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동력 1
주호민 글.그림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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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아니면 아주 독특한 소재이거나. 이를 테면 연쇄 살인이나 강도. 대부분은 실패한다. 겉포장만 요란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스토리이면서 독특해야 살아남는다. 주호민의 장기다. 

 

한창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떠돌았다. 정규 직장을 잡지 못해 알바로 버티는 취준생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소리다. 좋은 대학 나오면 어디든 회사에 들어가고 특별히 사고치지 않는한 퇴직때까지 버틸 수 있다는 신화는  이미 깨졌다. 이제 남은 건 각자도생의 길뿐.

 

역설적으로 꿈이 등장한다. 어차피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 들어가기 어려운 세상이니 가난하게 살더라고 어릴 적 꿈을 되살려 신나게 살아보자. 마치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 젋음이들이 겉으로는 나약해졌지만 마음은 더욱 풍성해진 것처럼.

 

무한동력에 꽂혀 평생을 매달리는 아버지. 착하고 똑똑하고 예쁘기만 한 딸. 사춘기 아들. 이들 가족에 하숙생들이 끼어 들어 잔잔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분명 다들 사연이 있고 궁상맞아 보이는 것은 맞지만 다들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가난하지만 당당해보인다.

 

한 사회가 안정기에 들어서면 더이상 새로운 동력을 찾기 힘들어진다. 기득권들은 더욱 견고한 자신들만의 벽을 쌓아 접근을 봉쇄한다. 나머지는 바닥을 기며 어떻게든 벽을 뚫어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지배자가 주는 떡고물을 받아 먹으며 만족하거나 아니면 한껏 몸을 움추리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무한동력이라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목을 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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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컴퍼니 스토리콜렉터 3
하라 코이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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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대한 좋은 기억은 집 현관문을 열고 출근길에 나서는 첫 발걸음뿐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쁘게 일하고 나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이라든가 동료들과 어울려 느릿느릿 식당가를 거닐며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썩 괜찮기는 하지만 빈둥대는 삶과 바꿀만큼 유혹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모두가 나같을 수는 없는 법. 직장을 그만두고도 그 때가 그리워 살아갈 의욕조차 잃어버리는 이들도 많다. 단지 수입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에 있을 때는 그다지도 바쁘고 지치던 시간이 갑자기 긴장의 끈을 탁 놓고는 무한대로 늘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처럼 직장에서 일할 때도 어떻게든 짬을 내어 놀 궁리를 하던 이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더하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 대접조차 받지 못한다. 그 악명높은 집단괴롭힘(이지메) 현상을 보라. 그러니 정년퇴직후의 삶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어떻게든 바쁜적 하며 이곳저곳 취미생활에 기웃거려보지만 과거 조직맨의 기운이 남아있는 이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생활을 배웠을리가 없으니 곳곳이 지뢰밭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회사를 차려보면 어때? 진짜 직장말고 마치 놀이처럼 말이야. 일종의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는 거다. 황당해보이지만 소설속의 세계는 리얼하게 다가온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제 돈 들고서라도 올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을까?

 

그러나 실체가 없는 놀이는 언젠가 끝이 나게 마련이다.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하더라고 사라들이 모이면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그속에서 파벌이 생겨 질투와 음모가 무럭무럭 자라난다.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일들을 똑같이 겪어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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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목욕탕과 술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지식여행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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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목욕탕에 갔다. 주로 일요일에. 도떼기 사장이 따로 없었다. 특히 여탕은. 목욕, 빨래, 수다가 어우려져 몬도가네를 방불케 했다. 조금 나이가 들어 어른의 세계인 남탕으로 가보니 여긴 또 다른 아수라였다. 상대적으로 덜 시끄럽긴 했지만 서열이 꽉 잡혀 있어 함부로 어딘가에 앉으면 당장 등짝 스매싱이 날라왔다. 어른이 되어 비로소 목욕탕의 여유를 즐기려고 하니 죄다 없어지고 찜질방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남녀노소가 평등한 세상이 된 것이다.

 

구스미 마사유티가 쓴 <낮의 목욕탕과 술>은 일종의 목욕탕 순례기다. 이름이 있거나 다소 특이한 욕탕을 낮에 방문하고 나서 근처 술집에서 술마시며 노가리까는 이야기다. 블러그에나 실릴법한 시답지 않은 내용이 책으로 나올 정도인걸 보면 일본은 역시 문화선진국(?)이다.

 

언뜻 언뜻 통찰력도 돋보인다. 목욕탕이란 모두가 홀땃 벗고 돌아다니는 곳이니 맨 몸만 봐서는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몸의 움직임을 보고 대충 유추해볼 수는 있는데, 그 상상이 매우 발칙하면서도 낄낄거리게 만든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기껏해야 만화가인걸! 딴따라인걸!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뭐, 돈까지 벌려고 하는 건 비겁하지. 이런 일로 돈을 벌게 될 때는 그 시절의 우연이 겹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참 하나같이 홀딱 벗고 있으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XX만 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잖아."

 

"바깥은 비가 쫙쫙 쏟아지는데 포근한 이불 속에 파묻혀 있으면 묘한 안도감마저 어깨를 감싼다. 몇 살이 되어도 즐거운 일이다. 세상 모르게 퍼질러 약 오르지하고 속으로 까분다. 누구를 향해? 그건 나도 모르지."

 

덧붙이는 말

 

재건축 붐으로 단지 안에 있는 목욕탕이 죄다 헐렸다. 5층짜리 단층 아파트먼트 단지라 높고도 높아 보였던 목욕탕 굴뜩도 사라지고 없다. 20층이 넘는 초고층으로 지어지고나면 목욕탕이 새로 생기더라도 가려서 보이지도 않겠지. 그렇게라도 다시 부활하면 좋으련만 그럴 계획은 전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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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부 선생님, 안녕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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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의 작품은 놀랍다. 순수문학이든 대중소설이든 술술 읽힌다. 독자들을 배려한 글쓰기가 돋보인다는 말이다. 책으로 엮어 나올 정도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는 듯 싶다. 반면 우리나라 작가의 글들은 대부분 어렵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용이 까다로운게 아니라 어휘나 문법의 수준이 모자라서다. 우리말로 번역된 일본 책은 잘 읽히고 도리어 우리말로 쓴 소설은 목이 턱턱 막히는 고구마를 씹는 기분이 드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히가시노 게이지는 그 중에서도 발군이다. 대필 작가가 있지 않을까 싶은 정도로 줄기차게 작품을 써낸다. 희한한 건 하나같이 재미있고 읽기 쉽다는 것이다. 어어어 하며 읽다보면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다.

 

<시노부 선생님, 안녕>은 <오사카 소년 탐정단>의 후속편이다. 아이들과 열혈 여교사 다케우치 시노부가 의기투합하여 여러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전작이 오사카가 배경이었다면 이번에는 도쿄다. 사실 소년 탐정단이라는 설정은 히가시노의 창작물은 아니다. 이미 에밀탐정단을 포함하여 아이들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이야기는 많았다.

 

게이지의 독창성은 그 사건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시시해서 도무지 문제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사고하면 살인이나 강도쯤 되야하지 않겠어? 그러나 인간이 겪는 고민은 다종다양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여러 갈레이기 마련이다. 우리가 보기에 별볼일 없어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고민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이 책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조금 더 시노부 선생과 아이들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발 부탁이니 분신술이라고 부려서 언젠가 다시 부활시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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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아 1~3 세트 - 전3권 한국만화걸작선
박기정 지음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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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를 보고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기란 힘들다. 더우기 한때는 방구석에서 만화책을 보며 낄낄댔을 것이라는 가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기록은 살아남게 마련. 기억도 가물가물했던 만화책이 짠하고 다시 등장하여 지금의 아이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다면.

 

박기정은 당대 최고의 만화가였다. 나보다 훨씬 윗세대 분이라 말로만 전해들었을 뿐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볼 기회는 없었다. 낡고 찢어진 그가 그린 만화책이 몇 십만원을 호가한다는 소식만 전해들었을 뿐. 그의 면모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으니 바야흐로 <폭탄아> 세트.

 

일제강점기 일본에 맞서 싸우는 소년, 소녀가 주인공이다. 그림 수준이야 지금 기준에서 보면 죄송하지만 매우 유치하다. 한미디로 입체감이 없고 죄다 평면적이다. 인물 묘사나 배경도 대충이다. 이해한다. 1960년대 초반이었다. 아니 잠깐만 그 때 미국은 월트디즈니로 일본은 아톰으로 날리던 때가 아닌가? 아무튼.

 

그림에 대한 불만은 스케일과 스토리로 날려버릴 수 있다. 우리나라땅은 물론 중국 전역을 누비는 장쾌한 규모에 가슴이 벅찰 지경이다. 또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고난을 헤쳐나가는 아이들의 모험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단지 기록물로서뿐만 아니라 만화 자체로도 인정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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