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月 중순이라 하기엔 다소간 미안한 날의 밤이다. 시간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그 '마지막 밤'을 향해 맹렬히 질주중이다. 어떻게 질주하든, 그것은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것만 같다.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어중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선한 날의 가을을 난 소망한다. 가을 남자라 외롭고 고단해도, 선선하게 외롭고, 선선하게 고단하고 싶은, 그래서 이 외로운 가을을 만끽하고 싶은 남자가 바로 나다. "그게 바로 나야!"

서재의 명명을 고민했다. 이건 이내 내가 가을이 된 걸 모르는 모양으로, 여전히 봄타령이다. 시의적절치 못하면, 요즘에는 비루해지기 십상이다. 정지되고 연착된 서재는 곧 나이기도 할 터이다. 시간은 종잡을 수 없이 맹렬히 질주하건만, 나는 이 사이버 공간에서 여전히 봄에 멈춰 서 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아무 계절도 없던 것처럼, 그저 한 동안 멍해 있었다. '아차!' 한 것은, 그래서 고민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10년을 채우고도 여전히 적을 두고 있는 곳은 학교였고, 지금은 비정규 직장이다. 올해만 하고는 제깍 그만둘 예정이다. 어느 학교에나 밝고 넓은 문이 아닌 곳으로 통하는 이들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 으리으리 널찍한 정문은 차들을 위한 문이다. 원래 태생이 그러했다. 사람들은 죄다들 후문으로 다닌다. 그러나 정문으로 다녀야할 인간들도 있는 법이다.

이 학교가 작으면 작은 것이요, 크면 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제법 그 쪽에서는 넓은 축이 든다. 그 동네에서는 말이다. 이 학교를 끼고 몇몇 노선이 흘러 다닌다. 그런데, 그 몇몇 노선을 타고 다니는 이들 중에는 밝고 당당하게 다니기 위해서 정문으로 출입하여야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에둘러 먼길을 돌아야만 하는 딱한 사정이 있었다. 그리하여, 월담을 해야 했으니, 이 학교에도 문이 아닌 통로가 생긴 셈이다.

한동안은 이 통로는 그저 담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여교수(라고 알려진)가 이곳을 범하다가 그만 다리를 삐끗하고야 말았다. 그러고는 얼마 후, 이곳에 담사이로 간이 문이 달렸다. 그 여교수의 희생에 감사를 표해야 할 사람은 나 말고도 제법 많을 것이다.

아무튼 이 새로이 생긴 문을 통과하고도 문제는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길을 건너기 위해서 등등으로 대로로 나가기 위해서는, 한 가운데 조성된 둥글넙적한 화단을 에둘러 돌아야 한다는 사실. 그 애처로운 사실은 담 한 켠을 헐어내고 비록 초라하게나마 문을 낸 이들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 둘, 시나브로, 영웅적으로 그 화단을 가로질렀다. 처음에는 조심조심이었을 것이다. 행여나 꽃을 밟을까? 키작은 나무들(?)로 장식된 울타리에 조심스레 벌리고서는, 그러했을 것이다. 조심스레 발길을 옮겼을 것이다. 그 조심으로는 꽃 한 송이송이 모두를 다 보호하지는 못하였다. 바닥에 깔렸던 잔디들은 어느새 그 뿌리마저 사리지고 없다. 이제는 어엿한 길이 되었다. 단단하게 굳은 흙길이 생겼으니, 모두들 그 길로 다닌다. 울타리는 뻥뚤리고 이도 어엿한 문처럼 되었다. 아 경이로운 인간들의 힘.

두 말이 필요없이 『페다고지』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교육사상가 파울로 프레이리와 미국의 교육활동가 마일스 호튼의 대담을 엮은 『We Make the Road by Walking』이란 책이 있다. 제목이 참 그럴싸하지 않은가? 아침이슬에서 나온 한국어판도 이 영문 제목을 번역한 그대로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로 나와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불현듯 무서운 생각에 잠긴다. 정말이지 "우리가 걸어"갔더니 '길이'되었잖은가? 놀아운가? 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잡고 더 들어가보았더니,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 우리가 걸어가서 길이 된 것들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다. 태고적에는 허허벌판이었을 지도 몰랐다. 숲으로 우거져있었을지도 몰랐다. 이상야릇한 동물과 식물들로 가득한. 어느냥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생각되었을지 모를 우리 인간들이 걸어가더니, 하나씩 길이되고, 그 길이 넓어지고, 다니기 좋게 포장되고, 철도가 깔리고, 건물도 서고, 빼곡하게 채워졌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신념으로 뭉친 사람들이 차고도 넘친다.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에 내가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난 무서워진다. 인간이 이 지구를 온통 이 자랑스런 길들로 도배를 하고야 말 것이다. 인간들이 걸어온 길은 창조의 길이었으되, 파괴를 동반한 길이었다. 인간적인 길도 제법 그러하지 않았을까? 인간이 살기위해 동물을 죽이고 쫓은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저 아메리카에서도 동물들은 죽어나갔다. 콜럼버스에게는 그 죽어나간 것들은 단지 동물이었을게다. 여전히 이 사회는 80%의 동물들이 죽어나간다. 인간적인 길. 점점더 혐오스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명명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非인간적인 길은 아름답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제부터는 그 생각의 지평을 넓혀보자. 생각을 넓히고 사고를 충만하게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걷는 길에서는 우리는 인간이 아닌 비인간을 생각하고, 내가 사는 이 사회에서도 인간이 아닌 비인간의 길을 생각하고 추구해볼까? 망상에 그쳐야만 할 욕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비인간적"이라는 수식을 자못 욕으로 사용한다. '인간적'이 긍정되는 세상, 바로 인간세상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좀 바뀌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언뜻 잘못된 것이 아닐 것 같다. 여하간 '비인간적' 이길, 그렇게 살아보길 작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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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10-18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백하신건가요? ^^

멜기세덱 2008-10-18 21:43   좋아요 0 | URL
전 떠난 적이 없사와요...ㅎㅎ

순오기 2008-10-20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처녀는 어디로 가고 가을 남자 혼자 외로운지요?
비인간적으로 살아보길 작정한다니~~~~ 여튼 응원을 해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