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무' 아래서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현아 옮김, 오에 유카리 그림 / 까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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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가 청소년기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유년기와 소년기의 경험들을 이야기한 에세이인 이 글은 아주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그가 가진 마음의 눈은 아직 성장하지 않은 어린 아이의 것임을 알 수 있고, 그래서 세상은 보다 자유롭고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전혀 새로운 현실로 들여다보여지게 된다. 그가 가진 가슴은 어린 아이의 동심의 세계이되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유창함은 자신의 전 인생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으니 이 책은 마음이 맑은 구도자가 써내려간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해서 이어주는 상징적인 것이 '나의 나무'이다. 높은 숲 속에서 자라는 나무의 혼이 마을로 내려와 사람으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인간의 몸을 빌어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고 죽어서는 혼이 다시 빠져나와 그 나무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연히 그 나무를 찾게 되면 거기에서 자신의 먼 훗날의 모습이나 오래 전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화되고 구체화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지금의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들 누구나 유년 시절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이어주는 공통된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옛날에 바라던 꿈이다. 그 꿈이 현실화과정을 거치면서 누구에게는 꿈대로 누구에게는 좌절되면서 변화된 채로 나타난 것이 지금의 모습인 것이다.

  적어도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그의 나무가 어릴 때의 공통점을 그대로 가진 지금의 그를 낳게 만들었고, 또한 그 나무 아래서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여유를 가지게 되고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었던 연결고리가 있어 탄생과 성장, 죽음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아들을 가지고도 그 아이가 자신에게 재능있는 일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질시와 차별을 견뎌낼 수 있게끔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부모로써 가지는 깊은 불안과 걱정들을 긍정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었던 이유에는 오에가 가진 유년기의 성장과정에서의 경험과 그로 인해 형성된 자신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미 70대가 되어 노년기로 접어든 그가 이제 많지 않은 여생을 남겨두고도 자신의 길에 대한 성실함과 의욕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배울만한 점이다. 자신의 삶 전체를 자신이 꿈꾸고 있는 일로써 채워갈 수 있는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나의 나무로 돌아와야겠다. 나는 나의 나무 아래서 먼 훗날 나의 어떤 모습과 맞닥뜨리게 될까?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삶의 행복을 찾을 것이고, 나의 꿈은 무엇인가?

  그의 책을 따라 읽다가 문득 나의 나무 아래서 유년 시절의 나와 노년 시절의 나가 지금의 나와 만나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있다. 그러나 한 순간 그 셋은 그 자리서 지금의 나 속으로 스며들고 나는 이제 아무런 불안과 두려움도 없는 온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꿈이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타고난 본성대로 살고자 하는 것, 내 타고난 본성을 스스로 아는 마음의 눈을 기르는 것이 나의 나무 아래서 그 나무의 온 역사를 그냥 알게 되고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나를 느끼는 순간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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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8-26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좋았어요..학교도서관서 빌려 봤는데, 언제 다시 사서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달팽이 2005-08-2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썩은 이를 치료하러 가던 날,

치과에서는 의사선생님이 "좀 더 늦었으면 이 몇 개는 뽑아야했겠군요.."한다.

누워서 쇳날이 돌아가며 썩은 이를 갈면서 신경을 건드리는 아픔이 온 얼굴로 전해진다.

이 정도의 아픔에도 내 마음은 가벼운 혼란이 인다.

마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스케일링까지 하고 앞으로의 치료계획을 쭈 욱 듣고 나니

그동안 내가 이를 함부로 다루었다는 반성이 든다.

술마시고 집에 오는 날이면 쓰러져 정신잃기가 수시이고,

어쩌다 집안 일로 밤 늦은 날에는 그냥 누워버리기 일쑤이고,

그렇게 돌보아지지 못한 이가 이제는 '나 이렇게 되었다.'한다.

'날 이렇게 반이나 들어내어 버리면 어떡하냐? 아유, 흉측해라...."

그러는 이에게 내가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치열이 바르지 못해 언제 시간과 비용들여

교정을 하지 않는 이상 늘 조금씩 썩게 될 것이라는 의사의 말처럼

교정을 해야 하는데 그게 늘 이에 쇠붙이를 붙이고 다니는 게

게으르고 뭔가 붙이고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늘 미루고 미루던 일이다.

헌데 이런 일을 또 겪고 보니

이제 띠우고 덮어씌우고 하지 않는 온전한 이들이

또 언제 나 차례인가? 하고 불안해 하는 것 같다.

마음먹고 2학기 때에는 치아 교정을 시작해야겠다.

이들아,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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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곤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잊혀지던 이...(제 경험담입니다)^^
잘 치료하세요.^^

달팽이 2005-08-2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유시민과 함께 읽는 일본 문화 이야기 - 안방에서 세계여행-제노포브스 가이드 유시민과 함께 읽는 문화이야기 16
유시민 편역 / 푸른나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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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가기 전에 읽는다는 것이 손에 들었다가 잡다한 사정으로 보지 못하고 짧은 일본 여행을 끝내고 그 기억이 아직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을 때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었다. 사실 내키지 않는 관광상품으로 일본을 그것도 큐슈지방을 둘러보고 왔기 때문에 그다지 일본 사람과 문화에 근접하게 부딪힐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호텔에서 상점에서 휴게소에서 그리고 달리는 차안에서 내다본 일본 도시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본인들의 문화와 의식을 간명하고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 이어서 유시민의 또 다른 편역서를 읽게 되는 셈인데 어쨌거나 유시민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그러면서도 나름대로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사유공간을 여기서는 만날 수가 없다. 말그대로 이 책은 일본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또는 몇 번의 방문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오해와 실례를 줄이고 일본에서의 짧은 생활을 무난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의식과 무엇이든 정돈되고 단정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생활방식들이 잘 설명되고 있는 한편 그러한 문화 속에 신세대들의 서구적 미와 가치에 대한 무분별한 추구와 성의식의 혼란은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다. 특히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전적인 희생과 겸손을 형식과 예의로서 요구하는 문화 뒤에 그들의 자기성찰적인 장점과 더불어 개인을 촘촘하게 에워싸고 구속하는 관계망의 무거운 사슬과 자신의 적성과 개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의 좌절, 책임감에 눌린 의무감이 삶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는 점들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새롭게 자위대를 재편하고 제국주의적 기질을 형성해가고 있는 일본의 국가의식이 다시 일본 국민의 의식과 문화를 어떻게 구속하고 억압시킬 것인지, 곧 도래할 노령화사회에 대한 대비와 그 부족함이 초래할 사회적 현상과 문화의 변화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일본 사회 내에서의 비판적 목소리와 대안적 삶을 찾는 사람들의 이상과 노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일본 사회의 변화 궤적을 어떻게 바꾸어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들이 남는다.

  미리 읽어 두었더라면 온천에서의 예절과 일본인과 마주쳤을 때의 간단한 예절을 펼칠 수 있었는데, 아무런 의사소통도 할 수 없이 마음만 전달하고자 했던 내 모습이 조금 아쉬웠다. 언제 또 가게 될 지 모르지만 다음 기회엔 방문지역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하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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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에세이 - 동녘선서 93 동녘선서 93
김교빈 지음 / 동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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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1일부터 13일까지의 첫 일본 여행이 나에게 남겼던 흔적이 있다. 큐슈지방이라는 한정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적인 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깨끗하고 단정한 도시의 미관이었다. 물론 일본에서는 대도시라기보다는 중소도시와 촌락을 중심으로 돌아다녔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도쿄이나 교토 등의 대도시와 직접적으로 등치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과 비교해서 아주 정돈되고 깨끗했던 인상이다. 도로에서도 휴지나 잡다한 상행위를 볼 수 없었으며, 절과 가옥 구조도 상당히 단정하고 정돈된 느낌을 받았다.

  농촌지역으로 가면서도 숲이 아주 무성하고 함부로 파헤친 흔적이 없는 국토가 우리나라와는 대비되었고, 채석을 위해 산을 파내는 곳도 도로에서 몇 능선을 넘어서 사람들이 다니면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날이 바뀌면서 일본의 정돈되고 깨끗한 도시와 삶은 단조롭고 미적의식이 부족한 듯 보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옛 가옥구조와 건축양식에 스며든 미적감각들이 보다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배흘림 기둥이나 굵직하고 대담한 터치의 글과 작품들,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 등)  이렇듯 강대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서 경제나 군사력 국가의 부에서 보잘것없는 우리 나라지만 외국에서 비교해본 우리 나라는 결코 뒤지지 않는 한국적인 무엇인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해방 후에 시작된 서구화와 더불어 우리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면 서구보다 더욱 서구화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가졌던 전통적인 것은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고 또한 그 잃어버림 속에 우리의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한국성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일러주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사상이나 철학이 있는가? 이 책은 우리의 삶의 바탕이 허물어져 가는 현대적인 한국의 삶 속에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삶을 지탱했던 선현들의 철학과 사상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헤쳐나가고 특히 당면한 과제인 통일의 방향을 제시하고 통일된 사회를 지향하는 철학적 과제를 촉발하기 위한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려의 원효와 지눌의 불교 사상에서 출발하여 조선 중기로 넘어가 서경덕과 이언적 이황과 이이 정제두 박지원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우리 철학사에서 한국철학이라고 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함께 그 시대를 살다간 조상들의 고민과 삶에 대한 물음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사상적 모색으로서의 철학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암시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사실 어떤 사상도 딱히 취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지형과 지리에서 나온 전통 사상과 외래에서 들어온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사상과 정서를 거쳐 체계화된 그래서 한국화된 철학을 우리는 한국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 철학이란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철학적 이론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한국 고유의 사상체계나 정서이며 그것은 한국적 혼이다.

  한국 철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첫째로는 현실적인 삶과 사회의 현실을 설명해주기 위한 형이상학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이라든지, 유교에서의 성, 인, 덕의 개념들 노장사상에서의 도, 덕의 개념들, 조선 성리학에서의 이와 기에 대한 생각, 주역에서의 태허와 태극에 대한 개념들이 그것이다. 이것은 인간 삶의 의미와 궁극적 물음에서 도출된 것이며 우리들의 삶을 자기에게도 돌리고 내면적인 성찰을 통한 삶의 성숙과 깨달음으로 인도해준 삶의 축이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현실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변화되고 바뀐 현실에 맞게 그리고 도래되는 사회를 더욱 촉진시키고 구래의 폐습을 고치기 위한 사상과 철학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시대나 역사에 의해 변화되지 않고 굴절되지 않아 자신의 삶의 바탕을 어떤 현실과 국면에서도 지탱해준 힘이었다고 한다면 후자는 그런 삶의 한 장과 국면에서 보다 민중과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게 한 도구적 힘이었다고 본다. 사실 전자에서는 한국적이니 외래적이니 하는 것이 필요없다.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어떤 언어적 토양과 사상적 지형을 가졌느냐만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후자에서는 한 구비 구비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의 제시에서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그것의 철학적인 배경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철학이 모방되거나 개조되고 한국적으로 창조되기도 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의 모습이나 사유의 형태는 변하였으나 삶의 본질적인 의미와 물음은 변한 것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그런 삶의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현실의 삶과 과제를 설명해내는 방식의 변화였을 뿐인 것이다. 무엇보다 절실하게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해답을 내릴 수 있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자세야 말로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철학적 자세요 구도자적 자세일 것이다. 통일을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구한 이론과 절차가 많으나 그 이면에 자리잡은 통일의 필요성과 통일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가 더욱 중요한 것은 아닐까? 그것을 위해 이전에 내팽개쳐졌던 우리의 사유체계와 철학을 정비해내는 작업들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 정말 철학다운 면모를 가지려면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밑바탕으로 들어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고민들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해서 우리 선현들이 진정으로 이루고자 했던 그 내면적인 뜰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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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님은 마음을 움직이기 전이나 마음을 움직였을 때나 항상 경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에 경건한 마음을 품고 있어 늘 자신을 비추어내고 자신의 감정이 드러날 때에도 경을 간직하여 그 감정이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도리에 맞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과 비슷한 데가 있다.

물론 불교의 참선은 병을 비유하여 말하면 병속의 내용물을 비우라는 가르침이면

퇴계선생님은 병 속을 맑은 물로써 채우라고 하는 가르침이다.

어쨌거나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보아 한 순간도 놓침이 없이 살았던 퇴계선생님의

가르침이 오늘 밤 조용한 허공을 타고 나의 가슴에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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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천원짜리 지페에 그려진 그 분의 서당 그림을 보면 별 반 매력이 없지만
유학의 대가가 불교와 일치상통한다는 것은 학문의 좋은 점은 다 같다...
하는 그런 뜻인가요?
금강경 공부하다가 게을러터진 파란여우의 질문이었습니다^^

달팽이 2005-08-2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삶에서 물질적이고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려 했던 점에서 유학의 대가들은 수기가 먼저 되었고, 그런 점에서 퇴계 선생의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도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처럼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내적 성찰을 통해 이미 깨달았다느 점에서는 불교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천원짜리 지폐를 다시 보아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