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딱히 어디서 어떻게 봤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도 알라딘 돌아다니다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을 보고는 냉큼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전체 4권으로 우리나라 고전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총망라해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제야 눈길주기에 등장하게 된 것은 전체가 4권짜리기도 하고, 좀 더 유심히 살펴보고 어떤 책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약간 묵혀두다가 괜시리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이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직 제대로 확인을 하지는 못한 상태라 뭐라 딱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이 책이 이상하게도 알라딘에서는 조용하다는 것이다. 제법 언론을 통해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 알라딘의 서재지기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이거나, 그런 소식을 전하고 있는 분들이 거의 없었다(이 책에 링크된 리뷰나 페이퍼가 전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이상하다 싶은 생각에서 좀 더 나아가서, 알라딘에서는 우리 고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많은 분들이 전문가 혹은 준전문가 수준으로 동서양을 막론한 고전들을 소개하고 다루지만, 우리 고전(특히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들을 그렇게 흔히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런 것은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야심차게 출간되고 있는 보리출판사의 우리나라 고전문학 작품 선집들이 알라딘에서도 주목을 받으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크다. 아무튼 많은 분들이 우리 고전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며, 오늘 눈길주기에서는 이 책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고전/문학]
서대석 외,『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휴머니스트, 2008.03.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들이, 우리 고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있다. 장장 4권에 걸쳐 소개되는 캐릭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캐릭터,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캐릭터 등등, 각양각색의 자유분방한 고전 작품 속의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구비문학, 고전소설, 한문학 등 다양한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편저자 서대석 선생은 고전 특히 구비문학의 대가이자 권위자로 유명한 분이다. 그 외에 서영숙, 정길수, 손태도, 신동흔 등 고전 문학의 대가들에서부터 소장파 연구자들까지 전천후로 참여한 대작업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이 책 전체에서 다루고 있는 캐릭터들과 집필자들이다. 꽤 길다.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1- 고전 캐릭터, 그 수천수만의 얼굴
1. 채봉
너는 내 운명! 채봉과 장필성 - 서인석(영남대 국문과 교수)
2. 석숭
거부가 들려주는 돈의 철학 - 박명숙(중국 쑤저우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3. 강남홍
조선의 로망, 21세기의 로망 - 서대석(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
4. 유리
신화적 영웅의 아버지 찾기 - 임재해(안동대 민속학전공 교수)
5. 최치원
출세하고 싶다는, 그 헛된 욕망의 신기루 - 류준필(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6. 범천총
범천총이 호랑이 눈동자를 가린 뜻은 - 정진희(서울대 국문과 강사)
7. 관음보살
여인이 된 관음보살, 사랑과 성불을 돕다 - 이강옥(영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8. 여우 누이
우리 곁에 있는 달콤한 공포 - 김성룡(호서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9. 경문대왕
엽기적인 개혁 군주의 슬픈 초상 - 심민호(한국수자원공사 대청댐 물문화관 학예사)
10. 광대 달문
광막한 천지에 부는 바람 같은 사내 - 사진실(중앙대 연희예술학부 교수)
11. 방학중
기막힌 꾀로 무장한 진정한 트릭스터 - 나수호(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12. 중며느리 먹맹이
굴레를 벗어던진 겁 없는 여자 - 서영숙(청주대 국문과 교수)
13. 초옥
한 상민 여성의 슬픈 착각 - 김대숙(평택대 국문과 교수)
14. 유씨 부인
조선 명문가 여인의 자살, 비밀과 희망의 문 - 김동준(동덕여대 국문과 교수)
15. 양소유
다정다감한 꽃미남 - 정길수(조선대 한문학과 교수)
16. 하옥주
조선 여성이 꿈꾼 커리어 우먼 - 임치균(한국학중앙연구원 학국학대학원 교수)
17. 옥소선
사랑과 성공, 그 모두를 이룬 여인 - 김준형(순천향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18. 허홍
꿈을 이루기 위한 불굴의 의지 - 안순태(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조교)
19. 비형
도깨비 왕이 된, 건축가 화랑 - 신재홍(경원대 국문과 교수)
20. 오늘이
친절하고 따뜻한 그녀 - 정숙영(서울대 국문과 석사)
21. 홍대권
이쯤 되어야 대장부라 할 만하지 - 김종군(건국대 BK21 연구교수)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2 - 우리가 몰랐던 고전 캐릭터의 참모습
1. 옹녀
어느 하층 여성의 기구한 인생 역정 - 정출헌(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2. 바리공주
소외된 민중의 희망 - 황루시(관동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3. 강감찬
천 년 여우에게서 난 문곡성 - 조태영(한신대 국문과 교수)
4. 웅녀
‘사람’이 된다는 일 - 정운채(건국대 국문과 교수)
5. 유화
드넓은 생명력의 동국 성모 - 이종주(전북대 국문과 교수)
6. 손병사 어머니
나는 소신파다, 귀신도 물렀거라 - 강진옥(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7. 최랑
A형 남자를 향한 O형 여자의 당찬 사랑 - 이인경(인제대 한국학부 교수)
8. 박문수
아이들의 친구, 백성의 벗 - 김경섭(서강대 국문과 대우교수)
9. 한음의 처
오성 대감은 나의 밥 - 강성숙(인제대 기초대학 교수)
10. 장시중 형제
희대의 재담꾼 - 한길연(서울대 기초교육원 전임대우강사)
11. 나교란과 여섬요
기생첩의 육체적 탐직과 정실차지 욕망 - 조광국(아주대 국문과 교수)
12. 홍계월
남자가 되고팠던 알파걸 - 장시광(경상대 국문과 교수)
13. 강임
이승 차사인가, 저승 차사인가 - 최원오(서울시립대 국문과 강사)
14. 호랑이
잔인함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얼굴 - 김미영(호서대 국문과 박사과정)
15. 달래강 오라비
슬픈 오라비의 초상 - 심우장(충북대 국어교육과 박사후연구원)
16. 윤여옥
함께 있으면 즐거운, 쾌활하고 솔직한 다정남 - 이지영(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17. 이몽룡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남자 - 이유진(서울대 박사과정 수료)
18. 도깨비
병 주고 약 주는 존재 - 김종대(중앙대 민속학과 교수)
19. 마고할미
여성 거인의 서글픈 창조의 몸짓 - 권태효(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20. 탈춤의 노장
노장 스님, 인간 세상에 왜 내려오셨던고 - 손태도(문화재청 무속분야 문화재 전문위원)
21. 정욱
재치 있거나 건방지거나 - 류수열(전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22 장끼
참 대책 없는 이 친구, 하지만…… - 정충권(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3 - 고전 캐릭터가 펼쳐 보이는 사랑과 인생
1. 민옹
탁월한 이야기 심리 치료사 - 이민희(아주대 교양학부 강의교수)
2. 양이목사
외부의 부당한 억압이 만들어 낸 비극적 남성 영웅 - 조현설(서울대 국문과 교수)
3. 김방경
오만한 기상을 지닌 거인의 초상 - 박성지(이화여대 국문과 강사)
4. 수명장자
인간 내면의 다중성 - 박종성(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교수)
5. 사정옥
치밀한 여성 가문 경영자 - 김종철(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6. <내 복에 산다>의 막내딸
아버지의 집을 벗어나 홀로 세상에 나선 막내딸 - 김영희(연세대 학부대학 강사)
7. 미얄할미
톡톡 튀는 화법에 섹시한 배꼽저고리 - 박경신(울산대 국문과 교수)
8. 해산모
출산을 축제의 마당으로 끌어낸 여인 - 허용호(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9. 궤내깃또
아버지도 무서워한 영웅 - 이종석(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10. 호랑이 처녀
사람이 아니지만, 가장 사람다운 호랑이 - 류준경(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11. 욱면비
빛나는 초월 속에 깃든 민중의 소망 - 김헌선(경기대 국문학전공 교수)
12. 연희
유배 죄인을 사랑한 기생 - 강혜선(성신여대 국문과 교수)
13. 두향
기생이기를 거부한 이황의 그녀 - 홍태한(중앙대 국악교육대학원 대우교수)
14. 백정 박씨
어사 박문수도 막지 못한 인간 해방의 몸짓 - 신동흔(건국대 국문과 교수)
15. 이현영
여성의 자아 찾기, 그 험난한 여정의 주인공 - 이지하(경북대 국문과 교수)
16. 이생원네 맏딸애기
도도한 여인의 사생 결연 - 최현재(군산대 국문과 교수)
17. 김영감
양반 자제를 보쌈한 중인 역관 - 조성진(서울대 국문과 강사)
18. 양씨 부인
여성 학습권을 실현한 조선 여성 - 서정민(서울대?서원대 국문과 강사)
19. <이언>의 여성
이제는 변해야 할 착한 여자 - 김경희(경원대 국문과 강사)
20. 오유란
남자를 잘 아는 요부 - 김준범(아주대 인문학부 강사)
21. 노일제대귀의 딸
팜므 파탈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 - 장유정(단국대 국문과 교수)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4 - 대중문화와 눈부시게 만난 고전 캐릭터
1. 황진이
그리움과 자존심 - 조세형(서울시립대 국문과 교수)
2. 장화와 홍련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함정 - 이승복(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3. 목화 따는 노과부
그녀만의 작업의 정석 - 박상란(동국대 국문과 강사)
4. 선덕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준비된 왕 - 신선희(장안대 디지털문예창작과 교수)
5. 평강공주
순수남을 영웅으로 만든 자주녀 - 이동근(대구대 국문과 교수)
6. 당금애기
온실의 꽃에서 사막의 숲으로 - 이경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 연구원)
7. 수로부인
신물이 탐하는 매력적인 여사제 - 이창식(세명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8. 옥영
어질고 지혜로운 이 땅의 아내, 그리고 어머니 - 이상구(순천대 국어교육과 교수)
9. 춘풍 처 김씨
억척 아줌마의 남편 길들이기 - 최혜진(목원대 국문과 교수)
10. 선녀
지상의 남자보다 천상의 고향을 사랑한 여인 - 이지영(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11. 두두리 도깨비
변화를 꿈꾸는 한국인의 연금술사 - 강은해(계명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12. 삼족구
구미호에게는 내가 천적 - 이홍우(경인여대?평택대 강사)
13. 홍동지
발가벗고 설치는 천하장사 - 박진태(대구대 국어교육과 교수)
14. 전우치
나는야 조선의 뤼팽! - 김탁환(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15. 최생
여기가 용궁? 나 최생이야 최생 - 황재문(서울대 BK21 계약교수)
16. 이여송
기분 나쁘면 힘세져라 - 정재민(육군사관학교 국어과 교수)
17. 오누이 장사
되살아오는 누이 장사의 혼 - 김승필(정광고등학교 국어 교사)
18. 갖은 병신 노처녀
그녀의 우습고도 희한한 혼인담 - 김현식(서울시립대 국문과 강사)
19. 독수공방의 여인
주고받지 못하는 사랑에 대하여 - 박이정(서울대 국문과 강사)
20. 덴동어미
불행하지만 누구보다 삶을 사랑한 억척 여인 - 임주탁(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21. 방귀쟁이 며느리
내숭 따윈 필요 없어 - 조선영(서울대 국문과 석사)
목차만 봐도 흥미진진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까진 전4권 세트 상품이 있었는데, 금방 절판이다. 왜 세트로 팔지 않는거지? 휴머니스트에서 좀더 영업전략을 세워 판매촉진을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런 책은 많이 팔려도 좋을 성 싶다.
아울러, 이 책의 출간소식을 다룬 기사들을 옮겨온다.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서대석 엮음 (서울신문)
고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참면모를 우리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까.‘변강쇠가’의 옹녀는 천하의 음녀(淫女)일까. 암행어사 박문수는 예리하고도 강직한 해결사일까. 단군신화 속 웅녀는?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의 전복
우리 고전 속 주요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재해석한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전4권, 서대석 엮음, 휴머니스트 펴냄)에 새로운 해답이 들어있다. 성정 급한 독자들을 위해 먼저 책 속에서 끄집어낸 해답. 옹녀는 섹스에 굶주린 탕녀가 아니라 열악한 환경과 편견 속에서 살길을 찾아보려 발버둥친 서민 여성, 박문수는 능력이 빛났다기보다는 민중 속에서 기꺼이 ‘바보’가 될 수 있는 인간미를 지닌 인간 유형이었다. 환웅에게 선택받아 단군을 낳은 모성적 존재로만 인식돼온 웅녀 또한 편견에 진면목이 가려져온 캐릭터. 한때 삶의 동반자였던 호랑이와의 인연을 냉정히 정리하며 새 삶의 지평을 연 웅녀는 절연과 결별을 통한 비약의 캐릭터로 재해석된다.
책은 한국고전문학회 및 한국구비문학회 회장을 지낸 서대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출간됐다. 임재해 박경신 박진태 황루시 강진옥 김종철 정출헌 등 중견학자들과 김헌선 조현설 신동흔 박종성 김탁환 등 소장 연구자들, 박사급 신진연구자들이 1편씩 맡아 모두 85명의 고전 속 캐릭터들을 불러냈다.
책의 가장 큰 묘미는 ‘전복’에 있다. 예컨대 선한 인물의 교본으로 고정된 흥부의 이미지도 충분히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이본(異本)에 따르면, 흥부도 극한상황에 맞닥뜨려서는 폭력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는 새로운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광대 달문, 바리공주, 이몽룡, 유화, 마고할미, 관음보살 등 고전을 주름잡은 인물들이 줄이어 등장한다. 저마다의 욕망과 콤플렉스를 안은 이들이 평면적 성향만을 띠고 있지 않았다는 데 주목한다.
단순히 수백년이 넘은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을 불러내 캐릭터를 재조명하는 작업에서 그치지 않았다.‘대중문화와 눈부시게 만난 고전 캐릭터’란 부제가 붙은 4권에서 책은 현재적 가치를 빛낸다. 이야기 소재 고갈에 허덕이는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계의 귀가 솔깃해질 내용들로 푸짐하다.
19세기 한문소설 ‘포의교집’에 등장하는 인물 초옥.1864∼1866년 한양이 주무대인 작품에서 초옥은 절세미모를 자랑하는 궁녀 출신 하층민 유부녀이다. 어느날 수작을 걸어온 남자 이생과 눈이 맞아 밤마다 외도를 하는 초옥은 그러나 고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당찬 유부녀 캐릭터이다. 자신을 의심하는 시아버지에게도, 동네 사람들에게도 스스로 선택한 사랑에 뻔뻔할 만큼 당당하다.
‘포의교집’을 분석한 김대숙 평택대 국문과 교수는 초옥의 캐릭터를 최인호 ‘별들의 고향’의 ‘경아’, 조해일 ‘겨울여자’의 ‘이화’, 은희경 ‘그녀의 세번째 남자’의 ‘그녀’ 등에 연결시켰다. 현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력만 키운다면, 고전의 글밭에서 서사(敍事)의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캐올릴 수 있다는 역설인 셈이다.
●대중문화 콘텐츠로 활용 가능성 점쳐
대중문화 콘텐츠로 고전을 활용하는 방법론에서 좀더 구체적 제언을 하기도 한다. 여성 수난사의 전형으로 꼽히는 대표적 서사무가 ‘당금애기’의 주인공 당금애기. 순진한 처녀였으나 혼전 임신을 하는 바람에 집에서 쫓겨나 ‘아비없는 자식’을 키우는 시련을 겪는다. 시쳇말로 ‘미혼모’인 당금애기의 캐릭터가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변모하고 수용되는지를 TV드라마에서 찾아보기도 한다.‘비단향꽃무’‘노란 손수건’‘온리 유’‘원더풀 라이프’ 등 일련의 드라마들을 제시하며 현대판 당금애기들의 선택이 시대변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해지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옹녀=탕녀’의 등식과 ‘장화홍련’의 착한 아이 신화를 어떤 논거로 깨부수는지,‘양이목사’를 되짚으며 어떻게 기존 영웅론의 틀을 해체하는지 새로운 고전독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고전작품들을 대면하며 읽는 맛 자체를 챙길 수 있는 묘미는 ‘덤’이다. 책을 엮은 서대석 교수는 “서사문학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캐릭터’인데, 근래 문학에서 그것에 대한 논의를 소홀히 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에서 책이 출발했다.”고 말했다. 각권 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한국 고전속 인물들 생명을 얻다 (문화일보)
연구자 85명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분석 / 김영번기자
조선시대 광대로 오늘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해진 공길과 장생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훨씬 더 광대다운 삶을 살다간 인물이 있다. 광문(廣文)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실존 인물 달문(達文·1707∼?)이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광대의 혼을 가진 달문은 당대 및 후대 문인들의 관심을 끌어 여러 편의 문학작품으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최근 출간된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휴머니스트·전4권)에선 이 같은 달문의 행적을 소상히 전하고 있다. 책은 우리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되살려내고 있다.
◆고전 인물들은 어떤 사람들 = 우리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 85명을 소개하고 있는 책은 작가나 작품 위주가 아니라 주인공의 캐릭터에 집중해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흥부나 심청처럼 선하디 선한 인물만이 아니다. 광대 달문을 비롯, 옹녀 바리공주 박문수 최치원 이몽룡 관음보살 등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욕망과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이들은 평면적인 성향만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책에 소개돼 있는 최치원이라는 캐릭터는 실존했던 인물인 최치원이 아니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창작된 것으로 보이는 한문소설 ‘최치원’의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 류준필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수록문 ‘출세하고 싶다는, 그 헛된 욕망의 신기루’에서 소설 속 최치원을 소재로 진실한 사랑 앞에선 출세에 대한 욕망이 부질없음을 보여준다.
책의 엮은이인 서대석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 고전 속 등장인물들은 언뜻 평면적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심각하게 고뇌하고 결단하여 행동하는 인물들이 많다”며 “세심하게 살펴보면 고전문학의 수많은 주인공들에게서 입체적 인물로서의 인간적 체취와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캐릭터로서의 고전 인물 = 최근 세계의 문화산업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캐릭터의 발굴이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각종 게임과 축제에서도 원형적인 캐릭터를 찾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추세에서 우리 고전속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되살려내는 작업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다.
다양한 캐릭터의 소개는 고전 문학의 새로운 면을 부각시킨다. 책에서 소개하는 캐릭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인물, 나아가 작품의 주변부에 있던 인물에 대한 조망은 익숙한 고전 읽기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법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옹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신재효가 만들어 놓은 ‘탕녀론’적 해석을 뒤집으며,‘장화홍련’이 만들어낸 ‘착한 아이’ 신화를 꼬집기도 한다.
서 교수에 따르면, ‘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박문서관·1913)’의 채봉은 고전 캐릭터의 성격과 가치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채봉은 아버지를 위해 몸을 팔아 기생이 된 인물로,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 등장하는 영채와 그 성격이 흡사하다. 서 교수는 “두 사람을 비교하면 근대소설의 인물인 영채가 더 진취적이리라 예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그 반대”라며 “영채가 소극적으로 타인에게 운명을 맡기는 데 비해 채봉은 적극적으로 제 삶의 길을 찾아 나서 사랑을 이뤄낸다”고 밝혔다.
◆집필진은 누구 = 서 교수를 비롯, 모두 85명의 한국고전문학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특히 임재해(안동대) 박경신(울산대) 박진태(대구대) 황루시(관동대) 강진옥(이화여대) 김종철(서울대) 정출헌(부산대) 교수 등 한국구비문학과 고전소설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중진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 학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소장 연구자 그룹도 집필진으로 한몫을 맡았는데, 김헌선(경기대) 조현설(서울대) 신동흔(건국대) 박종성(방송대) 김탁환(카이스트)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최근 학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박사급 신진 연구자들도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책과 삶]고전 속 인간 군상 현대적 재해석 (경향신문)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서대석 엮음 | 휴머니스트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유혹’으로 남자 주인공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악녀이자 요부.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모습이다. 영화팬이라면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우리 고전문학에도 그런 인물이 있다. ‘장화 홍련전’에서 장화와 홍련을 학대하는 계모 허씨나 ‘이춘풍전’에서 이춘풍을 꾀어 재산을 죄다 빼앗는 기생 추월이 등이다. 그러나 팜므 파탈의 전형이랄 수 있는 인물은 따로 있다. 제주도 무속신화 ‘문전본풀이’에 등장하는 노일제대귀일의 딸이다.
그녀는 남선비를 꾀어 가산을 탕진시키고 두 눈을 멀게 한다. 그 부인을 물에 떠밀어서 죽이기까지 한다. 남선비의 일곱 아들마저 죽이려다가 악행이 발각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농염한 몸짓과 애교로 남자들을 유혹하면서도 잔혹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선 전형적인 팜므 파탈이다.
우리 고전문학에는 흥부나 심청, 홍길동만 있는 게 아니다. 한없이 착하거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욕망과 콤플렉스, 심지어 다중성을 지닌 인물들이 즐비하다. 여성이 욕망의 대상이었던 시대에 무모하게 제 사랑의 길을 펼치고자 했던 초옥(‘포의교집’)과 옥소선(‘옥소선 이야기’), 출세에 대한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주는 최치원(‘최치원’), 악인이면서도 복잡한 내면을 가진 수명장자(‘천지왕본풀이’) 등 스펙트럼이 넓다.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은 이처럼 다양한 얼굴과 성격을 지닌 우리 고전 속 캐릭터 85명을 발굴, 소개하고 있다. 집필에 참여한 고전문학 연구자 85명은 한문학 작품뿐 아니라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화, 전설, 민담 등 구비문학 작품을 대거 수록하고, 주인공뿐 아니라 조연이나 악인까지 새롭게 조명했다. 선덕여왕, 이여송 등 역사적 실존 인물은 물론 두두리 도깨비, 선녀 등 상상 속 캐릭터와 장끼 같은 동물까지 나온다.
대부분 낯선 캐릭터들이지만 우리 고전이 서양의 고전만큼 다채롭지 못하다는 편견을 교정시켜주는,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전국 팔도를 누비며 수많은 팬들을 몰고다녔던 광대 달문(‘광문자전’ 등)은 18세기의 대중스타라 할 만하다. 그는 차별과 억압의 시대에 바람처럼 거침없는 삶을 살았다. 방학중(‘상전을 골려 준 방학중’ 등)은 문화인류학에서 도덕적 관습을 무시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물을 이르는 ‘트릭스터’(trickster)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하저동 출신의 하인으로 남녀 귀천 상관없이 남을 골려주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희극적이면서도 이기적인 인물이다.
책은 특히 고전작품 캐릭터들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시도하면서 오늘날 대중문화 속 캐릭터들과의 접점을 찾고자 했다. 범상치 않은 힘을 발휘하는 호랑이 눈동자를 지닌 범천총(제주도 한동리 전설)은 돌연변이 초능력자들을 그린 영화 ‘엑스맨’의 사이클롭스와 비교된다. 갖은 장애로 인해 나이 마흔이 넘도록 시집을 못간 노처녀인 갖은 병신 노처녀(‘노처녀가’)의 모습에선 드라마 주인공 김삼순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읽는다. 목화 따는 노과부(‘목화 따는 노과부와 엿장수’)는 솔직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성욕을 실현하고 행복을 쟁취한다는 점에서 영화 ‘마파도’의 다섯 할머니와 비교된다.
어느 한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기 힘든 캐릭터들의 인간적 체취와 매력은 오늘날에도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우리가 몰랐던 고전 속 인물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 4권. 각권 1만5000원
〈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
당금애기…덴동어미…묻혀있던 고전의 부활 (한겨레)
신화·민담 속 역동적 캐릭터 85명
백정·기생 등 ‘소수자’들의 주체적 삶
봉건적 사슬에 맞선 당찬 여성상도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전 4권)〉
서대석 엮음. 신동흔 외 85명 지음/휴머니스트, 각 권 1만5천원.
문) 우리 고전에서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 10명을 나열하시오.
답) 효녀 심청, 성춘향과 이몽룡, 흥부와 놀부,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 옹녀와 변강쇠, 홍길동과 허이녹?…???
그리 까다롭지 않은 문제 같지만, 막상 쓰려고 보니 곧 막히고 만다. 아마도 이 분야 연구자나 입시생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비슷하지 싶다. 문제를 바꿔서, 청소년들에게 좋아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어떨까? 아마도 게임과 판타지 소설과 만화영화 속 인물들로 가득 찬 답안지를 자신 있게 내놓을 듯싶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의 인물들을 모르면 외계인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한 세대에게 우리 고전 인물들을 묻는 질문 자체가 난센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르는 만큼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역발상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다. 당대 한국 고전문학계의 대표적인 연구자 85명이 그들이다. 스승인 서대석(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후학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임재해ㆍ박경신ㆍ박진태ㆍ황루시ㆍ강진옥ㆍ김종철ㆍ정출헌 교수를 비롯해 소장 연구자들, 박사급 신진 연구자들까지 망라했다.
서 교수를 비롯한 지은이들이 저마다 한 명씩, 우리 고전 속에 묻혀 있던 무려 85명의 인물을 새롭게 발굴하거나 재해석해 놓았다. 권선징악, 개과천선, 인과응보, 고진감래 등으로 상징되는 교과서식 상투적인 해석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역력하다. 그 덕분에 우리 주변이나 현대문학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다양한 욕망과 콤플렉스와 다중성까지 지닌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며 입체적인 인물들이 즐비하다.
유리, 최치원, 옹녀, 박문수, 이몽룡, 황진이, 춘풍의 처, 장화와 홍련 같은 익숙한 인물들은 몇 안 된다. 석숭, 방학중, 비형, 민옹, 수명장자, 당금애기, 삼족구, 덴동어미 같은 이름들은 난생처음 듣는 듯 생경하다.
하지만 한 장만 읽어보면 이내 친숙해진다. 양이목사나 궤내깃또 같은 신화 속 인물부터 강임, 바리공주, 강감찬, 오늘이 등 무속의 신들, 얼마 전까지 탑골공원에서 구연자 김한유(금자탑)씨가 들려줘 인기를 끌었다는 ‘천하장사 대장부’ 홍대권(아래 그림) 같은 민담 주인공까지 민중들의 삶 속에서 구전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고아, 장애인, 백정, 기생 같은 소수자들이 시대적 억압이나 운명의 굴레를 뚫고 주체적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들은, 고전이 왜 끊임없이 새롭게 읽혀야 하는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동적이고 용기 있게 사랑, 자유, 독립을 추구한 여성들이 수십명이나 등장해 신선한 충격을 준다. 벼슬을 사려고 재상의 첩으로 딸을 팔려는 비정한 아버지에 맞서 기생을 택하고 끝내는 사랑까지 이뤄내는 채봉, 미모ㆍ지조ㆍ문무의 능력까지 갖춰 사랑은 물론 전장에서 신출귀몰 활약해 제후에 오른 강남홍, 남장을 하고 전쟁에 나가 나라를 구한 여성 영웅 하옥주(오른쪽 그림), 관기의 숙명을 탈출해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이룬 옥소선 …, 한마디로 대장금의 원형들이 차고 넘친다.
우리 고전을 고리타분하게만 느끼는 게임세대들은 물론이고, 상상력과 콘텐츠 고갈로 목말라 하는 대중문화 창작자들에게 ‘강추’할 만한 ‘이야기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