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아는 베개에다 뺨을 갖다 대며 피로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랑하는 안토니우 모라, 페르세포네가 자기 왕국에서 나를 원해요. 이제 떠날 시간이에요,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이 이미지들의 극장을 떠날 시간입니다. 내가 영혼의 안경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당신이 알까요. 나는 저 위 무한한 공간 속에서 오리온의 버팀대를 보았고, 이 지상의 발로 남십자성 위를 걸었고, 빛나는 혜성처럼 무수한 밤을 가로질러갔고, 별들 사이 상상의 공간, 쾌락과 두려움을 가로질러갔고, 또한 나는 남자이자 여자, 노인, 소녀였고, 서양 세계 수도들의 커다란 대로에 모인 군중이었고, 우리가 평온함과 지혜를 부러워하는 동양 세계의 온화한 부처였고,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타자들, 내가 될 수 있었던 모든 타자였고, 명예와불명예, 열광과 쇠진함을 알았고, 험준한 산들과 강들을 가로질러갔고, 평화로운 양떼를 보았고, 머리 위로 햇살과 비를 맞았고, 타오르는 여성이었고, 길에서 노니는 고양이였고,
태양이자 달이었고, 모든 것이었습니다. 삶이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제 충분합니다. 사랑하는 안토니우모라. 내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무수한 삶을 사는 것과 같았어요. 이제 피곤해요. 내 촛불은 소진되었어요. 부탁해요, 내안경을 주세요.

1994년에 나온 이 책은 타부키가, 1935년 페소아가 죽기 전 사흘을상상하며 환상적으로 풀어낸 전기적 픽션이다. 다시 말해 페소아를 위한문학적 초혼제이자, 타부키식의 오마주인 셈이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1935년 11월 30일 리스본의 한 병원에서 간부전으로죽었다. 타부키는 임종 직전의 페소아 앞에 그의 수많은 다른 이름로서의페소아들(베르나르두 소아르스, 알바루 드 캄푸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히카르두 헤이스, 안토니우 모라 등)과 페소아의 주변인들(연인 오펠리아케이로즈, 이발사 마나세스 씨, 페소아 연구자 코엘류 등)을 불러들인다.
인도 야상곡]에 나오듯, 심한 근시였던 페소아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내 안경을 주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어쩌면 이 책 『페르난두 페소아의마지막 사흘은 멀리 있는 것이 잘 안 보였던 그에게, 그 먼 곳에서도지금 여기가 잘 보이도록 페소아의 마지막 눈에 건넨 타부키의 ‘문학(영혼)‘ 안경인지 모른다. 타부키 역시 2012년 3월 25일 리스본의 한병원에서 암 투병중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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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10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서 마지막을 보낸 시간은 고통과 고독의 시간이었을까요?

AgalmA 2020-09-12 20:50   좋아요 0 | URL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결말짓진 않았습니다. 담담히... 사고사가 아니라면 우리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