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레버는 사람의 속마음을 전면에 내보이는 화자와 전개를 선호하는데, 서술이 사건 사고를 전달하는 식으로 딱딱하고 고전적이라 전반적으로 지루하다. 사람의 마음은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것에 관심과 호응이 높아지니 더 그렇다. 20세기 중반의 사람들과 삶이 흥미롭기는 쉽지 않다. 인생이 대체로 거기서 거기니까. 소설 속 상황은 진부하고 답답한 상황이 많은데, 청혼을 기다리는 여성, 다른 삶을 욕망하지만 이혼을 못하는 부부들, 눈치 보고 이용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안주하는 남녀, 도움이 필요하지만 품위를 위해 속마음을 꾹 누른 채 사는 노년, 부유한 삶을 부러워하며 일상에 갇혀 그저 그런 삶으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등등. 지금 삶에도 여러 변주로 반복되는 것이지만 서술이 지루해 '그땐 그랬지, 지금도' 하는 생각만 남는다. 같이 읽었던 레이먼드 카버 문체와 비교하면, 카버가 유려한 테크니션 피아니스트같이 느껴진다. 트레버는 환상적인 것을 추구하지도 않고 분위기를 만드는 기교도 부리지 않는다. 모든 걸 꾸역꾸역 대면하게 한다. 누구누구 씨는 누구를 만났고 어디로 갔고 무엇을 했으며 블라블라... 일상, 일상, 일상, 이 삶을 보라,이다. 그들은 부자든 가난하든 어리든 늙었든 엘리트든 노동자든 외로움과 슬픔, 죄책감에 젖어 살아가는 낙오자의 모습이다.

 

 

트레버의 소설이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상상 초월의 이야기가 많은 요즘 현실을 생각하면 트레버의 소설을 읽은 뒤의 잔상은 그리 크지 않다. 내가 무덤덤해진 걸까.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1995년 구입한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했지만, 나는 윌리엄 트레버에게 쏟아지는 상찬과 소설 쓰기의 모범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나 싶다. 한겨레출판에서 꾸준히 내는 트레버의 다른 소설들을 읽으면 평가가 달라질까. 너무 큰 기대로 이 단편집을 읽었던 터라 또 도전할 맘이 지금은 안 생긴다. 흠.

 

 

※ 단편 별점

 

 

 

 

 

 

 

 

「욜의 추억」
퀼런은 동정을 받은 것에 놀란 기색은 없었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부모님이 익사하지 않으셨다면 자기는 지금 두 사람앞에 보이는 남자와는 다른 사람이 됐을 거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미스그림쇼는 퀼런이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다. 퀼런은 그 여자가 유모차에 누워 있던 아기를 데려가기만 했어도 자기는 다른 사람이 됐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은 불운했다고 덧붙였다. "욜은 아담하고 멋진 해변 휴양지예요. 하지만 그곳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몸서리가쳐져요.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불운 때문이죠. 까만 철문과 포드에 올라앉아 땀을 흘리고 있는 숙부를 생각할 때면 다른 일들도 모조리떠올라요. 그 여자는 아이를 원했어요, 미스티처. 아이한테는 사랑이 필요하죠.

「탁자」
나는 내 앞가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야." 제프스는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아." 그러고서 그는 말없이 차를 몰았고,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슬픔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생각했다. 어둠이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단 한 번도 불을 피운 적이없는 집에 돌아왔다.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가구들은 그를 보면서 미소 짓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복잡한 성격」
애트리지는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애트리지가 마타라 부인의 난감한 처지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해하려고 노력할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일지도몰랐다. 그는 지금까지 언제나 냉담한 편이었고, 스스로도 이러한 사실을인정했다. 그의 전 부인은 그가 지닌 성격의 여러 단면들을 가꾸어 가면서그의 냉담함을 몰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온갖 짜증을 내는대신에 그에게 애정을 쏟으면서 그의 복잡한 성격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갈구하던 사랑은 동정과 연민이 마침내 오늘 오후에그를 찾아온 것처럼 때가 되면 저절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했다. 애트리지는 온기를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둔 사람들도 있다고 현관에 있는 두 얼굴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전 부인과 마찬가지로 이 두 얼굴이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조이스 씨는 당신이 살인 행위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노라는 마음속이 들끓고 있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거리로 뛰쳐나간 뒤 워터포드 억양이 한껏 드러나는 말투로 폭탄 테러범들은 숨을 들이마실 자격조차 없을 만큼 비열한 자들이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증오와 죽음뿐이라고 거침없이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풀럼 브로드웨이에서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바람에 흩날리며그 어느 때보다 열띤 목소리로 행인들에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자신의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상상 속의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노라는 그런 부류의 여자가 아니었다.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그녀는 열두 달 뒤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가 돌아왔을 때 더모트가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서 이집저집을 돌아다니며 가스 검침을 하고 있을지,
아니면 사람들이 아일랜드인이 아닌 계량기 검침원을 원하면서 그를 거부했을지 궁금했다. 아일랜드 억양을 가진 사람을 거부하는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일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것은 범죄가 범죄를 낳는다거나 하느님이 무언가를 일깨워 주려 하신다는 거창한 범주에 속하지 않았고, 진실과 양심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아일랜드인을 거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받아들일 만한 일인지도 몰랐다.

「결손가정」
가정이 파괴되고 34년이 흐른 지금, 시간이 베푼 자비 덕분에 말비 부인은 고령의 삶 속에서 행복했다. 그녀는 교사에게 이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 보면지금 같은 상황에 맞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시작하기가 어려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노망난 늙은이의 행동처럼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정신을 모아서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말비 부인은 단지 아이들에게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음을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말비 부인은 자신과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교사에게 분명히 전하고 싶었다.

「그 시절의 연인들」
뒤돌아보면 그것은 런던에서의 그 특별한 10년과 관계있는 것 같았다. 그는 1960년대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새해 첫날이 영국에서 공휴일로 지정되기 한참 전인 1963년 1월 1일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는 이런 기분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2실링 9펜스입니다." 그녀가 카운터 너머에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치약과 손톱 줄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꼭 콜게이트로 사 와요."
집을 나서는 그에게 아내가 큰 소리로 당부했다. "지난번에 사온 치약은 맛이 고약했어요."
그의 이름은 노먼 브릿이었다.

「삼인조」
삼촌의 눈은 허름한 고아원 출신인 두 사람에게 너희는 혼자 힘으로살아 나갈 수 없다고, 서로의 필요조차 충족시켜 줄 수 없다고 시도 때도 없이 말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삼촌의 돈을 향한 자신들의 욕심이 자신들의 복종을 원하는 삼촌의 욕심과 다를게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욕심은 삼인조가 되어 버린 세 사람의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그들을 학대하는 것이 삼촌의 삶에 남은 마지막 즐거움인것처럼, 돈이 그리고 돈이 약속하는 자유가 그들의 삶을 환히 밝히는별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불 밑에서 서로에게 몸을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한 채 삼촌의 빈정대는 작은웃음소리를 들었다. 잠들기 전에도, 그리고 꿈속에서도.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 2020-09-04 0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은 저도 오래전에 사놓고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ㅎㅎ

AgalmA 2020-09-04 03:40   좋아요 1 | URL
극찬을 받아도 내 취향 아니면 솔직할 수도 있는 거죠 뭘 ㅡㅎㅎ

겨울호랑이 2020-09-04 0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데 그 이유가 행복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예전에는 제법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AgalmA 2020-09-05 00:27   좋아요 1 | URL
제 표현이 반증가능성 따지는 과학적 분석은 아니니까요ㅎㅎ
저도 요즘은 문학이 예전만큼 재밌지는 않아요. 늙어서 그런가^^;;

초딩 2020-09-05 0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트레비로 잘 못 읽은 것에 만족하겠습니다.
근데 제목은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 같아여~
행복한 가정은 이유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여러기지 이유가 있다는
:-)
코로나로 혼자 일잔하며 횡설수설합니다 ㅎㅎ
좋은 밤 되세요~

아갈마님 뵌지 5년이 다 되어가네여 :-)
감사합니다.
관계는 어떤뗀 아주 느슨해요 어래 가는 것 같아요
너무 느슨하면 날아가 버리고
너무 가까우면 언젠간 부딪히고 :-)

AgalmA 2020-09-09 05:36   좋아요 0 | URL
ㅎㅎ 트레비는 제가 자주 마시는 탄산수인데요ㅎ
제목이 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톨스토이의 명문을 떠올려주시다니 그건 제 문장력보다 초딩님 감성과 지성의 영향 때문이겠지요^^;

벌써 5년이네요. 많은 일이 있었죠. 앞으로도 많은 일이 있을 것이고요.
하신 말씀 다 공감됩니다.

예전엔 음주 수다도 떨고 그랬는데 이젠 그럴 동무도 떠나고 이래저래 쓸쓸해진 시공간입니다.

초딩 2020-09-05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AgalmA 님을 아갈마님이라고 불러요

AgalmA 2020-09-09 05:36   좋아요 0 | URL
제 닉넴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묻는 분들 많았는데 콕 집어 그렇게 불러주시면 제 수고가 덜어지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