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를 좀 쳐본 이들이라면, 당구장에서의 자장면 맛을 그리워할 성 싶다. 게임비 내기만으로도 긴장감이 오는데, 덤으로 자장면을 걸면 당구는 더이상 게임이 아닌 게 된다. 예전엔 당구장 출입하면 흔히 건달이거나 불량배거나 문제아로 보는 시절이 있었지만, 레저스포츠로 분류되면서 당구장에 대한 편견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아직 당구에는 도박성 짙은 내기들이 여전하기도 하다. 그러나 자장면 내기쯤이야 게임의 흥취를 더하니 금하기는 좀 뭐하다.

"사장님, 여기 짜장면 4개요. 단무지 좀 많이 가져오라 하세요. 거긴 맨날 단무지 달랑 몇 조각 가져오더라. 아참, 고춧가루도 가져다 달라고 하세요."

"여기 ~당구장인데, 짜장면 4개, 고춧가루도 가져와."

"아저씨, 단무지도 많이 가져오라고 하시라니깐."

자장면 / 醬麵 / [zhá jiàng miàn] / 짜장면

"오늘 우리 자장면 먹을까?"하고 친구가 물어오면 왠지 입맛이 돌지 않는다. "야 짜장면 시켜 먹자!"고 하면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아저씨, 자장면 3개 갖다 주세요."하면 "짜장면 3개요?"로 되물어 온다. 하긴 "자장면 3그릇 주세요"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죄다 "짜장면 주세요."다.

우리는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 맞다는 걸 잘 안다. [짜장면]하면 안 되고, [자장면]해야 옳다고 아나운서들은 예의 그 정확한 발음으로 [자장면] 한다. 나는 [자장면]하면 그 맛이 싱거울 것 같고, '자장면'이라 쓰면 그 집에 시켜먹기 꺼려진다. 난 [짜장면]이 맛있다.

우리 언중들의 대부분은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임을 잘 알고, '자장면'이라고 쓴다. 그런데 [짜장면]이 아니고 [자장면]이라고 말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짜장면] 한다. '에이, 이런 무식한 사람들'하고 누가 감히 욕하랴?

여기서 '자장면'이 옳으니, '짜장면'이 옳으니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내가 시비걸자는 것은 왜 [짜장면]이 아니고 [자장면] 해야 되느냐다.

자장면의 유래를 따져보면 1883년으로 올라간다. 인천이 개항되면서 중국(당시 청나라)인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부터란다. 중국인들의 음식 중에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것이 있었는데, 그걸 그들은 麵(炸酱面)이라고 썼고, [zhá jiàng miàn]이라고 발음했다. 그 발음을 무식하게 풀어보면 [자아(중국 성조에서 제2성으로 끝을 올린다.) 지앙(제4성으로 바로 내려 꽂는다.) 미엔(지앙과 같다.)]을 빠르게 발음하면 될 거 같다. 이걸 간단히 우리말로 옮기면 [자장면] 한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자장면의 유래 연구상으로 우리나라의 자장면의 시작은 이 즈음이 된다. 이때부터 우리는 자장면을 먹게 된다. 그 말은 곧 우리가 [자장면] 했다는 것이다.

원래 麵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으면 작장면이 된다. 그러나 자장면은 우리에게 麵으로 먼저 오지 않았고 [zhá jiàng miàn]으로 먼저 왔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설프게 [자~장~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10년이 지나고 20십년이 지나면서 어설픈 [자장면]에서 친근감 있게끔 [짜장면]으로 변화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짜장면]을 주로 한다.

1986년 고시된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직접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자장면'이라 쓰고 [자장면]이라 발음해야 한다. 여기에는 본토발음 존중의 원칙같은 것이 적용된다. 그러나 '표기의 기본 원칙' 제5항에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라고 되어 있다. 그렇게 볼 때, 자장면은 이미 예전에 짜장면이 관용 아니었나 생각된다. 아직도 '짜장면' 시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말이다.

뭐 여기서 외래어 표기법의 문제점을 세세히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이긴 하지만, 내가 그 문제를 따질만한 권위도 능력도 없다. 하지만, '짜장면'을 '자장면'하니 귀에도 거슬리고, 입에도 거슬리는 것 같아, 시비 걸어 보자는 거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적자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외래어도 우리말이니, 이것은 우리말을 우리가 보게 잘 적자는 것일진대, 원음을 존중하자는 건 골치 아픈 노릇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이 이 외래어 표기법을 잘 모르는 게 사실이잖은가? 동경을 도쿄로 적는다거나, 북경을 베이징이라고 적어야 한다는 정도의 문제 그 이상으로 우리는 이 외래어 표기법을 잘 모른다. 아니 잘 알기가 매우 어렵다. 전공자들도 그 어려움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여기서 외래어 표기법은 각설하고, 麵은 [zhá jiàng miàn]으로 와서 [자장면]하였으되, 얼마 못가 [짜장면]하였고, 여전히 [짜장면]하니, 관용도 어지간한 관용 아니겠는가? 아무리 '자장면'으로 쓰고 [자장면] 하라고 해도, '자장면' 이라고는 쓰되 여전히 [짜장면]하는 언중이 살아 있는한, 당구장에서 자장면 시킬 때 [짜장면] 달라고 하는 한, 언젠가는 '짜장면' 쓰고 [짜장면] 해야 옳은 날이 올 것이다.

난 '자장면' 보단 '짜장면'을 더 좋아한다. '자장면' 보단 '짜장면'이 더 맛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주세요 해야 맛있는 '짜장면' 줄 것만 같다. [버스]가 아니라 [뻐쓰]가 와야 올라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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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5-28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한강고수부지에서 주말마다 농구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게임 끝나고 출출했는데...농구대 파이프에 왠 중국집 전화번호 스티커가
붙어있더군요...시켰더니....진짜 오더군요...허허

멜기세덱 2007-05-2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 배달의 나라에 최고 가는 기수, 곧 배달의 기수 아니겠습니까? 어디든 안 가는 곳 있어도 못 가는 곳 없다는....중요한 건 "짜장면 시키신 분?"한다는 거죠...ㅎㅎ

이매지 2007-05-2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맞춤법 수업듣는데 요새 진도가 외래어 표기법인 ㅎ
로브스터가 가장 인상에 남더군요 ㅎㅎ

멜기세덱 2007-05-29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브스터라고 쓰면 사람들이 lobster를 말하는 거라고 과연 알까요? 참 웃기는 노릇이죠...ㅎㅎ 바닷가재로 순화되었네요...ㅎㅎ

순오기 2007-08-1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멜기님, 작년에 창비의 좋은 어린이책 창작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이 당당하게 '짜장면 불어요'였답니다. 철가방 기삼이를 통해 들려주는 짜장면 철학과 배달의 기수, 전국민이 좋아하는 짜장면의 날을 국경일로 해야 한다는 등, 아주 유쾌한 동화인데요...^^

멜기세덱 2007-08-13 00:30   좋아요 0 | URL
앗, 또 이런 정보를....ㅎㅎ ㄳ
근데, 창비는 지들 자체적인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고 있어요...
그건 좀 아니라고 보는뎅, 그래도 '짜장면' 하나는 괜찮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