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로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 이 영화에 유일하게 숨통을 트여준다.


꿀벌과 천둥


한 나라에 대한 인상을 특정짓는 건 매우 위험하다. 여러 다양한 인간들이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가주의로 상징되는 이미지는 무시할 수 없다. 오랜 세월 쌓여온 무게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일본은 우리 이웃이면서도 대면대면하다. 침략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어색한 관계가 유지되어 오다 최근 들어 극적인 반전을 겪고 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오르며 일본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케이 팝으로 표현되는 대중문화의 격차는 갈수록 더욱 벌어지고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영화 <러브레터>를 보며 일본특유의 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감성을 동경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선망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충격이다. 더욱 놀라운 건 나 또한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 <꿀벌과 천둥>은 이러한 변화에 쐐기를 박았다. 무대는 일본 지방의 한 콩쿠르. 여러 지원자가 모이지만 핵심인물은 네 명이다. 유망주이면서 에이스인 마사루, 한 때 천재소녀로 불렸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던 아야, 천재라는 말이 딱 어울리지만 왠지 정서가 불안한 진, 직장에 다니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는 아카시. 이 넷은 각자의 고민을 안고 대회에 임한다. 이때부터 하품이 나기 시작한다. 그들의 걱정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고 겉돈다. 마치 실험영화에서나 볼법한 치기어린 장면들이 이어지다 느닷없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뻔 한 연기에 신물이 난다. 고요히 가라앉는 일본이라는 배는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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