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목욕탕과 술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지식여행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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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목욕탕에 갔다. 주로 일요일에. 도떼기 사장이 따로 없었다. 특히 여탕은. 목욕, 빨래, 수다가 어우려져 몬도가네를 방불케 했다. 조금 나이가 들어 어른의 세계인 남탕으로 가보니 여긴 또 다른 아수라였다. 상대적으로 덜 시끄럽긴 했지만 서열이 꽉 잡혀 있어 함부로 어딘가에 앉으면 당장 등짝 스매싱이 날라왔다. 어른이 되어 비로소 목욕탕의 여유를 즐기려고 하니 죄다 없어지고 찜질방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남녀노소가 평등한 세상이 된 것이다.

 

구스미 마사유티가 쓴 <낮의 목욕탕과 술>은 일종의 목욕탕 순례기다. 이름이 있거나 다소 특이한 욕탕을 낮에 방문하고 나서 근처 술집에서 술마시며 노가리까는 이야기다. 블러그에나 실릴법한 시답지 않은 내용이 책으로 나올 정도인걸 보면 일본은 역시 문화선진국(?)이다.

 

언뜻 언뜻 통찰력도 돋보인다. 목욕탕이란 모두가 홀땃 벗고 돌아다니는 곳이니 맨 몸만 봐서는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몸의 움직임을 보고 대충 유추해볼 수는 있는데, 그 상상이 매우 발칙하면서도 낄낄거리게 만든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기껏해야 만화가인걸! 딴따라인걸!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뭐, 돈까지 벌려고 하는 건 비겁하지. 이런 일로 돈을 벌게 될 때는 그 시절의 우연이 겹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참 하나같이 홀딱 벗고 있으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XX만 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잖아."

 

"바깥은 비가 쫙쫙 쏟아지는데 포근한 이불 속에 파묻혀 있으면 묘한 안도감마저 어깨를 감싼다. 몇 살이 되어도 즐거운 일이다. 세상 모르게 퍼질러 약 오르지하고 속으로 까분다. 누구를 향해? 그건 나도 모르지."

 

덧붙이는 말

 

재건축 붐으로 단지 안에 있는 목욕탕이 죄다 헐렸다. 5층짜리 단층 아파트먼트 단지라 높고도 높아 보였던 목욕탕 굴뜩도 사라지고 없다. 20층이 넘는 초고층으로 지어지고나면 목욕탕이 새로 생기더라도 가려서 보이지도 않겠지. 그렇게라도 다시 부활하면 좋으련만 그럴 계획은 전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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