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바둑 사이트가 있다. 요즘은 각종 온라인 게임들을 많이 즐기고 젊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것 하나쯤 못 하는 사람들이 없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게임에는 도통 재능이 없다. 조금 유별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온라인 게임은 이 바둑 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 주위에는 더더군다나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그런 나에게 인터넷이란 매체는 바둑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해 주었다. 온라인 바둑 사이트에 적을 두고 여러해 접속하면서 온라인 상의 바둑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오늘은 요 며칠 전 있었던 한 바둑 친구와의 씁쓸한 대화 몇 마디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대학의 조교이다 보니, 내 일은 아는 사람들은 곧잘 물어오는 것들이 있다. 대학 입학에 관한 것이라던지, 학과에 대한 질문들이다. 이 친구도 편입학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나에게 우리 대학으로의 편입학에 관한 일들을 물어왔다. 나는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고, 그 친구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이 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주 망설이면서.

"대학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나요? 제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거든요. 화장실도 좀 문제고요."

나는 순간 말 문이 막혀 버렸다. 4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리 만무하고, 화장실에도 장애인 시설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고작 장애인 시설이라봐야, 건물 입구에 형식적으로 마련된 경사로와 주차장의 장애인 전용주차 구역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그 친구에게 말하는 것이 다소 망설여졌다.

그러나 어쩔 수 있겠는가. "우리 학교에는 그러고 보니 그런 시설이 전혀 갖춰져 있질 않네."하고 말해 놓고는 안심이 되지 않아 이렇게 덧붙였다. "아니 어떻게 대학이라는 공간에 그런 기본적인 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은지, 참 우리 학교가 너무 부끄럽다." 그 친구가 빈말처럼 느끼리라고 생각되었지만, 어느 정도 나의 진심이었다.

이로부터 지금까지 이 일이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대학을 고를때, 그 대학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화장실에 어떤 시설들이 갖춰져 있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친구를 다른 무엇보다 이것이 대학진학에 있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아무리 좋은 조건과 시설을 갖추었다고 해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친구는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어디에 맞춰져 있는 것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에 비해 정상적이라고 생각되는 나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러한 구조는 소수자인 장애인의 차별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누리는 이 사회는 기본적 혜택들이 그들의 피해를 담보로 제공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이것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난 무엇보다 이것을 고민해야 했다. 왜 그 친구는 나 같은 사람들이 대학 선택에서 고민하는 문제 외에도 그런 이상한, 어쩌면 문제가 될 만한 것 같지도 않은,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걸까?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것은 나의 고민을 하나도 덜어주지 못하는 답변이다.

나는 장애인들도 나와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대학선택을 고민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도 안되는 문제들이 장애인들의 대학진학을 방해한다는 것은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언가 잘못되다 한참 잘못 되었다.

한가지 더 고백할 것이 있다. 내가 이 대학을 횟수로 10년째 다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장애인들이 이 대학(단과대학)에 다닌다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안 뽑는다는 얘긴가? 하긴 장애인이 다니기에는 아무런 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장애인들 중에 이 대학(단과대학)에 오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또 하나의 차별이다. 장애를 갖게 된 것도 억울한데, 남들보다 더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일 가지고 자신의 진로를 포기해야만 하는, 이 사회는 분명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말하면서도 화가 나는 것은 그 친구에 대한 부끄러운 나의 마음을 숨기고자 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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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언젠가 한겨레21에서 장애인들이 대학입학시 박대받는 걸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안된다고 말하는 학교도 있고, 한명의 입학생을 위해 학교를 뜯어고치는 학교도 있었죠. 아직 장애인 시설에 대한 대학의 인식이 많이 부족합니다. 예전보다는 경사로도 설치하고, 엘리베이터 만드는 학교도 있고 하여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멀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