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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계보학 ㅣ 창비시선 254
권혁웅 지음 / 창비 / 2005년 9월
평점 :
『마징가 계보학』? 무슨 시집 제목이 이래? 내가 이 시집을 처음 보게 된 것이 언제, 어디서인지 모르겠다. 2005년 9월에 출간되었으니, 한 몇 달은 전에 있었던 일이었을 게다. 아마도 어느 서점의 시집 코너에서 스쳐가는 눈길을 이 독특한 제목의 시집에 멈췄던 것이 분명하지 싶다. 그렇게 눈길로 담아두고 오래 묵히다가 최근에야 이 시집을 사 읽었다. 그 첫 만남 즈음에는 독특은 했었어도 선뜩 시집에 손길주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던 것이지 모르겠다.
이 책을 주문하여 받아보는 즉시, 표제시 「마징가 계보학」을 펼쳐 보았다. 제1부 두 번째 수록된 시였다. 전문을 옮기자니 너무 길다. 그래서 옮기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는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짱가, 그랜다이저 등장한다. 그런데 이 마징가를 비롯한 그의 후예들은 전날의 그 마징가 들이 아니었다. 마징가 Z, 그 “기운 센 천하장사”는 “우리 옆집에 사”는 술고래였다. 고철을 모아 파는 이 마징가는 밤만 되면 술 먹고 아내를 그 굳센 팔로 두들긴다. 이보다 더 대단한 마징가, 그레이트 마징가는 마징가Z의 그 지겨운 소란을 “오방떡 기계”로 무마시킨다. 이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 그레이트 마징가의 마누라는 아마도 짱가를 찾아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갔다”. 마지막 그랜다이저 부분은 다음과 같다.
여자는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아는 4대 명산은 낙산, 성북산, 개운산 그리고 미아리 고개, 그 너머가 외계였다 수많은 버스가 UFO 군단처럼 고개를 넘어왔다가 고개를 넘어갔다 사내에게 역마(驛馬)가 있었다면 여자에게는 도화(桃花)가 있었다 말 타고 찾아간 계곡, 복숭아꽃 시냇물에 떠내려오니…… 그들이 거기서 세월과 계란을 잊은 채……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부분의 소제목이 ‘4. 그랜다이저’다. 왜 그랜다이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무언가 숨어있기는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이 마징가Z부터 그랜다이저까지의 계보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영웅 로봇들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술 먹고 마누라는 패는 사내, 그 사내의 소란을 못마땅하게 여겨 때려눕힌 사내, 그 사내를 두고 도망간 아내, 그리고 그 사내들과 아내들이 저 우주 너머 외계에서 그랜다이저가 만들어준 그런 행복한 공간에서 거했으면 하는 인간사다.
사뭇 재미있는 형식의 시도다. 만화 주인공을 끌어다가 이런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는 그 자체로 처음에는 웃음을 짓게 한다. 그러나 읽어가면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한다. 그래서일까? 독특한 제목이 준 호기심뿐이었다면 이 시를 나는 시라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의 주인공들이 사는 배경을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어느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저소득층의 서민들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그대로의 현실이지만, 그들은 어쩌면 마징가나 그랜다이저가 그런 것처럼 만화 속에서나 가능한 그런 비현실적인 모습들이다. 이런 비현실적 인물들이 전 시대, 혹은 현 시대에도 여전히 현실로서 살아가고 있다. 비현실성과 현실성의 만남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았다. 웃음과 애잔함의 교차, 쓴웃음으로 마감되는 이 시는 결국은 모순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고 노래했던 시인과 촌장은 한 사람이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동네방네 내 이름을 부르며 귀가할 때마다 나는 출가한 붓다였고, 샴쌍둥이처럼 그녀의 몸에 세들어 살고 싶을 때마다 나는 늑대인간이었으며, 출근하기 싫어 장판에 들러붙을 때마다 나는 그레고르 잠자였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나는…… 이라고 쓰는 나는…… -「모순」부분
이 시에는 아수라 백작과 헐크, 육백만 불의 사나이가 등장한다. 그들은 모순을 내재한 인물들이다. 양성구유의 아수라 백작, 괴물로 변하는 데이빗 배너 박사, “제 안에 제 것 아닌 걸 데리고 사는” 스티브 오스틴 대령. 모순을 내재한 이 인물들로부터 “좌익과 우익을”, “안팎의 경계”를 배우고, “초당 9.8미터를 더한 속도로 옥상에서 뛰어내린 아이들”이 생겨났다. 좌우, 안팎은 그 사이에 모순을 내재한다. 이 모순은 뛰어내려서는 안 될 옥사에서 뛰어내림으로써 작게는 다리에 부러지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처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위의 인용한 부분은 화자 개인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여러 모습들이 각각의 상황에서 각각의 모습으로 튀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별난 일은 아니다. 누구나 그러할 테니까. 결국 현실이란 것은 모순으로 가득한 것이다.
이 시집의 저자 권혁웅의 기법은 하나의 모순어법이다. 패러독스라고도 한다. 「마징가 계보학」이나 「모순」에 등장하는 만화나 공상 영화 속 주인공이든, 그에 비견되는 현실 속 인물들이든 모두가 이 모순으로 형상된 인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마징가로 대표되는 시인의 인물 군들은 비현실성을 대표하면서도 강력한 현실성으로 모든 시에서 표현된다. 때론 희극적으로 때론 애잔하게, 어쩌면 비극적으로 말이다. 그랜다이저가 만드는 세상, 곧 저 외계의 행복한 공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곧, 시의 화자가 살았고,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현실 그 자체이고, 그 안에서의 모순된 현실은 다분히 비현실적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현실인식이 이 시집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시 「드라큘라」에서 “지금 서울엔 마늘 시세가 똥값이다 십자가는 동네마다 있다 그리고 나는 아파트에 산다//그분들처럼 이 동네 사람들도 밤이 되면 층층이, 나란히, 눕는다”는 언술은 그런 현실인식을 대표한다. 만화 같은 세상, 영화 같은 세상으로 시인을 현실을 파악하지만, 그것이 다만 만화나 영화처럼 허무맹랑한 것들로 읽혀지지 않는 이유는 시인이 살아오면서 보고 경험했던 현실 그자체가 그것들과 함께 모순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를 읽어보자.
제가 다니던 삼선교회엔 유난히 숙이 많았죠
은숙(恩淑)이, 애숙(愛淑)이, 양숙(良淑)이, 현숙(賢淑)이, 경숙(京淑)이, 남숙(南淑)이, 난숙(蘭淑)이, 미숙(美淑)이, 정숙(貞淑)이……
그야말로 쑥밭이었죠 제일 믿음이 좋았던 애는 은숙이,
애숙이는 잠시 나를 사랑했고
양숙이와 현숙이는 정말로 현모양처가 되었죠
경숙이는 지금도 서울에 살지만, 남숙이는
먼 데로 이사 갔답니다
난숙이는 정초했고 미숙이는 예뻤는데
지금도 제일 기억나는 애는 정숙이에요
어렸을 때 귤껍질 넣은
뜨거운 주전자 물을 뒤집어썼지만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던 아이,
그러던 어느 성탄절에 성극을 하다가
두건과 함께 가발이 홀랑 벗겨진
울지도 않고 끝까지 마리아 역할을 하고는
그 길로 교회를 떠난 아이, 지금도 어디선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거지꼴을 한 동방박사들을 기다리는 거나 아닌지요
-「쑥대머리」전문
말하자면 정숙이 에피소드라고 할까? 처음엔 고종석의 『바리에떼』에서 진주타령을 보는 듯도 했지만, 중간이후부터는 다분히 꽁트스러운 반전이 있다. 제목 자체에 농축되어 있듯이, 이 시는 정숙이라는 아이의 대머리 굴욕사건이라고 하면 딱인 셈이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이 ‘쑥대머리’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한참을 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정숙이란 아이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겉모습과 대머리로 대표되는 내면의 모습 사이의 모순을 깊이 간직한 인물로 그려진다. 정숙(貞淑)이란 이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 그래도 항상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던” 정말 정숙(貞淑)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대머리였다. 모순을 간직한 채 살아온 아이는 그 모순이 발현된 순간 ‘그 길로’ 상처를 안고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이 모순된 현실 속에 화자 자신이건, 또는 “기운 센 천하장사” 마징가건, 그리고 정숙이건, 누구도 빠져나올 수도 없고, 누구도 이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권혁웅 시에서의 말하기 방식은 간혹 하이개그를 구사하기도 한다. 쌍팔년도 개그라고 욕먹기 십상인 이 개그는 “나중에 사과해서/과수원을 해도 좋았을 친구”처럼 구사된다. 「쑥대머리」도 이런 식에 포함될 듯싶다. 이런 하이개그식 어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조소를 머금게 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아이러니를 형성하는데, 이런 반어적 어법 또한 현실세계의 모순을 보다 극명히 드러내주는 데에 기여한다. 아내를 두들겨 패는 “기운 센 천하장사” 마징가도 그레이트 마징가에게 두드려 맞듯이, 그 그레이트 마징가의 아내는 또 어딘가로 집을 떠나듯이, 이들은 아무리 보다 마징가도 아니고 그랜다이저도 아니다. 이 얼마나 반어적인가? 아이러니는 모순의 또 다른 표현임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런 식이다. 가지각색의 만화 영웅들이 등장하고, 때론 에로배우도 등장한다. 야구선수 박철순도 등장하고 원더우먼과 용가리, 킹기도라 등등 각양각색의 비현실성의 대표들이 현실성과 합체되면서 변주되고, 그러면서 시인의 지난날의 경험들과 보고 들음과 어우러져 지극한 현실성을 획득한다. 이 속에는 모순과 아이러니로 꽉 들어차 있어 우리를 웃게도 했다가 씁쓸하게도 하고, 때론 울게도 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패러디의 집합처럼도 보인다. 백석의 시를 비롯해서 팝송에서도 구절구절들을 따오는 시의 작법들도 제법 많다. 그러니까 어느 곳 어디에서도 모순을 발견되고,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한 것이다. 마징가는 우리 시대 모순을 대표하는 존재의 시원인 것이다.
황현산은 해설에서 “『마징가 계보학』은 필경 이 시집의 저자였을 화자가 서울의 가난한 동네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목도하고 살아낸 비참하고 절망적인 삶을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와 유머의 그물로 엮어낸 모욕과 굴종과 폭력의 족보”라면서 이름하여 이것을 ‘기억의 계보학’이라 칭한다. 분명 그럴 수도 있겠다. 황현산은 덧붙인다, “유쾌하고 비통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기억의 계보학’이란 표현에 맘 상했던가보다. 시집 말미의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주름―사람들의 동선(動線)이 그어놓은―을 잔뜩 품은 어떤 장소에 관해서,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되는 사람들에 관해서, 겹으로 된 삶에 관해서 말하고 싶었다. 내가 기억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시인의 말에 동의한다. 각개 군상들의 ‘주름’과 ‘겹으로 된 삶’의 그 지극한 속성에 대해서, 모순에 대해서 시인은 말하고 있다. 어찌 그것을 아련한 기억의 저편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이 시집은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힌다. 이 시집을 읽는 내내 웃는다고 하더라도 그 웃음 공허함만을 남겨주는 단순무식 개그는 아니기에, 시집을 덮고나서 운다고 하더라도 그리 겸연쩍은 일은 아닐 것이다. 시집에 경기(驚氣) 있으신 분들까지도 일독을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