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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신영복 선생님의 다음 책이라 내심 조그만 기대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내 대학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6여년 전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들고서 이렇게 살 수 있다면 감옥이란 곳에서도 살 수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 젊은 시절의 배움욕구로 가득찼던 나에게 선생님은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도 깊은 공부를 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의 메세지였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그 물질적인 결핍과 환경의 결핍 속에서 피워낸 정신 세계는 그 모든 결핍을 풍요로 만들어내는 연금술적인 언어로서 승화되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한 청년은 바른 삶의 모델을 또 한 분 만난 것에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아직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방황하는 길목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용기있게 살아갔던 하지만 사회가 수용하지 못해서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펼쳐갔던 꿋꿋하고도 큰 그릇을 가진 선생님의 품이 부러웠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을 받는 순간 '아, 이제 신영복이란 이름도 상품화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멋있게 만들어진 까만색 상자 속에 든 책 한 권과 노트를 펼치며 약간의 씁쓸함의 찌꺼기들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아직 내 마음 속의 때가 많이 낀 탓일까? 사실 '강의'라는 책을 접하면서도 나는 이런 생각을 조금은 했었다. 선생님께서 고전에 대한 책을 내셨구나 하는 기대 한편으로 컨텐츠는 과연 어떨까? 하는 궁금함도 컸다. 물론 강의는 선생님의 명성과 더불어 많은 일반인들이 동양고전에 입문하도록 도와준 고마운 책이라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관계론'으로 재해석해낸 선생님의 개성적인 해석은 대부분의 동양고전의 학문적 해석보다는 내용이 간소하고 그 마음으로 증험해내어 자신의 체험으로 써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교하면 다소 가볍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고전 공부가 계속되어 정말 선생님의 삶에 대한 깨달음과 지혜의 글로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선생님의 글과 그림을 ,잘 디자인되고 인쇄된 종이와 글을 빼버리고, 읽으면 그 선생님의 초심이 더욱 잘 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왠일인지 상품화와 대중화의 색깔이 불현듯 인식되어 책읽기를 방해한다. 대부분의 글은 이미 예전에 읽었던 글이다. 물론 선생님께서 이 책을 스스로 내지 않으려했다가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서 내면서 60여편의 글을 새로 첨가하였다고 한다. 물론 주어진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나의 잘못이 99%다. 하지만 그 아쉬운 1%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앞으로 더욱 선생님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다시 한 편 한 편의 글과 그림을 본다. 옆의 글들은 밀어두고 글과 그림을 쳐다보고 있으면(이왕이면 색깔도 흑백으로 가정한다) 선생님의 그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 형을 살 때 그 모든 것을 수용해내며 마음으로 피워내는 꽃같은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마음을 비워내고 또 비워내서 단순해지고 투명해진 마음의 파동을 따라서 느껴본다. 제목처럼 '처음처럼'은 초심이라고 흔히 말해지듯 아무 마음의 상념없이 오로지 '모르는 마음'으로 대상과 사건과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 마음에 하나의 뜻을 품었다면 그 품은 뜻 하나 밖에 달리 아무런 마음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니 오롯하고 온전한 마음이 담겨진 상태인 것이다. 지금, 선생님에게는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또 그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의 공간도 있어야 하고 또 감옥 생활에 비해 해야 할 사회적 활동도 많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초심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생활 속에서 "감옥" 하나를 스스로 만들어내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불필요한 말이 많게 되어버렸다. 사실은 그 감옥을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다. 처음처럼이란 마음가짐도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존경하는 선생님께 투사한다. 모쪼록 선생님의 처음과 같은 글들을 아니 내면적으로는 더욱 깊어진 글들을 다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