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속한 모대학에서 시행하는 수시모집 적성평가에 시험감독으로 다녀왔다. 비가 어기적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적성평가를 보기위해 모인 많은 수험생들과 그에 못지 않은 학부모들로 학교가 떠들썩 했다. 주말을 주말답게 보내야 한다는 내 철두철미한 원칙이 오늘은 깨져야 한다는 억하의 심정과, 내 채우지 못한 잠을 내리는 빗방울이 놀리고만 있는 듯한 생각에 뭔가 어깃장이라도 놓아야 내일 산뜻하니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수 있을 듯 싶다.

  내가 대학을 들어갈 때도 대학의 입시제도 등에는 문외한이었던 나는(운이 좋았는지 별 신경 안쓰고 이 모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대입제도가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시행되는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대충을 주워들어 풍월을 대강 읊기는 하겠으나, 남들 하는 소리 앵무새처럼 따라할 뿐이니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오늘 이 적성평가 감독은 처음이다. 몇 번 이런저런 시험에 감독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런 무게있는(?) 시험 감독은 처음이니 적잖이 긴장이 되기도 했다. 막상 감독에 임해서는 뭐 그리 별반 다를 것도 없고, 나하고는 무려 9년의 차가 있는 젊디 젊어 애티가 줄줄이 흐르는 수험생들을 보면서 왠지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 머리 속에는 '지금 얘네들이 왜 이런 시험을 볼까?'하는 어깃장이 놓여졌다.

  지금 이 시기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중간고사 기간이다.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 강의실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중간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우리 후배들이 불만이 많다. 도대체 공부할 자리도 없는데, 이놈의 수시니 적성평가니 하는 것때문에 주말 우리 후배들의 공부장소를 박탈해 버리고 있으니 그 불만이 아니 나올 수가 없으리라. 하지만 그런 것때문의 어깃장은 아니다. '적성평가? 지금 얘네들이 대학 들어오겠다는 애들 아닌가?'  이런데서 오는 어깃장이다.

  분명, 오늘 모인 많은 수험생들은 우리의 모대학에 들어오겠다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오늘의 이 시험은 그들 중에서 누구를 받아들여야 할지를 선택하기 위해 평가하는 자리다. 그런데 '적성평가?' 뭔가 이상한듯이 야릇하다. 내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때 이과 문과를 선택하기 전에 이 '적성검사'라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사실 이때의 적성검사가 그다지 신뢰성이 있는듯 보이지는 않다. 나는 그때의 적성검사에서 이학계열에 적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고, 그래서 이과엘 갔고, 대학은 보란듯이 문과, 그것도 문과 중의 문과계열이랄 수 있는 곳에 갔다. 지금 생각하면, 지금의 이쪽이 내 적성에는 오히려 더 적합한 듯 싶다.) 그러나 그때의 '적성검사'와 오늘 이 '적성평가'는 그다지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검사'와 '평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학에서 왜 '적성'을 평가하고 있을까? 얼핏 들으니 "대학에서의 학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평가하는 검사 "라는데, 말하자면 똑똑한 놈 뽑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말 그대로 '적성평가'라면 그 결과를 기초로 해서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알맞은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인데, 지금의 이 '적성평가'라는 것은 대학 입학의 중요한 한 시험과목으로 그 위상을 드높이니, 본말이 전복되어도 한참을 뒤집혔다.

  시험감독을 하면서, 문제들을 얼핏보니, 예전에 본 IQ테스트 같기도 하고, 그냥 저냥 머리 좋은가 하는 검사만 같다. 사실 적성이라는 것이 이런 시험으로 딱하니 판별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둘째치고, 과연 이 평가를 대학 입시에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가가 의문이다. 만약 그것이 타당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대단히 무가치, 무의미, 무분별 등등등, 여러 無한 것임에 틀림 없으리라. 말하자면 그렇게 뽑아 놓아도, 말짱 도로묵이 될 것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적성평가'가 대단히 돈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각 유명대학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대학이라면 이 적성평가로 거둬들이는 수익이 어지간히 적지 않단다. 뭐 그게 잘못 됐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수익이 많은 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장사에서도 좋은 물건 팔아 돈 많이 벌면 그제 자랑이지 어디 욕 먹을 일인가? 그런데, 쓰잘데기 없는 물건 비싸게 팔아먹어 돈을 긁어 모았다면 그건 욕먹을 짓이고, 죄 받을 짓이긴 하다. 문제는 거기에 있을 듯 싶다. 지금의 대학에서 시행하는 '적성평가'라는 게 '쓸데없는 것' 아니냐라는 의문에 긍정한다면, 이것은 문제 아닐 수 없고, 욕먹을 짓 아닐 수 없으며, 어깃장을 놓아도 수 만 장을 놓아야 하리라.

  각 대학이 자신의 대학에 와서 공부 잘할 학생들을 뽑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적성평가'이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대학의 장삿속은 아닌지, 그 속에서 허우적 거려야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쓰다보니 길어졌고, '오늘'은 어제가 된 지금이다. 하여간에, 오늘 어깃장은 여기까지만 하자. 한 가지, '적성평가'는 대학오기 전에 미리미리 해두는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게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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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6-10-23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는 금욜에 수시 면접본다고 시험을 월~목으로 몰아서 본-_-; 이제 나갈 물고기들보다는 새로운 물고기들에 관심이 많은건지 원. 그나저나 문법 달달달 외우기 힘들어요 ㅠ_ㅠ

마노아 2006-10-23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님의 얘기에 공감이에요. 교육정책도, 교육현장도 불만이 너무 많아요. 안티 교육이에요^^;;;

멜기세덱 2006-10-23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제가 언제나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건 이매지님이 시험 잘 보시는 거랍니다. ㅎㅎ
마노아님...저는 안티교육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처지네요....ㅜ.ㅜ;; 문제도 많고 탈도 많지만, '안티'말고 다른 걸 해야 될 거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