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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종법 - 정직한 사람들을 위한
로베르 뱅상 , 장 레옹 보부아 지음, 임희근 옮김 / 궁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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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군가를 조종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떡주무르듯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것은 언듯 들어서는 인간윤리에 어긋나는 악행일 따름이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에서 기계를 작동시키듯, 파일럿이 비행기를 조종하듯 인간을 제멋대로 조종하는 일은 찾아보기 극히 어렵다. 티비에서 보이는 체면술사가 그러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이것도 거의 짜고치는 고스톱 아니던가?

자 여기에 조금은 의아스럽고, 어쩜 그런 책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할 책이 나왔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이들은 무슨 일로 그런지는 잘 이해가지 않지만 자신들을 '사회심리학자'로 부르면서 애써 '심리사회학자'와 구분한다. '사회심리학'과 '심리사회학'은 차이는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지 않을까? 곳곳에 보이는 이런 학자연하는 사람들의 노름이 간혹 이 책을 따분하게 만들고, 쓸데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인 로베르 뱅상 줄과 장 레옹 보부아의 책 『인간 조종법』이 바로 그것이다. 과연! 이 책이 비행기나 헬리콥터 조정법처럼 인간을 조정하게끔 해 주는 그런 방법들을 담고 있을까? 짐작하시듯이, 천부당 만부당, 당연지사로 '아니다'다.

   
  보통 하는 말로는,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행동(누군가로 하여금 그 사람이 자진해서라면 하지 않을 어떤 행동을 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가리켜 '조종'이라 할 수 있다. 조종자가 자기중심적인 사람일 경우, 그는 자기가 명분을 성취하기 위해 끌어들이려는 사람과 자기 자신 사이에 이익 공동체가 성립된다고 실제로 확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것은 그런 조종이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조종은 설득하는 행동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행동 기술'에 의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는 고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만약 조종자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는 경우라면, 조종당하는 사람은 자기를 목표로 삼은 이 조종 작업을 여간해서 따돌리기 어렵다.(67쪽)  
   

말하자면 이 조종은 사람이 사람을 '꼬시는' 여러 행위(언행)들이다. 이를테면, 가게 점원이 손님에게 물건을 사게 한다거나, 어떤 자선단체에 기부하게 한다거나, 보험에 들게 한다거나, 공중전화를 사용할 동전을 얻는다거나, 과자 사먹을 천원을 타낸다거나 할 때, 그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이 조종이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조종하고 조종당하며 살고 있었고, 살고 있으며, 살아 갈 것이다. 하다못해 시장통에서 흥정을 하는 것도, 이 책의 저자들에 의하면 조종의 기법 중 어느 한 가지에 해당하기도 한다.

저자들이 말하는 무슨 특화된 듯한 무슨무슨 조종법들은 사실 너무나도 흔한, 우리가 의식, 무의식적으로 자주 써왔던 것들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에 따라 그 정도 및 효과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요즘은 '낚시'가 대세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 "문전박대 자초하기" 등으로 번역을 그럭저럭 잘 해놓았지만, 이름만 붙였을 뿐, 저자들이 새로이 창안하여 만든 그야말로 인간을 제멋대로 조종하는 특허낸 기술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것을 소홀히 볼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에 있다고들 하잖은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해온 방법이지만, 우리가 자주 쓰고 아는 그런 방법들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그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적절하게 현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럴때에 우리의 생활은 좀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그건 몰라도 우리의 작은 수고를 좀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 제목인 "인간 조종법"을 수식하는 부제격의 "정직한 사람들을 위한"이라는 말은 참 쓸데없는 것이지만, 홍보용 문구인 "프랑스인들이 꼽은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지침서"라는 말은 이 책이 조종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나아가 인간관계에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 홍보용 이상의 도움을 우리에게 준다. 이를테면, "딱지 붙이기의 기능" 같은 것일텐데, 이것은 "추상적, 심리적, 도덕적 특성을 지닌 예비 행위에 방금 참여한 사람에게 어떤 타이틀을 붙여서 높여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칭찬하기일 수 있겠다. 많이들 써왔듯이 이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보다 긍정적이게 만들어 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가지 더 들어보자. 우리는 스킨쉽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 감정과 정서에 좋은 영향을 주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여기서는 이것을 일컬어 '접촉 기법'이라고 명명했다. 지나가는 손님에게 슬쩍 손을 가져다가 접촉하면서 친근함을 표현하면, 상품 판매율이 괄목할 정도로 늘어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서 검증되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 혹은 안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실행하고 실행당했던 것들을 잘 정리해서 묶어 놓고 있다. 실험을 통해서 검증까지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유효적절한 도움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방법을 넘어,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준다는 데에 있다. 억압이 되었건, 설득이 되었건, 권위에 위해서건, 꼬임에 의해서건,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꼭 시켜야 하겠거든, 그러니까 그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해준다고 할 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 무엇이 범죄행위에 버금가는 어떤 것이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그것을 여러 조종기법을 심도있게 추적하고 분석해온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앞의 여러 장에서 낚시, 문간에 발 들여놓기, 덫 기법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는 자유롭다는 느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유롭다는 느낌은 특정 행위를 손쉽게 얻어내도록 해주는 보조장치(낚시나 덫 기법에서의 첫 결정,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에서 예비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을 그 행위 속에 참여시키려 할 때 꼭 있어야 할 열쇠였다. 그러므로 자유롭다는 느낌은 분명, 조종자에게 도움이 되었다. 말하자면, 부담이 적은 첫 행위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중에 좀더 부담이 큰 다른 행위도 실행할 수 있도록 미리 포석을 깔아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 자유롭다는 느낌 자체가 조종의 우아한 기술 중 하나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른바 '마음대로 하십시오' 기법이 그것이다.(211~2쪽)  
   

저자들이 재차 강조하듯이 "개인은 그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만 효과적으로 조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롭다는 느낌을 주는 것, 다시 말하면, 자발적 행위가 될 수 있도록 그러한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보다 자유자재의 조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발성이 지극히 요구되는 분야는 아무래도 교육(학교교육이나 가정교육 등)일 것이다. 저자들이 예시한 다음 내용을 살펴보자.

   
 

1. "얘야, 나는 네가 뛰어내리면 좋겠다. 물론 하느냐 안 하느냐는 네 문제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2. "얘야, 네가 뛰어내리면 나는 기쁠 거야. 내 말 잘 알아들었니? 만약 안 뛰어내리면, 넌 일요일날 친구들하고 영화 보러 못 갈 줄 알아라."

3. "얘야, 나는 네가 뛰어내리면 좋겠다. 뛰어내리면 딸기 아이스크림 사 주마."

4. "얘야, 나는 네가 뛰어내리면 좋겠다. 뛰어내리면 자전거를 사 주지."

 
   

저자들이 제시한 4가지의 경우는 모두 아버지가 아들의 담력 혹은 용기를 키워주기 위한 이유가 담겨 있는 조건문들이다. 위의 모든 조건에서 아이가 뛰어내렸다고 가정했을 때(번역상에 문제였을까? 아버지가 아이를 강물에 뛰어내리라고 자꾸 권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우리의 통념과 윤리에 부적합하잖은가? 프랑스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말이다. 무언가 상황이 다를 것 같은데, 번역상에서 좀 신경을 써줘야지 싶다. 이 책에서는 비슷한 예로 정원에서 물에 뛰어내리기 놀이같은 것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도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무튼 번역자 혹은 편집자의 설명이 덧붙여져야지 싶다.) 아이의 자발성이 도드라지는 것은 1번과 3번이다. 2번은 협박에 가깝고, 4법은 아이를 물신만능에 빠지게 하기 십상이다. 오늘날 우리 부모들이 하는 작태가 거반 2번가 4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입안이 씁쓸해진다.

교육에 있어서 자발성, 혹은 자기 주도적 학습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을 유도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교사 혹은 학부모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유용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냈다고 느낄때에 나타나는 그 교육적 효과는 아이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라게 해 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의 아쉬운 점도 이 부분이다. 좀 더 그런 활용법이 강조되었으면 좋았을 법하지만, 아무래도 이들이 사회심리학자다보니 그러한 요청의 응답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 다만, 이 책이 그러한 역할을 감당할 이에게 좋은 영감과 영향을 주기 바랄 뿐이다.

교육과 관련해서 저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주의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조종의 기법들이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창조적인 행위들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단순한 재생산을 수월하게 만들어 줄 뿐이라는 사실이다. 기성세대들의 인식, 윤리, 문화 들을 아이들이 자유로운 느낌으로 재생산할 뿐인 것이라는 얘기다. 참고하고 숙고해야할 지적이다. 그런 점을 보완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교육방법, 교육심리학 등이 연구되고 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족으로, 번역자 혹은 편집자의 다소 무성의함을 언급하고 끝내자. 각종 조종 기법들을(원서에서 아마도 쉬운 말로 풀어서 명명했을테지만) 쉬운 우리말로 풀어낸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학술 및 전문용어들이 무지막지하게 돌출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석이라고는 저자의 것뿐이어서, 편집자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좀 의심스럽다. 아무래도 편집자가 주를 대어야 할 곳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번역상에 다소간의 오류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289쪽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실제로 그 가게 점원에게 다른 생각이 없었다면 왜 굳이 다른 옷과 한 벌을 이루는 바지를 따로 할인 판매했겠는가? 그것도 상의와 바지를 따로 팔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부분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멋진 바지를 내걸고 대폭 할인판매하고 있다고 유혹하여 그 바지를 사러 들어온 손님에게 그와 더욱 멋드러지게 어울릴 할인 안 되는 상의를 권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상업전략이라는 얘기 중에 위 인용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앞뒤가 안 맞잖은가? 첫 문장에서는 다른 생각(손님을 유인할 생각)이 있어서 "다른 옷과 한 벌을 이루는 바지를 따로 할인 판매했"다는 얘기다. 이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같은 얘기 아닌 다른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문맥상 "~에도 불구하고"에 적절히 호응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런데 다시 앞 문장과 같은 의미가 반복된다. "상의와 바지를 따로 팔 수 있었"다는 얘기는 바로 앞 문장에 나오는 말 아닌가? 여기서는 문맥상 "그것도 상의와 바지를 같이 팔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가 되어야 자연스럽잖은가? 원서를 대조하지는 못했지만, 원서의 오류이던가, 번역상의 오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튼, 이런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러면에서 나름의 장점들이 많다. 이어지는 후속작업, 연구, 그리고 각계의 활용방법들의 성과들이 많이많이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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