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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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들 '뉴하트'의 디질랜드 속에서 헤맬 때, 나는 KBS에서 방영한 '쾌도(快刀) 홍길동'을 봤다. 지성과 김민정의 '뉴하트'가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 드라마에 곧잘 폐인되는 나도 무척이나 궁금했어지만, 나는 그래도 홍길동과 허이녹(유이녹)을 택했다. 왠지 모르게 나는 이 드라마에 끌렸다. 사극은 드라마에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장르다. 현재 각 방송사에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중에서도 사극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나 높은 것은 그 이유에서다. 간혹 사극 열풍을 등에 업고 퓨전 사극을 표방하는 드라마들이 곧잘 있었지만, 정통 사극에 비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번 '쾌도 홍길동'도 마찬가지였다. KBS에서는 전에도 '쾌걸 춘향'이라는 퓨전 사극을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거의 재미를 못봤다.(지금 생각해 보는 '쾌걸 춘향'은 사극이라고 보긴 힘들겠다.)

이전까지의 퓨전 사극이 이처럼 재미를 못 본 것은, 그것이 '퓨전'으로서의 재역할을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통 사극은 다소간의 첨가와 상상이 가미되긴 했겠지만, 그것의 역할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그것을 흥미롭게 전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퓨전 사극은 이와 다르다. 우선 '퓨전'을 표방했다는 것은 고전과 현대를 절묘하게 조합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한다. 그런 가운데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현대적 의미를 강하게 담아내야만 그것이 흥행을 떠나서 성공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게 된다. 그간 퓨전 사극이 대체로 '실패'했다고 말할 때에는, 이러한 '퓨전'이 가지는 의미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뜻이 크다.

내가 볼 때 이번 '쾌도 홍길동'은 그런 식의 실패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퓨전 사극이 제대로 '성공'했다고 당당히 말해야겠다. 비록 그것이 '뉴하트'라는 강적을 만나서 대중의 관심을 강하게 끌지는 못했지만, '쾌도 홍길동'은 그것이 표방한 '퓨전 사극'으로서 그 역할을 최대로 발휘했고, 다양한 재미와 함께 당대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였던 모든 사극(정통과 퓨전을 통털어) 중에 가장 성공적이고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담아낸 최고의 사극을 꼽으라면, 약간의 주저와 함께 이 '쾌도 홍길동'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쾌도 홍길동'은 고전소설 '홍길동전'을 각색한 퓨전 사극이다. '홍길동전'은 누구나 다 아는 고전소설로, 완전한 영웅소설이다. 비범한 재질을 가지고 태어난 홍길동이지만, 서자라는 출생의 한계에 의해 고난에 부딪히고, 그는 세상에 대한 변혁을 꿈꾸며 세상과 싸우다, 결국 율도국이라는 이상의 나라로 간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런데 이 퓨전 드라마는 대략적 구도는 고전 '홍길동전'과 비슷하지만, 그 전개과정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회비판 의식도 당대적 의미를 무척이나 반영했다.

우선,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난 것, 재능이 출중한 비범한 인물로 태어난 것 등은 비슷하지만, 그가 커나가는 과정에서 영웅의 기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설정이 다르다. 그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시정잡배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그는 자기와 같은 소외된 사람, 태생적으로 한계지어진 사람을 보고 그로부터 세상의 모순과 억압을 보게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세상에 자신이 그들의 대신해서 맞서 싸울 의지를 갖지는 못하다가, 차츰차츰 변화되고, 자각한다. 세상과 맞서 싸워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홍길동과 그의 일당들(이 드라마 속에서 활빈당은 홍길동과 그 일당들이 의도한 명명은 아니었다. 어쩌다 사람들이 지어준 것에 불과했다.)은 더이상 주저하지 않고 세상과 강하게 맞서 싸우고, 자신들이 선택한 왕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왕의 세상과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애초에 다른 것이었고, 그들이 선택하여 세운 왕의 세상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꿈꾸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그 둘의 대결은 불가피한 것이 된다. 결국 홍길동과 그 일당들은 고전과는 달리 다분히 현실적으로 강한 왕의 군대에 의해 죽어갔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그렇게 꿈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이 드라마 속에서 홍길동이란 인물의 현실성은 고전과는 달리 굉장히 부각된다. 그만큼 그는 영웅의 면모는 절대 아니다. 이 드라마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영웅의 모습은, 일개의 시정잡배일지언정, 세상의 모순과 억압, 그로부터 소외된 자신과 민중을 보고, 격분하여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고자 미약하게나마 맞서 싸울 때, 민중들이 그에게 부여한 명예가 되는 것, 그것이 진짜 영웅이라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홍길동과 그 일당들의 결말은,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죽음으로 끝났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노승과 곰이를 통해, 그리고 홍길동을 기억하는 많은 민중들의 가슴속에 홍길동은 영원히 살아있고, 여전히 세상을 변혁을 꿈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승은 이렇게 말한다. "어느 세상에나 홍길동은 있다"고. 바로 이것이 이 퓨전 사극 '쾌도 홍길동'이 이 불합리한 사회에 전하는 메세지다.(참고로, 여주인공 이녹이란 인물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내가 볼 때 허이녹(유이녹)으로 분한 성유리가, 지금까지 그가 맡은 모든 역할 중에 가장 연기를 (성공적으로) 잘 한 것이 이 드라마다. 이녹 또한 많은 아픔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항상 밝고 착한 마음으로, 순수하게 살아가는 인물이고, 도저히 악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녀가 끝내 홍길동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렇게 순수하고 선한 민중들이 그 순수과 선함 그대로를 간직하고 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홍길동이 꿈꾸는 그런 세상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얘기를 너무 오래 장황하게 했지만, 그것은 이 '쾌도 홍길동'은 너무나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으며, 꿈과 희망의 메세지를 담은, 그러면서도 지금의 현실을 우습게 풍자하기도 하고, 비판적 칼날을 날리기도 한, 정말 성공적이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 이제 종영했지만, 이 드라마의 마지막 메세지, 즉 "어느 세상(시대)에나 홍길동은 있다"는 메세지와 최근에 읽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이 강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노승은 말한다. "어느 세상에나 홍길동은 있다"고. 세상을 노려보고, 그 불합리에 격분하며, 그러한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그런 홍길동은 언제, 어디서나, 그 누구에게나 존재한다고. 그래서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차츰 살만한 세상으로 변해가게 된다고. 그것이 느리고 더딜 것이지만. 그런데, 그런 노승의 말이 다만 허황된 이상에 지나지 않을까 우려할 필요는 없다. 그 증거, 곧 이 시대에 살아있는 홍길동들이 여럿 있음을 이 책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증명하고 있다. 삼성 비자금을 양심고백한 김용철 변호사, 김용철 변호사를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에 선전포고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삼성 족발 체제를 파헤집고 있는 김상조 교수, "나를 고소하라"며 삼성과 정권의 유착관계와 X파일 물고 늘어지는 노회찬 국회의원, 삼성과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심상성'이라 불리는 심상정 국회의원, 기자정신에 투철하여 모든 두려움을 누리고 공익과 민중을 위해 당당히 삼성 X파일을 취재 방송한 이상호 기자, 삼성의 무노조 신화의 폭력에 맞서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투신한 김성환 위원장 등이 그들이다.

이 책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이 증거하는 이들은 대한민국, 곧 삼성 이건희 회장의 왕국에서 그 거대 왕과 맞서서 진정한 대한민국, 곧 이 나라 민중들이 주인되는 세상 건설을 위해 투신한 게릴라들이다. 아니 세상의 변화를 꿈꾸고, 세상의 악을 노려보고, 고발하며, 투철하고 혈혈단신 싸우는 이 시대의 홍길동들이다. 그래서 퓨전 사극 '쾌도 홍길동'을 보면서, 그리고 그 드라마가 세상에 전한 희망의 메세지를 보면서, 나는 이들을 떠올리고, 이들이 이 시대의 홍길동들이며, 그래서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들은 드라마 속의 홍길동처럼, 자신이 왜 세상과 맞서야 하고, 싸워야 하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차츰 자신과 민중들이 고통당하고 착취당하며, 세상이 점점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부당하고 불합리한 불한당들의 억압과 폭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것과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들은 태어나길 영웅으로, 투사로 태어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우리의 영웅들이다. 삼성과 맞서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말하듯이 두려움 그 자체다. 드라마 속의 홍길동도 그런 두려움에 갈등했다. 그러나 끝내 홍길동은 꿈꾸었다. 그 꿈은 이제 다시금 이 게릴라들, 아니 이 시대의 홍길동의 후예들, 분실들에 의해 다시 꾸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땅의 소외된 자, 핍박받는 자, 착취당하는 자, 불합리에 굴복하여 울고 있는 자, 아니 우리 모든 민중들에게 우리도 이제 '홍길동'이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지금 이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그들이 맞서 싸워 이루어 낼,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이녹이와 같은 우리 무지하지만 순수한, 살아가는 그것 자체가 선한, 그런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으로 가는 데에, 삼성이 자꾸 걸린다. 그래서 그들은 삼성과 싸우고 있다. 이것이 희망 아닌가? 드라마 속의 홍길동처럼 다만 꿈으로만 기억되고 사라져갈지라도, 세상은 그 사라져가 만큼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 속에서 모든 민중들이 홍길동이었다면, 세상은 당장에 변화했을 것이고, 홍길동의 꿈은 현실이 되지 않았을까?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이 시대 홍길동이라 불릴 명단에 김용철, 사제단, 김상조, 노회찬, 심상정, 이상호, 김성환 다음으로 우리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볼 생각은 없으신지? 내 이름도 저 어디 말단에 적힐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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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온서적을 읽자!' 서평이벤트2 <삼성왕국 & 비정규직>
    from 진보생활문예 『삶이 보이는 창』 2008-08-27 15:42 
    의 서평이벤트 2 '불온서적을 읽자!' 서평이벤트2 이번에는 '불온서적을 읽자!' 서평 이벤트 2편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이벤트에서는 신청이 많이 저조했습니다. 조금 급하게 진행되면서 홍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탓도 있었고, 서평도서 3권 중에 [말해요 찬드라]를 제외한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다]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조금 무거운 주제의 책이며, 발간된지 시간이 좀 지나서 시의성을 많이..
 
 
가시장미 2008-03-2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평과 서평을 한꺼번에 감상하게 되었군요. ^^ 이 시대에 홍길동이 정녕 있단말입니까~ 제가 그들을 잘 몰라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있다면 빨리 나타나줬으면 좋겠네요.
'명박씨가 사실은 저는 명박이가 아니에요~~' 라고 말하기 전에요. ㅋㅋ

2008-03-27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