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독, 리스크를 걸고 벌이는 심리전쟁
나는 보이스카웃이었다. 여름이면 수련회를 갔다. 남이섬이었다. 첫 날을 정신없이 보내고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에 일어나보니 왠지 주변 공기가 서늘했다. 친구 한 명이 걱정스런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 괜찮니?"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응"하고 대답했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 앞에 줄을 서 있는데 대장이 다가왔다. "너 여기서 뭐하니? 전화는 걸어봤어" 나는 식판을 손에 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아직 뭘 모르나 보구나, 나랑 함께 가자."
가스가 폭발했다. 12층 높이의 아파트먼트 위로 솟구쳤을 정도라고 하니 위력이 대단했던가 보다. 창문들은 죄다 박살이 났고 엘리베이터는 멈췄다. 새벽이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사망자자 부상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란다. 나는 티브이 화면에서 뚜껑이 날아간 가스저장소를 보고 저곳이 내가 살던 집이라는 곳을 알았다. 가스 냄새가 난다고 항의하던 주민들의 목소리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어떻게 아파트 동 바로 앞에 저런 시설을 설치했냐고.
만약 그 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이 생을 마감했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장담할 수 없지만 보이 스타우트 복장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을 것은 분명하다. 다행히 모두가 무사했다. 어머니가 인터뷰를 한 화면이 9시 뉴스를 장식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됐다. 물론 사고보상을 둘러싼 싸움이 길고도 지루하게 이어졌지만. 보험사에서도 사람들이 나왔을 것이다.
드라마 <매드 독>이 심상치 않다. 1회를 보지 못하고 2회를 먼저 시청하는 바람에 이야기 전개는 놓쳤지만 상관없다. 이미 한 회만으로도 전설이 남을 만한 명장면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런 드라마를 기다려왔다. 흔하디 흔한 남녀간의 사랑이나 선와 악이 분명한 흑백논리가 주을 이루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옮음과 그름이 뒤섞이며 시청자를 혼돈으로 몰아넣는. 등장인물들이 전직 보험회사 직원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보험은 확률게임이다. 리스크를 걸고 벌이는 심리전쟁이다. 가입자는 속이고 청구자는 속지 않으려고 한다. 인간 본성을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가 벌어지기 딱 좋은 공간이다.
다시 보기로 첫 회를 보았다. 비행기 추락에 버금가는 건물 붕괴라는 충격적인 장면이 화면를 장식했다. 앞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드라마에서 액션영화 뺨치는 블럭버스터급 사건을 연달아 보여줄 수 있다니 새삼 한국드라마의 위용에 깜짝 놀랐다. 화면만 멋진게 아니다. 연기도 좋았다. 유지태야 인정받은 배우라고 해도 우도원은 정말이지 지금까지 이런 배우가 있었나 싶을만큼 감탄스럽다.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함께 지닌 그가 3화부터는 본격적인 매드 독의 일원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또 하나 장담하건내 이 드라마는 <굿 닥터>에 이어 미국에서 러브콜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