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
더글라스 에이브람스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돈 주앙, 그의 이름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간혹 모르는 척하기도 하는 이 시대 '부끄러운' 욕망의 고유 명사다. 흔히 "플레이보이의 대명사로" 카사노바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그는, 카사노바와는 또 다른 특색들을 지니면서 보다 음험한 호색한으로 카사노바와 차별성을 가져왔다. 카사노바가 역사적 실존 인물임이 확실시되는 반면, 돈 주앙의 실존성 여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실존 인물 돈 주앙 테노리오가 이 돈 주앙의 모델이라는 설이 있지만, 돈 주앙이 실존했던 인물이건 아니건, 오늘날 우리에게 돈 주앙은 그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차를 내재한 인물일 뿐이다. 그래서 돈 주앙 문학의 시효로 여겨지는 스페인의 극작가 몰리나의 『세비야의 호색한과 석상의 초대』(1630) 이후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고 재탄생한 '돈 주앙'이 곧 오늘날 우리 인식 가운데 존재하는 '돈 주앙'의 가장 진실된 모습일 뿐이다.

몰리나의 작품 이후 근 500여년간 수많은 돈 주앙이 공식 혹은 비공식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 작품들은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바(이 책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뒷 편에 <옮긴이의 말>에서 그 대표작들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http://blog.naver.com/donjuandiary에서 돈 주앙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살펴볼 수도 있다.), 그것들의 목록을 여기서 늘어놓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비공식적 돈 주앙 이야기들의 목록을 가늠해보는 것은 거반 불가능하리라 여겨지지만, 내가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그 비공식적 이야기 중 하나일 수 있는 일종의 돈 주앙 야설을 접해 본 경험이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고등학교 때 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아이들이 어떻게들 구했는지 요상스런 이야기책들을 여러 명이 돌려보곤 했다. 대부분이 무협지 비슷한 것들이고, 간혹 성교육 교재 그 이상의 것들도 돌았다. 그 중 하나가 돈 주앙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어 밝혀두지만, 나는 당시 이른바 대표적 모범색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 책을 서로 돌려보던 가운데 나도 잠깐 구경할 수 있었던 기회가 생겼고 몇 쪽 넘겨볼 수 있었던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그 후 그 책을 틈틈히, 그러나 은근슬쩍 정독했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돈 주앙과 뭇 여성들의 성애의 묘사가 무척이나 리얼하면서도(나는 아직 그것이 진정 리얼한 것인지 의문이지만) 선정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을 나는 알지 못 했다.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리즈의 중간의 어디 쯤이었으니까.

돈 주앙이 등장하는 작품이 다양한 만큼, 그 다양함의 각각들을 접해본 독자(또는 관객)들에게 동 주앙의 모습은 각양각색일 수 밖에 없다. 그 당시 이후 나의 돈 주앙은 일종의 섹스머신 혹은 섹스의 제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각양각색의 돈 주앙의 모습에(어느 정도 공통 분모를 가지고는 있겠지만) 맞고 틀림이 있을 수 없다. 돈 주앙 테노리오의 실사(實事)를 대조해가면서 따지고 볶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돈 주앙은 그만큼 역사로부터 멀어졌고, 그 멀어짐으로부터 다양한 모습의 실체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이 책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이하 『잃어버린 일기』)는 또 하나의 돈 주앙을 그리려고 했다.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동양적 세계관으로 새롭게 조명"했다거나, BBC에서 "돈 주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하거나, 이 책의 홍보물 등에서 말하듯이 돈 주앙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곧 돈 주앙의 재해석이라며 이 책을 곳곳에 알리고 있다. 이것은 돈 주앙이란 이름을 알 만한 사람에게 매우 관심을 끌게 만드는 전략일 수밖에 없다. 돈 주앙에 대한 재해석이라면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는 것은 지금까지의 돈 주앙에 대한 호기심에 비례한 만큼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재해석의 신빙성을 높이는 전략으로 '잃어버린 일기'에 바탕을 둔 팩션이라는 전략을 택하고 있어 관심을 배가시킨다.

또한 이 책은 『다빈치코드』를 펴낸 출판사에서 발굴한 것으로, 그 출판사가 대대적으로 투자한 만큼 그 재미와 흥미에 대한 의심할 여지를 줄이게 만든다. 띠지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등 25개국에 판권이 팔린 화제의 소설"이라는 문구라든가, 이 책의 공식블로그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전 세계 20여개 언론사를 초청한 프레스 투어"라는 문구에서 이 책을 팔고자 하는 출판사의 상업적 전략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그 전략과 이 책이 얼마만큼이나 상부할지는 사서 읽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고, 나도 읽기 전에는 몰랐던 것이 확실했다.

사실 『다빈치코드』로 재미를 본 출판사의 안목은 그리 좋은 것은 못 된다. 『다빈치코드』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이것이 다루는 제재의 민감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소설로서의 완성도와 작품성은 그리 높게 평가할 수 없는 작품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성공의 이유는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의 반증으로 소설『다빈치코드』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상대적으로 별반 성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만큼 원작의 단순한 추리적 이야기성이 영화로 시각화되었을 때 극명하게 들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좋지 못 한 안목의 출판사에서 펼치는 상업 전략을 우리는 조금 의심해 보아야 하겠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책 『잃어버린 일기』가 출판사의 상업 전략과 얼마나 합치되고 불일치되는지를 따져 보도록 하자. 우선, 이 책 『잃어버린 일기』의 표지에는 "400년 만에 발견된 돈 주앙의 일기를 소재로 한 역사 팩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의 원본 일기의 서지사항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 책의 공식 블로그를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다. <편집자 노트>에서 밝히고 있는 이 일기의 우연한 입수 과정 또한 하나의 허구일 뿐이란 의문이 간다. 설혹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픽션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

또한 이 돈 주앙이 '역사 팩션'이 될 때의 그 문화적, 문학적 가치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현재적 의미에서의 다양한 돈 주앙의 모습이 제각기 진실일 따름이다. 그렇게 볼 때 '일기'를 들먹이며 '역사 팩션'임을 주장하는 것은 소설적 전략이면서 홍보 전략으로 밖에 이해될 수 없어 보인다. 먼저 소설적 전략으로써의 '일기'의 틀은 작중 화자의 내면에 독자가 깊숙히 침전하면서 동일시를 이룰 수 있어,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게끔 기능한다. 이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흥미를 내재하고 있다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켜 읽는 재미를 톡톡히 배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 기본적 이야기의 흥미로움을 갖추고 있을 때 얘기다.

다음으로 이 책이 기존의 "돈 주앙에 대한 재해석"을 보여주고 있는지의 여부를 가려보자. 기존의 돈 주앙에 대한 해석이 호색한으로서의 악한의 이미지로 돈 주앙이 묘사되고, 그런 돈 주앙의 행위에 대한 권선징악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공통분모를 뽑아 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는 그와 다른 묘사, 그와 다른 결과, 그와 다른 어떤 해석의 여지를 찾아 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러나 나의 내공의 부족에서 오는 것일까? 눈을 씻고 찾아보아야 하겠지는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이 책의 전반적 줄거리는 짧게 정리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다. 출생의 비극을 가지고 태어나 버려진 고아 돈 주앙, 그가 여성 편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삶의 여정, 이 소설의 악의적 인물에 의한 일종의 양육, 그로 인해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악에 대한 동조, 주인공의 내적 외적 갈등, 돈 주앙을 각성케하고 변화시키는 구원자의 등장과 그에 대한 돈 주앙의 진정한 사랑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고전 영웅 소설에서 보이는 '영웅의 일대기적 구성'의 약간의 변종으로도 볼 수 있다. 그만큼 그 구도는 고전틱하다. 진부하다는 얘기다.

주인공 돈 주앙의 여성 편력의 행각은 그간의 여타 작품들과 대동소이하다. 다양한 여성을 상대하는 점에서 대동(大同)이라면, 성애의 묘사 등이 상대적으로 부실하다는 점에서 소이(小異)다. 그래서일까? 예전에 읽을 수 있었던 야설보다도 흥미는 절대적으로 반감될 뿐이다. 대동에서의 진부함과 소이에서의 흥미의 반감, 이 소설이 재미없어지는 이유다. 이미 말 했듯이 '일기'라는 기술 전략은 이 흥미의 반감과 함께 기법적 전략의 성공을 저해시킨다.

주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기존의 돈 주앙 문학이 인과응보적, 악에 대한 처벌적 주제로 이루어졌다면, 이 소설은 그 점에서 정반대로 포장되어 있다. 돈 주앙의 죽음을 강하게 암시하며 이 소설은 끝나고 있지만, 돈 주앙은 여성을 농락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일종의 반성을 경험하며 진정한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성취하는 반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일종의 개과천선이다. 이것이 다른 해석, 곧 이전의 진부한 해석과의 차별성이라면, 동전의 양면으로 우릴 우롱하는 처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인과응보라는 진부한 주제의 결말의 한쪽면에 죄에 대한 처벌이라면, 그 다른 면은 천선에 대한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다섯살짜리 어린아이도 몸소 체감하는 너무나도 쉬운 논리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재해석이라는 홍보성 멘트는 기존의 진부한 해석이 당연히 내재하고 있었던 주제의 동전을 살짝 뒤집어 놓고 "이것은 다른 동전"이라고 당당히 떠드는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 소설의 마무리를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마무리 또한 작가의 의도적 전략이 숨어 있다. 돈 주앙이 마무지 짓지 못한 일기, 곧 이 소설의 결말을 돈 주앙의 마부였던 크리스토발의 회고로 대신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열린 결말'을 제시하고 있는데, 오래 간직했던 돈 주앙의 일기를 자신의 임종 직전에 알마에게 전하며 쓴 이 크리스토발의 회고는 돈 주앙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지 못 한 일종의 풍문으로 전하며, 돈 주앙의 생존 가능성을 살짝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독자로 하여금 보다 행복한 돈 주앙의 후일담을 상상하게 만드는 전략인 것이다. 자체로 하나의 해피엔딩인 셈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이유는 이 일종의 희미한 해피엔딩 전략이 보다 더 이 소설을 기존의 진부한 결말과 더욱 동질성을 갖게 되는 데에 있다. 개과천선하면 자손만대 행복해야 하는 것이 고전의 절대 공식이 아니던가?

지금까지 이 책 『잃어버린 일기』의 리뷰를 때리기식으로 매도한 것에도 불구하고 별 세 개를 준 이유는 "풍부하고 섬세한 스토리텔링에 찬찬을 금할 수 없다."는 프랭크 매코트의 찬사나 "16세기의 도시 세비야. 이 신비한 도시"의 배경을 세밀히 묘사한 것, 그리고 "베껴 쓰고 싶을 만큼 멋진 사랑의 경구들이 가득하다."는 로버트 오시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밑줄 거둘 만한 구절들을 간략히 옮기면서 잔혹한 리뷰를 마치기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는 부실하겠지만, 심심풀이로 읽기에는 이 책이 그만큼에 값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읽을 이는 읽을 것이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건간에 말이다.

"비밀 하나 이야기해줄게, 크리스토발. 여자의 욕망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죽지 않아."(16쪽)

"여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노력해본 남자들은 그 보상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 알 것이다. 하지만 이 잔인한 시대에 여자를 이해하려는 남자들은 거의 없고, 가장 하찮은 사랑의 손길을 갈구하는 여자들은 수없이 많다."(38쪽)

"능수능란하게 감정을 다루는 것이야말로 여자들이 가진 뛰어난 능력 중 하나이다. 그 능력은 남자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47쪽)

"결투에서 절대 질 수 없는 사람은.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이야."(117쪽)

"욕망은 인간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신은 여섯째 날 동물들과 함께 욕망을 창조했다. 욕망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166쪽)

"모든 여자에게 신경 쓰는 건 곧 어떤 여자에게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해."(178쪽)

"여자의 욕망의 강이 비금속을 황금으로 만드는 연금약액(練金藥液)이 아닐까? 여자의 문을 통해 영원한 삶을 찾을 수 없다면 조물주의 창조 행위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 아닐까?"(190쪽)

"죽음과 삶은 끊임없이 얽히고, 불길한 죽음의 징조는 종종 열정을 부추긴다. 생명은 항상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길 바란다. 알마가 그렇게 말한 것도 그러한 욕구 혹은 몸에서 들리는 생명의 외침 때문일 것이다. 시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러한 생명에 대한 갈망은 모든 여자에게 찾아온다."(309쪽)

"'내가 말했지….' … '어떤 검술에서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포함해서… 잃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그건 거짓말이었어.…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어.' '그건….' … '사랑에 빠진… 남자겠군요.'"(355쪽)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결혼의 비밀은.' … '한 여자를 통해 모든 여자를 알고 사랑하는 것이군요.' … '맞아, 모든 여자의 모습은 각각의 한 여자 안에 들어 있고, 모든 남자의 모습도 각각의 한 남자 안에 들어 있지.'"(361쪽)

"사랑 없는 쾌락은 고기 없는 양념, 음식 없는 미각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 쾌락 없는 사랑은 양념 없는 고기, 맛없는 식사와 마찬가지다. … 진정한 열정적인 사랑은 매일 새로워지는 연회일 것이다."(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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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0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멜기님 ^^
성애의 묘사가 부실하다니 쳇!
그렇다면 돈주앙을 읽는 아무 의미가 앖자나욧!

:) 추천~~!

멜기세덱 2007-07-05 23:08   좋아요 0 | URL
체셔고양이님의 페이퍼가 훨씬 재밌다고 알차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