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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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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교회엘 다녔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교회(개신교)에 나갔고, 중고등학생 때에는 교회 활동이 재미있어서 거의 자발적으로 열심히 다녔다. 대학에 오면서 교회와 멀어졌다. 거리상의 물리적 문제가 큰 원인이었지만, 그렇다해도 교회를 가까운 곳으로 옮겨다닐 수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연을 끊었다가 군대에서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 후 다시 멀어졌다. 군대에서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된 것은 군대라는 특수성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된다.(신병때는 먹을 것을 주니까, 자대에서 짬이 낮을 때는 주말에 그나마 맘 편히 있을 곳을 찾으러)

 

내가 교회를 끊은 계기는 물리적 거리의 문제에서 유발된 심리적 갈등 때문이다. 과연 그 물리적 거리 상의 문제를 힘겹게 극복해 가면서까지 교회를 나가야할 이유가 나에게 있을까? 아니면 친숙한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옮겨서까지 교회를 다녀야할 기제가 나에게 있을까? 결론은 '없다'였다.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나의 심리적 갈등에 문제제기를 강력히 요청한 것은 어느 목사님의 설교다. 지금은 그게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주제만은 강하게 기억하고 있다. "종교인이 되지 말고, 신앙인이 되라." 여기서 종교인과 신앙인의 정의를 정확히 내릴 수는 없겠지만, 종교인은 교회라는 체제에 얽매여 기계적으로 종교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 안에 신앙의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좋아서, 교회라는 공간에서의 생활이 좋아서 그저 일요일만 되면 교회에 가는 사람부터 교회내에서 권력을 쟁취하고 명예를 얻기 위해 위선적인 행위를 보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종교인일 뿐이다. 내가 나를 돌아볼 때, 나는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이었다.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를 이겨내면서까지 교회에 갈 신앙은 적었다. 고민이 있었다면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회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였을 뿐이다.

 

여기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오늘날 종교의 문제가 바로 이런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이다. 신앙이 종교가 되고 종교인들이 넘쳐나고 그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그러다보니 분쟁과 분열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악의 전사가 되어버리는 현실.

 

<세 종교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종교의 문제를 떠올리기 되었다. 유대교로 시작하여 기독교가 파생되고, 그 물줄기에서 이슬람교가 성립하기까지, 결국은 신앙이 종교가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유대의 종교가 되면서 분열하고 투쟁하며 문제들이 발생한다. 예수를 따르던 인물들의 믿음과 신앙이 기독교가 되면서, 다시 개신교가 되면서 입에 담기 조차 무서운 살육과 범죄가 발생한다. 무함마드의 깨우침과 신앙이 이슬람이 되면서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다양한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다툼, 기독교와 이슬람의 다툼, 그런 종류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 이슬람 안에서도 분열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으로써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 피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종교는 과연 필요한가? 여기서 종교의 백해무익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없애니 마니 하는 것은 또다른 피 흘림을 예견하게 만들 것이다.

 

<세 종교 이야기>에서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뿌리가 같음은 말하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갈라져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후에 어떻께 분열하고 싸우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마도 원래는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했으니, 이제 친하게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뉘앙스를 책 전체에 심어놓고 있지 싶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겠는가? 그리고 그게 가능하지도, 합당한 논리도 아니다.

 

이 책은 또한 세 종교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정리해 놓고 있다. 이렇게 비슷한 점이 있으니 공존하고, 이렇게 다른 점은 서로를 인정하자 하는 것일 게다. 분명 그 차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니고 종교인데 어떻게 그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종교가 아니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싸우게만 두어야할까?

 

근본적으로 이러한 종교들의 전쟁은 표면적으로만 종교를 들먹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키려는 세력이다. 모든 종교적 분쟁과 전쟁, 그리고 분열은 바로 그 종교인들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대교는 유대교의 신앙으로, 기독교는 기독교의 신앙으로, 이슬람은 이슬람의 신앙으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돌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것 또한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종교의 합일도, 차이의 인정도, 종교의 폐지도, 어느 것 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에는 좋은 방안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오면서 종교적 병폐의 문제들은 개선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인간의 사고와 이념의 반영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통해서 그들이 다시금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예수의 사랑으로, 무함마드의 깨달음으로 되돌아가게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길이 요원해보이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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