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나 때문에 여신강림을 보는 일인


여신강림을 의리로 보고 있다. 소재는 뻔하고 연기도 오글거린다. 화장으로 추녀에서 미녀로 변신하여 꽃미남들의 구애를 받는다는 설정 자체가 어이없다. 그럼에도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챙기는 이유는 차은우 때문이다. 이른바 얼굴천재로 불리는 그의 시크하면서도 도도한 연기에 왠지 끌려서다. 사실 차은우는 배우는 아니다. 아이돌로 데뷔하여 예능에 간간이 출연하다가 돌연 드라마에 출연했다. 다 얼굴 덕이다, 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첫 출연작인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을 보면 편견이 사라진다. 마치 차은우를 위해 만든 것처럼 찰떡궁합이다. 다른 점은 상대가 화장이 아닌 성형으로 변신한 여성이다. 극중 역할도 대학생이라 여신강림의 고등학생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 여신강림보다 백배쯤 더 재미있는 이유는 시나리오와 여성 주인공인 임수향의 몫이 크다. 주연 뿐만이 아니라 조연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임수향을 곤경에 빠트리는 조우리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손에 땀을 주게 된다. 반면 여신강림은 남녀주인공을 제외하고는 갈등다운 갈등 자체가 없다. 그저 두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쯤으로 치부된다. 그나마 돋보이는 건 처음엔 조력자였다가 악역으로 돌변하는 박유나다. 스카이캐슬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그가 이번엔 제대로 칼을 꺼내들었다. 공교롭게도 내 아니디는 강남미인에도 출연했는데 극 중 비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사진 출처 : 엑스포츠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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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당장 영화 소울을 보시라


당신은 인생을 살 준비가 되었는가?


태어난 김에 살아간다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이런 부류는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살 것 같지만 아니다. 얼핏 보면 멀쩡해 보인다. 큰 불만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적성보다는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고 토익 점수를 따고 직장에 들어간다. 남들도 한다는 주식도 기웃거리고 열심히 청약도 부어 내 집 마련을 노린다. 문제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흔들린다. 이를 테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직장을 잃거나 조기퇴직이라도 하면 어쩔 줄을 모른다. 온실바깥으로 손만 내밀어도 화들짝 놀라는 셈이다.


조는 연주자를 꿈꾼다. 정식 학교 선생으로 임명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한 때 제자였던 드러머가 연주 제안을 하면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는다. 리허설까지 훌륭하게 마쳐 이제 남은 건 화려한 데뷔뿐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영화 소울은 인사이드 아웃을 연상시킨다. 다른 점이라면 관점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신을 옭아매었던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조바심은 다시 한 번 기회를 받으면서 서서히 바뀌어간다. 삶의 목표는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걸.


소울은 어른을 위한 동화다. 보는 사람에 따라 지나치게 추상적인 대사들 때문에 살짝 졸릴 수 있다. 상관없다. 깜빡 눈을 감더라도 자유로운 재즈선율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될 테니까. 디즈니가 뭔가 새로운 걸 하자고 했을 때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정답은 재즈였다. 꽤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덧붙이는 말 


당초 코로나 19로 개봉이 불투명했다. 디즈니 플러스라는 오티티로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한국에서는 연장 끝에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혹시 몰라 바로 첫날 보았다. 이 영화를 조그마한 티브이화면으로 봐야만 하는 이들은 불행아들이다. 무조건 큰 스크린으로 감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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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나이브스 아웃의 뜻으로 맞는 것은?

1) 칼을 뽑아들다

2) 상황을 험악하게 만들다

3) 누군가를 노려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다

4) 다 해당한다  


기깔나게 재미있습니다. 지적으로.


추리 영화는 두 번 보기 어렵다. 누가 범인인지 알고 나면 맥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보면 볼수록 더욱 재미있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살해자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다. 나이브스 아웃이 그렇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있다. 그의 주변에 자식들과 친척들이 몰려 빨대를 꽂아대는데. 유일한 예외는 나이든 그를 돌보는 간병인과 하녀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죽으면서 막장 드라마가 시작된다. 과연 누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될까? 다들 머리를 굴리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효자 효녀였다고 떠벌이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직접 영화를 보시길. 


사실 이 영화는 아가사 크리스타에게 바치는 헌사다. 밀실 살인과 관계자들을 죄다 모아놓고 범인은 바로 너라고 밝히는 김전일 스토리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시대에 대한 조롱이라고도 하는데 내 생각에는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재미있다. 그것도 기깔나게. 그리고 지적으로. 


사진 출처 : Knives Out — David Schlesinger (dbschlesing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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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로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 이 영화에 유일하게 숨통을 트여준다.


꿀벌과 천둥


한 나라에 대한 인상을 특정짓는 건 매우 위험하다. 여러 다양한 인간들이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가주의로 상징되는 이미지는 무시할 수 없다. 오랜 세월 쌓여온 무게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일본은 우리 이웃이면서도 대면대면하다. 침략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어색한 관계가 유지되어 오다 최근 들어 극적인 반전을 겪고 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오르며 일본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케이 팝으로 표현되는 대중문화의 격차는 갈수록 더욱 벌어지고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영화 <러브레터>를 보며 일본특유의 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감성을 동경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선망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충격이다. 더욱 놀라운 건 나 또한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 <꿀벌과 천둥>은 이러한 변화에 쐐기를 박았다. 무대는 일본 지방의 한 콩쿠르. 여러 지원자가 모이지만 핵심인물은 네 명이다. 유망주이면서 에이스인 마사루, 한 때 천재소녀로 불렸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던 아야, 천재라는 말이 딱 어울리지만 왠지 정서가 불안한 진, 직장에 다니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는 아카시. 이 넷은 각자의 고민을 안고 대회에 임한다. 이때부터 하품이 나기 시작한다. 그들의 걱정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고 겉돈다. 마치 실험영화에서나 볼법한 치기어린 장면들이 이어지다 느닷없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뻔 한 연기에 신물이 난다. 고요히 가라앉는 일본이라는 배는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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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ALWAYS in the mood for dancing


살아오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이 몇 가지 있다. 언뜻 떠오르는 세 가지는 자전거 타기, 수영하기 그리고 춤추기다. 공교롭게도 다 배우기와 관련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자전거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셨다. 처음부터 성인용으로 매우 공격적으로 배웠는데 다행히 큰 시행착오 없이 곧잘 타게 되었다. 한 때 전문 라이더 버금가게 즐겼지만 고관절 이상이 생긴 이후에는 완전히 끊었다. 가끔 그립다. 수영은 이십대 후반에 처음 접했다. 물론 그 전에도 개헤엄 정도는 할 줄 알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한여름 후배들과 함께 정식으로 강습을 들었는데 이게 효과만점이었다. 딱 한 달만 채웠는데 그 다음부터는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놀릴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즐기는데 바이러스 때문에 문을 닫아 가지 못하고 있다. 몸이 다 쑤신다. 세 번째는 춤이다. 느지막하게 입문했는데 내게는 꽤 의외였다.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돌 노래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들의 춤에 빠져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알게 된 춤의 세계는 넓고도 깊었다. 안타깝게 코로나 때문에 1년 넘게 춤을 못 추고 있다. 슬프다.


<치어리딩 클럽>은 말기 암 선고를 받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기위해 실버타운에 찾아온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마샤의 상상과 달리 동네 노인들은 매우 분주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바쁘다. 그러다 문득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치어리더로 잘 나가던 찬란한 시절이. 그 다음 내용은 지극히 예상 가능하다. 할머니 치어리더 단은 냉소를 받지만 결국 성공하고 마샤는 삶을 마감한다.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군무장면도 조촐하다. 그럼에도 영화 보는 내내 흐뭇했던 이유는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꿈을 지니고 살아가면 행복하다는 거다. 반드시 1등을 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당신의 드림은 이루어졌다. 나는 참 행운아다. 여전히 춤출 때의 기쁨을 알고 있으니까.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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