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일본 넷플릭스 


드라마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끝까지 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군인들이 나오는 경우는. <사랑의 불시착>을 모두 보았다. 한 번에 다 시청한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걸쳐 보았다. 이유는 일본발 태풍 때문이었다. 습관처럼 하루에 한번은 야후재팬에 들어가는데 거의 매일 빠짐없이 이 드라마가 언급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수십 번을 반복해서 보는 시청자도 있다고 한다. 과연 왜 그런지 호기심이 일어 넷플릭스를 클릭했다. 


전부 다 본 소감은 정직하게 말해 아주 잘 만든 드라마는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막장 요소를 북한을 배경으로 잘 버무렸다고나 할까? 그러나 일본인들 시각에서 보면 새로웠을 것 같다. 북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정적인 원인은 현빈과 손예진때문이겠지만. 이 둘은 기존의 정형화된 로맨스를 벗어나 남자는 여자를 간섭하지 않되 보호하고 여자는 사랑하되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역할을 연기했다.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캐릭터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낯설었던 듯싶다. 여하튼 잘 봤습니다.


덧붙이는 말


이 드라마를 보며 두서너 번 울컥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씬이 아니라 여자들의 우정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보위부(우리의 인기부)에 끌려간 남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간부 부인의 집에 동네 사람들이 먹을거리며 땔감을 가지고 하나둘씩 등장하는 순간 눈시울이 시큰했다. 분명히 누군가 감시를 하고 있고 적발되면 곤욕을 치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알음알음 모이는 걸 보며 북한도 사람 사는 곳임을 실감했다. 그들 처지에서는 남한을 그렇게 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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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 파이어 사가 스토리


아바라는 전설적인 그룹이 세계에 알려진 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덕이 크다. 당당히 워털루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나의 유럽을 목표로 각 나라의 명예를 걸고 가수들이 경연을 벌인다는 발상은 참신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물론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런데 영국은 이유를 탈퇴했는데 앞으로 참가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유로비전 송콘테스트 파이어 사가는 아이슬란드 대표가 우여곡절 끝에 경연에 참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이인조로 남녀듀엣이다. 여자는 전형적인 미인에 꾀꼬리 목소리고 남자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예술성이 번뜩인다. 과연 두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 대단한 내용이 아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스토리다. 그럼에도 빛이 나는 건 역시 노래다. 영화 곳곳에 보석처럼 숨어 있어 발견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특히 아바의 메들리는 역시 압권이다. 특히 요즘처럼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스트레스가 내성화된 시기에 잠시나마 기분전환용으로 딱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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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큼은 큰 화제를 불러오지못한 토이스토리 4. 당초 알라딘과의 개봉 경쟁에서 압승이 예상되었으나 무서운 입소문과 뒷심을 타고 케이오패를 당하고 말았다. 숟가락을 제대로 얹었다고 예상했는데 그 위력은 크지 못했다. 


자기 임무를 다 마친 우디의 은퇴식 


토이 스토리가 처음 나왔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치 이런 애니메이션은 지금껏 없었다는 광고카피를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나? 일단 액션이 등장했다. 장난감 인형들이 걷고 뛰고 날고 소리친다. 그것도 진짜처럼. 픽사의 기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핵심은 스토리다. 누구나 기억 한 켠에 자기의 분신인 장난감 하나쯤은 갖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주인에게 버림받은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 이 영화의 출발이다. 그 길은 어느덧 4편에까지 이르렀다. 


주인이 바꾸면 따라가야 한다는 보, 아니다 끝까지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우디. 이 둘은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성격차이로 헤어진 부부처럼. 어쩌면 장난감들의 운명은 아이가 어른이 되거나 혹은 호기심이 사라지면 끝이 나게 마련이다. 늘 새로운 즐길 거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토이 스토리 4의 우디는 왠지 늙고 초라해 보인다. 톰 행크스의 목소리에서도 발랄함보다는 연륜이 전해진다. 여전히 밝고 쾌활하고 남을 위할 줄 알지만 또한 외모에도 변함이 없지만 이젠 자기 임무를 다 마친 퇴역 군인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보안관 배지를 넘기는 장면이야말로 극적인 퇴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극장 개봉당시 관객동원은 3백 40여만 명을 갓 넘었다. 나름 괜찮은 성적이지만 토이스토리의 위상을 볼 때 아쉬운 성적이다. 게다가 9년만의 컴백인데.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리어 나이 지긋한 중년들이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보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또 한 시대가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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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해의 출발은 김형욱의 미스터리한 죽음 혹은 실종에서 시작되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그러나 상상은 가능하다. 만약 그 당시 김재규가 거사(?)를 치르고 난 후 육군본부로 가지 않고 원래 계획대로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관없이 전두환이 집권하여 군사독재가 연장되었을까? 아니면 미국과의 연대로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든가 아니면 후견인이 되었을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남산의 부장들>은 너무 늦게 나온 영화다. 나 같은 세대에게는 너무 우려먹어 사골국물조차 졸아든 이야기이고 요즘 사람에게는 완전 고전 사극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럼에도 보는 내내 가슴을 졸이게 한 힘은 배우들의 연기다. 김재규 역을 맡은 이병헌이나 차지철로 분한 이희준, 김형욱을 쏙 빼닮아 소름이 돋았던 곽도원 모두 화면을 꽉 채운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나온 이성민이 살짝 빠지지만. 연기를 못했다는 게 아니라 박통하면 떠오르는 연기자가 있어서다. 영화에서는 비록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누구인지는 뻔히 아니까 몰입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 전체의 시점이 김재규에 맞추어져 있다. 마치 그의 처지를 대변하는 듯 한 상황전개가 이루어진다. 물론 그를 재조명하거나 새롭게 평가하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김재규에게도 어두움이 있었다. 치밀한 것 같지만 격정적인 그의 모습은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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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 마주한 로봇이 엄마라면


모성애란 타고난 것인가? 만들어졌는가?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도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언젠가 소설의 소재로 쓰겠다고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 때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남긴다. 그는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 나는 몰랐다. 여자 친구도 있었다. 방송국 아나운서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둘은 연인이었다. 남자는 수수했고 여자는 화려했다.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내 잊어버렸다. 그들과 만날 일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갈 무렵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여자가 자살했다. 갓 돌을 지난 아이와 함께,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살해였다. 원인은 산후우울증. 기이한 경험이었다. 


넷플릭스 영화 <아이 엠 마더>를 보았다. 인류와 기계의 대결이라는 흔한 설정이었지만 특이한 건 모성애를 정면으로 다룬 점이다. 곧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의 전유물인가? 아니면 조작된 것인가? 태어나서 줄곧 로봇에 의해 자라 엄마라고 믿는 딸. 어느 날 자신을 낳은 친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혹은 그렇다고 믿게 되고 로봇엄마에게 등을 돌리게 되는데 알고 보니.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이쯤에서. 


어찌 보면 모성애란 만들어낸 감정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엄마에 대한 감정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온 세상 모든 어머니가 아이들에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게 아니다. 그 중에는 이기적이고 타산적이며 심지어 자식들을 괴롭히고 더 나아가 죽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최근 5년간 0세에서 1세 사이 영유가 132명이 살해되었다. 대부분 부모, 특히 어머니가 범인이었다. 단순히 병리적 현상이라고 하기에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원래 없는게 아닌가? 


그럼에도 모성애가 유지되는 이유는 직간접적인 사회의 압력 탓이 크다. 곧 가족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묵적인 합의가 강하게 작용한다. 여기에는 다른 동물과 달리 미완성 형태로 태어나는 인간에 대한 배려도 작용한다. 탄생 이후에도 일정기간은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모성애도 이런 기간을 유지하기 위한 진화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영유가가 바로 부모에게 격리되더라도 케어가 보장된다면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이 된다. 영화 <아이 엠 마더>가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유전적 모성애보다 사회적 보살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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