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백조가 된 무시당하던 새끼 오리. "나는 저 위대한 새들에게로 날아갈 거야!" 미운 오리 새끼는 말한다. "그가 백조알 속에 놓여 있기만 했다면, 마당에서 태어난 것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궁금했다. 백조로 태어났기 때문에 오리도 오직 백조가 될 수밖에 없었다면, 그리고 인어공주가 꼬리를 갈랐지만 그 역시 다시 바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면, 이 이야기들이 약속하는 변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확실히 크리놀린과 단단히 동여맨 허리끈 아래에는 더 복잡한 드라마가 있다. 그건 필요, 욕망, 열망, 그리고 두려움이 집합되어 있는 이야기였을 터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서술들로부터 무언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언제나-여자였어요’라는 하나의 플롯은 인간 정신의 상반된 흐름들을 반영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동기들, 젠더에만 국한되지 않은 다른 동기들을 압도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자기 성찰을 해내는 회고록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남자로 살았던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한 면죄부를 찾기 위해서 나의 순수함을 갱생시켜 주는 여성성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든가, "나는 억압당하는 자로서 누릴 수 있는 도덕적 위상을 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든가, 혹은 "특별한 존재, 칭송받는 존재,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서 여자가 되려는 것은 아닐까?" 등 작가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찾아 헛되이 헤맸다. 개인의 역사, 모든 개인이 저마다 경험하는 특별한 투쟁, 실망, 삶에 대한 열망, 이 모든 것이 ‘정체성’이라고 이름 붙은 하나의 유리병에 깔끔하게 들어갈 수 있을까? 프로이트 이후, 심리요법의 기술은 표면상으로는 통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성격의 다양한 면모를 파헤치는 데 집중했다. 에릭슨 시대 이후로는 정체성에 대한 탐구의 상당 부분이 정반대의 목적을 추구했다. 심리적인 복잡성을 줄이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광범위한 한 방을 찾는 데 집중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 사람의 삶 전체라는 이야기를 하나의 정체성 유형으로 축소해 버린다. 하지만 ‘정체성’이 ‘심리학’과 의절하는 데 쓰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정체성을 에릭슨이 경고했던 ‘전체주의’가 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각각의 모험은 정확하게, 성적 경험의 하나의 극에서 다른 극으로 이동한다." 샌디 스톤은 1991년에 쓴 진심 어린 호소, 「‘제국’의 역습: 포스트-트랜스섹슈얼 선언문」에 이렇게 썼다. "섹슈얼리티 연속체 사이에 놓인 어떤 공간이 있다면, 그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의심할 것이다. 제기랄, 나도 의심스럽다." 미디어 이론가이자 MtF 트랜스섹슈얼인 스톤은 내가 읽었던 초창기 트랜스 자서전들을 읽었고 나처럼 실망했다. "모든 작가들은 무엇이 여성다움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남성들의 전형적인 설명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 드레스, 화장, 그리고 피를 보자마자 연약한 것처럼 기절하는 것 등." 그녀는 모든 회고록이 "남성 페티시이자 사회적으로 강요된 역할에 대한 복제로서 ‘여성’을 비슷하게 묘사한다"고 썼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를 ‘개구리에서 공주가 된’ 동화 속 여주인공에 투사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도 썼다. 누구도 초-여성적인 여성과 초-남성적인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것을 상상하려 하지 않았다. 스톤의 연구는 문학의 한계에 도전하며 스스로를 ‘젠더 무법자’라고 주장한 일군의 새로운 트랜스젠더 작가들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새천년에, 아마존의 히트작 <트랜스 페어런트>와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른 전 올림픽 선수 케이틀린 제너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성별 이분법에 대한 고수가 더 견고해지는 와중에도, 성 연속체에 대한 주장은 더 커지고 있다. 그래서 PGPpreferred gender pronoun(선호하는 젠더 대명사라는 의미. 이 용어는 대학 캠퍼스에서 유행하고 있다)와 ‘젠더퀴어’나 ‘데미걸’, 혹은 ‘가이다이크’로 스스로를 지정함으로써 표현되는 유동성의 시대에도 종종 낡은 시대의 근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여성’이라는 바로 그 관념이 본질주의자의 환상으로 비판되는 시대에도, MtF 트랜스섹슈얼의 여성성은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모든 역사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는 탈근대적 트랜스젠더 이론가들은 자신의 저작에서 완전한 여성성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들은 외과 의사인 제우스 박사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아테네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자인한 잡종 같은 젠더의 ‘괴물적인’ 면모까지도 끌어안고자 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이 (에릭 에릭슨처럼)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성姓도 바꾸면서 자전적인 기록에서 이전 정체성을 조심스럽게 씻어 냈다. 나는 의문스러웠다. 왜 "젠더에서 어떤 경계도 규칙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이 법의 이탈자들이 과거 자신들 앞에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성적인 이분법을 강화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수술에 굴복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이분법은 그저 중간 기착지인 것일까?

어느 겨울날, 지나치게 난방이 잘 되던 포틀랜드 공립도서관 한구석에서, 나는 공책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케이트 본스타인의 『젠더 무법자』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있었다. 본스타인은 그녀가 느꼈던 ‘문화적 압박’을 한탄했다. 그녀는 결국 사회가 ‘진짜 여자’로 여기는 존재가 되기 위해 남자 성기를 버려야 했다. 그래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래도 수술을 했을 것이다. 이 질과 성기를 가지는 게 어떤 것인지 안 지금, 나는 수술을 한 것이 기쁘다." 그녀의 책은 수술 7주년 기념에 맞춰 쓴 긴 산문체 시로 끝났다. 마지막 시구에서 그녀는 거울에서 소년이 아닌 소녀를 만난 ‘흥분’에 대해 썼다.
그러고선 비밀을 누설한다.

소녀?
그것은 내가 벗어나려고 애써 온 정체성이다.

그리고 또 다른 7년이 왔다 가고 나면 "내 소녀 피부가 내 뒤의 사막에", 그녀가 던져 버린 온갖 낡은 젠더적 의무들 옆에 "놓여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본스타인은 주장한다. 그녀는 정체성을 벗어 버리고 "나에게 딱지를 붙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비웃을 것이라고.

반유대주의에는 화수분처럼 수많은 원천이 있었지만, 근대 파시스트 국가를 위협한 유대인다움이란 종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젠더로서의 유대인다움이었던 것이다. 독일의 출판업자인 테오도르 프리슈는 이 문제를 1893년 베스트셀러 『반유대주의 교리문답The Anti-semitic Catechism』에서 확고히 했다. "유대인의 섹슈얼리티는 그야말로 게르만 민족의 섹슈얼리티와 다르다. 유대인은 게르만인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유대인이 자신의 태도를 게르만인처럼 바꾸려 한다면, 이는 게르만 영혼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당시 빈 은어로 ‘유대인the Jew’은 말 그대로 클리토리스를 의미했고, 여성의 자위는 ‘유대인과 노는 것playing with the Jew’이라고 표현됐다.) 몇 십 년 후에 미래의 나치 내무장관 빌헬름 프리크는 1930년에 동성애자 남성을 거세하는 법안을 독일 의회에 발의하는데, 그는 동성애를 ‘유대인 역병’이라고 불렀다. 하인리히 힘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을 ‘남성적 국가’라고 천명하면서 그 연관성을 분명하게 했다. "동성애자들의 음모는 유대인들의 음모와 하나씩 비교하면서 봐야 한다. (···) 그 둘 다 독일 국가와 독일 민족을 파괴하는 데 여념이 없다." 역사학자 샌더 길먼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즈음 유럽은 "근대 유대인의 출현뿐만 아니라 근대 동성애자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었다." 이 쌍둥이의 탄생은 "역사적 우연, 그 이상의 것"이었다고 길먼은 쓰고 있다. "근대 유대인다움은 인종화된 만큼이나 젠더화된 범주가 되었다." 이는 프로이트 역시 의심했던 일이었다. 프로이트는 이런 경향이 등장하기 수년 전이었던 1909년 소년의 거세 공포에 대한 분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거세 콤플렉스는 반유대주의의 가장 깊은 무의식적 근원이다."
유대인 남성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은 근대의 선도적인 유대인 작가, 학자, 의사 그리고 정치인 들에 의해서 내면화되고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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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은 "애쓰지 마라(Don’t Try)."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신이 멍하게 벽만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벽은 이상한 회색에 두껍고 축축하고 그만의 사연을 가득 품은 데다 아주 낡고…… 오래되었다. 여자도 그렇다……. 그들이 나이 먹는 것을 보면 정말로 슬프다. 젊은 애들의 탱탱하게 올라붙은 몸을 봤을 텐데…… 그 애들의 자부심은 정말 싫다. 기계적이고 찰나에 불과한 몸뚱이에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없는데도 그렇게 하는 것을 증오한다. 자부심이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고 승리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인데……. 그는 다시 미소를 짓고 가만히 서서 벽을 쳐다보았다. 벽이 즐겁고 의미 있어 보이기에 한 손가락으로 축축하고 거친 회색 가장자리를 만졌다.

- 「카셀다운에서 온 스무 대의 탱크」

독수리도, 당신 엉덩이의 들썩거림도 어쩔 수 없고, 내가 어쩔 수 있는 건 인간의 운명뿐이지……. 죽음. 세상에, 죽음이란 믿을 수 없어……. 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초록색 벽과 묵주 그리고 죽음을 마주했어. 잠긴 문에서 몸을 돌려…… 물기를 머금은 잔디를 보았어. 잔디는 항상 반짝이고 반짝이지……. 그 이유가 뭘까?

난 사람이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지옥을 거쳐 왔고,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이 또 있을 거라 믿으며 호흡마다 웃음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책은 아주 단조로운 것들을 단조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칼을 들고 비명을 지르는 나환자는 없다. 토사물을 쏟아 내는 멍청이나 진을 마시고 취한 여자애들처럼 살게 내버려 두지 말기를. 오늘은 창문을 부수고 E. 파워 빅스를 들을까 한다. 당신의 핑계는 뭐지?

(중략)

인간이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은 죽을 수 있다는 것과 그걸 무시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시와 그림은 억제력이 없고 사실주의를 무시할 만큼 마음에 큰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마침내 진실이 항상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종종 진실을 제쳐 놓는 것이 중요하다.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존 브라이언이 지하신문인 《오픈 시티》를 창간하기로 마음먹었다. 난 일주일에 한 번 칼럼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칼럼에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가면을 쓰고 단편을 썼다. 일주일에 한 번씩 2년 가까이 썼다. 이기든 지든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경마가 끝나면 여섯 개들이 맥주팩 서너 개를 뜯고 베토벤과 바흐를 시시하게 만들어 버리는 말러를 들으며 칼럼을 썼다.
내가 건넨 원고는 브라이언이 모두 인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모두가 천재로 대접해서 난 그런 척을 하고 그런 글을 써야 했다. 어렵진 않았다. 천재가 되고 싶으면 유일한 사람이 되면 된다.

-「음탕한 늙은이의 고백」

헤밍웨이는 구성과 의미와 용기와 실패와 과정을 알려고 투우를 배웠다. 나도 같은 이유로 복싱을 하고 경마를 한다. 손목과 어깨와 관자놀이에 감각이 느껴진다. 지켜보고 기록하는 태도가 글이 되고 형태가 되고 행동이 되고 사실이 되고 꽃이 되고 개 산책이 되고 침대와 더러운 팬티가 되고 앉아서 타자 치는 소리가 되고, 그렇게 앉아서 자기만의 올바른 방식으로 타자를 치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가 되고 어떤 아름다운 여자가 찾아와도 눈이 가지 않으며 회화나 조각도 비할 게 아니다. 글을 쓰는 건 최종 예술로 용기가 있어야 하고, 역대 최고의 도박으로 대개는 이기지 못한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부코스키 씨, 글쓰기 강좌를 연다면 학생들에게 뭘 시킬 건가요?"
난 명쾌하게 대답했다. "모두를 경마장으로 보내 경기당 5달러씩 걸라고 하겠어요."
질문한 사람은 내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인간은 배신과 사기에 능하고 태세 변경도 잘한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나약하고 더러운 책략을 쓸 수밖에 없는 분야에 발을 들이는 일이다. 파티에 나온 많은 사람이 그토록 혐오스러운 이유다. 질투하고 편협하고 교활한 면모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누가 친구인지 알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사람을 파티에 초대하거나 자신이 감옥에 가거나.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내가 횡설수설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 젖꼭지나 거시기나 다른 사람의 것을 잡아라. 모두가 여기 속한다.

-「올바른 호흡과 길을 찾는 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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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1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20-11-11 14:29   좋아요 1 | URL
경마장을 한 번도 안 가봐서 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경마장 가는 길> 소설이 좀 알려 줄까요(뭐든 책으로 보려는 이 심리ㅎ)
전혀 떠드시는 거 아녜요.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긴 힘들어서 저혼자 몰래(다 보고 있다!) 사부작 남기는 것도 있지만 신간 경우 내용이 궁금할 분들에게 정보만이라도 남기자 그런 생각도 있어서^^; 월말에 페이퍼로 한번에 정리하면 정보 공유가 늦는 거 같아서^^)>

2020-11-11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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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그러니까, 아주 간단히 말해, 출판사가 매우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출판부수가 1,000,000권이네 40,000권이네 하는 얘기에서 단 하나의(0‘ 자도 믿지 마세요! 아니 400권 찍었다는 말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사기예요! 저런... 저런! 오직 〈프레스 뒤 쾨르) 정도가... 쳇!... 그 정도가 그럭저럭 팔리고... 그 외에는 〈세리 누아르〉,
세리 블렘므 정도가 근근이 팔리지요... 사실, 더는 책 한 권이안 팔립니다... 이건 심각한 상황이에요! 영화, 텔레비전, 생활용품, 스쿠터, 그리고 자가용! 2마력, 4마력, 6마력짜리 자가용들이,
책에 대하여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할부" 판매되는 모든 것들, 그렇지! 그리고 "주말, 여행 상품들! 한 달에두세 번씩 있는 그놈의 바캉스며... 룰루랄라 떠나는 크루즈 여행까지! 안녕, 쥐꼬리만 한 예산이여!... 보세요 이게 다 빚이라고요!... 더는 동전 한 푼 없어요!... 그러고서 이제, 책을 한 권 산다고요!... 캠핑카 한 대를 더 사요? 또 삽니까!... 그런데 한 권의 책은요? 그건 빌리면 되는 물건이었지요.... 한 권의 책은, 다들 아는 얘기죠, 적어도 스물에서 스물다섯 명 정도의 독자들에게 읽힙니다... 아, 그런데 만약, 빵 한 덩이나 햄 한 쪼가리기, 책과 마찬가지로, 스물에서 스물다섯의 소비자를 먹인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게 무슨 횡제인가 하겠죠.... 빵이 불어나는 기적은 여러분을 황홀하게 합니다. 그런데 책이 불어나는 기적은, 그러니결국 무상으로 제공되는 작가의 노고라는 기적은, 기정사실처럼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이 기적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게, 어느 "아수라장"에서, 아니면 좀 더 점잖게는, 곳곳에 있는 서재에서, 그리고 기타 등등의, 기타 등등의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이 어디서 일어나는 간에 작가들은 빈 깡통만 차요. 이게 요점입니다! 사람들은 작가라는 사람이, 모르긴 몰라도상당한 자신가이거나, 풍족한 연금 혜택을 받고 있거나, (사실이라면 이건 핵융합 반응의 발견보다도 더욱 대단한 일인데) 먹지 않고도 살아가는 비법을 알아낸 사림이겠거니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런데지체 높으신 분들은 선취권을 가진 채권자시며, 파산자들의 재산으로 배가 부른 양민들 얘기입니다) 모두 당신에게 다음 이야기를,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처럼, 어떤 악의도 없이 설파할 것입니다.

2
"오직 비참만이 천재를 개화시키며... 예술가에게는 고통이 어울린다오... 그것도 아주 많이 고통스러워야 하오!... 아주 많이, 그리고 더, 더욱 괴롭게!...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오직 고통 속에서만작품을 낳기 때문에!... ‘고통‘이란 예술가의 ‘스승‘ 이지요....(소클씨가 이렇게 말합디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모두 감옥이 예술가에게 어떤 악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오히려 그 반대지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가의 진정한 인생이란 짧든 길든 감옥과의 숨바꼭질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그리고 단두대야말로, 겉보기에는 흉측한 물건이지만, 단두대야말로 완벽하게 예술가를 대접한다는 사실을... 말하자면단두대가 예술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단두대를 피해간 모든 예술가들은(원하신다면 처형용 말뚝을 피해갔다고 합시다), 사십여 년쯤 지난 뒤에는, 한낱 재담가로 간주될 수가 있지요... 예술가는, 대중으로부터 부각된 존재고, 혼자 튀었기 때문에, 그가 본보기로 처벌받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창문이란 창문은 전부 고가에 임대되었습니다, 예술가의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서지요. 그가 마침내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진심으로 찌푸리는 것을 보기 위해서지요! 또 예를 들면... 군중들은 일찌감치 콩코르드 광장의 나무들을 몽땅 뽑아놓습니다. 그러면 튈르리에는 널찍한 공터가 생긴단 말입니다!

3
"자네는 일하는 법을 몰라!"라고 그는 결론 내립니다... 그는 조금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어쨌거나!... 그는 예술의 후원자입니다. 다들 알지요, 가스통은 예술의 후원자라고... 하지만 그는 장사꾼이기도 합니다. 가스통은 장사꾼이에요... 나는 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부랴부랴,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일하는 법"을 따를 만한 재능이 내게 있는지 살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나처럼 학구적인 사람이, "일하다"라는 표현의 저의를 살피게 되었을 때!... 나는 즉시 한 가지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라디오에 출연하는 것이었어요...
만사 제쳐두고!... 라디오에서 횡설수설하는 일! 저런! 무슨 내용이라도 상관없어요!... 다만 라디오에서 자기 이름이, 정확한 발음으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흘러나오게끔 하는 거예요! 당신 자신을 "거품이 잘 나는 비누나... "날 없는 가투이야(Gatouillat)면도기, 또는 "천재 작가 일리지(Illisy)‘처럼 만드는 거죠! 같은 소스를 쳐서, 같은 방식으로 요리하면 되는 일이에요! 마이크를 내려놓으면 바로 영상 촬영에 들어가야 합니다! 구구절절 찍어야 해요! 당신의 유년기, 당신의 사춘기, 당신의 중년, 당신 인생의 가장 사소한 우여곡절까지 촬영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촬영이 끝나면, 전화 돌리기입니다! 모든 기자들이 다시 한번 당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게끔 해야 돼요. 그러면 당신은, 왜 당신이 당신의 유년기, 당신의 사춘기, 당신의 중년을 찍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당신 사진을 또다시 찍어가게 해야 하고... 그게 잡지에, 더 많은 잡지에 게재되게끔 하는거죠!... 나는, 그죠, 내 얘기를 하자면 난 이미 한번 지 끔찍하게 혼란스러운 과정 속에 참여해봤습니다!... 내 인생의 이런 부분은 정당화해야 하지 않나?... 저런 부분은 찬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저널리스트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완전히 낙담케 했지요.
"자네는 자기 얼굴도 안 보나, 페르디낭? 미친 겐가? 어째서텔레비전에 나가지 않지? 자네 얼굴을 갖고? 자네 목소리를 갖고? 자네는 자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나?... 거울에 스스로비춰본 적이 없어? 자네 모습이 얼마나 웃긴데!"
(중략)
내 목소리에 대해서는, 나도 내 목소리를 알지요... "불이야!" 하고 외치기에는 내 목소리도 쓸 만합니다!

4
잊지 마세요! 분노에 사로잡힌 이는 바보짓을 저지르고 답니다! 그런 뒤에 갖가지 분노가 그의 몸을 꿰뚫지요! 그를 찍어발기지요! 그게 정의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습니까, Y 교수님, 나는 다시는 그런 실수를 안 할 겁니다! 맹세코! 절대로!"
"그렇다면 철학적 토론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할 수있겠어요?... 가령, "자아(soi)‘의 변모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져오는 변화들에 관하여 토론한다거나..."
"아, 선생님, 나는 물론 당신을 존중해드리고 싶고,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거 한마디는 분명히 말씀드라죠, 그런 건 내 관심 밖입니다!... 내게는 관념이라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내 생각에, 관념이란 것보다 더 천박하고, 진부하고, 역겨운 것도 없습니다! 도서관마다, 그리고 카페테라스마다, 관념들로 꼭 차 있어요!... 무력한사람들이... 그리고 철학자들이!... 관념을 곱씹어대지요... 관념이란 거... 그게 그들의 산업입니다!... 그들은 관념을 갖고 젊은이들에게 허세를 부리지요! 그들은 젊은이들의 포주 노릇을 하려 들어요!... 젊은이들은, 아시다시피 뭐든 마구 삼킬 준비가 되어 있으며.. 무엇을 보더라도 이거 "주우우욱이는데!"를 외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철학자들이 젊은이들을 창녀처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용이하겠어요! 정열 어린 청춘기가 저 "관녀어엄"들 앞에서, 그리고 더 정확하게 짚자면 ‘철학‘ 앞에서 흥분하느라, 열광하느라 바쳐지는 것입니다 선생님!... 젊은이들이 사기꾼을 사랑한다는 것은 꼭 강아지들이 나뭇조각을, 사람들이 이건 뼈다귀야 하면서 흔들어대는 나뭇조각들을 쫓아 달리고,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내달리고, 짖어대다가, 자기 시간을 잃고 말지요, 이것이 요점입니다!... 이제 그들이 젊은이들과 놀아주는 데 여념이 없는 저 모든 삼류 작가들을 봐보세요... 그들이 끊임없이 젊은이들에게, 속이 텅 빈, 그리고 ‘철학적‘인 가짜 뼈다귀들을 던져주는 모습을... 아, 청년들이 목이 쉬어라 짖어대는 모습을!... 포주들음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어요! 관념들!... 더 많은 관념들! 결론을! 지적 변화를!

5
나는 우리 지구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요! 난 그저 작은 발명가일 뿐이에요, 그것도 아주 사소한 기법을 발명한! 당연히 언젠가는 잊힐! 다른 모든 것처럼! 토글 단추처럼! 난 내가 별거 아니라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관녀엄‘들보다는 낫다 이겁니다!... 관념들은 관념의 보부상들에게나 맡기지요! 모든 관녀엄들을!
포주들에게, 사문난적들에게!..."
내 말이 우습나 봅니다... 그가 히죽거리고 있습니다, 허 참!
오래는 못 웃게 할 겁니다!!
"그런데 이보세요, 말해봐요. 당신은 무슨 일을 합니까?...
Y 교수님?... 당신은 학생들을 놀래주는 사람, 숨죽이게 만드는사람이 아닙니까, 젊은이들을 정신없게 하는 사람 맞죠? 그들에게 "메시지들을 보내곤 하지 않습니까... 이제... 나도 좀 놀라봅시다!..."
"당신은 무엇인가를 발명해냈다고 하셨죠?... 그게 뭡니까?"
그가 묻는다.
"문어에서의 감정 구현이죠!... 문어는 바싹 말라 있었어요, 거기에 감정을 되돌려준 것은 바로 나란 말입니다!... 말씀드리는것처럼!... 내 맹세컨대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제부터는어떤 머저리라도 "글을 써서 당신을 감동시킬 수 있다니까요, 그런 기법이고, 마법입니다!... "구어"의 감정을 글쓰기를 통해 되찾는 일이에요! 의미가 없지 않습니다!... 보잘것없긴 하지만, 그래도 업적은 업적이에요!..."
"그로테스크한 우쭐함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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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작품은 삶이 끝장났다고 여길 때 깊고 텅 빈 우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라는 메시지가 늘 있다. 그러므로 하루키에게 지하세계(우물, 구덩이, 굴, 죽음의 강)는 빠질 수 없는 메타포.
이 소설에서는 앨리스의 토끼굴에 단테의 신곡까지 가미된 구덩이일세ㅎ 『우게쓰 이야기』처럼 일본 회화 풍으로.



하루키는 떡볶이나 돈까스 같은 작가. 내겐 진정 힐링이 된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방울을 흔들고 싶어진다. 그래, 여기 있다고.




1.
사실 그전에 이미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려는 의욕이 식었던 것 같다. 결혼생활은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청년이라 할 수 없는 나이였고, 갈수록 무언가가—가슴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불길 같은 것이—내 안에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 열기가 온몸을 덥히던 감촉이 점차 잊혀갔다.
어느 시점에서 그런 나 자신을 깨끗이 인정하고 단념했어야 옳다. 무언가 수단을 강구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계속 미루기만 했다. 결국 나보다 아내가 먼저 단념했다. 그때 나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 「1.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기사단장 죽이기 1 』

2.
나는 천장의 불을 켜고 다시 스툴에 앉아 그림을 새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그림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난폭하게 용솟음치는 무언가가 있고, 그 일종의 폭력성이 무엇보다 강하게 내 마음을 자극했다.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놓쳤던 난폭함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떼 지어 나타난 그 난폭함을 다스리고 달래어 이끄는 어떤 중심요소가 필요했다. 정념을 통합하는 이데아 같은 것. 

- 「16. 비교적 좋은 하루」,『기사단장 죽이기 1 』

3.
아마다 도모히코가 일본화용 붓과 안료로 그려낸 가상의 인물이 실체를 지니고 현실(혹은 현실 비슷한 것)에 나타나서 제 의지에 따라 입체적으로 돌아다닌다는 건 분명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그림을 보는 사이 점점 그것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만큼 아마다 도모히코의 필치가 선명한 생명력을 발한다는 뜻이리라. 현실과 비현실, 평면과 입체, 실체와 표상의 틈새가 보면 볼수록 흐릿해져갔다. 반 고흐가 그린 우편배달부가 결코 실체가 아닌데도 보면 볼수록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듯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가 단지 검은 선 하나로 거칠게 표현한 까마귀가 정말로 하늘을 날아가는 듯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감상하며 나는 새삼 아마다 도모히코라는 화가의 재능과 역량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기사단장도(아니, 그 이데아도) 이 그림이 얼마나 훌륭하고 강렬한지 알아보았기에 그림 속 기사단장의 모습을 ‘차용’한 것이리라. 소라게가 되도록 아름답고 튼튼한 조개껍데기를 제집으로 선택하는 것처럼.

- 「22. 초대는 아직 유효합니다」,『기사단장 죽이기 1 』

4.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에서 자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권총 자살하는 남자 있지? 이름이 뭐더라? 너한테 물어보면 알 것 같아서."
"키릴로프." 내가 말했다.
"맞아, 키릴로프. 지난번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떠올라서 말이지."
"그게 어쨌는데?"
아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어쩌고 말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어쩌다가 그 인물이 떠올랐는데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어. 그래서 좀 신경이 쓰였지. 작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그나저나 러시아인은 발상이 참 희한하단 말이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는 자신이 신이나 통속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임을 증명하려고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는 인간이 많이 나와. 하긴 당시 러시아에서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지만."

- 「43. 그것이 그저 꿈으로 끝날 리 없다」,『기사단장 죽이기 2 』

5.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만 그림을 그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그림에 나타내는 것.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나 자신의 비밀신호를 그 안쪽에 은밀히 그려넣는 것.

- 「44.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해주는 특징 같은 것」,『기사단장 죽이기 2 』

6.
"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스콧 피츠제럴드가 무슨 소설에 썼지."

- 「48. 스페인인은 아일랜드 앞바다를 항해하는 법을 몰랐으므로」,『기사단장 죽이기 2 』

7.
돈나 안나가 말했다. "그 강은 무와 유의 틈새를 흐릅니다. 그리고 훌륭한 메타포는 모든 현상에 감춰진 가능성의 물줄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시인이 하나의 광경 속에 또다른 새로운 광경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당연한 말이지만, 최고의 메타포는 곧 최고의 시가 되죠. 당신은 그 또다른 새로운 광경에서 눈을 돌리시면 안 됩니다."

(중략)

"마음을 다잡으세요." 돈나 안나가 말했다. "마음이 멋대로 움직이게 둬서는 안 돼요. 마음을 놓쳐버리면 이중 메타포의 먹이가 됩니다."
"이중 메타포가 대체 뭐죠?" 내가 물었다.
"당신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그걸 알고 있다고요?"
"그것은 당신 안에 있으니까요." 돈나 안나가 말했다. "당신 안에서, 당신이 하는 올바른 생각을 붙들어 하나하나 먹어치우는 것, 그렇게 몸집을 불려나가는 것. 그것이 이중 메타포입니다. 그것은 옛날부터 쭉 당신 안의 깊은 어둠에 살고 있었어요."

- 「55. 그것은 명백히 원리에 어긋난 일이다」,『기사단장 죽이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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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3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3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3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0-11-04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떡뽁기 같은 작가라니 ㅋㅋ 기가막힌 표현인데요. 20대 초에 하루키를 탐닉하고 있었던 그때가 딱 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읽지 않고 있는데 AA님의 리뷰들을 보니 다시 또 하루키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AgalmA 2020-11-06 06:29   좋아요 2 | URL
20대 때 읽는 하루키는 인생에서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이라 생각해요^^ 나이 들어 읽으면 그때의 나, 지금의 나를 반추하는 시간도 되고요.
다시 맘 가는 작품 읽어보세요. 다른 감회가 밀려 오실 거예요.
 
명랑하라 팜 파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0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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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제목은 시집이 보여주는 풍경과 오히려 상반된다. 우울과 폭력 속에 휩쓸리고 있는 그녀들은 “여자라기엔 애매한 실존”이자 “아무래도 절반 죽은” 듯이 “둘 중 하나는 유령”같은 존재이다. 누구를 해치기는커녕 부지불식간에 몰락하고 있다. 이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세이렌’은 대표적인 ‘팜 파탈’(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치명적 고통으로 이끄는 존재)이다. 이광호 평론가는 이 시집의 ‘세이렌-팜 파탈’을 일반적 정의가 아니라 시적 에너지로 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김이듬의 세이렌은 팜 파탈인가? 그 노래가 어떤 치명적인 위험을 동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세이렌은 팜 파탈의 측면을 보유한다. 특히 성적인 모티브의 노출 역시 팜 파탈로서의 세이렌의 존재를 수긍하게 한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이미지로서의 팜 파탈은 이성애 가부장제의 상징질서가 만들어낸 판타지이기도 하다. 팜 파탈의 표상은 남성 권력이 만들어낸 과도한 공포와 불안이 역설적으로 투사된 것이다. 그것은 팜파탈의 매혹이 남성의 욕망이 만들어낸 매혹임을 의미한다. 팜 파탈은 남성들의 순수한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그 욕망 자체를 욕망하게 만드는 표상이다.

그렇다면, 김이듬 시의 세이렌은 어떠한가? 그녀, 혹은 그녀들은 하나의 성적, 실존적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시집에서 ‘세이렌-팜 파탈’은 상징질서 내부의 주체화를 거부하는 혼종적 주체이다. 다시 한 번, 문제적인 것은 이 시집의 팜 파탈이 노래하는 세이렌으로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세이렌은 꿈속에서 꿈꾸는, 무의식에 대한 무의식의 기술이라는 방식으로, 상징질서를 뒤흔들어놓는 시적 언어를 발설한다. 그 언어는 남자를 유혹하여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리는 언어가 아니라, ‘남성/여성’ ‘현실/꿈’ ‘삶/죽음’의 경계가 갖는 상징적 권위를 혼란으로 몰아가는 언어이다. 여기서 시적 주체로서의 의미 생성 과정과 관련된 역동적인 세미오틱, 혹은 본능적 언어의 작동을 볼 수 있다. 김이듬의 시에서 팜 파탈은 이 세계의 상징질서에 깊고 날카로운 틈을 파고드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세이렌의 움직이는 초상이다. 그 ‘팜 파탈-세이렌’의 ‘명랑’은, 그래서 그녀들의 우울, 강박, 히스테리, 분열증 너머의 시적 에너지를 암시한다. 그것은 그녀들의 정신적 외상의 번역이 아니다. 자기 몸 깊은 구멍과 얼룩에서부터 고통을 다른 쾌락으로 만드는 시적 체위이다.”

(이광호 해설 「세이렌의 유령 놀이」, 166~168페이지)

 

 

 

이광호 평론가의 해설은 그 논리 체계에서는 매우 설득력 있다. 그러나 애초에 시인이 왜 유령과 꿈의 극장을 만들어 발화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는 아쉽다. 정신적 외상 없이 고통을 다른 쾌락으로 만드는 건 태생적 사이코패스여야 가능한 것 아닌가. 모든 인간은 자신의 정신적 욕구와 외상을 이미지든 영상이든 글이든 대화든 범죄든 일의 성취든 무엇을 이용해서라도 풀고자 한다. 김이듬 시인은 여성이라는 틀에서 평가되고 유린당하며 고통받는 현실 세계의 여성들이 현실에서 변신할 수 없으므로 비현실적 공간에서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도록 설정하고, 그녀들에게 모욕과 폭력을 휘두르는 대상들을 노골적이고 위악적으로 전시한다.

 

 

“유치하게 할아버지는 내가 너무 잘해서 처음이 아니지? 좋아라 하다가 입 닥쳐 뭐가 되려고 이러니 집안일은 밖에 나가서 말하는 게 아닌 법이야 기껏 키워놓았더니 경찰서나 들락거리냐 나는 할아버지의 입을 막으며 뱀으로 변하가네 사자 물불보다 변신이 쉬운 걸로 흡혈귀가 되는 방법은 마법 책에 없었네”

(「유니폼은 싫어요」)

 

“저런,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남자가 비틀비틀 걷다 꺽꺽 우네요

잠바를 말아 쥐고 바닥을 힘껏 때리더니

이게 뭐냐고, 너 나한테 뭐라고 그랬냐, 다시 말해봐

깜짝 놀라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려요”

(「헬렐레할래」)

 

 

“교통사고와 연애는 후유증이 더 무섭다고

내일은 병원에 가보라며 남자가 아픈 데를 주물러준다

호호 불어주다가 애도 아닌데 침을 발라대기 시작한다

한 세트의 유리병들이 위태롭게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

십이 간지 꾸러기 수비대와 몬스터 만화책이 자빠지고

과일을 하라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행상인이 지나가고

얼떨결에 심드렁한 개처럼 남자는 내 치마 아래로 기어들어간다”

(「여드름투성이 안장(鞍裝)」)

 

“자자! 시작할까요? 나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제안한다 지긋지긋하고 구태의연한 진술은 들을 필요도 없으니 내버려두는 게 제일이다 제 그림자와 결투하는 놈한텐 이만한 질액도 생리액도 잘 안 들을뿐더러 내가 홀리아 할아버지와 결혼할 때처럼 처음부터 그의 고환을 긴장시킬 필욘 없다 나는 그들을 분석하려는 재미없는 짓거리를 그만두고 임종의 옷들을 전시할 작정이다 날아다니는 가죽 밸트도 있고 걸치면 죽게 되는 방탄복도 있다 한꺼번에 나는 수백 벌의 원피스를 껴입고 수천 켤레의 구두 위에 장갑을 겹쳐 끼우고 깊은 모자를 눌러쓸 것이다 자 그럼 천천히 똥구멍을 벌리세요 어어어 귀는 펄럭거리지 말고 혓바닥을 깨물고 최대한 불행했던 때를 생각하세요 아니 웃으면 어떡합니까!

(중략)

그가 내 혀를 잘라 먹으며 똥구멍을 과도하게 벌리는 바람에 통쾌하게 어릴 적을 떠올린다. 나는 발가벗겨진 채 죽은 지 오래되어 나는 흰 티셔츠를 찾아 커다란 옷장 안에서 나는 어딨어? 나는 더듬더듬 큰 소리로 무언극 대사를 주고받는다 몇 차례 경련이 일어나더라도 모자 따위가 일그러지는 건 피해야 한다 그는 모든 연기를 다음으로 연기하자고 나를 설득한다 나를 찾아온 것을 후회하며 자신을 자신의 옷으로부터 추방하지 않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마침내 오 하느님 나의 새침한 여신이여 그는 무릎을 꿇으며 나를 파고든다 그가 미쳐서 값비싼 신발과 모자를 찢어버리지 못하도록 나는 나를 내버려둔다”

(「망한 정신병원 자리에 마리 수선집을 개업하기 전날 밤」)

 

“몇 사람이 놋쇠 그릇을 긁고 있었다

식탁 위로 올라가 발을 구르다

소녀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풍성한 머리칼이 자라는 그릇은 울기 시작했다

그릇된 노래는 부르지 마라

막대기로 때리고 문지를수록

소녀는 진동했고 발작에 가까웠다

다시 생겨날 당시의 용도로 돌아갈 수 없었다.”

(「드러머와 나」)

 

 

“군인이 사흘 먼저 사라졌고 세 명의 형제들은 순차적으로 죽었다

철공소 골목 국숫집을 나와 학원 가는 길 불똥을 피해 벽에 붙었다 계집앨 붙들어 매고 이튿날 대낮까지 절단 낸 낯익은 용접공 형제들과 그들의 군복 입은 친구는 찬물을 끼얹어가며 쪼가리를 공평하게 분배했다 누군가 계집애를 구성했던 이마 위로 눈부신 망치를 쳐들었을 때 내리깔리는 흰자위에 천공의 쇠공이 불을 뿜으며 재빨리 날아와 박혔다”

(「침묵의 복원」)

 

 

 

 

1부에서만 가져온 것인데도 대단한 양이다. 어떤가, 이 일련의 인용들이. 불편한가. 불쾌한가. 작위적인가. 그로테스크의 작용처럼 리얼함이 지나쳐서 히스테릭한 웃음이 터져 나오지는 않는지. 이 시적 정황 속 그녀들은 사라지기 직전이자 돌이킬 수 없는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화장을 하든 안 하든 스스로를 꾸미고 원피스를 차려입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여성들은 전무하다. 이 시집 속 그녀들은 개의 혓바닥에 앉는 기분이거나 밥상 아래로 기어들어가고 천장에 붙어 있는 기분으로 편안함도 안전함도 느낄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곳 현지 시각으로 지금 상황으로 나는 맞춰지지”(「부치지 않은 편지」) 않는다. 자학과 히스테릭 속에 침울함이 가득한데 과연 이런 존재가 ‘세이렌-팜 파탈’인가. 이 시집의 ‘세이렌-팜 파탈’은 유혹자가 아니라 핍박당하고 고립되는 배척자이자 외톨이다.

 

 

“길가의 나무가 섬세하고 창백한 뿌리를 침통해한다면, 시선을 돌리고 난 후에 남아 있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 후에 뭔가가 되고 싶지 않은,

나무나 나나 나무였던 것의 이후에 관해 아는 바가 없고, 나는 하나를 결정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던 시절을 넘어왔다, 미루였는지 양버들이었는지 몇 그루의 나무들 속에서 폭우 속에서 장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 있으니 이 부질없는 시여, 벌레들의 집과 흘러내리는 수액이 성가신,

비스듬히 서서 품종과 자생지를 모르는 나무에 붙은 종이 한 장, 잃어버린 개를 찾습니다, 나무만 이 자리에 두고 가는 게 미안하지만 잃어버리는 방식이 다른 우리가 사는 길이라면, 나무나 나나.”

(「나무나 나나」)

 

 

 

자연스러움, 평범함 자체가 이상적 허구일 뿐이지만 감정적인 토로만큼이나 위악적인 표현도 사실 연민을 일으킨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있기에 치르는 재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시집의 시들은 사랑한 적은 있으나 받은 기억 없이 한 번도 구출되었다고도 보호받았다고도 생각한 적 없이 살았고 종국엔 실종 처리된 사람에게서 찾아낸 마지막 기록처럼 아프다. 그 다이어리 앞에는 명랑할 수도 없고 팜 파탈이지도 않아서 더 단호히 ‘명랑하라 팜 파탈’이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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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0-31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다이어리 앞에는 명랑할 수도 없고 팜 파탈이지도 않아서 더 단호히 ‘명랑하라 팜 파탈’이라고 쓰여있다.˝ 와, 난리났다. 병이 도지네요... 저 돌아온 첫달에 아갈마님 따라서 본가에 있는 책 엄청 샀는데.. ㅋㅋㅋㅋ 그래서 덕분에 좋아하는 책 컬렉션을 손 닿는 곳에 다시 갖추게 되었어요. 오늘 엄청 신나요. 그동안 읽으셨던 거 막 풀어주신다!! 이맘 때 밖에서 책 읽기 좋은 계절이에요. ^^ 저도 더 추워지기 전에 한적한 곳 찾아서 책 읽으러 가야겠어요!

AgalmA 2020-10-31 17:44   좋아요 2 | URL
본가에 있는데도 또 사셨단 소리ㅎㄷㄷ;;;
제가 좋아하는 책이 우리 집에 가득이라 어지간한 도서전, 서점 나들이에 흥미가 안 생기는 단점이ㅎㅎ; 방안에서 개척 활동😂>
볕 좋을 때 밖에서 책 읽는 거 너무 좋은데 이번 겨울은 길 거 같아 그 기간이 짧아 아쉬워요.

하나 2020-10-31 17:48   좋아요 2 | URL
요즘 여러 핑계로 본가 간지도 오래 되기도 했고.. 그리고 저 책 좀 난폭하게 보거든요. 원래 되게 아껴서 보다가, 책이 되게 안 읽힐 즈음에 어떤 독서가가 책은 원래 난폭하게 보는 거라 그래서 수험서처럼 막 밑줄도 막 치고 그래요. 그래서 아갈마님 포스트에서 언급하셨던 책들 중 아 나 이거 진짜 좋아했지.. 싶었던 거 하나씩 갖춰놨는데 든든하고 좋았어요. 새롭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