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적응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스스로를 반사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코로나 19는 딱히 불편한 게 없다. 평소에도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인파가 붐비는 장소에는 얼씬도 안하고 혼자 노는 것이 너무도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이러스 세상은 이들에게 축복일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니까. 더욱이 명절이면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에게 훈수 들을 일도 없고.


버나뎃은 한 때 천재 건축가 반열에 올랐다. 정점에서 그는 돌연 사라졌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남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였다. 건축계에서 여성은 별종 취급을 받았다. 나름 결혼하고 딸도 낳으며 시애틀에 자리 잡으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잡음이 일어난다. 바로 이웃과의 분쟁이었다. 그는 적당히 묻어가는 길 대신 고개를 치켜들고 잘잘못을 따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남극 여행을 추진하다 난데없이 러시아 스파이와 엮인다. 인터넷상의 가상 안내인에게 개인 정보를 몽땅 알려준 결과였다. 버나뎃은 이 일로 정신요양원에 갇히게 될 위기까지 맞게 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사회부적응자가 아니다. 홀로 있으면 답답해하고 하루에 최소한 세 시간은 바깥 활동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마구 사교적이지는 않다. 떠들썩한 자리는 웬만하면 피하고 모임도 자주 참석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부분이 나같이 않을까? 문제는 천재들이다.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도 못하고 사회의 멸시를 받아 사라져가는. 버나뎃은 천운이었다. 그의 예술성을 알아준 남편이 있었고 그런 어머니를 믿고 따르는 딸이 존재했다. 어쩌면 우리는 소수의 천재들 덕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왜 그들을 마구 무시하지. 아니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지?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bongseok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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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새삼 십자군 전쟁에 대한 관심이 다시 솟구쳤다. 

근 200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종교라는 광기는


킹덤 오브 헤븐


동전을 던져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50퍼센트다(라고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방법은 간단하다. 직접 해보면 된다. 문제는 얼만큼. 곧 딱 한번만하거나 하루 종일 공기놀이하듯 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건 열 번 연속으로 앞면 혹은 뒷면이 될 수도 있지만 많이 하면 할수록 절반으로 수렴한다. 요컨대 경우의 수가 많을수록 통계는 맞아떨어진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단 천명의 출구조사만으로 당선자를 맞추는 걸 보라. 아주 간혹 틀릴 때도 있지만.


올해 내 영화 운은 매우 안 좋았다. 일단 코로나 19로 2월 이후 극장 발걸음을 끊었다. 조금 회복된다 싶어 9월부터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보는 족족 꽝이었다. 오케이 마담, 테슬라 등등. 정말 이러다가 올 한해는 끝났구나 싶은 마음에 기대를 접고 <킹덤 오브 헤븐>을 보았다. 신작은 아니다. 이미 2005년에 개봉한 영화를 감독 판으로 다시 선보였다. 바이러스가 낳은 촌극이다. 신작이 나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세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에 미리 질렸지만 상영표를 보니 이번 주만 지나면 막을 내릴 것 같아 서둘러 시간을 잡았다. 


소감은 역시 확률은 무시할 수 없다.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 특유의 후까시(겉멋)는 여전했지만 어렸을 때 본 <벤허>를 연상시킬 정도로 스케일이 장난 아니었다. 얼떨결에 십자군 전쟁에 휘말린 발리앙의 모험담이 스크린에 장대하게 펼쳐진다. 액션과 암투, 그리고 로맨스까지. 그러나 단지 이런 흥행성만 버무렸다면 내가 높은 평가를 내릴 리가 없다. 스콧 감독은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기독교도의 처지에서 뿐만 아니라 이슬람쪽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종교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나 할까? 실제로 영화 보는 내내 그곳이 왜 여전히 분쟁의 중심이 되어야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단편적으로 불교의 발상국인 인도를 보라. 불교를 국교로 하는 있는 나라도 있고 오랫동안 친근한 종교로 자리 잡은 국가들도 많은데 이들이 성지를 두고 피터지게 싸운 적인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진정한 종교는 장소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음을 기독교는 잊고 있는 게 아닌가? 뜻밖에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aprilwine74/22068573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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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신인이라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은 배우 김다미. 

이 한장의 스틸은 이미 연기 대가에 올라섰음을 증명한다. 스스로도 알 것이다. 


조이서라는 맞춤 정장


<이태원 클라쓰>를 몰아서 다 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뒷북이다. 화제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비교해 보면 이태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불시착도 분명 재미있었지만 이태원에는 흥미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웹툰이 원작이라 만화 같은 전개는 다소 거슬리지만 배우들의 파워가 그 한계를 훌쩍 넘어버렸다. 박새로이 역의 박서준을 필두로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조이서를 연기한 김다미, 그리고 콤플렉스 가득한 악역의 전형을 보여준 장근원으로 분한 안보연 등이 역작을 만들어냈다. 그밖의 조연들도 주연 못지 않게 자기 맡은 역을 멋지게 해냈다. 


특히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고 일본에서 대폭발했다. 불시착파와 이태원파로 나뉠 정도로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공전의 히트를 친 <한자와 나오키>의 청년 버전으로 본 듯싶다. 곧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결국 목적을 달성하는 성정과정에 깊은 공감이입을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김다미에 반했다. 영화 <마녀>에서 볼 때만 해도 어린 티가 역력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조이서라는 맞춤 정장을 입고 날아다녔다. 걸 그룹 이미지를 벗고 대등하게 경쟁해 준 권나라의 덕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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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꼭대기에 있는 자 

바닥에 있는 자 

그리고 

추락하는 자 


올 한 해는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2월에 발발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10월 현재까지 종식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끙끙 앓고 있다. 정작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은 이제 더 이상 창궐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만 글쎄.


<더 플랫폼>은 수직빌딩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운데 바닥은 뻥 뚫려 있으며 한 달에 한번 층이 바뀐다. 처음엔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알게 된다. 윗층에서 먹다 남은 음식의 양이 달라진다는 걸. 참고로 한 층에는 두 사람이 거주하는데 고렝은 함께 있는 트리마가시에게 의존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까지 떨어지자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지고 급기야 쌀 한 톨도 구경할 수 없다. 어느 날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온 몸이 묶여 있다. 산 채로 야금야금 자신의 살을 베어 먹으려는 의도를 알아채고 고렝은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데.


나는 이 영화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은유로 보았다. 사람들끼리 연대하면 충분하지는 않지만 근근이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투표나 회의를 거쳐 그러자고 동의를 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 눈앞의 먹을거리에 현혹되어 약육강식의 길을 걸을 것인가? 


당장 현재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바이러스 초창기 마스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만약 마스크가 아니라 백신이라면 남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할 수 있을까? 최근에는 독감주사를 맞고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코비드 때문이든 주사에 의해서건 죽어야 한다면 둘 중 어느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가? 영화는 모호하게 끝이 난다. 희망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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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단역으로 나왔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조진웅


웬만하면 트렌드에 뒤지지 않으려고 한다. 딱히 뒤처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느낌을 갖고 싶어서다. 물론 예외도 있다. 트로트는 여전히 익수해지기 어려운 노래 장르다. 전국이 미스터 트롯으로 들썩일 때도 단 한 번도 방송을 본적이 없다. 종영 이후도 마찬가지다.


영화 <파파로티>를 봤다.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실제 주인공이 트롯대회에 출전했다는 정보도 주워들었다. 물론 몰랐다고 해도 감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낮에는 학생, 밤에는 깡패. 그래도 강호는 꿈이 있다. 오페라 가수가 되는 것. 성공 직전에 성대 결절로 주저앉은 삼진이 음악선생으로 오면서 둘의 이야기는 서서히 영글어 가는데. 보는 내내 새삼 한석규와 이제훈이 연기를 잘한다는 걸 깨달았다. 얼핏 보면 결말이 뻔 한 스토리인데 두 사람의 표정 연기가 극적 긴장을 불어넣어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눈물도 두 번쯤 흘렸다. 


덧붙이는 말


이제훈이 노래도 잘하네라고 생각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성악 파트는 모두 대역이다, 테너 김요셉씨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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