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감독, 루브나 이자벨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 <귀향>을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분노와 슬픔을 과연 자제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다른 나라 관객들이 본다면 상황은 사뭇 다를 것이다. 비극에는 공감하지만 치솟는 화를 다스리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자신과 상관없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을린 사랑>은 제목때문에 속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지독한 사람쯤으로 생각하고 보다가 허걱 하고 입을 틀어막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나선 쌍동이 남매. 하나씩 하나씩 비밀을 알아갈수록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잔인한 현실에 부딪치게 되는데. 

 

영화는 충격과 경악의 연속이다. 종족간 분쟁으로 걸핏하면 복수를 저지르는 장면이 가감없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중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과 여성이다. 둘 가운데 누가 더 끔찍하냐고 한다면 여성이다. 여자들은 몸을 잃고 원수의 씨까지 배어 자식을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철천지 역적의 아이를 바라보는 어미는 과연 모성애를 바라볼 수 있을까?

 

나왈은 그런 자식조차 사랑으로 태어났다고 유언으로 남긴다. 어느 대에서인가는 보복과 앙갚음을 끊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마음은 진짜였을 것이다. 지옥의 한가운데에서도 죄인을 속속 건져내는 미륵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 비포 유
테아 샤록, 샘 클래플린 외 / 워너브라더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코감기가 심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른쪽 콧구멍이 꽉 막혔다. 어깨와 허리도 쑤시다. 전형적인 감기몸살이다. 어째 올 겨울은 별탈없이 넘아가는게 싶었는데 역시나. 콧물을 훌쩍거리며 <미 비포 유>를 봤다.

 

일자리가 절실한 루이자. 이곳저곳을 알아보지만 마땅치가 않다. 그러던 어느날 직업소개소에서 간병인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전해 듣고 덜컷 지원했다. 기간은 6개월, 페이는 후하다. 클라크는 전신마비였다. 런던에서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던 어느날 급한 마음에 주변을 살피지 않고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다 그만 오토바이에 받치고 만다.

 

자, 이제 로맨스의 조건이 다 갖추어졌다. 처음에는 티격태겨하겠지만 여인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남자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결국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른다. 그러나 작가와 감독은 뻔한 결말을 내놓지 않았다. 윌은 안락사를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공증까지 마치고 담담히 생의 마지막을 대비하고 있었다. 물론 병세가 악화될 때가 있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말린다.

 

윌의 선택은 존엄한 죽음이었다. 사고를 당하기 이전 자신의 생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변해버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에서 한창 논란이 되었던 존엄사 논란을 로맨스 소설과 영화에 재현시킨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래도 살아야지, 라고 말한다. 살아남는 것이 무조선 선이고 죽음은 악이라는 편견이 강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기보다 싫은 나날을 계속 버티듯 살아가야 한다면 과연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 이성복 아포리즘, 개정판
이성복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질서와 무체계를 자유라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경구나 금언을 좋아하는 나라도 없다. 엘리베이터 안에나 화장실 소변기 눈 위치 심지어 고속버스 자리 뒷면에도 붙어 있다. 분명 옳은 말임에는 틀림없지만 대체 어떤 맥락에서 필요한 말인지 알 재간이 없다. 

 

이성복의 아포리즘도 얼핏 보면 교훈 모음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짦은 글과 많은 여백은 보는 이들의 눈을 시원하게는 하지만 과연 한 권의 책으로 묶일만한 내용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그러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는 화장실 경구와는 사뭇 다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시어에 가깝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 창작의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많고 많은 이야기를 거르고 걸러 핵심만 담아낸 정찬 같다고나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미와 우리는 닮았다. 강력한 군사 독재 정권이 오랫동안 지배했다. 당연히 예술가들도 탄압을 받았다. 그들의 반응은 두갈레였다. 망명하여 투쟁에 나서거나 현실을 도피하거나. 민중문학과 환상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남미에서는 환상소설의 경향이 더우 강한데 그 이유는 자연환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풍광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컬러풀하지는 않다. 곧 남미는 눈만 돌리면 황홀한 색채의 자연이 펼쳐지니 아무래도 판타지에 빠지기 더욱 용이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좋은 소설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다. 스토리가 훌륭하거나 캐릭터가 반짝반짝 빛나거가 혹은 묘사가 돋보이거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이 모든 것을 갖춘 휼륭한 작가다. 연애소설 읽은 노인이라는 설정 부터 눈에 확 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그 결과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도 갈갈이 찢어지는 변화를 치통이라는 상황에 빗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다. 이 소설의 압권은 연애소설 읽는 느긋한 노인의 묘사가 아니라 치통에 시달리며서도 마땅한 의사를 찾지 못해 고통받는 늙은이다. 이는 대단한 상징이다. 아마존의 아픔을 치통에 빗대어 처참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치과에 가본 사람은 어떤 경험인지 다들 잘 알 것이다.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비참한 판타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국정교과서 논쟁이 한창일 때 이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치가들은 한목소리로 역사는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전문가란 역사 전공 학자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논란이 가장 컸던 근현대사 부분은 역사 전공이 아닌 경제나 사회학자들이 집필했다. 개인적으로는 도토리 키개기라고 생각했다. 역사나 경제나 사회나 과연 그 분야가 제대로 된 전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다. 인문사회학은 객관적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주관적인 분야이기에 다양한 접근을 보장하는 것만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가지 사관으로 그것도 국가가 주도하여 강압적으로 역사책을 펴내 학생들에게 주입한다는 것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사피엔스>를 읽으면 감탄한 것은 단지 저자의 해박한 지식 때문이 아니라 자연과학자도 보지 못하는 인류에 대한 강렬한 통찰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다르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황인종이 지배적인 한국에서조차 지역을 편갈라 마친 다른 종족 대하듯 한다. 외국인에 대한 시선을 말해 무엇하랴? 웃기는 것은 백인종과 흑인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차라리 외인은 똑같이 업신여기든지.

 

트럼프의 등장 이후 미국은 신인종주의 물결이 거세다. 말로는 미국을 위한다지만 결국은 백인 중산층과 서민층만을 대표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마치 나 치 독일을 연상시킨다. 유대인 청산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자기 세력 확장에 골몰하던 히틀러를 보라.

 

우발 하라리는 이 모든 악행에 혀를 차기보다 사피엔스의 속성에 주목한다. 인류의 발달은 우역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문명과 진보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결과가 신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곧 인류 스스로가 신임을 선언하고 자신들뿐만 아니라 지구를 통제하려 든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간은 지구의 지배자라는 사실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미지의 영역은 이제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과연 인간은 최후의 지휘자가 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말

 

나는 사회과학 전공이다. 자연과학의 증명틀을 그대로 배껴썼으니 과학이라는 말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과연 사회가 자연처럼 쪼개서 분석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그저 어설픈 모방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인문과학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런 말은 어쩌면 열등감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왠지 사회학은 말만 잘하면 되는 사이비 종교 같고 자연과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한 엄밀한 학문분야같아서다. 그나마 사회학 분야에서 잘 나가는 경제학도 계량을 잘해야만 가능한 것으로 인식이 되고 있다. 우발 하라리는 이런 편견을 통렬하게 박살낸다. 인문학자도 그 어느 자연과학자 못지 않게 통찰력을 가지고 예리하게 분석을 할 수 있다는. 그 흔한 수식 하나 쓰지 않고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