있을 뿐이고, 겉보기에 변종으로 보이는 것들은 각각의 윤곽, 일상적인 장식물에 불과한 것일까?

7. 은퇴하고 나서 몇 년 동안 이곳의 집단 기억이 내가 믿고 싶어 하는 것보다 짧다는 것, (중략) 나는 선량한 닥 하타에서 괜찮은 노인네에서 저 늙은 동양인이 누구냐로 바뀌었다. 그 질문(지난 여름 처치 스트리트의 새 식당에서 점심 값을 치르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에는 심각한 악의나 편견은 담겨 있지 않다. (중략) 이런 식으로 처량하게 자신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모두 겪는 일, 심지어 한창 때는 적당한 위치를 확보했던 사람들조차 겪는 일이 틀림없다. 그러나 내 경우는 시간으로 인해 흐릿해지는 것과도 다르고 현대 생활에서 늙어 가면서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어떤 인종에 속한 사람이냐 하는 것이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사실로 남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라는 단순한 항상성. 따라서 나와 같은 사람은 사소한 손실들은 받아들이면서, 삶에서 생기는 위안들에 행복해해야 하는 것일까?

8. 서니 의료 기기도 지금처럼 속이 반쯤 빈 채 문을 닫는 대신, 활기로 인해 눈부신 곳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환상적인 상상이 펼쳐지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너무 복에 겨운 상상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슨 명예나 부의 측면에서 복을 누리는 상상은 아니다. 그저 매일 밤 가게를 나오면서 슬쩍 돌아보았을 때, 그곳이 우리를 담아 줄 만한 그릇이구나 하고 느끼는 것에 대한 상상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평생 동안 얻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아닐까? 어렸을 때 일본인 부부의 손을 잡고 정규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영광스러운 전쟁으로 일컬어지던 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하기까지, 그리고 이 나라에, 그것도 매우 품위 있는 타운에 정착하기까지. 그것이 내 오랜 어리석음, 나의 연이어 온 실패는 아닐까?

9. …… 내 집으로 돌아와 그 애의 아들과 함께 보낸 편하고 즐거운 시간들의 여파 속에서 내 집이 훨씬 더 거대하게 자라 버렸음을,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훨씬 더 작아졌음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그와 더불어 내 인생이 갑자기 다시 잠정적인 것이 되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실제로 나는 마치 젊은이처럼 내 인생이 가능성과 선택을 향해 열려 있다는 느낌, 그만큼 취약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늘 내가 진실로 두려워하던 존재 상태였다. 사람들의 취약한 상태는 오랫동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물론 나는 전쟁 중에 임무를 수행하면서 죽음과 연약함을 목격할 때마다 경악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전쟁을 맞아 무딜 대로 무디어진 남자들의 의지는 어떤 종속적 상태를 피해 가지 못했다. 들을 귀와 볼 눈만 있으면 무력하게 빠져들고 마는 그 비인간적인 행위들.

10. 우리는 좀 더 전방으로 이동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랑군 여행은 짧은 마지막 위로 휴가였다. 빛이 사그라지지 않는 해변의 어스름 속에서 묘하게도 전쟁이 그렇게 끔찍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 젊은 남자라 해도 공동의 목적을 앞에 두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동료 의식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사실 이보다 더 진정한 증명의 시간은 바랄 수 없는 것이라고. 그러나 오노 대위가 나를 부를 때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세심하게 쌓아 올린 모든 인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 안쓰러운 고갈 상태에서는 순수한 증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솟구쳐 오르며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그대로 표현한 적이 없다. 그때 오노 대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1. 그는 위안부를 생경하게 ‘조센삐’라고 불렀다. 여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다가 천한 해부학적 욕설을 덧붙인 말이었다. 물론 나는 그가 동료들에게 허세를 부리려고 그런다는 것을 잘 알았다. (중략) 마치 우리 안에 있는 짐승 이야기를 하듯. 때문에 나는 잠시 몸이 얼어붙었다. 물론 나는 그 여자들을 짐승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때 내 시야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다고 말할 수도 없겠다. 내 생각은 부자의 생각과 비슷했을 것이다. 자기 집이나 소유지에서 일하는 수많은 하인들을, 그들의 노력과 몸부림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부자. 그들을 그의 삶이라는 메커니즘의 부품으로만, 매일 밤낮없이 꾸준히 돌아가는 기계로만 보는 부자.

(중략) 나 역시 생각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아마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대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살덩어리들로. 사라지기 전에 얼른 가져야 할 짧고 따뜻한 쾌락으로. 그것이 전시의 기본적인 방식이다.

12. "자, 그 아이를 위하여 뭘 할까?"

내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바는 먼 미래다. 그 아이의 교육, 훈련, 직업. 내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을 것들.

그러나 서니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이 애가 얼마나 자제하고 있는지 깨닫는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흔히 하는 말로 ‘신앙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이 아이 내부에서 용서의 비밀 창고 같은 것을 발견한 것 같다. 내 창고는 이미 오래전에 바닥이 났는데. 어쩌면 용서는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 현재 어떻게 되었다 해도, 아무리 찌꺼기만 남고 빈약하다 해도, 원하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가없이 늘 새로워진다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서니가 마침내 입을 연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워요. 만일 첫 아이를 낳았다면, 아마 토머스는 낳지 못했을 거예요. 토머스고 누구고 아무런 존재도 없었겠죠.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그래,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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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9-09 0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랭클린이 궁금해서 읽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것들과 얽히게 되고 궤도가 달라지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지금부터”라고 말하며 삶을 바꿀 용기를 내는 삶. 그리고 그 용기를 내기 위한 노력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여러번 추천 받았는데 제일 읽고싶어지네요.

AgalmA 2020-09-12 21:14   좋아요 1 | URL
프랭클린이라는 중년 남성에게 감정 이입이 되느냐 안 되는냐가 이 책의 호불호를 나눌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읽다가 분량이 많아 덮었다가 잊고 말았는데 이번에 갑자기 마저 읽어보고 싶었어요.
다 읽고나니 이창래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더군요^^
 
[eBook] 기나긴 이별 (필립 말로 시리즈 6) 필립 말로 시리즈 6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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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드보일드 작가로 간주되긴 하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하드보일드는 그저 생각을 형상화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죠."

- 레이먼드 챈들러, 「나란 사람은」,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탐정소설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탐정에 대한 소설’은 아닐 겁니다. 탐정은 오로지 촉매제로 이야기에 첨가될 뿐입니다. 그리고 이전과 정확히 같은 모습으로 이야기에서 빠져나가는 겁니다."

- 레이먼드 챈들러, 「촉매제로써의 탐정」,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기나긴 이별』을 쓸 당시, 챈들러는 아내 시시 챈들러의 병세를 알고 몹시 힘든 상태였다. 시시는1948년에 폐 섬유증 진단을 받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챈들러는 훗날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아내가 조금씩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봤고, 그사실을 안다는 고뇌 속에서 내 최고의 책을 써야 했으며, 그럼에도 써 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서재에 들어가 눈을 감고는 생각을 모아 스스로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지요. 그러는데 적어도 한 시간은 걸렸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957.2.11.)


「기나긴 이별』은 1953년 영국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챈들러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시 챈들러는 1954년에 사망했다.

- 레이먼드 챈들러, 「스타일이 모방되거나 심지어 표절되다 보면」 각주,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챈들러는 순문학(시)을 쓰고 싶어 했지만 그 꿈을 포기했기에 자신은 "진정으로 뛰어난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양자오 『추리소설 읽는 법』 참고). 그는 대중적인 B급 소설 작가라는 평가에 개의치 않았다. 그에겐 작품 자체의 스타일이 가장 중요했다. 평생의 사랑이었던 아내 시시의 병환을 비감히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서 쓰고 1953년 발표한 이 마지막 장편은 생생한 인물, 치밀한 플롯, 사실적 묘사, 탄탄한 문장력 등 탐정 소설만이 아니라 문학 전체에서도 좋은 작품이다.

 

하루키는 『기나긴 이별』을 12번이나 읽었다고 했는데, 그가 챈들러의 문체와 심드렁하고 독립적인 성향의 필립 말로라는 캐릭터를 정말 흠모해 자신의 소설에 반영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키의 지적대로 이 소설의 키는 테리 레녹스 캐릭터의 비밀스럽고 독특한 매력에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필립 말로가 호감을 가져 우정을 나누고 곤경에 빠지면서도 사건을 추적하기까지 레녹스 캐릭터가 없었다면 내러티브의 동력이 쉽게 떨어졌을 것이다.

 

"스스로 만든 함정만큼 치명적인 함정은 없다"라고 말하며 말로는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챈들러는 스스로 만든 이 소설이 치명적 소설이 된 걸 기뻐할 자격이 있다.

 

 

 

ps) 하드보일드한 맛의 김릿 칵테일을 반드시 마시고 싶게 되는 소설ㅋㅋ

 

 

 

 

 

* 하루키식 묘사가 딱 떠오르는 대목

 

1. 촌철살인 직유

우리 지역에서 돌팔이 의사들은 기니피그처럼 번식한다.

 

2. 인물 비유

"... 칸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친구에게 매력이 있다고 쳐도 제철공 속옷 정도의 매력이겠지. 이 고객은 정신이 나가면 계좌도 없는 은행의 수표를 쓰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어. 그렇지만 이 사람은 항상 잘 빠져나왔고 내 호의로 큰집에 안 가고 버틸 수 있었지. 그 사람이 이걸 주더군. 대학살을 계획하는 한 쌍의 인디언 추장처럼 우리 둘이 이거나 같이 피워볼까?”

 

3. 장면 비유

날개가 너덜너덜해진 벌 한 마리가 나무 창문턱을 기어 다니며 피곤한 듯 가냘픈 소리로 윙윙거렸다. 이제 그래봤자 아무런 소용없으며, 자기는 끝장났고, 너무나 많은 임무를 수행했지만 다시는 벌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4. 음식

커피는 너무 우려냈고 샌드위치는 낡은 셔츠에서 찢어낸 조각처럼 냄새가 너무 진했다. 미국 사람들은 빵을 구워서 이쑤시개 두 개로 꽂아놓고 옆으로 양상추가 비어져 나오게 만든 것이면 무엇이든 먹는다. 그것도 시든 양상추면 더 좋고.

 

 

 

 

* 챈들러 특유의 깔끔한 문체

 

1. 대화

“태워다줘서 고마워요, 모건. 한잔 하겠소?”

“나중에 하는 걸로 하죠.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을 테니.”

“혼자 보낸 시간은 너무 많았소. 지겹게도 많았지.”

“작별 인사를 한 친구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가 말했다.

“그 사람을 위해 감방에 처박히는 것을 감수할 정도라면, 친구가 있었다고 해야겠죠.”

“내가 그 사람을 위해 그랬다고 누가 그럽디까?”

그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기사를 쓸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잘 있어요. 또 봅시다.”

 

2. 대화

“경찰을 불러야 합니다. 그게 바로 법이라는 겁니다.”

“그런 일은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린 현재 파리 한 마리 때려잡을 만한 증거도 없습니다. 경찰 스스로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도록 놔둬요. 법률가들이 해결하도록 놔두고. 법은 판사라고 하는 법률가들 앞에서 또 다른 법률가들이 토막 내기 위해, 다른 판사들이 첫 번째 판결이 틀렸다고 말하기 위해, 대법원에서는 두 번째 판결이 틀렸다고 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 것이 법입니다. 우린 그런 것에 목까지 푹 파묻혀 있어요. 법이 하는 일이라곤 변호사들에게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것뿐이에요. 변호사들이 법을 조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거물급 깡패들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3. 대화

나는 뒤로 기대고 담뱃불을 붙였다.

“나를 왜 보자고 한 겁니까?”

“당신은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 같소, 말로?”

“전혀 모르겠는데요. 정보가 별로 없으니.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뭔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 아니오.”

“모든 사람이 술에 취하지는 않지.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소? 청춘이나 양심의 가책이나 이런 허접한 사업에서 허접하게 시간당 벌이나 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자각으로부터?”

“이제 알겠군.”

나는 말했다.

“누군가 모욕할 사람이 필요한가 본데. 계속하시지. 참지 못할 것 같으면 말해줄 테니까.”

 

4. 서술

일단 누군가가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살인자는 언제나 비현실적이 된다. 증오나 공포, 탐욕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다. 계획을 짜고 범죄를 저지르고도 도망가려고 하는 교활한 살인자들이 있다. 그런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화가 나서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도 있다. 죽음을 사랑하는 살인자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살인은 막연한 형태의 자살과도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사람들 모두 제정신이 아니지만, 스펜서가 말한 의미와는 달랐다.

내가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거의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전화가 따르릉 울려대는 소리에 나는 검은 잠의 우물에서 끌려 나왔다.

 

5. (정신 나간 작가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서술

달빛 위로 밤안개가 솟아올랐지만, 나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그 잔을 내려놓는다.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기다란 꽃병에 장미 줄기를 꽂아놓듯이. 장미는 이슬을 머금은 꽃송이를 흔든다. 나는 장미인지도 몰라. 형제여, 내가 이슬을 머금었네. 이제 이층으로 올라가야지. 그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독한 술을 조금 더 마셔야 할지도 모르겠군. 안 된다고? 좋았어, 뭐라고 말하든 간에. 그럼 내가 이층에 도착하면 가지고 오라고. 내가 이층에 도착하면 뭔가 기대할 만한 게 있어야지. 내가 이층까지 무사히 올라갈 수 있으면 보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거야. 내가 나 자신에게 보내는 존경의 표시지. 나는 그처럼 나 자신에 대해서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니까. 나를 사랑하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경쟁자가 없다는 거지.

 

6. 서술

“근사하고 조용한 동네로군. 딱 적당할 정도로 조용하단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계단을 내려가 자기 차에 올라타고 떠났다. 경찰들은 절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다. 항상 우리가 일렬로 서 있는 용의자 속에 끼여 있을 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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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9-04 0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 저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려고요 ㅋㅋㅋㅋㅋㅋ 기나긴 이별도 다시 산다, 만다 이러고 있었는데 백퍼센트 재주문입니다! 이런 하드보일드 칵테일이라면 언제까지나 - 제목도 넘 좋아요!!

AgalmA 2020-09-04 04:21   좋아요 1 | URL
하루키 12번 기록 깨시려고요ㅎㅎ? 자주 읽으려고 일부러 e book 샀다는 거 아닙니까^0^) 열린책들 번역은 또 어떨랑가 모르겠는데 암튼 이 책도 좋아요^^

하나 2020-09-04 03:55   좋아요 1 | URL
저는 한 네번쯤 읽었던 거 같은데 그래도 또 읽고 싶었어요. 다른 거 읽지 말고 그거나 열번 읽을 걸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왠지 희망을 못 놓고.. 다른 것도 재밌을 거야 이러면서 읽었는데 저번에 올려주신 기나긴 이별은 1+1이라서 그렇다는 설명이 너무 공감됐어요 ㅋㅋㅋ

페크(pek0501) 2020-09-05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기나긴 이별은 읽지 않고 모셔만 두고 있어염. 올해 안으로 읽어야겠어요.

AgalmA 2020-09-09 05:31   좋아요 0 | URL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를 읽으셨다면 챈들러의 소설이 무척 궁금하셨을텐데 어떻게 참으셨어요ㅎ? 『기나긴 이별』재미도 재미지만 문장과 구성력에 이끌려 밤새워 읽게 되더라고요^^ 즐거운 독서 되시겠네요^^/
 
[eBook]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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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는 사람의 속마음을 전면에 내보이는 화자와 전개를 선호하는데, 서술이 사건 사고를 전달하는 식으로 딱딱하고 고전적이라 전반적으로 지루하다. 사람의 마음은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것에 관심과 호응이 높아지니 더 그렇다. 20세기 중반의 사람들과 삶이 흥미롭기는 쉽지 않다. 인생이 대체로 거기서 거기니까. 소설 속 상황은 진부하고 답답한 상황이 많은데, 청혼을 기다리는 여성, 다른 삶을 욕망하지만 이혼을 못하는 부부들, 눈치 보고 이용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안주하는 남녀, 도움이 필요하지만 품위를 위해 속마음을 꾹 누른 채 사는 노년, 부유한 삶을 부러워하며 일상에 갇혀 그저 그런 삶으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등등. 지금 삶에도 여러 변주로 반복되는 것이지만 서술이 지루해 '그땐 그랬지, 지금도' 하는 생각만 남는다. 같이 읽었던 레이먼드 카버 문체와 비교하면, 카버가 유려한 테크니션 피아니스트같이 느껴진다. 트레버는 환상적인 것을 추구하지도 않고 분위기를 만드는 기교도 부리지 않는다. 모든 걸 꾸역꾸역 대면하게 한다. 누구누구 씨는 누구를 만났고 어디로 갔고 무엇을 했으며 블라블라... 일상, 일상, 일상, 이 삶을 보라,이다. 그들은 부자든 가난하든 어리든 늙었든 엘리트든 노동자든 외로움과 슬픔, 죄책감에 젖어 살아가는 낙오자의 모습이다.

 

 

트레버의 소설이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상상 초월의 이야기가 많은 요즘 현실을 생각하면 트레버의 소설을 읽은 뒤의 잔상은 그리 크지 않다. 내가 무덤덤해진 걸까.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1995년 구입한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했지만, 나는 윌리엄 트레버에게 쏟아지는 상찬과 소설 쓰기의 모범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나 싶다. 한겨레출판에서 꾸준히 내는 트레버의 다른 소설들을 읽으면 평가가 달라질까. 너무 큰 기대로 이 단편집을 읽었던 터라 또 도전할 맘이 지금은 안 생긴다. 흠.

 

 

※ 단편 별점

 

 

 

 

 

 

 

 

「욜의 추억」
퀼런은 동정을 받은 것에 놀란 기색은 없었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부모님이 익사하지 않으셨다면 자기는 지금 두 사람앞에 보이는 남자와는 다른 사람이 됐을 거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미스그림쇼는 퀼런이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다. 퀼런은 그 여자가 유모차에 누워 있던 아기를 데려가기만 했어도 자기는 다른 사람이 됐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은 불운했다고 덧붙였다. "욜은 아담하고 멋진 해변 휴양지예요. 하지만 그곳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몸서리가쳐져요.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불운 때문이죠. 까만 철문과 포드에 올라앉아 땀을 흘리고 있는 숙부를 생각할 때면 다른 일들도 모조리떠올라요. 그 여자는 아이를 원했어요, 미스티처. 아이한테는 사랑이 필요하죠.

「탁자」
나는 내 앞가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야." 제프스는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아." 그러고서 그는 말없이 차를 몰았고,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슬픔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생각했다. 어둠이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단 한 번도 불을 피운 적이없는 집에 돌아왔다.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가구들은 그를 보면서 미소 짓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복잡한 성격」
애트리지는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애트리지가 마타라 부인의 난감한 처지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해하려고 노력할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일지도몰랐다. 그는 지금까지 언제나 냉담한 편이었고, 스스로도 이러한 사실을인정했다. 그의 전 부인은 그가 지닌 성격의 여러 단면들을 가꾸어 가면서그의 냉담함을 몰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온갖 짜증을 내는대신에 그에게 애정을 쏟으면서 그의 복잡한 성격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갈구하던 사랑은 동정과 연민이 마침내 오늘 오후에그를 찾아온 것처럼 때가 되면 저절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했다. 애트리지는 온기를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둔 사람들도 있다고 현관에 있는 두 얼굴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전 부인과 마찬가지로 이 두 얼굴이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조이스 씨는 당신이 살인 행위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노라는 마음속이 들끓고 있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거리로 뛰쳐나간 뒤 워터포드 억양이 한껏 드러나는 말투로 폭탄 테러범들은 숨을 들이마실 자격조차 없을 만큼 비열한 자들이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증오와 죽음뿐이라고 거침없이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풀럼 브로드웨이에서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바람에 흩날리며그 어느 때보다 열띤 목소리로 행인들에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자신의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상상 속의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노라는 그런 부류의 여자가 아니었다.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그녀는 열두 달 뒤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가 돌아왔을 때 더모트가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서 이집저집을 돌아다니며 가스 검침을 하고 있을지,
아니면 사람들이 아일랜드인이 아닌 계량기 검침원을 원하면서 그를 거부했을지 궁금했다. 아일랜드 억양을 가진 사람을 거부하는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일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것은 범죄가 범죄를 낳는다거나 하느님이 무언가를 일깨워 주려 하신다는 거창한 범주에 속하지 않았고, 진실과 양심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아일랜드인을 거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받아들일 만한 일인지도 몰랐다.

「결손가정」
가정이 파괴되고 34년이 흐른 지금, 시간이 베푼 자비 덕분에 말비 부인은 고령의 삶 속에서 행복했다. 그녀는 교사에게 이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 보면지금 같은 상황에 맞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시작하기가 어려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노망난 늙은이의 행동처럼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정신을 모아서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말비 부인은 단지 아이들에게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음을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말비 부인은 자신과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교사에게 분명히 전하고 싶었다.

「그 시절의 연인들」
뒤돌아보면 그것은 런던에서의 그 특별한 10년과 관계있는 것 같았다. 그는 1960년대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새해 첫날이 영국에서 공휴일로 지정되기 한참 전인 1963년 1월 1일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는 이런 기분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2실링 9펜스입니다." 그녀가 카운터 너머에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치약과 손톱 줄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꼭 콜게이트로 사 와요."
집을 나서는 그에게 아내가 큰 소리로 당부했다. "지난번에 사온 치약은 맛이 고약했어요."
그의 이름은 노먼 브릿이었다.

「삼인조」
삼촌의 눈은 허름한 고아원 출신인 두 사람에게 너희는 혼자 힘으로살아 나갈 수 없다고, 서로의 필요조차 충족시켜 줄 수 없다고 시도 때도 없이 말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삼촌의 돈을 향한 자신들의 욕심이 자신들의 복종을 원하는 삼촌의 욕심과 다를게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욕심은 삼인조가 되어 버린 세 사람의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그들을 학대하는 것이 삼촌의 삶에 남은 마지막 즐거움인것처럼, 돈이 그리고 돈이 약속하는 자유가 그들의 삶을 환히 밝히는별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불 밑에서 서로에게 몸을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한 채 삼촌의 빈정대는 작은웃음소리를 들었다. 잠들기 전에도, 그리고 꿈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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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9-04 0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은 저도 오래전에 사놓고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ㅎㅎ

AgalmA 2020-09-04 03:40   좋아요 1 | URL
극찬을 받아도 내 취향 아니면 솔직할 수도 있는 거죠 뭘 ㅡㅎㅎ

겨울호랑이 2020-09-04 0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데 그 이유가 행복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예전에는 제법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AgalmA 2020-09-05 00:27   좋아요 1 | URL
제 표현이 반증가능성 따지는 과학적 분석은 아니니까요ㅎㅎ
저도 요즘은 문학이 예전만큼 재밌지는 않아요. 늙어서 그런가^^;;

초딩 2020-09-05 0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트레비로 잘 못 읽은 것에 만족하겠습니다.
근데 제목은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 같아여~
행복한 가정은 이유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여러기지 이유가 있다는
:-)
코로나로 혼자 일잔하며 횡설수설합니다 ㅎㅎ
좋은 밤 되세요~

아갈마님 뵌지 5년이 다 되어가네여 :-)
감사합니다.
관계는 어떤뗀 아주 느슨해요 어래 가는 것 같아요
너무 느슨하면 날아가 버리고
너무 가까우면 언젠간 부딪히고 :-)

AgalmA 2020-09-09 05:36   좋아요 0 | URL
ㅎㅎ 트레비는 제가 자주 마시는 탄산수인데요ㅎ
제목이 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톨스토이의 명문을 떠올려주시다니 그건 제 문장력보다 초딩님 감성과 지성의 영향 때문이겠지요^^;

벌써 5년이네요. 많은 일이 있었죠. 앞으로도 많은 일이 있을 것이고요.
하신 말씀 다 공감됩니다.

예전엔 음주 수다도 떨고 그랬는데 이젠 그럴 동무도 떠나고 이래저래 쓸쓸해진 시공간입니다.

초딩 2020-09-05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AgalmA 님을 아갈마님이라고 불러요

AgalmA 2020-09-09 05:36   좋아요 0 | URL
제 닉넴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묻는 분들 많았는데 콕 집어 그렇게 불러주시면 제 수고가 덜어지지요.
감사합니다^^
 

하루키 때문에 참 먼 길 간다 ㅎㅎ;;
그래서 『기나긴 이별』은 언제 읽으실 건가. 헤헤



장르소설과 순문학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장르소설은 단 한 권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무협소설을 단 한 권만 읽는 사람은 없고, 로맨스소설을 단 한 권만 읽는 사람도 없듯, 탐정추리소설을 단 한 권만 읽는 사람도 없다. 물론 탐정추리소설을 단 한 권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탐정추리소설의 재미는 각 소설 간의 호응과 간섭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과 ‘고전’의 개념 사이에는 선천적인 긴장이 한 겹 깔려 있다. ‘고전’에는 적어도 두 가지 핵심 기준이 있어서 그중 하나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는 ‘필독’이다. 만약 이 분야의 아름다움을 몸소 겪고 이 분야의 최고 성취를 즐기고자 한다면 ‘필독’으로 선정된 고전은 일단 읽어야 한다. ‘고전’의 높이를 통해 우리는 취향의 기준을 세워 다른 작품을 평가하고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고전’의 두 번째 기준은 다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읽기를 통해 신선한 즐거움과 깨달음을 끝없이 찾아낼 수 있다.
두 번째 기준은 추리소설에 불리하다. 추리의 핵심은 수수께끼 그리고 수수께끼 풀이이며, 수수께끼를 풀기 전의 의혹과 추측, 수수께끼를 푼 다음에 오는 깨달음은 추리소설을 읽는 근본적인 기쁨이다.
(중략)
이 이야기는 결과를 미리 아는가 모르는가의 여부가 감상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추리 작품의 한계를 선명하게 지적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한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준다. 추리 작품을 소개할 때에는 결말을 말해서 그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느낄 즐거움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특별한 도덕적 책임 말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이야기가 어째서 다른 문학 분야보다 추리소설에서 ‘고전’을 만들어 내기 어려운지 설명한다는 점이다. 수수께끼, 눈이 핑핑 돌 정도로 화려하고 복잡한 실마리, 마지막에 이르러 극적으로 수수께끼를 푸는 장면 등 추리소설이 독자를 끌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독자가 한 번 즐거움을 얻은 뒤 다시 읽으면서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독자에게 다시 읽을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

추리소설의 기원은 어째서 19세기일까? 이 시기의 유럽에서 범죄는 더 이상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 현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영어로 설명하면 좀 더 분명해질 것 같다. 이 시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sin’(죄악)에서 ‘guilt’(죄악감)로 옮겨 갔다. 이전에는 ‘죄’에 대한 징벌이 인간 세상의 법률이 아닌, 죽은 뒤에 하느님과 마주했을 때 받는 것이었다. 이는 기독교 전통의 핵심 개념과 근본 가치인 동시에 교회를 없어서는 안 되는 기구로 존재하게 하는 토대였다.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고해와 참회를 하고자 했고, 이로써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고자 했다. 인간 세상에서의 사실 확인과 처벌은 상대적으로 다음 문제였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죽은 뒤 천당에 갈 수 있다. 죄를 지었더라도 죽기 전에 참회하고 죽은 다음 ‘연옥’에 들어가 충분한 벌을 받으면 천당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 죄를 짓고도 참회하지 않으면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지고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이런 원리를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교회의 지위가 추락하고, 기독교가 여러 방면에서 의심과 공격을 받으면서 더는 숭고한 진리라는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죄’는 더 이상 개인 양심의 문제이거나, 죽은 후 천국에 가거나 또한 19세기의 유럽에는 도시화가 폭넓게 일어났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친족이나 이웃과 단단한 유대를 맺지 않는 생활로 들어서면서 범죄가 발생할 여지도 늘었다. 누가 누군지 서로 잘 알고, 피차의 생활상을 훤히 아는 농촌 생활에서는 범죄 행위가 다른 사람의 이목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까닭에 범죄 욕망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 이주가 시작된 후 누구도 나를 모르고, 누구도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은 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두 번째 조건인 ‘미스터리’에 대해 살펴보자. ‘미스터리’는 추리소설이 성립하는 다른 조건인 ‘there is something mysterious’(뭔가 이상하다)를 알려 준다. 추리 용어로 말하자면, 소설에는 반드시 ‘수수께끼’가 있어야 한다. 소설이 시작되면 이상한 일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다. 사건의 전체 혹은 일부가 일반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빙산’ 유형의 화자, 즉 ‘하드보일드 맨’에게 그가 본 세계를 말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독자의 마음에 낯선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강함이 있지만, 그 강함은 이 세계에 대해 우리가 가질 리 없는 한 가닥의 냉정을 가진 데서 나온다. 헤밍웨이의 펜 아래에서 만들어진 ‘하드보일드 맨’의 형상은 훗날 해밋과 챈들러에게 영향을 주었고, 두 사람은 거드름을 피우지 않으며 무슨 일에든 놀라지 않는 캐릭터를 그렸다.
이 캐릭터들에게는 항상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자 집에 낯선 사람 둘이 침입해 일언반구도 없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문장 끝에는 마땅히 느낌표를 찍어야 한다. 우리는 이 문장을 보면서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얼마나 무서울까 상상한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그렇게 쓰지 않고, 해밋이나 챈들러도 그렇게 쓰지 않으며,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렇게 쓰지 않는다.
그들은 주인공의 관점에서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니 두 사람이 마침 그의 집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묻는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요?"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다. 물어도 답이 없으니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는 답을 찾기를 포기하고 생각한다. 어쨌든 인생은 그런 거지. 아침에 일어나니 누군가 쳐들어와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일이 발생하는 그런 거.
그는 놀라는 일이 없다. 우리라면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칠 법한 일이 일어나도, 심지어 자기가 얻어맞아 쓰러지는 일이 있어도 그의 반응은 한결같다. ‘세상은 늘 그렇지. 항상 그래. 이런 일이 터지는 걸 피할 수 없어.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호들갑을 떨어도 소용없잖아.’ 언제나 이런 태도와 말투다.

‘하드보일드 탐정’에게 가장 눈에 띄는 동시에 사람을 매혹하는 부분은 ‘하드보일드 맨’의 모습 뒤에 숨겨진 연약함이다. ‘하드보일드 탐정’을 이해하는 방식 가운데 한 가지는 셜록 홈스와 비교하는 것이다.
첫째, 하드보일드 탐정은 홈스처럼 똑똑하지 않다. 달리 말해 보자. 그들은 19세기 과학, 과학적 방법, 과학 기술에 대한 강한 동경과 믿음 아래 만들어진 홈스와 다르다. 홈스는 우리가 모르는 일을 과학적으로 일사불란하고 의심의 여지없이 풀어 보여 준다. 홈스라는 캐릭터 뒤에는 19세기 과학관, 즉 과학이 계속 발전하여 언젠가는 모든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해 주리라는 믿음이 있다. 홈스는 과학의 이데아를 대표하며, 과학 추리의 능력으로 안개 속을 헤치고 진상을 드러낸다.
과학은 남은 흔적으로 사건 현장을 복원할 수 있고, 현장에는 반드시 충분한 흔적이 남아 훌륭한 과학 추리와 과학 기술을 통하면 사건을 되짚어 갈 수 있다. 홈스는 완벽하며, 사실을 복원해 드러낼 수 있다. 그는 19세기 과학의 꿈을 대표한다.
하드보일드 탐정은 이런 조건이 없다. 그들은 베이커 거리 221B에 앉아 사건을 탐색하지 않는다. 조금도 과학적이지 않다. 우리는 그들이 물증을 수집하고 물건을 검사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다.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고 조사하면서 수수께끼를 풀고자 동분서주한다.
둘째, 그들은 홈스처럼 범죄자보다 위에, 심지어 영국 경찰청의 경감 위에 있지 않다. 범죄를 마주하고, 사건과 관련된 누구와 마주하더라도 어떤 유리한 점을 쥔다는 보장이 없다.
사립탐정이 경찰을 만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홈스의 경우, 난제에 부딪힌 영국 경찰청의 경감이 막다른 길에 이르러 공손히 협조를 청하고, 홈스는 그들을 도와 답을 찾아낸다. 하지만 챈들러가 그리는 세계에서 경찰은 사립탐정을 막고 오도하며 이용하기도 한다.
하드보일드 탐정은 미녀를 만나도 좋은 점이 없다. 홈스는 어떤 미녀도 만난 적이 없지만 챈들러 이전의 통속 탐정소설에서는 언제나 미녀가 나왔다. 미녀는 보통 탐정이 해결하려는 사건의 약점으로, 탐정의 매력에 굴복해 실수로 혹은 일부러 사건 해결의 핵심 단서를 제공했다. 경찰은 어째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가. 그들은 탐정만큼 똑똑하지도, 용감하지도, 남자답지도, 여성을 끌어들일 만큼 매력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일단 탐정이 등장하면 그는 재빨리 어떤 미녀를 정복하고 사건을 해결할 열쇠를 만들어 낸다.
챈들러의 말로는 운이 없다. 미녀를 정복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번 미녀를 만나면 일이 꼬인다.
셋째, 하드보일드 탐정 곁에는 숭배하는 마음으로 사건 해결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왓슨이 없다. 챈들러가 쓴 말로 시리즈는 모두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홈스는 하나의 현상이고 놀라운 광경이다. 우리는 왓슨의 눈을 통해 이 놀라운 광경을 우러러본다. 왓슨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특수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인데, 그 관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러러보는 앙각仰角이다. ‘하드보일드 맨’ 소설의 일인칭 시점은 우리에게 ‘하드보일드 맨’의 생명관을 통해 그의 세계를 경험하고 인식하게 하며, 나아가 우리와 세계 사이의 다른 관계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왓슨을 통해 하나의 현상과 놀라운 광경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말로의 일인칭 서술을 읽으면서 우리는 말로의 주관과 편견을 피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그의 주관과 편견 속에서 정리된 한 덩어리의 경험, 즉 로스앤젤레스의 기이하고도 다채로운 세계다.

챈들러는 해밋을 소설 창작의 모델로 삼아 ‘해밋의 소설처럼’ 쓰고자 했지만 그와 동시에 자학적으로 해밋이 "진정으로 뛰어난 대작가"는 아니라고 평가하며, "이루고자 하는 일은 모두 잘해 냈지만 하지 못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챈들러가 ‘진정으로 뛰어난 대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 자신이 젊은 시절 시인이 되기를 바랐던, 순문학 작품을 쓰고자 했던 꿈을 버렸기 때문이다. 해밋은 순문학 작품을 쓰지 못했고, 애초에 쓰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와 달리 챈들러는 순문학 작품을 쓰고 싶어 했지만 스스로 포기했다. 적어도 챈들러는 자기 자신과 해밋 사이의 차이를 그렇게 이해했다.

챈들러는 말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모두 일곱 권 썼고, 이 일곱 권은 하나같이 훌륭해서 읽어 볼 가치가 있다. 나 또한 다른 수많은 이와 마찬가지로 일곱 권 가운데 『기나긴 이별』을 편애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기나긴 이별』이 어째서 일곱 편의 작품 중 가장 도드라지는지 간단하고도 분명하게 설명한다. 소설에서 레녹스라는 인물이 생생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레녹스는 잘생기고 우아하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를 지닌 데다 어두운 과거와 깊은 수수께끼를 품은 인물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독특한 매력이 있지만 속에는 신비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인격에 결함이 있으나 알 수 없는 엄격한 규율로 자기 자신을 유지한다.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약함과 강함이 그의 내면에서 도리 없이 결합해 있다. 말로는 이런 사람에게 이끌리고 결국 어지럽고 피비린내 나는 사건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전의 말로 시리즈에서는 레녹스처럼 존재감 있는 인물을 찾을 수 없다."
좀 더 간단하고 직접적인 설명으로 바꿔 보자. 『기나긴 이별』은 챈들러가 아끼지 않고 내놓은 ‘원 플러스 원’ 작품이다. 다른 말로 시리즈에서는 말로를 판다면 이 소설에서는 말로 외에도 말로만큼이나 멋진 레녹스를 얹어 준다. 레녹스의 출현은 말로를 더욱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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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8-25 0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늘 그렇지. 항상 그래. 이런 일이 터지는 걸 피할 수 없어.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호들갑을 떨어도 소용없잖아.’ 언제나 이런 태도와 말투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기나긴 이별 내용 좋네요!

AgalmA 2020-08-25 03:37   좋아요 1 | URL
해밋, 챈들러, 기나긴 이별 내용이 넘 웃겨서 공유하기로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