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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유인원 - 폭력적인 침팬지와 다정한 보노보로 바라본 인간 본성의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빌리버튼 / 2026년 6월
평점 :
영장류 연구가인 프란스 드 말이 침팬지와 보노보를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단순히 동물의 행태를 설명하는 내용이 아니라 인간의 이중적인 본성을 우리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와 보노보를 통해 파악하고자 하는 책이다. 따라서 중심은 '인간'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침팬지, 보노보가 동일한 선조를 공유하지만 두 유인원의 사회가 극명하게 다르다고 설명한다. 즉, 침팬지는 수컷 중심의 권력 사회로 엄격한 서열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권력 투쟁이 자주 일어나고 폭력적인 특성을 보인다. 반면 보노보는 암컷 중심의 평화적인 사회로 성적 교류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갈등을 해결하며 서로에 대한 높은 공감 능력을 지닌 사회라는 것이다.
인간 역시 침팬지, 보노보와 동일한 선조를 공유하며 침팬지와 보노보의 특성을 모두 공유한다. 즉 전쟁, 폭력, 지배욕은 침팬지와 같은 특성이며 연대, 협력, 평화주의 지향 특성은 보노보와의 공통점이다. 저자는 인간이 갖고 있는 이중적 특성을 오랜 기간의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어진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소설이 아닌 이론서지만 비교적 쉽게 읽히고, 대중 소설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나는 특히 섹스와 영아 살해를 통해 인간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침팬지는 알파 수컷 한 마리가 무리 내의 모든 암컷을 차지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일정 기간 안에 태어나는 새끼의 아버지는 거의 대부분 동일하다. 그러나 우두머리가 바뀌면 새로운 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새끼들을 죽인다. 영아 살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침팬지 사회에서 영아 살해는 알파 수컷이 자신의 번식 성공률을 높이고 집단을 안정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반면 보노보는 암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수컷과 동시다발적으로 교미를 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새끼의 아비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새끼가 태어나면 수컷은 이 새끼가 내 자식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내 자식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자식일 수도 있는 묘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태어나는 새끼가 어쩌면 내 자식일 수도 있는 이런 사회에선 영아 살해가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보노보 사회의 난교는 암컷 중심의 사회에서 영아 살해를 막기 위한 방어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침팬지와 보노보적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영아 살해도 막고 집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획기적 전략을 수립했다. 그것은 일부일처제와 가족 구조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인간은 암컷과 수컷의 일대 일 결합으로 가정을 꾸려 그 안에서만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컷이 자기 새끼를 확실하게 인지하게 함으로써 영아 살해를 막고 가족이라는 안정적 집단 구성을 통해 수컷의 양육 참여를 이끌어냈다.
사회(가정 포함)나 국가의 형성에 대해, 집단을 이루려는 사회적 본능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거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끝내기 위한 계약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학설이 일반적인데 '수컷' 중심 사회와 '암컷' 중심 사회에서의 섹스와 영아 살해라는 관점에서 파악한 것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어찌됐든... 결국 인간은 침팬지의 폭력성과 지배욕, 보노보의 공감과 평화적 성향을 동시에 물려받은 이중적인 유인원이다. 두 가지의 본성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침팬지가 될 수도, 보노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고, 무엇이 될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전적으로 우리 종에게 달려 있겠지.
책을 다 읽은 후, 솔직히 말해 오늘날의 전쟁과 각종 폭력은 남성이 정치적 지배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세워 한 집단이 타 집단을 침략하여 같은 종을 살해나는 행위'는 영장류 중 인간과 침팬지에게만 나타나는데 '수컷'에게만 보이는 특징이란다. 물론 여성 정치 지도자도 있긴 하지만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는 것을 단순 우연, 혹은 지정학적 특성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만 할 수 있을까...?
물론 저자는 '평화를 유지'하고 '평화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침팬지에게는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은 국가 간에 상품을 교환하고 자원을 공유하며 족외혼을 하기도 하는 등 집단 간에도 유대감을 갖고 협력하지만 침팬지에게는 이런 '집단 간의 유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폭력적인 침팬지도 '호혜성'에 입각하여 평화와 평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점점 격화되는 전쟁과 테러, 혐오 범죄, 정치경제적 갈등을 돌아보면 과연 인류에게 평화가 보편적인 것이었던 적이 있었나 하는 비관적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울러 우리는 대규모 사회에서 낯선 존재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진화하지 않았다며 소규모 공동체를 최대한 비슷하게 모방하는 것이 사회를 잘 굴러가게 하는 방법이라는 주장에는 마음으로는 동의하나 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우리가 비교하는 것은 인간과 유인원이 자연적 성향과 지능, 그리고 경험을 결합해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결합된 능력에서 어떤 것이 선천적이고 어떤 것이 후천적인지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 중략 > 내 목표는 유인원과 인간의 사회적 생활에 대해 똑같은 비교를 해보고, 우리가 놀리기 좋아하는 이 털 많은 친구들과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성향이 단 하나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P79
평등주의는 상호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으며", 수동성에는 더더욱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그것은 통제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인식하면서 능동적으로 유지되는 조건이다. 평등주의자는 권력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매일 그것과 맞닥뜨리며 살아간다. - P135
민주주의는 ‘능동적‘ 과정이다. 불평등을 줄이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폭력에서 탄생한다고 본다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들 중에서 지배성이 더 강하고 더 공격적인 종에게서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기반을 이루는 성향들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그러한 성향은 바로 우리가 쟁취하려고 투쟁하는 가치로 자유, 평등, 박애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누가 공짜로 우리 손에 건네준 적이 없다. 항상 권력을 가진 자에게서 쟁취한 것이었다.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위계가 확실한 동물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결코 이러한 위치에 이르지도 못했을 것이고, 밑바닥에서 우리의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연대를 발전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 P150
우리 종의 진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친부 확실성을 높임으로써 자식의 양육에 남자가 더 많이 관여하게 하는 길을 닦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섹스를 핵가족 내에 가두어야 했다. - P216
수컷 무리가 의도적으로 이웃 수컷들을 죽임으로써 세력권을 확장해가는 동물이 사람과 침팬지 뿐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 포유류 종이 그러한 경향을 각자 독자적으로 발달시킬 확률이 얼마일까? 침팬지와 가장 유사한 인간의 행동 패턴은 ‘치명적 습격‘이다. 습격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유리한 위치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격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습격의 목적은 다른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과 소녀들을 납치하는 것이다. - P239
침팬지와 우리의 유사점은 부정할 수 없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인간의 행동 중 침팬지로 설명할 수 없는 한 가지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전쟁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상품 교역, 강물 공유하기, 족외혼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평화는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침팬지가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다. 침팬지는 집단 간에 친밀한 유대 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다양한 수준의 적대감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간 집단 간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침팬지만을 우리 조상의 모델로 삼아서는 안 된다. - P241
도덕성이 감정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 중략 > 도덕성의 기본 요소는 인간성보다 훨씬 이전에 생긴 게 분명하다. 우리는 영장류 친척에게서 이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데, 공감은 보노보에게서, 호혜성은 침팬지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도덕적 규칙은 이러한 경향을 언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가르쳐 주지만, 그러한 경향 자체는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했다. - P363
우리 사회는 아마도 우리 조상들의 소규모 공동체를 최대한 비슷하게 모방할 때 가장 잘 굴러갈 것이다. 우리가 어딜 가나 낯선 사람들과 부딪치고, 어두운 골목에서 그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버스나 지하철 옆에서 그들 옆에 앉고, 차가 막힐 때 손가락질하며 욕을 하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도록 진화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응집력이 강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보노보처럼 우리 조상들도 매일 얼굴을 보며 잘 아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살아갔다. 우리 사회에 이만큼 질서가 있고 생산적이고 비교적 안정된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도시 계획자들은 모든 사람이 모든 아이의 이름과 집을 알았던 옛날의 공동체 생활에 가깝게 도시를 설계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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