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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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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평론집 <문학의 아토포스>를 읽었다. 문학 평론이라는 게 늘상 따분하고 지리하고 어렵고 짜증나게 마련이지만, 그 와중에 재미난 평론도 있기 마련이다. 작품을 보는 새로운 눈, 흥미로운 해석 등을 만나게 해주는 평론이 그런 류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런 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철학을 전공하고 시를 써서 등단하고, 교수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말은 어렵고, 문학 평론이라기 보다는 철학 평론 같은 느낌만 강하다. 문학은 거들 뿐.

 

저자는 문학의 정치성, 혹은 정치의 문학성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문학(예술)과 정치, 윤리에 대해 머리에 쥐가나리만큼 해박하게 논의하고 있다. 자크 랑시에르의 견해를 바탕으로 "2000년대의 새로운 시인들이 지닌 자의식과 그들의 시에 대한 비평적 관점들을" 살펴보고 있다. 랑시에르에게 있어 "정치는 감각적인 것을 새롭게 분배하는 활동, 즉 감성적 혁명을 가져오는 활동에 다름 아니다.", "새로운 감성적 분배에 참여함으로써 낡은 분배 형태와 불일치하고 그와 맞서 싸우는 한에서, 예술은 정치적인 것이 된다고 주장"하는 랑시에르의 입장에서 현단계에서의 한국 문학과 정치에 대한 새로운 분배,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고자 하는 듯 하다.

 

한국 문학은 그간 강한 정치성을 띈 문학과, 강하게 정치성을 배제한 문학으로 팽팽히 대립해 왔다. 한국 문학의 정치성을 논하면서 김수영에 대한 논의도 빼놓지 않고 있는데, 그보다는 전체적인 양상에서의 현단계 한국 문학의 정치성을 논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문학의 정치성을 극도로 혐오하는 집단이 있고, 세상 정치에 쓸모 없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 생각하는 집단이 있다. 이 양극단은 타협이 불가하다. 정치성을 강조하다보니 문학성이 쇄퇴하였다거나, 의미없고 내용없는 허무맹랑한 아름다움 타령이나 하는 문학만 존재한다거나 하는 극단의 문학 양상은 우리 문학을 황폐하게 한 주범일 터이다.

 

그래서인지 진은영은 그러한 문학과 정치의 시간과 장소를 재분배하고자 한다. 문학적이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의 문학, 정치적이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의 정치를 행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그게 가능하고, 필요한 것일까? 진은영은 실제적인 작가들의 그러한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그 가능성을 증거하고 있다. 문학 아닌 듯 문학이고, 없는 듯 정치적인, 그런 문학.

 

이 책은 어쩌면 진은영을 포함한 일군의 젊은 작가들의 실험을 합리화 혹은 이론화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과연 문학이 정치 아닌 듯 정치여야 할까? 그리고 과연 그것을 재분배하여야만 하는 것일까? 문학이 보란듯이 정치적이고, 정치적인 시간과 자리만을 찾아다니며 정치를 하면 그것은 문학이 아닐까? 정치적인 자리를 피하고 정치적인 시간을 거부하는 문학 또한 문학이 아닐까? 그들이 실험한 정치적인 장소에서 그것과는 전혀 무관해보이는 문학을 읊어대는데, 그게 또 다른 정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과 정치적인 장소에서 당돌하게 정치적인 문학을 떠들어대는 것은 뭐가 다를까? 전자가 옳고 후자는 그를까?

 

나는 정치적인 문학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그런 인식이 그들에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들은 '정치적'이란 단어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무엇이 문제이고 왜 문제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정치적 문학은 나쁜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 문학을 편견없이 보는 인식이 필요하고, 그러한 인식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그들의 논리에서 보면 정치성을 확 빼버리면서 정치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얼떨결에 생겨나는 정치성을 보라"는 식의 실험은 자칫 정치적 문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꼴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진은영은 말한다. '정치'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린 듯한 작가들은 별다른 의미없는 낭송일 뿐인데, 정치적인 시간과 장소를 피하더라는. 그들을 다소간에 부정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 그들의 문학을 순순히 놓아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차피 순수를 추구하는 문학의 순수 그 자체가 정치일 수 있으니.

 

혹자들은 이야기한다. 문학은 정치인 듯 정치 아닌 듯, 은연 중에 정치인 듯한 문학이어야 한다고. 그것이 문학성과 정치성을 올곧이 확보하는 길이라고. 어쩌면 이것은 문학가의 입장에서만의 억압적인 생각이 아닐까도 싶다. 대중들에게 문학의 재미를 통해 강력한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는 것, 직접적으로 강렬하게, 그런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진은영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실험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것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인 문학과 비정치적인 문학의 양비론적 견해의 일단으로 흐르는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마감일이 한참이나 흐른 후에 숙제를 마친다. 어려운 책이고 읽기 싫어서 그냥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그래도 책임이 있기에, 시간을 어기었지만, 마음을 편하다. 그래도 알라딘에 출판사에는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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