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촛불 문화제에 다녀왔다. 지금까지는 촛불 시위라고 불리우던 것이 저 성가신 딴지걸기를 피하자고 문화제라고 개명한 듯 하다. 민주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자유다. 이것이 이른 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인데, 여기에도 자꾸 어느 별 이상한 분들은 딴지를 건다. 마광수 교수는 논외로 하기로 하고, 이번 촛불 문화제만 놓고 봐도 참 언어도단이고 어불성설 하기만 하다.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의 구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 아래 새것이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생각의 표현에 있어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면 시위, 집회가 되고, 그걸 또 야밤에 하면 불법이라는 이 무식한 법리는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무식하게 구는 것들에 대해서 똑같이 무식하게 굴다간 똑같은 놈이 되는 것이어서, 이 똑똑한 시민들은 살짝이 '문화제'라고 이름한 모양이다. 하여간 이 문화제는 '미친소'를 어떤 식으로든 기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문화제는 문화제다.

처음 참여해본 촛불 문화제의 첫인상은 좀 시시했다. 어수선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모인 사람들도 제각각이고, 주체하는 이들도 제각각이었고, 간혹 잡상인에 별별 전단지까지 돌아다녔다. 누구말을 따라야 하고, 뭘 하면 안되고, 촛불은 언제들어야 하고, 등등등, 많은 부분이 몇 시간 동안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 촛불 문화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나는 이런 사실이 좀 의아하기도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여기 모인 제각각의 사람들, 어르신들에서부터 아줌마, 아저씨, 젊은 사람들, 학생들, 어린이들, 간난쟁이들까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의사와 의지가 단호하면서도, 그런 혼란들, 어수선함들을 스스로 평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촛불 들기의 박자는 여전히 제각각이었지만, 미친소 수입 반대의 의지는 똑같았다. 각각의 주체마다 요구하는 것은 조금씩 달랐지만,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들에게 미친소를 먹일 수는 없다는 그 결연한 의지는 모두 동일했다. 그래서, 괜히 저 성가신 딴지걸기에 빌미를 제공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괜시리 혼란에 몸을 실어 저 무식한 이들에게 구실을 내어 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주위의 있던 어린 학생들까지 스스로의 행동을 자제하고 규제하고 있었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이번 미국 쇠고기 협상 타결이 스스로의 무식함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고기가 먹고 싶은가? 그런데 어떡하지? 우리들이 먹는 것은 너무 비싼데? 아무래도 니들은 사먹기가 어렵겠지? 그래도 소고기가 먹고 싶은가?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아 그래! 아주 싼 소고기가 있는데, 그걸 먹으면 되겠군. 그게 싼데도 질은 좋아. 그거라도 사먹지 그래? 약간, 아주 약간, 문제가 있기는 한데, 뭐 괘찮아. 니들 1000명 중 한 명 걸릴까 말까한, 뭐 광우병인가 뭔가 그런게 있는데, 미국이 안전하다니깐, 뭐 싼데 어때. 그정도면 양호하지. 니들 그거 먹으면 되겠다. 좋지? 수입이잖아. 그것도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나라 미국에서 수입하는 건데. 야, 수입 소고기를 그것도 싼 값에 먹으니까 좋겠다.

이명박 정부는 99.9%의 안전을 보장한단다. 0.1%의 위험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뭐 비행기 사고날 확률보다 한참 낮은 데, 니들은 비행기 타잖아? 비행기도 타면서, 광우병 그거 아무 문제 없겠지? 그런데 비행기 타는 것과 먹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걸 이 정부는 모른다? 아니 외면한다. 러시안 룰렛이라는 것이 생각하는데, 권총에 총알을 하나 넣어 놓고 돌아가면서 자기 마빡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 아닌 게임이다. 확률은? 총알이 몇 개가 들어갈 수 있을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뭐, 적어도 1/10 이상은 될 것이다. 한 놈은 어떻게든 죽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부 말대로라면 이 광우병은 1000:1의 러시안 룰렛을 이 나라 서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1000개의 과자를 아이들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중 하나에는 독이 들어 있단다 얘들아, 맛있는 과자니까 니네들 먹어. 한 놈은 죽을지 몰라.(ㅋㅋㅋ) 내 자식에게 일억개의 과자알 중에 하나에 독이 들었으니 잘 골라 먹이라면 먹이겠는가? 일억개 아니 십억개가 있어도 그 중 한 알에 독이 들었다고 한들 어느 부모가 어느 형제가, 어느 가족이 그걸 먹고 먹이겠는가? 이걸 모르는 것이라면 이 정부는 지적인 측면에서 무식한 것이 되고, 알면서도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방법적 측면에서 무식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식으로 무식하든간에, 그걸 빤히 보고 있는 이 촛불 문화제에 모인 시민들은 다들 부처님이다. 이 부처님들께서 저마다 촛불을 들고 이 무식한 정부에게 마지막 해탈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촛불 문화제다. 어떤 식으로 딴지를 걸든, 부처님 손바닥 안인 것을, 내 주위에 있던 어린 여고생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이명박 정부가 똑똑해 지기는 바라지도 않겠지만, 최소한 교활해 지시길, 그래야 살지 않을까 하는 확신을 갖게 됐다. 교활해 지기라도 해서, 어 이거 이러다가 쪽박차겠는데, 하고 정신 번쩍 들어야 하지 않을까? 촛불 문화제면 어떻고 촛불 시위면 어떤가? 그 쪼잔한 술책, 무식한 딴지걸기는 무식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좀 교묘해 지시길. 당부드린다.

2008년 5월 6일 여의도 촛불 문화제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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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07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부가 아무 것도 안 하기를 바라는 국민의 심정을 그자들은 알기나 할까?
몇 달 되지도 않은 정부에 느끼는 거대한 피로감...

전호인 2008-05-0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묘해지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을 어찌하오리까. 그냥 쭈욱 무식버젼으로 가는 것이 상책일 듯 합니다. 바라보는 국민으로서 너무 피곤하니까 단순무식이 오히려 편합니다. 제목만 있지 내용이 없는 정부이기에 기대라는 말을 내뱉는 것 조차 한심스러운 지경입니다. 당연히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을 정치적 논리로 문화제를 바라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도 한심하거니와 기성세대들이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함을 탓하며 중고등학생들이 분기한 것을 놀이라고 폄하하는 인간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런지 암담합니다. 연일 정부를 옹호하며 내지르고 있는 조중동을 보면서 끼리끼리 잘 놀구 있구나로만 생각하자니 가슴만 답답해 오네요.
이 정부가 미국의 연합정부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중동에만 게재한 미국산 소고기 광고를 보노라면 기가 찹니다

심술 2008-05-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승철씨 글 딴지일보에서 찾아 읽어봤는데 아 글 되게 어렵게 쓰더군요. 머리 아파서 못 읽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