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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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자주든 아주 가끔이든, 그러고 나면 적어도 지금 겪는 고통은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 또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저승의 삶이 이승보다 몇 백배 더 각박하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 그래도 살아야지 아니 버텨야지.

 

한 때 죽음은 우리에게 친근한 이웃이었다. 어딘가에 초상이 나면 차양을 치고 손님을 맞고 곡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슬프면서도 즐겁게 며칠을 보냈다. 병원에 장례식장이 생기고 화장이 양성화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마치 재활용 처리하듯 싹 치워버리고 오로지 삶의 찬가만 떠들어댄다.

 

주호민은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만화작가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선명하게 죽음을 소재로 다룬 이는 없었다. 시작부터 파격적이다. 40대 초반 과로사로 죽은 회사원. 미처 준비된 안된 상황에서 저승사자를 만나 저승으로 향한다. 마치 자대 받기 전에 보충대에 머물듯 49일 동안 죄의 유뮤를 판가름받게 된다. 이승에서도 백이 없었던 그는 결국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게 되는데. 이승인지 저승인지 헷갈리는 상황과 적절히 끼어드는 감동적인 장면이 어우러져 만화는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게 된다.

 

이 만화가 초대박을 치게 된 이유는 죽음을 통해 살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기 때문이다. 저승의 기준은 지금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와 너무도 상반되기 때문이다.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남들을 많이 거느리고 떵떵거리던 이들은 백퍼센트 중죄에 처해지는 반면 남에게 배풀기를 좋아하고 싫은 소리 못하고 착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거의 무죄를 받고 극락에 가거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저승이 있든 없든 누군가 지금 나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삶은 그렇지 않은 인생과 천지차이가 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중간중간 눈물이 난다. 아마 주호민의 눈가에도 흘렀을 것이다. 억울하게 죽어 귀천을 떠돌다 드디어 원한을 품고 저승으로 가기 전 아들은 엄마의 꿈속에 나타나 작별을 고한다. 전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는 직감한다. 너 무슨 일 있지? 나도 데려가 나도.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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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 오우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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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돈을 받는 이유는 단지 일을 한 대가여서일 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 혹은 더 이상을 견딘 보상이다, 라는 정신과 의사의 말을 듣고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 그렇다면 일을 한만큼만 받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고민하니 박 대통령께서 옳다구나 하면서 당신같은 사람을 위해 파견노동법을 제정해야 한다오, 하루종일 일터에 메이지 않고 딱 정한 시간만큼만 일을 하면 된다오, 라는 말에 솔깃하다, 아니 그런데 똑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 궁금해하니, 그게 어떻게 같은 일이에요, 군대에도 장교와 사병이 있듯이 비정규직은 정규직과는 엄연히 다르지요, 라니 대체 어떤 말이 옳은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구나.

 

 

한국만큼 과로가 심한 나라로는 일본을 들 수 있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야근의 일상화를 실천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국민의 질은 높아지지 않고 특히 주거만족도는 선진국들 가운데 최하위에 가까우니 이게 도대체 뭔일이래?

 

 

그 이유는 두 나라 모두 뒤늦게 국가주의가 발동하여 노동을 곧 신성한 의무처럼 여겨 조합의 활동을 기업을 갉아먹는 벌레 취급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형식적으로 민주주의가 자리잡았다고 해도 여전히 갑과 을을 구분하고 대기업이 중심이 되는 다양한 하청을 거느리는 선단식 시스템이 확고한 상황에서는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라고 말할 간 큰 사원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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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백남준 -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들려주는 백남준의 삶과 사랑, 예술
구보타 시게코.남정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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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종이 태어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많은 천재들이 사라져간 것은 유무형의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물게 살아남았다고 해서 마냥 칭송을 받는 건 아니다. 참, 유별나, 알고 보니 별 게 아니네, 집안이 빵빵하니까 저런 짓도 하는 거지.

 

백남준은 해외에서 알려져 우리나라에도 유명세를 얻은 예술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굿모닝 조지 오웰 이벤트를 직접 티브이로 시청한 국민들은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한국을 빛낸 아티스트이니 당연히 좋아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그의 사업가적 면모가 예술가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었다. 수십, 수백 대의 브라운관을 연결하여 펼치는 장관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단 티브이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삼성전자의 후원으로 그의 구상은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단지 비디오 아트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백남준은 행위예술가다. 영원히 기록되지 않은 순간에 집착하는 그의 퍼퍼몬스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의 비디오아트는 칭송하면서 미국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바지를 벗어버린 것은 단순히 해프닝쯤으로 여기다니.

 

이 책은 그의 아내 구보다 시게코가 곁에서 지켜본 백남준을 관찰하고 나서 쓴 글이다. 아무래도 남편이다 보니 애정이 듬뿍 담아 우호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으리라. 실제로 그에 대한 비판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백남준을 마냥 칭송만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담담히 그에 대해 기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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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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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의 원인은 죄의식 때문이다. 스스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더라도 사회가 압박하면 견뎌낼 재간이 없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는 사무실 풍경을 예로 들어보자. 상사나 사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직원들은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뭉게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와 하염없이 야근을 한다. 문제는 야근이 습관처럼 굳어져 업무시간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 거다. 아차피 붙잡아 둘 거 수당이나 받아먹자, 라는 식으로. 하루 할일을 정해 전투적으로 스스로 몰아붙이고 저녁 6시 땡치면 칼같이 일어나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오던 나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현대사회는 만성 피로 사회다. 일과와 여가, 낮과 밤, 혼돈과 평온간에 구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해가 뜨면 일 나가고 지면 보금자리로 돌아와 온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밤 9시쯤 잠이 드는 생활을 이젠 더이상 볼 수 없다. 티브이의 프라임 타임은 밤 11시가 된 지 오래고 새벽 2, 3시까지 휴대폰 오락을 하느라 눈이 벌겋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모든 뒤죽박죽이 스스로 원해서 이룬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을 가만두지 못하고 뭐든지 몰두하게 만드는 '자기 착취'가 만연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아무리 개인이 대안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해도 이단아 내지 낙오자 취급을 받게 된다.

 

한병철은 이 책에서 독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았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한국에 더 적합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피곤에 절은 인간들이 좀비처럼 어슬렁거리며 여유를 즐기며 인간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을 공격해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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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홀 Blue Hole 1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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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 가운데 바다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데 말이다. 늘 접하고 있어 무심해져서일 것이다. 물론 태어나서 바다 한번 보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호시노는 공룡을 덧붙여 독자들의 관심을 붙잡고 있다. 바다 맡에 이르러보니 6억 5천만 년전의 공룡시대가 여전히 전개되고 있다는 식으로. 황당한 상상이다. 왜 바다와 공룡을 연결시켰는지 궁금하다. 차라리 타임리프로 공룡 전성기로 돌아간다면 모를까?

 

또 한가지 설명이 너무 많다. 만화책인지 전문과학서적인지 헷갈릴 정도다. 좋게 보면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의도겠지만 달리 보면 작가가 전문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작품에 녹여내다보니 생긴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핵폭탄을 터뜨려 백악기를 멸망시키고 오염된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에는 어의가 없을 정도다.

 

다들 호시노, 호시노 하면서 대가 취급을 하지만 그의 철학이 때로는 엉성하고 더 나아가 위험할 수 있음을 <블루 홀>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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