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성경 How To Read 시리즈
리처드 할로웨이 지음, 주원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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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경, 흔히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즉 "전 세계 최고의 스테디셀러"라고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여기에도 '맹점'은 있는 듯 하다. '셀러'라는 의미에서의 성경의 존재는 르네상스 시기, 즉 인쇄술이 발달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서구권에서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당대 서구지역의 지배적 종교인 기독교의 유일무이의 경전인 성경이 일반 대중(여기서는 일반 기독교도들)들에게 읽히는 책, 그럼으로써 팔리는 책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일단 '서구'라는 지역적 제한이 붙어야만 한다. 이런 기독교가 서구의 산업적 경제적, 그리고 무력적 발달과 함께 비서구 지역에 전해지기 시작하면서 성경도 함께 그 소비 구역을 넓혀가게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전 세계 인구의 1/3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까 이 '스테디셀러'는 전 세계 인구 1/3에 의해 달성된 것이 된다.

이 1/3의 사람들을 가만히 놓고 보면, 대다수 서구인과 일부 아시아인이 그 대부분을 구성한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경제력이란 무기가 구비되어 있다. 따라서 인쇄술의 발달과 그 산물들을 소비할 수 있는 여건, 즉 경제력이 다른 어느 지역(비기독교인들의 지역) 보다 월등했기 때문에 성경을 무한히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전 세계 최고의 스테디셀러"라는 월계관은 거반 자작극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내가 책을 썼는데, 우리 가족과 친인척들과 사돈에 팔촌들이 가산을 털어 수십, 수만권을 사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놓은 것과 매 한 가지 아니면 두 가지라는 소리다. 이 맹점을 무시하고 흔히 기독교인들은 이 "전 세계 최고의 스테디셀러"를 드리밀며 성경이 최고의 책이라고 자찬한다. 이건 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여기서 내가 성경이 '최고의 책'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성경은 '최고의 책'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의 '스테디셀러'적 맹점이 또 다른 측면에서 '최고의 책'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데에 있다. 그 다른 측면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성경이 기독교인들만의 스테디셀러로서 절대적 '경전화' 되고 있는 것이고, 이것과 밀접히 관련이 되겠지만 진정한 스테디셀러로서의 성경의 비기독교인화가 그 다른 하나이다.

성경이 기독교인들만의 소유는 아니다.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간에,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 아닌가?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허락된 것일진대,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절대화해서 자신들만의 특권적 소유물로 만드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생각건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다만 글씨를 써내려갔을 뿐이라는 영감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영감을 내리실 때, 성경이 '경전'으로 떠받들라고 하시려는 의도는 거의 없을 것이 아닌가 한다. 성경이 경전화되고 의식화(儀式化) 될 때, 읽는 책으로써의 활용도는 떨어질 뿐이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에게 성경이 교회갈 때에나 사용되어지고 있는 점에서 매우 잘 드러난다. 나는 이것이 일부 기독교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오히려 성경을 매일같이 읽는 기독교인들이 그 일부에 해당될 것이라 생각한다. 경솔한 판단일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성경의 무오류를 주장하는 복음주의도 여기에 한 몫을 충분히 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영감에 따라 기록된 이 성경은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인데, 이는 달리 하면 함부로 해석하는 행위를 죄악시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성도들에게 성경 읽기를 적극 권장(달리 표현하면 강요) 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해석'은 암묵적으로 금하고 았다. 성경에 숨겨진 단 하나의 진리, 곧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고 읽고, 또 읽고, 심지어 외울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이 진리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주일 예배의 설교 시간에 목사의 말씀인 이 진리를 해석해 전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 일반 기독교 신자들에게 성경은 절대화, '외경화'되고, 일부 목회자들 및 교회지도자 들에게는 성경 해석의 '특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 특권은 배타적이어서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물론이려니와 일반 성도들의 나름의 '해석'까지도 배척될 뿐이다.

르네상스 이후 성경에 대해 일반 대중들의 접근권을 허용했다면, 오늘날에는 그 해석의 권리를 허용해야 한다. 나아가 두번째 측면, 곧 성경의 비기독교인화의 가능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 가능성의 추구란 현재의 1/3에게 제한된 스테디셀러로서의 성경이 나머지 2/3에게도 스테디셀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하는 것이다. 이는 우선 앞선 말한 성경의 '절대화'와 '외경화'의 배타성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달리 말하면 해석의 다양성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성경의 '문학'화로 이어진다. 즉 2가지의 필수적 과정이 동시에 해결되야 하는데, 정리하면 성경의 '절대화'로부터의 해방과 '문학화'로서의 지향이다.

이는 성경이 진정한 '전 세계 최고의 스테디셀러'가 되게 하는 길이고, 성경이 진정 오늘날 최고의 책이 되게 하는 길이다. 나아가 비기독교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선교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여기에 이러한 해법으로서의 유효적절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 있으니 바로 『HOW TO READ 성경』이다. 이 책은 'HOW TO READ' 시리즈로,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한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 기획의 하나이다. 즉, 이 책의 기획의도는 비기독교인에게 오히려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기독교인들에게도 유용하겠지만, 그러한 구분에 관계없이, 어떻게 하면 성경을 "제대로 읽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 리처드 할로웨이가 말하는 성경 읽기의 유효적절한 방법은 바로 성경을 통해 "현재 삶의 조건을 반영하고 해석"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성경을 읽는 가장 나은 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말은 바로 해석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개인에게 있어서 성경이 가질 수 있는 의미는 바로 그 개개인의 "삶의 조건을 반영하고 해석"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문학'을 대하는 자세와 궁극적으로 동일한 방법이다. 그러니까 저자의 말을 절반쯤 곡해하면 성경의 '문학적 읽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성경은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문학성을 내포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을 따오면 "내부에 이미 강력한 힘이 깃든 거룩한 책"이 성경이라고 하는데, 그 강력한 힘의 원천은 바로 이 뛰어난 문학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작, 약속, 연관, 유배, 고통, 구원자, 도전, 비유, 사도, 종말"이란 10가지의 테마를 선정하여 성경을 읽는 모범적 포석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테마들은 하나의 흥미만점의 대하장편소설의 기본 테마들의 모범적 구성과 다르지 않다.

그러한 흥미로움에서 시작하여 곳곳에 내포된 다양한 의미들을 오늘날의 상황과 여건 가운데서 시의적절하게 해석해 낸다면, 성경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최고의 책, 최고의 문학, 최고의 고전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읽기 방법들을 살짝 하나만 엿보도록 하자. 저자는 신명기를 읽으면서 '연관, 종교적 사회와 윤리'라는 테마를 뽑아낸다. 거기에서 오늘날 "성경은 일종의 연대성을 명령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더 큰 안목과 상상력으로 마음을 써야 한다"는 의미를 추출한다. 나아가 "성경이 묘사하는 하느님은 정치적으로 통화주의보다는 분배주의를 지지하는 분임이 뚜렷하다. 하느님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닌 것 같지만, 무한경쟁보다는 사회적 상호의존성을 늘리려는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셨음도 분명하다."라는 위험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저자의 성경 읽기 방법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성경이 오늘날 그 자체가 가지는 뛰어난 이야기성과 흥미성을 모두 내어 버리고 다만 딱딱한 절대 '경전'의 어두운 세계로 치닫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에게나 비기독교인에게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이 그 질 낮은 문학으로 취급받는 것을 혐오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수 있겠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문학의 효과적 기법인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구약의 다양한 장들에서 웅장한 역사 이야기가, 아름답고 감미로운 시적 언어가, 고통과 번민의 언어가, 슬픔과 분노의 언어가 쓰이고 있음도 주지할 필요가 있겠다. 오늘날 서양의 모든 예술의 모태에는 성경이 있음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런데 그 성경의 '문학성'을 배제하는 것은 성경을 죽이는 행위, 곧 불경이 되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인에게나 비기도교인에게나 성경은 최고의 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는 그것을 버릴 수 없다. 그러기에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그 "강력한 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 높은 곳에서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성경도 이제는 '문학'으로 낮아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책 『HOW TO READ 성경』에서 이러한 문학적 읽기가 충분히 의미있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성경의 가진 그 강력한 힘을 전달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인류에게 '말씀'을 주셨다. 이 '말씀'은 곧 '문학'이다. 인류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성경은 불려져야 한다.

(이 책의 아쉬움이 몇 가지 있다. 참고문헌이 제시되어 있는데 좀 부실하다는 점, 대부분이 외국서적이라는 점, 우리말 번역본의 정보가 전무하다는 점 등이다. 이는 번역자나 편집자들이 좀 보완해 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하나님'과 '하느님'의 용어 사용 문제다.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개신교인들이 읽는데에 거슬릴 수 있을 법도 하다. 그리고 인용된 성경이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한글성경본이고, 그에 따른 각 성서의 제목이 조금씩 달라 약간 읽는데 더딘 감을 주었다. 뭐 그거야 내가 감수할 사항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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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잘 다녀오셨나요 멜기님? ^^

그나저나 재도전! 혹시...
헌법의 풍경, 면장선거!!!
-.-;;;

멜기세덱 2007-08-12 00:05   좋아요 0 | URL
오늘이요? 하루 종일 자느라...못 갔어요...흐미...ㅎㅎ

그나저나, 또 틀리셨어요...ㅋㅋㅋ
체셔님에게는 이제 도전권이 없으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