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철학 에세이 - 동녘선서 93 ㅣ 동녘선서 93
김교빈 지음 / 동녘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8월 11일부터 13일까지의 첫 일본 여행이 나에게 남겼던 흔적이 있다. 큐슈지방이라는 한정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적인 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깨끗하고 단정한 도시의 미관이었다. 물론 일본에서는 대도시라기보다는 중소도시와 촌락을 중심으로 돌아다녔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도쿄이나 교토 등의 대도시와 직접적으로 등치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과 비교해서 아주 정돈되고 깨끗했던 인상이다. 도로에서도 휴지나 잡다한 상행위를 볼 수 없었으며, 절과 가옥 구조도 상당히 단정하고 정돈된 느낌을 받았다.
농촌지역으로 가면서도 숲이 아주 무성하고 함부로 파헤친 흔적이 없는 국토가 우리나라와는 대비되었고, 채석을 위해 산을 파내는 곳도 도로에서 몇 능선을 넘어서 사람들이 다니면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날이 바뀌면서 일본의 정돈되고 깨끗한 도시와 삶은 단조롭고 미적의식이 부족한 듯 보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옛 가옥구조와 건축양식에 스며든 미적감각들이 보다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배흘림 기둥이나 굵직하고 대담한 터치의 글과 작품들,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 등) 이렇듯 강대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서 경제나 군사력 국가의 부에서 보잘것없는 우리 나라지만 외국에서 비교해본 우리 나라는 결코 뒤지지 않는 한국적인 무엇인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해방 후에 시작된 서구화와 더불어 우리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면 서구보다 더욱 서구화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가졌던 전통적인 것은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고 또한 그 잃어버림 속에 우리의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한국성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일러주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사상이나 철학이 있는가? 이 책은 우리의 삶의 바탕이 허물어져 가는 현대적인 한국의 삶 속에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삶을 지탱했던 선현들의 철학과 사상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헤쳐나가고 특히 당면한 과제인 통일의 방향을 제시하고 통일된 사회를 지향하는 철학적 과제를 촉발하기 위한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려의 원효와 지눌의 불교 사상에서 출발하여 조선 중기로 넘어가 서경덕과 이언적 이황과 이이 정제두 박지원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우리 철학사에서 한국철학이라고 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함께 그 시대를 살다간 조상들의 고민과 삶에 대한 물음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사상적 모색으로서의 철학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암시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사실 어떤 사상도 딱히 취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지형과 지리에서 나온 전통 사상과 외래에서 들어온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사상과 정서를 거쳐 체계화된 그래서 한국화된 철학을 우리는 한국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 철학이란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철학적 이론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한국 고유의 사상체계나 정서이며 그것은 한국적 혼이다.
한국 철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첫째로는 현실적인 삶과 사회의 현실을 설명해주기 위한 형이상학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이라든지, 유교에서의 성, 인, 덕의 개념들 노장사상에서의 도, 덕의 개념들, 조선 성리학에서의 이와 기에 대한 생각, 주역에서의 태허와 태극에 대한 개념들이 그것이다. 이것은 인간 삶의 의미와 궁극적 물음에서 도출된 것이며 우리들의 삶을 자기에게도 돌리고 내면적인 성찰을 통한 삶의 성숙과 깨달음으로 인도해준 삶의 축이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현실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변화되고 바뀐 현실에 맞게 그리고 도래되는 사회를 더욱 촉진시키고 구래의 폐습을 고치기 위한 사상과 철학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시대나 역사에 의해 변화되지 않고 굴절되지 않아 자신의 삶의 바탕을 어떤 현실과 국면에서도 지탱해준 힘이었다고 한다면 후자는 그런 삶의 한 장과 국면에서 보다 민중과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게 한 도구적 힘이었다고 본다. 사실 전자에서는 한국적이니 외래적이니 하는 것이 필요없다.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어떤 언어적 토양과 사상적 지형을 가졌느냐만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후자에서는 한 구비 구비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의 제시에서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그것의 철학적인 배경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철학이 모방되거나 개조되고 한국적으로 창조되기도 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의 모습이나 사유의 형태는 변하였으나 삶의 본질적인 의미와 물음은 변한 것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그런 삶의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현실의 삶과 과제를 설명해내는 방식의 변화였을 뿐인 것이다. 무엇보다 절실하게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해답을 내릴 수 있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자세야 말로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철학적 자세요 구도자적 자세일 것이다. 통일을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구한 이론과 절차가 많으나 그 이면에 자리잡은 통일의 필요성과 통일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가 더욱 중요한 것은 아닐까? 그것을 위해 이전에 내팽개쳐졌던 우리의 사유체계와 철학을 정비해내는 작업들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 정말 철학다운 면모를 가지려면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밑바탕으로 들어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고민들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해서 우리 선현들이 진정으로 이루고자 했던 그 내면적인 뜰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되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