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최초의 과학자다. 


위인전은 가장 읽기 싫은 책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과연 글처럼 영웅이었는지부터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국가에 충성, 부모에 효도라는 철칙에 어긋나는 전기는 거의 없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특정 인물을 내세울 경우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미화하고픈 욕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불행하게도 마담 퀴리도 이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그려냈다는 점은 높게 사고 싶다. 사실 해당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업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방사선을 발견했다는 정도. 영미계통이라고 해서 별 차이는 없다. 도리어 그들 세계에서 퀴리는 남편과 사별하고 바람을 피운 여인으로 취급받았다. 조선시대 열녀상열지사가 따로 없다. 영화는 과학적 내용을 다루기보다 퀴리를 둘러싼 시대와 그가 진정 사랑했던 남자에 집중하고 있다. 여자이기에 제대로 과학자 대접을 받지 못했던 사실도 빼놓지 않는다. 


사진 출처 : 유럽 최강의 근성 폴란드 (1) 코페르니쿠스에..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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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행여 반복해서 봐야겠다고 결심한 분들이라면 두번째부터는 남자주인공이 아닌 캣의 시선으로 보실 것을 권한다. 분명 뭔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만약 테넷이 닐만의 첫 작품이었다면 어땠을까? 혹평은커녕 관심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지럽다. 그냥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든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테넷을 드디어 보았다. 당초 극장에서 관람할 계획이었지만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불릴 때라 포기했다. 그런 상황에서 개봉을 감행한 감독이나 제작사도 대단하지만. 정직하게 말해 굳이 극장에서만 봐야 하는 스케일은 아니었다. 인터스텔라 같은 우주가 배경은 아니니까.


자, 골치 아프게 보지 말자. 다섯 번은 기본이고 열 번은 돌려보아야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영화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보고 반응하면 그만이다. 오죽하면 선전문구도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겠는가? 뭔 개소리야. 간단히 말해 테넷은 돌려보기 영화다. 한 15분쯤 보았는데 그 상황을 거꾸로 되돌린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또다시 되돌려보기. 이러기를 서너 번쯤 하고 나면 영화가 끝이 난다. 사이사이 등장하는 물리학 이론은 양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진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굳이. 다만 여주인공 이름이 왜 캣 인지는 한번쯤 고민해보시라. 힌트는 쉬레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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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3-2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 번 극장에서 봤는데 여주 이름이 캣이었군요. 결정적 힌트 슈레딩거를 말씀해 주시니 꼭 다시 보고 싶어 집니다. 여주가 죽은 상태도 아니고 죽지 않은 상태도 아니었나요? 누구의 관찰로 그 상태가 변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카이지 2021-03-22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 또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분명한 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라는거죠. 따스한 봄날 되세요.
 


영화 미나리. 흔하디 흔한 한국의 채소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다. 


윤여정*의 재발견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학교는 늘 어수선했다. 학생들이 수시로 전학을 오고가며 옮겼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아주 멀리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메리카는 꿈의 땅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머나먼 미국에 가서도 학교로 편지나 우편엽서를 보내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자랑하고 싶었겠지. 그러나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마냥 행복하지 만은 않았던 듯싶다. 정직하게 말해 한국에서 번듯한 직장을 가진 가장이 왜 회사까지 관두고 온가족을 이끌고 말도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 가겠는가?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미나리는 한국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다. 미국에서는 때 아닌 국적논란까지 있었지만 보고 난 소감은 누가 뭐래도 미국 영화다. 단지 한국말이 대사의 절반의 넘었기 때문에 미국 처지에서 외국영화로 분류하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도리어 이민자의 나라라는 정체성을 새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매우 미국적이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정직하게 말해 조금 지루하다. 등장인물이 제한되어 있고 장소도 크게 변화가 없다. 아칸소의 이동주택에 정착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 부부는 의견 차이 때문에 다툼이 잦고 아들은 심장에 문제가 있다. 외할머니가 합류하면서 집으로와 같은 코믹감동으로 흐르다 갑작스런 반전을 맞는다. 더 이상은 스포에 해당하니 이쯤에서 그만.


그럴 만도 하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다. 곧 큰돈을 지원받지 못했다. 선덴스 영화제 출품작이라는 타이틀을 보라. 그러나 미국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 골든 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까지 받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아마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단지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해서 국뽕에 취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윤여정을 새로 발견한 놀라움과 기쁨이 컸다. 아주 오래된 배우이고 예능에도 간간이 출연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윤여정은 놀라운 연기력을 뽐낸다. 특히 초반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할머니로 나올 때도 좋았지만 아프고 나서 보여주는 죽음의 문턱에 선 모습으로 나올 때는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감독의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종교적 색채가 가미되면서 말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뿜어낸다. 실제로 아이의 심장을 낫게 하는 대가로 할머니가 대신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앗, 이건 정말 스포일러인데. 아무튼 윤여정은 상복이 터졌다. 만약 그가 아카데미에서까지 수상을 하게 된다면 와우 정말 대단한 사건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 미나리는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으나 미국에서의 때아닌 논쟁으로 씁쓸함도 안겨주고 있다. 골든글로브 후보에서 외국어영화로 분류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 영화에 출연한 어떤 배우도 후보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심지어 이미 다른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한 윤여정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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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는 변함없이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회피심리 때문이다. 곧 각박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서다. 장르와 상관없이 판타지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연하 꽃미남들이 번갈아가며 쫓아오고 절세미녀가 한번만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안다. 그것이 거짓임을. 천만년 동안 늘 사랑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세상에는 없다. 홍상수는 반대지점에 서있다. 구질구질한 일상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미묘하게 어긋하고 자신의 누추함을 감추려는 듯 같은 말을 하고 또 한다. <도망친 여자>도 예외가 아니다.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어딘가 이상한 감희. 선배와 친구 집을 전전하며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데. 이사 온 사람이 집을 찾아와 고양이 밥을 준다고 시비를 걸고, 딱 하룻밤 함께 잠 어린 남자가 징징대고,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간 여자와 함께 사과를 먹는다. 지금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듯 한 일들인데 왠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뜨끔하다. 홍상수는 변함없이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그게 그의 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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맜있어 맛있어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구나


<귀멸의 칼날>을 보고 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극장판이다. 이른바 일본 애니 덕후들은 티브이 시리즈를 다 봐야지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정직하게 말해 큰 상관은 없다. 물론 세세한 설정이나 줄거리를 따라가는 맛은 좀 덜하겠지만. 악귀들을 쫒기 위해 무한열차에 올라탄 귀살대의 탄지로, 젠이츠. 이노스케. 최강 염주 렌코쿠를 만나 한껏 기대에 부풀지만 알고 보니 기차 자체가 혈귀였다. 귀살대와 혈귀는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게 되는데. 압권은 역시 싸움신이다. 애니메이션을 굳이 영화관에서 관람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가히 디즈니에 대적할만한 유일한 강자답다. 


그러나 내용은 딱히?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형적인 일본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선 욱일기 논쟁이 있다. 탄지로의 귀걸이 문양이 문제가 되자 해외 상영관에서는 다른 모양으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굳이 욱일기를 내세운 건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 것이다. 곧 귀살대를 한창 뻗어나가던 시절의 일본에 빗대고 있다. 자살 미화도 여전하다. 아무리 꿈속이지만 스스로를 계속 죽여야만 현실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가정도 해괴하다. 주군의 뜻이라면 목숨 바쳐 충성해야 마땅한 사무라이 정신도 곳곳에 배어있다. 재미있게 보고 나서 과도한 해석이라고 한다면 유규무언이지만 렌코쿠의 말처럼 맜있어 맛있어 하지만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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