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가난하게 살다 부자가 되면 그럭저럭 적응하지만 반대가 되면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이를 테면 지하 셋방에서 거주하던 사람이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백 평이 넘는 펜트하우스로 옮기면 처음엔 어리둥절하지만 이내 적응하여 욕조안에서 거품 목욕을 즐기며 와인을 홀짝 거리지만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 이사 다음날 현관문 천장에 줄을 달라 목을 맨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다. 풍요롭게 사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일수록 정신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많아 가난해지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도리어 반짝 부자가 된 이들은 그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졸부 행세를 하거나 언제든 다시 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유려 때문에 넓은 안방을 두고 쪽방에서 이불도 없이 쪽잠을 잔다. 

 

폰 쇤부르크씨는 전형적인 부르조아 가정 출신이다. 게다가 귀족 가문이다. 왜 이름에 폰이 붙어 있겠는가? 신문사 편집자라는 근사한 직함도 그를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어느날 해고를 당한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노동자처럼 어떤 일이든 하게 해달라며 애걸복걸 매달일거거냐 아니면 귀족의 품위를 유지하면 가난하게 버틸 것인냐? 쇤부르크씨는 후자를 택했다. 가난하지만 우아하게 사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보자. 

 

직장은 들어가기보다 나오기가 힘든 곳이다. 입사할 때야 뭣도 모르니 일단 들어가고 보자라는 마음에 들지만 나올 때는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공포감에 시달린다. 이제 나는 더이상 쓸모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자괴감과 함께. 

 

문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모아 둔 돈으로 남은 생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살 궁리는 하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일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일만 한다고 하는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직함을 얻고 싶어서가 문제다. 곧 사장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죄다 자영업으로 몰린다. 그러다 망한다. 있는 돈도 다 날린다. 

 

일이란 일종의 습관이다. 특히 남의 밑에서 일하면 받는 돈은. 돌이켜보면 그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적절했느지 의심이 드는 건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일을 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헛된 망상이 작용해서다. 

 

은퇴시기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돈을 모을 기회도 사라질 것이다. 마치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화성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 들 것이다. 과연 나는 화성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아끼면서 살아라. 때때로 음악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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