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연가다.
19살부터 폈다. 친구가 가르쳐줬다.
중간에 안 폈던 1,2년을 제외하더라도 지금까지 핀 연도수가 10년이 넘는다.
아, 아직 '많이 폈다'라고 자랑질 할 시기는 아닌가.(웃음)
한참 금연운동 했을 당시, 난 보란듯이 애연가 사이트에 가입해서 글을 쓰고는
당선되어 공짜 담배 2보루도 얻었다. 레몬맛과 딸기맛.
맛은? 질식해서 죽을 것 같았다. 주변인들에게 절대 그건 피지 말라고 했을 정도.
나와 키스했던 사람들은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었고, 안 피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노골적으로.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L과 키스하면 담배 맛이 나서 좋아."
이건 또 무슨...? ㅡ_ㅡ
가끔 키스하기 싫어질 때가 있어서, '담배 냄새나잖아~' 라고 하면 으레 저렇게들
대답해서 도망도 못치게 만드는 거다.
지딴에는 배려한다고 민트향 치약으로 박박 닦고 와서는 내게 키스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럼, 나는
"나 이제 일어나서 냄새 나잖아." 하고 피할라 치면,
"괜찮아~"
괜찮긴 개뿔. 내쪽에서 치약 냄새가 싫단 말이다. ㅜ_ㅡ
그렇지만 나는 거절할 성격이 못 되서 대부분 해주고 만다.
만약 치약맛이 딸기라거나 달콤한 무엇이라면 기꺼이 당신 입술을 먹어주겠어.
하지만 소독약 냄새나는 치약은, 정말이지 현기증이 날 거 같아.
마치 수영장 물속에서 입 벌리고 헤엄치는 기분?
(그런 주제에, 내가 양치질 하는 건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사탕이나 새콤달콤한 캬라멜을 먹었던 입술은 훔치고 싶어지는데,
그 은은한 달콤함이 너무 좋아서이다.
꼭 키스가 아니더라도 말할 때마다 달콤한 향내가 뿜어져 나오는 것은 너무나 매력이지 싶은게,
한 때는 매일 새콤달콤한 캬라멜만 입에 물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서 느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런 기분을 느낄까 싶어서.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이쁜 키스였다고 기억되는 것은, 22살쯤.
어느 비오는 여름 날, 난 후배와 하나의 우산을 쓰면서 밤거리를 걸은 적이 있었다.
둘 다 우산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후배의 우산이 너무 커서 걸을 때마다 부딪히길래
말 많은 우리는 이야기를 제대로 해볼 요량으로 하나의 우산만 쓰고 걸었었다.
번화가에서 집으로 가는 길까지는 1시간이 넘는 거리였음에도, 우리는 그 당시 뭔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길래 걸어갔는지. 대체로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지만.
다리가 아파서였을까, 아님 잠시 쉬려고 했던 걸까.
우리는 어느 공원의 벤치에 앉아 멍하니 비오는 거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뭔 이야기하다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키스를 했다. 그냥 키스.
좋아하는 애정이 있는 것이 아닌, 그저 손을 잡는 행위처럼 아무 생각없는 그저 그런 스킨쉽 정도.
서로 좋아할리 없으니 연인들이 하는 것 같은 키스따위는 생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로의 타액이 오가지도 않았고 혀를 섞지도 않았다.
그런데 난 그게 너무 좋았던 거다. 그 마른 키스가.
살짝 서로의 입술만 맛보고 끝나는 그 깔끔한 키스가!
불행하게도(?), 나를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은 축축한 키스밖에 할 줄 몰랐다. -_-
하지만 키스가지고 타박할 정도의 찌질한 성격이 아니기에, 나는 그저 속으로만 그 마른 키스를
그리워했다. 그 후배 녀석의 얼굴이 어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서로의 입술을 포갰던 느낌만 남아 있다. 그 녀석도 날 기억 못할 거다.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16살 때의 첫키스는 안타깝게도 가장 친한 친구였다.
우리는 실컷 놀다가 문득, 키스가 뭔지 궁금해졌다.
둘 다 그 나이 되도록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었기에 경험이 없었다.
알고 있는 건 만화책에서 본 것 뿐?
그래서 서로를 시험대로 삼고 했었다. 느낌?
만화 주인공 따라 하다가 서로의 혀가 절단날 뻔 했다.
그림으로 봤을 때는, 서로의 혀를 깨무는 건줄 알았거든. -_-;
나는 너무나 충격이어서, 그 후 2년 동안 키스따위 누구와도 엄두를 못냈다.
지금 내 옷엔 담배 냄새가 베어 있다.
담배는 좋아하는 주제에 그건 또 싫어서, 혼자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담배 냄새나는 키스는 아무래도 좋다.
상대가 담배 피고 난 다음에 키스해달라는 것도 좋다.
상대가 일부러 내가 담배 피고 난 다음에 키스해달라는 건 좀 그렇다..
그들은 담배를 먹고 싶은 걸까, 내 입술을 먹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