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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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라고 누군가 말을 했다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적어도 연애를 공개적으로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들키지만 않으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경치도 애매하고 딱히 좋은 장소도 아닌데 줄줄이 늘어선 러브호텔이 왜 성업중이겠는가?

 

그러나 첫 걸음을 떼기는 무척이나 힘들다. 어떤 미친 놈이 아, 삶이 권태로워 이제부터 바람 좀 피워야지, 하고 준비 시작하고 달려들겠는가? 술을 마시거나 등산을 다니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하면서 슬슬 몸을 달구고 나서 그럼 한번 딱 한번 식으로 은근 슬쩍 발을 담그겠지.

 

혼마는 40대 초반의 가장이다.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딱히 내세울 것은 없는 중소기업의 영업과장, 아내가 있고 딸이 하나 있다. 남부러울 것 없어 마땅해야 한 그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권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느날 대학후배에게 여자를 실컷 사귈 수 없는 고급정보를 얻게 되는데 그것은 메일팅이었다. 곧 자신의 신상을 적어 메일함에 보내어 마음 맞는 사람끼리 연락을 하는 거다. 그러다 만나서 몸을 섞는다. 쌍방간 합의하에 이루어진 일이기에 화대를 지불할 이유도 없다. 그저 식사비와 호텔 혹은 모텔방비 정도의 비용이 들 뿐이다. 설마 이렇게 쉽게? 실제로는 더욱 더 쉽다. 이제 조금 더 욕심을 내 정말 내키는 여자를 고르고 골라 드디오 리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호러는 낯선 곳에서 갑자기 벌어지는 게 아니다. 아주 조금 벌어진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처음에는 설레임을 동반하기도 하다. 물론 약간의 두려움도 함께. 그러나 금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혼마는 그걸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빨려 들어갔다. 불빛만 보면 달려들어 죽음을 자초하는 불나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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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시즌 2 - 예비역들의 수다
주호민 글.그림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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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다녀온 사람들이 꾸는 가장 큰 악몽은 다시 입대하는 것이다, 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재대한 지 3, 4년 가량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꼭 군대 재입대 꿈을 꾸었다. 내가 이런 꿈을 꾼 이유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제대롤 한달 정도 앞둔 어느날. 말년 병장 답게 깔깔이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체육복 바지에 두 손을 집어넣고 아침 점호를 받는데 소대장이 평소답지 않게 무게를 잡으며 자기 옆에 서있는 병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음, 이번에 새로 온, 아니 그건 아니고, 아무튼 행정 착오로 다시 입대하게 된 OOO 병장이다. 제대는 했는데 행정착오로 보름 가량 일찍 나갔다. 남은 기한 채우기 위해 온 것이니 상호간에 불편함이 없도록 잘 지내도록"

 

그 때 난 그 병장의 얼굴을 보았다. 말년으로만 지낸다면 군대처럼 편한 곳이 어디 있냐, 라는 농담 아닌 농담은 진짜 농담이었음을. 그의 얼굴은 처참하다 못해 울먹이고 있었다. 처음에 황당하다가 억울해하다가 급기야는 공포에 떠는. 나 또한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갑자기 주변이 공기가 달라지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재수없게도 군대 꿈을 꾸면 그 자식 얼굴이 다시 나온다. 내게 재입대 통지서를 내민다. 너도 다시 들어가야 한다며. 으아아아아악. 난 이미 다녀왔다구. 정말 누구못지 않게 빡세게 굴렀단 말이다. 말년도 거의 없었단구. 재대 마지막 주차 까지 대대훈련 뛰었단 말이야. 유격도 두번, 혹한기도 두번 받은 저주받은 군번이라구.

 

주호민은 흥미롭게 짬2를 그렸지만 아무리 제대를 했다고 한들 군대에 대한 악몽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추억은 추억일 뿐 되새기지 말자. 그나머자 싸이는 어떻게 두번이나 군대를 다녀왔지. 물론 한번은 공익이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훈련소를 두번 가는 거 아니냐? 정말 탈영 안한게 신통할 정도다. 나중에 빵 떴으니 다행이다 싶다. 적어도 싸이에게는 험한 댓글 달지 말아라. 군대 두번 다녀온 싸나이다. 괜히 건드렸다가 빡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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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포기의 심리학 - 소유는 어떻게 행복한 존재를 만드는가
옌스 푀르스터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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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먼트 단지에는 분리수거 공간이 따로 있다. 이맘 때쯤이면 책들이 부쩍 눈에 뜨인다. 학년말이기 때문이다. 어제도 책들이 박스채 버려져 있었다. 혹시 읽을만한 책이 있나 뒤져보니 의외로 보물들이 보인다. 처음에 한 두권 정도 가져가 볼까 싶다가 결국.

 

소유하는 기쁨은 잠깐이지만 포기하는 슬픔은 영원하다. 사람들이 물건에 집착하는 까닭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다. 단지 물건뿐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귀거나 혹은 그런 경험이 있다면 완전하게 이해할 것이다. 사랑을 처음 시작하면서 가지게 된 설레임은 어느새 저멀리 사라지고 이별 뒤의 고통만이 절절이 가슴에 사무친다. 왜 죄다 사랑 노래의 가사가 이별의 슬품을 노래하겠는가?

 

문제는 그렇게 쌓이고 샇인 감정은 무엇 하나 제대로 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로로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잡동사니들도 막상 버리려고 하면 아쉬움이 남게 된다. 물건만 그런 게 아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얽매여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스스로는 물론 주변을 불편하게 한다.

 

옌스 프뢰스트는 소유 자체가 존재이며 그 의식은 오랫동안 인간의 뇌에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쉽게 제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곧 어떤 물건에 추억이 깃들면 그 자체가 나의 분신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들이 보면 다 찌그러진 냄비지만 첫 아이를 나을 때 친정 어머니가 사와 직접 미역국을 끓여준 냄비라면 그리고 지금 돌아가시고 안 계시다면 그 냄비는 아무리 볼품이 없어도 귀한 유산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것이다. 하찮은 물건이나 감정을 잔뜩 쟁겨넣고 산다면 당신은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 인간이다. 반면 몇 몇 소중한 물건이나 감정에 소중한 가치를 매기고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귀한 존재이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일단 보지 않은 책은 처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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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미쳤다! - LG전자 해외 법인을 10년간 이끈 외국인 CEO의 생생한 증언
에리크 쉬르데주 지음, 권지현 옮김 / 북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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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는 한국기업중에서는 그나마 점잖은 문화를 갖춘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의 저돌성과 삼성의 치밀함의 중간 형태라고나 할까? 그러나 겉에서 보는 시선과 실제 안에서 겪는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엘지전자 유럽법인에서 본부장으로 근무한 프랑스인의 수필집이다. 약간의 과장 혹은 축소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보는 한국기업은 제목 그대로 미쳤다이다. 한때 가난한 나라의 대명사였던 한국이 기업을 일구어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다보니 당연히 무리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장이 독재자처럼 임원과 직원을 갈궈대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가 떨리는 것은 매년 겨울 한국에 지시장들을 불러모아 행하는 수련모임이었다. 말이 수련회지 사실은 강제적인 군사훈련에 다름없었다. 실제로 아침에 구보까지 했다니 말 다했다. 50이 넘고 60에 가까운 임원들이 하낫 둘 하낫 둘을 외치면 운동장을 돌고 있는 풍경을 떠올려 보라.

 

에리크 쉬르데 씨는 그 모든 수모(?)를 견디면서도 자리를 유지하려는 이유는 기업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보다 값싸고 품질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 사명말이다. 어떤 기업이 잘 나가고 못 나가는 것은 단지 기업의 노력때문만은 아니다. 우호적인 주변환경과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간다.

 

그러나 엘지는 그러지 못했다. 일정 부분 이해는 한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 하루 아침에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천년 만년 기업을 꿈꾸는가? 그저 짜고 짜고 또 쥐어짜는게 장땡이다. 과연 그럴까? 미쳐야만 한다면 나는 사양이다.

 

덧붙이는 말

 

우리는 재벌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종자들이 우두머리로 군림하는 집단쯤으로 여긴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에 나가면 삼성이나 엘지의 광고판 하나만 보고도 애국심을 느낀다니 이런 모순이 또 어디있는가? 일찌기 칼 막스는 간파했다. 자본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 그 인격은 대규모, 대량으로 모일 때 더욱 힘을 발휘하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대기업이다. 대기업 자본은 근본적으로 탐욕적 성격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경쟁을 해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덩치를 키우면 키울수록 이윤율은 점차 떨어지고 서서히 동력을 잃어간다. 방법은 파괴적 돌파뿐이다. 돈이 드는 것은 죄다 외주로 돌리고 하청을 노례처럼 굴리는 수밖에. 기업의 개별 인격이 아무리 선량하더라도 집단 인격이 마귀들이니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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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의 요리 - 요리사 이연복의 내공 있는 인생 이야기
이연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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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기로 고생이다. 어쩐지 이번 겨울은 잘 넘기나 싶었는데 막판에 된통 걸렸다. 주요 증세는 코막힘이다. 왼쪽과 오른쪽이 번갈아가면서 막히니 정신이 멍할 정도다. 무엇보다 식욕이 뚝 떨어졌다. 음식을 먹어도 향을 맡을 수 없으니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어서다. 희한한 건 배고픔도 덜하다.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조금씩 입속에 덜어넣고 있다.

 

중화요리사 이연복이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대사관 시절 축농증 수술을 잘못한 후유증이라고 한다. 그가 겪은 여러 고난중 하나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코감기에 걸리고보니 새삼 대단해보였다. 냄새를 느끼지 못하고 어떻게 요리사가 될 수 있지? 음식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하텐데, 오로지 감각으로 단련시켰다는 말인가?

 

만약 그가 요리가 초년생시절 이런 일을 겪었다면 그만 두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어느 정도 요리가 익숙해진 후라 그 시절의 감각을 기억해내며 버텼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대단한건 대단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요리사 이연복의 일대기와 요리에 대한 그의 태도를 담고 있다. 직접 썼다기보다는 구술한 것을 대필작가가 문장으로 다듬었으리라.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배달원으로 입문한 요리세계에서 살아남고 더 나아가 대가 소리를 듣게 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처음 티브이에 나왔을 때만 해도 그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낮은게 아닌가 혹은 저렇게 자꾸 방송에 얼굴을 내미면 도리어 평가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이연복 선생이 나오면 나올수록 그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고 있다. 심지어 홈쇼핑이나 광고에 출연해도 그를 낮추어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귀화했기는 하지만 순수 중국인이라는 핸디캡도 불거지지 않는다. 지금같은 사드 정국에서는 이외의 현상이다.

 

이연복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다. 누구를 대하든 어떤 재료가 있든 성심성의껏 요리를 준비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가 만든 음식은 먹어보지 못했다. 우선 예약부터 해야 할텐데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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