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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시골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도시에 오게 되었다. 시골서는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는 몰랐지만, 그 집의 식구가 몇이며 대소사는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반경 몇 키로 내의 이웃들을 거의 다 알고 지냈다. 도시에 와서부터는, 그리고 현재 내가 사는 집 앞뒤좌우 옆집의 이웃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이웃이 없고 마을 친구가 없다. 삭막한 도시.

 

  이 도시는 왜 삭막할까? 시골은 일과 생활이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생활을 한다. 반면 도시는 일하는 곳과 생활하는 곳이 다른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 생활의 공간은 대부분이 잠만 자는 공간인 경우다. 또한 이사도 자주하게 되면서, 여기가 '우리 마을, 우리 동네'란 인식은 약해진 듯 하다. 언젠가는 떠나갈, 잠시 지나는 공간일 뿐이다. 오래 머물 수 없는 공간.

 

  이런 공간에서 십 여 년이 넘게 생활한 나는 이제 어엿한 시티즌이다. 도시 사람. 시민이다. 이런 나에게 하비는 '반란'을 권한다. 데이비드 하비를 처음 경험한 건 <신자유주의>란 책에서다. 어느 책 모임에서 신자유주의를 주제로 토론하게 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무슨 경제학자나 정치학자, 사회학자가 아닌 어울리지 않는 지리학자가 쓴 책이라는 걸 알고는 신뢰성을 의심하며 읽은 책으로 기억된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신자유주의를 철저히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리학이라는 것이 꽤나 넓은 범위를 다루는 학문이란 사실을 느낀 바가 크다. 그런 그가 이제는 반란을 말한다. 도시에서의 반란. 어쩌면 이 주제는 그가 전에 탐구했던, 그 실체를 까발렸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지 싶다.

 

  왜 반란을 하라는 거지? 이 도시를 왜 뒤집어엎어야 하는 거지? 이 책을 읽다가 잡혀가는 건 아닐까?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염려가 있지는 않은가? 위험한 책. 이런 두려움을 읽는 내내 느꼈다. 이 책은 마지막 장은 그 위험성이 가장 커보였다. '윌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그의 선언적 명령은 나를 두렵게 했다.(잡혀갈까봐.)

 

  하비에 의하면 도시는 공유재다. 이 도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이 도시에서 사는 모든 사람이 이루어낸 결과? 성과? 유산? 뭐 그런거다. 그런데, 이 도시를 소수의 사람들이 사유화하고 있다. 본래의 주인을 내쫓고 있다. 약탈이 일어나고 있고, 착취와 사기와 거짓으로 모든 걸 빼앗아 가고 있다.

 

  "1980~90년대 서울에서도 건설회사와 토지개발업자가 험상궂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달동네 주택을 대형 해머로 때려 부수고 주민을 몰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50년대부터 가난한 사람이 거주하던 고지대 토지가 1990년대에 이르러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현재 고지대는 온통 고층건물로 뒤덮여 있어 과거 야만적인 재개발 과정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p.51)

(우리나라 사례가 제시된 유일한(?) 경우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본의 통제가 워낙 철두철미해서인지, 하비의 연구가 미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범적 반란의 사례로는 우리나라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빼앗긴 것을 되찾아야 한다고 하비는 말하고 있다. 그 빼앗긴 것. 그것은 이 도시를 누릴 권리, '도시권'이다. 그래서 하비는 서문에서부터 제1장에까지 '도시권'을 말한다. 이 도시권을 그들이 약탈해 갔고, 그것은 원래 우리의 것이고, 그것을 이제부터 찾아와야 한다고 말이다. 제2장에서부터 제4장까지는 그것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증명하면서 우리가 왜 도시권을 찾아와야 하는지를 쪼금은 어렵게(나한테는 어려웠다.)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5장에서는 어떻게 도시권을 찾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내가 주목한 부분, 그리고 열심히 읽은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반란의 방법론.

 

  "좌파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그 대안도 만들어내야 한다. 또 협동적 노동자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민주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p.218)

 

  그러면서 하비는 '새로운 도시혁명'의 방법을 제시한다. "파업에서 공장 점거에 이르는 노동자 중심 투쟁은 주변 민중세력이 지역사회와 공동체 차원에서 대규모로 결집해 강력하고 활기차게 지원할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노동자와 지역 주민 사이의 끈끈한 연대"를 구축하라고 말한다. 더불어 "연대를 구축하고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식적 노력이 꼭 필요하다." 또한 노동 개념의 변경도 필요하다. "점점 도시화하는 일상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에 꼭 필요한 노동이라는 넓은 의미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란의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 하비는 솔직하게도 "그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무책임해 보이지만, 그 방법을 우리모두가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는 게 아닐까 싶다. 고기가 아니라 낚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고기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혁명적 상황에 놓인 도시의 정치적 실천 사례를 검토"하는 작업에서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하비는 말한다.

 

  하비는 제7장(마지막장)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월스트리트당이 복수의 여신과 만낟다'에서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부정, 약탈과 착취, 거짓과 범죄를 가열차게 고발한다. 하지만 이에 맞서 지금 현재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비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면서 반란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월스트리트당의 전성기는 끝났다. 처참한 몰락만이 남았다. 우리는 폐허 위에서 대안을 구축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이는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의무, 피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의무이다."

 

도시권을 되찾자, 도시에서의 반란은 신자유주의와 자본에 맞서 싸우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민중의 연대, 협력, 공동체 등등. 어쩌면 이 하비의 선동은 그간의 노동운동의 당위를 주장하는 다른 이야기들과 크게 다를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같은 이야기들의 반복. 그러나, 나는 마지막 선언에 담긴 하비의 말에서 자신감을 보았다. 막연한가? 그 막연함이 우리를 반란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막연하고 답답하고 먹먹하고 비참하고 처참하며 말이 안 되는 현실이기때문에 우리가 '반란'하는 것이겠지. 반란의 역사는 다 그런 식이었다.

 

사족: 이 책의 번역이 많이 아쉽다. 사소한 부분들에서의 실수가 많이 보인다. "이를테면 페미니스트는 교외와 교외형 생활양식 때문에 매우 불만스럽다고 선언했다."(p.36)에서 처럼 잘못된 조사가 사용되었거나, 문장의 호응이 맞지 않는 등의 실수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p.35 "그 방법 무엇인가는" 은->이

p.59 "통상적 범위를 넘어는" 넘어는->넘어서는

p.105 "부동산 소유자 개입되었다." 소유자->소유자가

p.114 "19세기 후반부터 도시 개발은 항상 투기적 성격을 띠었지만, 중국 경제 발전에서 엿보이는 투기의 규모는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나타났던 그 어떤 투기의 규모와도 차원을 달리 한다. 그럼에도 글로벌 경제에서 흡수되어야 하는 과잉 유동성도 전례 없는 규모인데다 나날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의미상 '그럼에도'는 '게다가' 정도가 아닐까?

p.134 "온갖 용도의 공간 갖춘" 의->을

p.150 "이 문제는 오스트롬의 주장은 물론 급진 좌파가 공유재 문제를 두고 내놓는 다양한 제안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 주술 호응이 맞지 않는다.

p.175 "그러고는 두 가지 요인 덕분에" 요인이-> 요인

p.230의 각주 번호는 2가 아니라 25다.

p.235 "창출을 추진하면서 옹호한 구상과 비슷한다." 비슷한다->비슷하다

p.241 "완강한 엘리트(특히 산타크루주 시에 몰려든 무리)는" -> 둘 중 하나는 빼야한다.

p.251 '라르' ->지금까지 계속 '라자르'라고 했다.

p.272 "모든 제도정치 짓눌려" 제도정치->제도정치에

 

내가 찾은 건만 무려 13개다. 더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더욱 아쉬운 것은 번역가가 번역을 덜 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한국말로 번역할 때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프리캐리아트'라든지, '리버테리어니즘', '뉴어버니즘', '레버리지', '인프라스트럭처', '인클로저할 수 없을 때', '거버넌스하는 데', '코포라티즘' 같은 단어들은 번역을 해 주든지, 번역을 안 할 거면 영어라도 병기를 해주든지 해야 했다. i'm happy를 나 해피해라고 번역하는 듯해서 언해피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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