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건 모으는 걸 좋아한다


번역은 우리말답게, 가 내 철칙이었다. 아무리 작가 특유의 뉘앙스가 있더라도 그건 자국 언어에 한정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내 생각이 바뀌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직독직해가 낫다고 여기게 되었다. 설령 어설프게 보일지라도 원작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I like to save things.


깜짝 놀랐다. 번역본을 먼저 접했기에 나름대로 원래 문장은 어떨지 상상했는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참고로 우리말로 옮긴 글은 다음과 같다.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린다.


얼핏 보면 비슷한 뜻 같지만 소설 전체를 읽어보면 완전히 다른 의미다. 곧 물건 모르기를 좋아하는 것과 잘 못 버린다는 단순히 긍정과 부정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상반된 느낌을 전달한다. 남들에게는 하찮은 것 같지만 주인공에게는 소중하다는. 바로 이어지는 다음 문장이 바로 증명한다.


Of all the things I save, I guess you could say my love letters are most prized possession.


직역해보자,


내가 모아온 모든 것들 가운데, 내가 짐작하기로 당신들은 내 연애편지들이 가장 소중한 소유물이라고 말 할 것이다.


번역가는 이렇게 옮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걸 꼽으라면 아마 연애편지가 될 것이다.


후자가 훨씬 깔끔하다. 우리 독자들에게 가독성도 좋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완전히 빠져있다. 우선 내가 모아온 모든 것들이 배제되었다. 버리지 못하는 쓸데없는 잡동사니가 아니라 고이고이 모아왔다가 중요한 열쇠인데. 또한 연애편지는 내가 뽑은 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추측성 문장의 의미도 퇴색되었다. 곧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연애편지를 귀하게 여길 것이라는 메시지가 쏙 빠졌다. 이 문장은 앞으로의 글이 연애편지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중요한 암시가 담겨있다.


물론 직접번역만이 정답은 아니다. 영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어색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작가가 어떤 의도를 글을 썼는지가 우선이다. 설령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핵심은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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