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힘찬 엔진 사운드


실제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대게 과장되기 마련이다. 뭔가 극적이고 자극적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실화인줄 모르고 끝까지 보았는데 진짜 일어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될 때도 있다. 영화 포드 대 페라리가 그렇다.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1위를 도맡아 하는 페라리. 반면 포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포드는 싸고 저렴하게 대량으로 차를 만들어 팔기 때문에 점유율은 높지만 늘 열등감에 시달린다. 어떻게 해서든 페라리를 꺾고 1등을 차지하기 위해 드림팀을 꾸리게 되는데. 사실 이쯤 되면 결말이 예상된다.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여하튼 우승을 차지할 것이고 승리자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겠지. 역시나 영화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진 또 전진. 그러나 뻔한 줄거리를 뒤엎을 만한 강력한 반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자동차 배기구 소리. 자동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까지 뛰게 만드는 힘찬 엔진 사운드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다. 마지막 장면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사진 출처 : 포드 v 페라리 일러스트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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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건너뛰셔도 상관없습니다.


영화 <조커>에는 살인 장면이 즐비하다. 악당이 등장하는 액션무비라고 생각하고 상영관에 들어간 사람들이라면 받아들이겠지만 코미디라고 여긴 분들은 당황할 정도로. 사실 누군가를 죽이는 건 현실에서나 가상에서나 일종의 금기다. 설령 살해를 보여주더라고 직접적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커>는 이 금기를 깨버린다. 너무 순간적이어서 더 현실적이다. 그나마 편안한(?) 살인은 친모를 상대로 한 것이다. 애증으로 엮인 이 둘은 영원한 동반자가 될 것 같았지만 기대는 보기 좋게 어긋난다.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조커는 어떠한 측은함도 없이 베게로 눌러버린다. 해외 팬 사이트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조커는 왜 자기 엄마를 죽였는가?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무시하고 깔보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한 이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지만 각자의 해석은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본격적인 살인에 나서기 전에 보인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코미디언이 꿈이었지만 헛된 희망 고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다시 말해 더 이상 다른 이들의 잣대에 맞춰 살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다운 모습을 보게 된 어머니는 얼마나 실망하게 될까? 차라리 그 전에. 물론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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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진행되어야만 한다, 고 하지만 이 팻말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무참하게 박살이 난다. 마치 조커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이.


우리들을 대신해 미쳐준 피닉스 호아킨에게 경배를 


2020년 아카데미상은 역대 최강 영화들의 경연장이었다. 우리에게는 <기생충>이 가장 인상 깊었지만 사실 <아이리시맨>, <조커>, <1917>들 또한 빼어난 명작이었다. 이들 가운데 어떤 작품이 상을 타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쟁쟁했다. 특히 <조커>는 길이길이 남을 명작의 반열에 이미 올라섰다, 고 확신한다. 호아킨의 눈부신 열연을 보는 재미 외에 영화 곳곳에 깔린 깊은 페이소스(연민, 동정, 슬픔을 포함한 복잡한 감정)와 영상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어우러지는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배트맨의 악당 정도로 취급받던 조커를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부활시킨 작가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자, 이제 남은 건 주인공과 함께 질퍽한 뉴욕거리를 두 시간 넘게 헤매는 거다.


덧붙이는 말


영화는 물론이고 예술이 위대한 까닭은 실패자들이 주역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나고 유명한 인물을 다루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성공 뒤에 가려진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다. 인간은 겉으로는 멀쩡한 척 살아가지만 마음 속 깊숙한 곳에는 늘 우울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는 이 지점을 찾아내어 어떻게 해서든 미치지 않고 살아가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영화 조커에서 아서 역을 맡은 피닉스는 자신의 본분을 눈부시게 해치웠다. 다시 한 번 그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사진 출처 : Joker; When Tragedy becomes Comedy | Ethics of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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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티브이 드라마 때의 원더우먼이 좋았지만 여주인공은 여전히 매력적


올해는 영화 운이 좋지 않았다. 코로나 19 때문에 개봉작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눈길을 확 잡아끄는 작품이 없었다, 가 정확한 표현이다. 원더우먼 1984를 보았다. 극장 나들이 자체가 매우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나 다를까, 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건물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같은 절차를 거쳤다. 당연히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에도.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영화를 봐야 하나 싶었다.


오프닝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블랙 팬서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시작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박물관 박사로 등장한 다이애나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지만 스토리는 진부했다. 실제로 중간에 깜빡하고 잠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간간이 등장하는 액션장면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지막 쿠키도 굳이 필요 없는 양념이었다.


차라리 티브이 드라마 때의 원더우먼이 좋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게 외모와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반 페미니즘이라 욕을 먹겠지만 스토리는 흥미진진했다. 반면 1984는 한 마디로 지루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죽은 남자친구를 환생시켜 러브라인을 만드는 무리수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여전사를 부각시키는 바람에 주인공 자체의 개성 또한 반감되고 있다. 게다가 여자와 여자의 대결로 치환시키는 바람에 혼돈스럽다. 


여하튼 올 한해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온통 바이러스로 물든 1년이었지만 언젠가는 좋은 기억도 떠오르겠지. 지금 당장은 마스크 꼭꼭 끼고 손 깨끗이 씻고 예방에 충실할 때다. 


사진 출처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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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9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이지 2020-12-29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중이용시설 가기가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님 말씀처럼 굳이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연말연시되세요.
 


오늘이 어제고 내일도 같은 날의 연속이라면 

Today is tomorrow's yesterday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하면 ‘나 홀로 집에’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러브 액추얼리나 해리포터 시리즈도. 아니나 다를까 티브이를 켜니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 혹시 색다른 게 없을까 채널을 돌리다 사랑의 블랙홀을 발견했다. 이미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지만 내심 반가웠다. 결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다. 우리의 경칩에 해당하는 성축절. 여전히 겨울이지만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즐기는 축제다. 


주인공은 지역방송의 앵커로 뉴스뿐만 아니라 일기예보까지 전한다. 인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는 자기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회에 불만이 많다. 성축절 취재를 가서도 대충 방송을 하고 다시 피츠버그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된다. 곧 오늘이 어제고 내일도 마찬가지다. 같은 하루를 끊임없이 보내게 되는 그는 온갖 짓을 시도해보는데 그중에는 자살도 포함된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죽어도 다음날이면 거뜬하게 눈을 뜨게 된다. 과연 주인공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딱 맞는 내용이다. 배경이 성탄절이 아님에도 자그마한 친절이 세상을 얼마나 살기 좋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올 한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작해 끝을 맺고 있다. 어쩌면 내년도 똑같은 상황이 지속될 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오전이면 전날 발생한 확진자수를 확인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나날을 보내는 일이 내내 반복되는. 그럼에도 희망을 갖는 이유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개인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른 이들에게 여유와 관용을 베풀고 범사에 감사하고 욕심 부리기를 줄인다면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큰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희한하게 이번에도 애매하다. 일부러 마지막 부분을 더욱 집중해서 보았는데 어떻게 성축절의 악몽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가 불분명하다. 아마 작가나 감독도 내내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일단 이야기는 저질러놨는데 수습은 어떻게 하지' 하면서. 어쩌면 그 덕에 또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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