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의 뇌구조 - 마교수의 위험한 철학수업
마광수 지음 / 오늘의책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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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나 교수가 법정에 불려가 재판을 받는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시대의 금기를 거슬린 자들은 어김없이 소환을 당했다. 그렇다. 시기를 잘못 골라 태어나는 바람에 감옥에 가기도 했다는 말이다. 만약 마 교수가 지금 30대 초반이었다면 종횡무진 활약했을 것이다. 당연히 젊을 테니 못생김도 지적인 모습으로 감추어지고 말빨이야 두말할 것 없으니 날아다닐 것이니 무조건 섭외 1순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헹하게도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군사독재시절이었고 박정희가 물어난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그 망령이 떠돌고 있었다.  

 

마광수는 프로이드식 접근을 택하고 있다. 인간의 원천은 성욕과 식욕이며 모든 말과 생각의 형태의 변행에 지나지 않는다. 도리어 성욕에 집중함으로써 헛된 욕망을 물리칠 수 있다. 곧 돈이나 권력같은 허깨비에 불과한 잡욕망에 휘둘리기보다 본래의 욕망에 치중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를테면 길고 가느다른 여성의 손가락이나 손톱에 환장하는 것이 태극기를 휘두르고 박근혜 만세를 외치며 눈물짓는 집회 참가자보다 백배 천배 훌륭하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일관되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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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기는 지겨워 비룡소의 그림동화 163
다비드 칼리 지음, 에릭 엘리오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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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초등학교 도서관 입구 벽에 붙어 있는 표어

 

"읽고 싶지 않다면 읽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라."

 

나이가 들어 피아노가 치고 싶어졌다. 동네 학원을 기웃거려보니 썩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저씨가 젓가락 장단부터 배우려고 하니 아무래도 부담스러웠겠지. 수소문끝에 개인 강사를 들이기로 했다. 일주일에 두 번 한달에 15만 원.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한달 쯤 지나자 슬슬 꾀가 나기 시작했다. 선생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다그쳤다. 연습, 연습, 또 연습. 급기야는 자까지 손에 들고 탁탁치며 위협을 가했다. 위축되었다. 아내도 눈치를 주었다. 아무리 중년의 아줌마라고 해도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한방에 함께 있는 것이다. 결국 두달을 채우고 그만두었다. 선생은 매우 아쉬워했지만 할 수 없었다. 정직하게 말해 홀가분했다. 시도한 것만으로 더이상 미련이 남을 것이 없어서다.

 

5년 가까이 춤을 추고 있다. 사교댄스가 아니라 케이팝이다. 중간에 몇달 쉰 적은 있지만 꾸준히. 지금은 주말에만 하고 있지만 그날만 기다려질 정도로 한 주일이 설렌다. 왜 피아노는 금세 그만두었지만 춤은 왜 지속적으로 추고 있는 것일까? 간단하다. 내게 맞기 때문이다. 계속해도 지루하지 않고 즐겁기 때문이다.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즐겁다는 간단한 이치를 다시 일깨운다. 마르콜리는 어머니의 못다 이룬 꿈을 채우기 위해 피아노를 쳤지만 사실 즐겁지가 않았다. 이런 저런 악기를 다루다 꽂힌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러 악기를 체험해보게 하고 그중에서 고르게 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설령 모든 악기에 지겨워할지라도 말이다.

 

불행하게도 어른중에도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이들이 많다. 핑계도 가지가지다. 돈을 벌려고, 어쩔 수 없어서, 남보기에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어서. 참 안타깝다. 한번 뿐인 인생임을 안다면 그렇게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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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2disc)
권종관 감독, 김명민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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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가장 큰 적은 금기다. 90년대 한국영화가 개똥이었던 이유는 자율, 타율의 검열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이후 과거회귀의 조짐이 뚜렷하지만 다행히 탄핵으로 그 열차는 멈춰서게 되었다.

 

<특별수사>는 소재가 돋보이는 영화다. 조직폭력배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조폭이나 검사 아니면 변호사가 주인공이 아니다. 영웅은 사무장이다. 조연측에도 끼지 못하던 사무장이 종횡무진 활약한다. 게다가 섹시하고 늘씬하다.

 

시나리오도 훌륭하다. 돈밖에 모르는 사무장이 사형수의 편지를 받고 개과천선까지는 아니지만 책임을 지고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거기에 경찰끼리의 암투까지 곁들어 흥미진진하다.

 

지나치게 사무장 역의 김명민에게 의존한다는 점이 약점이지만 도리어 그게 강점이기도 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리멸렬했을 뻔했기 때문이다. 곧 좋은 소재와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영화를 밀어붙이는 힘이 떨어졌다. 이건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다. 고작 백만 명 조금 넘고 막을 내리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이야기다. 유머와 섬뜩함을 너무 오가느라 관객을 헷갈리게 하지 말고 한쪽 방향으로 승부를 걸었어야 했다. 혹시 속편이 제작된다면 다른 감독이 맡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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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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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난하게 살다 부자가 되면 그럭저럭 적응하지만 반대가 되면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이를 테면 지하 셋방에서 거주하던 사람이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백 평이 넘는 펜트하우스로 옮기면 처음엔 어리둥절하지만 이내 적응하여 욕조안에서 거품 목욕을 즐기며 와인을 홀짝 거리지만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 이사 다음날 현관문 천장에 줄을 달라 목을 맨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다. 풍요롭게 사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일수록 정신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많아 가난해지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도리어 반짝 부자가 된 이들은 그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졸부 행세를 하거나 언제든 다시 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유려 때문에 넓은 안방을 두고 쪽방에서 이불도 없이 쪽잠을 잔다. 

 

폰 쇤부르크씨는 전형적인 부르조아 가정 출신이다. 게다가 귀족 가문이다. 왜 이름에 폰이 붙어 있겠는가? 신문사 편집자라는 근사한 직함도 그를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어느날 해고를 당한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노동자처럼 어떤 일이든 하게 해달라며 애걸복걸 매달일거거냐 아니면 귀족의 품위를 유지하면 가난하게 버틸 것인냐? 쇤부르크씨는 후자를 택했다. 가난하지만 우아하게 사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보자. 

 

직장은 들어가기보다 나오기가 힘든 곳이다. 입사할 때야 뭣도 모르니 일단 들어가고 보자라는 마음에 들지만 나올 때는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공포감에 시달린다. 이제 나는 더이상 쓸모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자괴감과 함께. 

 

문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모아 둔 돈으로 남은 생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살 궁리는 하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일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일만 한다고 하는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직함을 얻고 싶어서가 문제다. 곧 사장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죄다 자영업으로 몰린다. 그러다 망한다. 있는 돈도 다 날린다. 

 

일이란 일종의 습관이다. 특히 남의 밑에서 일하면 받는 돈은. 돌이켜보면 그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적절했느지 의심이 드는 건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일을 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헛된 망상이 작용해서다. 

 

은퇴시기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돈을 모을 기회도 사라질 것이다. 마치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화성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 들 것이다. 과연 나는 화성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아끼면서 살아라. 때때로 음악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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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충격 - 과학기술 혁명이 몰고올 기회와 위협
클라우스 슈밥 외 26인 지음, 포린 어페어스 엮음, 김진희 외 옮김, 정재승 감수 / 흐름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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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란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더디게 움직인다. 인터넷이나 드론의 등장에 열광하면서도 비오는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우산을 펴며 이백년 전과 다름없음에 어이가 없어진다. 비가 묻으면 자동으로 마르거나 탐지기가 있어 잃어버릴 염려가 적은 우산은 없을까?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화석연료에 근거한 대규모 제조업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손쉽게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디지털이 발달하더라도 하드웨어, 곧 기반시설은 제조업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디지털 기술이 제조업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콘크리트나 시멘트를 근본적으로 대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4차 산업헉명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기술때문이라기 보다는 사회제도의 변화가 더욱 급격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광장 민주주의는 과거 같다면 상상이 힘들었다. 특정 시간, 장소에 일시에 백만명 가까이 모이려면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휴대폰에 공지를 띄우는 것만으로 삽시간에 가능하다.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지털은 다수를 접촉시킨다. 한 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가 하나의 채널로 연결될 수도 있다. 말그대로 지구촌이 현실이 된 것이다. 물론 문제도 많다. 장소의 특이성이 사라지며 어디가나 비슷한 풍경을 보게 된다. 또한 역설적으로 정보 통제가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모두가 휴대폰을 사용하니 그곳만 막으면 된다. 동시에 내 위치나 소비 내역이 모두 기록되니 사생황침해 우려도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두가 인테넷의 바다를 자유롭게 떠도는 삶을 사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다양한 전망중 어떤 것은 어이없는 농담으로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근미래에 실현이 될 것이다. 그 순간 중요해지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곧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더라고 그 기술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설령 로봇이 지배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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