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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족여행에 동참하여 강원도를 다녀왔다.
갔다와서 좀 쉬고(?) 내일의 출근을 준비하려던 차에,
숙제가 생각났다.
신간평가단 숙제는 문자를 주던데....
이거는 문자를 못 받은 듯 하다.
뭐! 공지되었던 사항이니, 내 잘못이지...
뒤늦게라도 해본다.(알라딘 분들도 휴가가서 아직 확인 안 했으면 봐주셈!! ㅋㅋ)
1. 교육과 관련된 책을 골라보자. 5월에는 '스승의 날'도 있으니!
사회과학>교육비평
=> 교사, 선생, 스승. 이 말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이 말들은 약간의 위계가 있는 듯 하다. '-님'이란 접미사가 '교사'란 말에 붙지 못한다. '선생님'은 좀 인간적이고, '스승님'은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지 싶다. '교사'는 사용 맥락만을 놓고 보면 객관적인 용어가 아닐까 싶다. 가르치는 사람쯤으로 사용되지 싶은데, 교사에서 '선생, 스승'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런데, 난, '교사'이면 족하지 싶다. 인생을 먼저 산 '선생'이라고 뻐길 필요도 없고, '스승'입네 떠받들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는... 교사이면 족하다. 잘 가르치면 되는 것인데, 잘 가르치지 못해 탈이다. 선생이 되어보라는 이 책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고 나도 한번 선생이 되어볼까? 목차를 훑어보니 나의 생각과 실천으로부터는 조금의 거리는 있는 듯 싶다.
사회과학>교육학
=> 국어를 15년 가르치신 분의 저작이다. 일반적인 테제다. "국어는 기술이 아니"라는 말. 현장에서 15년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합치면 한 10년은 된 것 같다. 국어공부를 전문적으로 한 햇수는 15년은 넘었다. 경험상, 국어는 기술이다.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수능을 본 나는, 수능을 가르치는 나는. 수학능력시험이 무슨 대단한 창의력사고를 요하고 지금까지의 학습방법으로는 손도 못대는 시험마냥 대하는 것에 큰 이견을 갖고 있다. 수능 국어를 잘 보는 것은 무슨 창의와 논리와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고, 문학적 감수성과 탐구능력 등등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적어도 수능 국어를 잘 보는 데에는 강력한 기술적 국어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래서 잘못된 국어 선생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반성할 건 반성하자. 근데, 왠지 국어는 기술이 아니라면서 기술을 가르치는 책일 것만 같다. 국어가 기술이 아니기 위해서는 수능 국어가 없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저 그렇다는 말이다.
사회과학> 사회학
=> 난 중2때 영어 단어 외우는게 넌더리가 나서 포기했다. 수포보다 영포를 먼저 했다. 영어가 그리 중요한가? 중요하다. 필요하다. 나는 현재 그렇게 느낀다. 영어를 못하는 내가 좀 싫긴하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 지금에 와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중2때 영포를 안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더니 영포를 안 했어도 마찬가지지 싶다. 우리가 영어에 그리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만의 문제때문은 아닐 것이다. 입시, 취직, 기타 등등.... 영어의 문제에 대해 이제는 차분히 생각해 볼 때이지 싶다. 지금 내가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면 지금하면 되는 것이고, 지금 영어 공부를 한들 어디가서 그리 써먹을 상황도 별로 없다. 뭐! 배우면 배운만큼 써먹을 일이 생기겠지만. 강준만은 이책에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역사를 되짚고 있는 듯 싶다. 잘 추적해보면 방법이 생기려나?
인문학>교양심리학
=> 학교에서 학생들 담임을 하면서, 교과를 가르치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 아이들이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의욕을 이끌어낼 것인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5월에 출간예정인 이책에서 그답을 얻어낼 수 있을까? 명쾌한 답을 얻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일말의 방법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문제는 '우리 사회'다.
2. 세월호 참사! 분노가 끊이질 않는다!
사회과학>사회학
=> 세월호 참사! 삼가 희생자와 실종자, 유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단원고 학생들의 안타까운 희생에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런중 나는 생각했다. 학생과 더불어 많은 선생님들께서도 희생되셨다는 것을! 교사 숙소는 5층이었고 학생들은 3~4층에 머물렀다는 보도를 보고, 사고의 순간에 그 분들은 탈출이 아닌 학생들에게로 달려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차! 싶었다. 명색이 나도 선생인데, 그 순간에 그 분들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들은 나에게 참 스승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셨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의 분노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이 책은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말하고 있는데, 조심스럽지만, 우리가 이 비극을 잊지는 말고, 극에 달한 분노는 조금 다스려야 하지 싶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이 잘못된 사회의 모순들을 뜯어고쳐야 하지 싶다. 이것은 희생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위로요 예의가 아닐까? 더는 이러한 비극이 없어야 하겠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