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 코도, 귀도, 입도 큰 마리아 칼라스

 인상의 강렬함도 목소리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칼라스처럼 전설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을까?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페라를 관람한다. 리처드 기어는 혹시 하는 마음에 어려울지 모른다며 우려 섞인 걱정을 하지만 기우였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으니까.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게도 첫 오페라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전공 학생들이 꾸민 조촐한 무대였지만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큰 거부감 없이 즐기게 되었다. 


마리아 칼라스가 생을 마감한 지도 40년이 넘었다. 사망 당시 나이는 53세였다. 살아생전 불세출의 소프라노였던 그였지만 오페라를 잘 몰았던 사람들에게는 사실 실력보다 스캔들과 가십으로 더 유명세를 치렀다. 세기의 부호 오나시스와의 이혼 그리고 재클린과의 뒤틀린 인연까지. 거기에 폭풍 다이어트도 빼놓을 수 없다. 여러모로 짧고도 굵게 살았다.


영화는 철저히 다큐멘터리 형식을 따른다. 출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연대기 순으로 진행된다. 중간중간 인터뷰가 섞여 있기는 하지만. 마리아에 대한 애정이 없거나 오페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살짝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무대 공연에서의 모습을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이 아닌가 싶은 신비함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소프라노는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거슬리는 높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데 칼라스는 하이 소프라노임에도 동굴 같은 울림이 있다. 곧 소리의 폭을 넓혔다 좁혔다 자유자재로 한다. 그 결과 자꾸 듣다보면 마치 오디세우스에 나오는 사이렌이 유혹하는 듯 한 착각에 빠져든다.


마리아 칼라스 이후 다양한 소프라노가 등장했지만 그만큼 관객을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전성기도 매우 짧다. 리사이틀이나 혹은 더 나아가 뮤지컬로 전향하여 자기 기량을 뽐내기도 한다. 아쉽다. 칼라스처럼 전설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을까?


덧붙이는 말 


<프리티 우먼>에 나온 오페라는 <라 트라비아타>다. 참고로 내가 본 것은 <리골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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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1-1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마리아 칼라스가 실력보다 스탠들과 가십으로 더 유명세를 치루었다고요? ㅎㅎㅎ 농담이시지요? 칼라스의 모든 스캔들을 다 합쳐도 그녀가 노래한 <라 지오콘다> 1회 공연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

카이지 2020-01-1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단 오페라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칼라스 스캔들은 알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명성이 뛰어났지요. 물론 실력은 더 말할 나위가 없군요. 악의는 아니었답니다. 답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카이지 2020-01-1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일부 내용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페라를 잘 몰았던 사람들에게는 사실 실력보다 스캔들과 가십으로 더 유명세를 치렀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2019년은 달 착륙 50주년이었다. 인류의 위대한 성과로 칭송하며 들뜬 분위기가 되어야 마땅한데 현실은 의혹만 더욱 짙어간다. 과연 달에 간 것이 맞기는 한거야? 이런저런 음모론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의도적으로 노리고 만든 <퍼스트맨>조차 우울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닐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달에 처음 간 최초의 인류. 그러나 이 목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재정이 들었고 심지어 사람들이 죽어나갔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당시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밀린 미국이 무모하게 덤벼든 사업이 낳은 결과다.


영화 <퍼스트맨>은 이 지점을 잘 파고들고 있다. 위대한 미국하며 엄청난 우주 쇼를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내내 침울하다. 닐의 내면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달에 가고 싶은지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라이언 고슬링 특유의 우울함이 더해져.


멋진 달 착륙씬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이들은 대게 실망했다. 그중에는 분노를 표출한 이들도 있었다. 내내 자다 나왔다. 중간에 객석을 떠나는 퍼스트맨이야말로 진정한 승자다. 그러나 우주여행(?)은 그렇게 낭만적인 게 아니다. 자칫 궤도를 벗어나면 혹은 본체의 뚜껑이 열리면 나는 영원히 우주를 떠도는 고아가 된다. 그 막막한 심정을 영화는 극적으로 보여준다.


올해는 2020년이다. 어렸을 적 막연하게 꿈꾸던 미래사회가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화성패키지 여행도 아직 막연하다. 그저 미세먼지가 일상이 되어 마스크 없이는 살기 힘든 겨울만이 실현되었다. 더욱 큰 문제는 낙관론이 사라진다는 거다. 화성탐사가 성공을 거두어도 예전 달 착륙 때처럼 환호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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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사랑의 위대함 


평소 공포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게 싫어서가 표면적인 이유지만 사실은 두려워서다. 그나마 나이가 들어 감정도 둔해지고 무서움도 사라지면서 조금씩 본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현실은 공포영화가보다 훨씬 더 무섭거든.


나는 영화 <오펀>을 디브이디로 보았다. 시작하기 전에 난데없이 입양 홍보 광고가 나와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남매가 있는 중산층 집. 뭐가 아쉬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아원에서 여자아이를 입양한다. 계속된 유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말을 하지 못하는 딸을 위해서인 것 같은데. 사실 이 설정은 거대한 파국의 실마리가 된다. 쉿, 스포일러는 여기까지.


입양 딸은 엄마와 아빠를 이간질하며 자신의 입지를 점점 넓혀 가는데. 구체적으로 아빠를 딸 바보로 만들어 엄마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엄마는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남편을 설득하려 들지만. 아 자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꾸 결말을 밝히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식스센스급 반전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오편>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다. 오래된 금기를 하나씩 건드리며 새로운 세상을 구축한다. 감독은 영리하게 단계마다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우선 딸아이를 농아로 설정한 점. 둘째 어린아이가 살인을 포함한 범죄를 마구 저지르는 게 알고 보니. 셋째, 겉으로는 평범한 부부지만 사실은 은밀한 상처가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탁월함은 여성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 여자는 욕구의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사실은 그 반대도 성립함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주인공이 갑자기 가여워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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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바로티>의 포스터. 목소리, 남자, 드라마, 전설. 천재는 영원하다. 살짝 유치하지만 그럭저럭 봐줄만은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구는 최악이다. 온 우주가 사랑한 테너. 무슨 스타워즈도 아니고. 파바로티를 마치 광대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당신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올해 첫 영화로 <파바로티>를 봤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소개 멘트를 듣고 바로 예매를 했다. 내용이 어떻든 그의 목소리를 극장에서 돌비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을 테니까. 역시나였다. 마치 공연장에 앉아 파바로티의 라이브를 듣는 느낌이었다.


한 분야에서 대스타가 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적어도 재능이 있다면. 그러나 여러 파트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만용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태리 소도시 모데나 출신인 그가 로마를 점령하고 런던에서 명성을 날린 다음 드디어 뉴욕 메트로폴리탄까지 진출하자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파바로티는 정점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되는데 그 시작은 쓰리 테너 공연이었다.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한 무대는 압도적이었다. 오페라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들까지도 폭풍처럼 끌어당겼다. 거기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록스타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파바로티와 친구들'이라는 듣기에도 촌스러운(?) 이름으로 세계를 누볐다, 마치 서로 다른 종목의 운동선수들이 모여 축구단을 만들어 강팀을 격파해나가는 격이랄까?


스캔들도 겹쳤다. 나이 60이 넘어 20대 여인과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았다. 대중스타가 그 정도가 뭐 대수냐고 할 수는 있지만, 우디 알랜은 입양아와 가정을 꾸리지 않았던가, 정통 가톨릭 신자인 그와 조국 이태리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오페라 계에 복귀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기력은 쇠하고 소리는 예전 같지 않았다. 대중들의 시선도 따가웠다. 역설적으로 파바로티에 대한 재평가는 그가 죽고 나서부터였다. 정말 이유 불문하고 그만큼 청아하게 노래하는 테너는 일찌기 없었으니까.


존 하워드 감독은 애정을 담아 파바로티를 그려냈다. 그의 약점도 인간성을 내세워 쉴드를 쳐주었으니까. 뭐 좋다. 평가는 각자 하면 되니까. 우리는 즐기면 그만이다. 1월 23일에는 <에릭 클랩튼>이 개봉한다. 놓치면 손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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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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