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 Like You Know It Al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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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저 역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했던 말들과 행동들이 무수히 많아요.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도와주려고 하기도 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미워하기도 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하기도 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욕하기도 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심지어, 동정하기도 했어요.


그래요, 무엇보다도 당신의 영화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제껏 죽 다 봤어요.

실은 잘 알 것 같은데도 끝끝내 잘 모르겠는 그 느낌이 좋았던 것이라고 해두죠.

아니, 다른 건 다 몰라도, 당신이 당신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달라고, 혹은 전부 다 이해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는 않다는 것, 적어도 그건 안다고 생각했으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보러 다녔겠지요.

그런데 아마, 당신은 저처럼 아무 비판 없이 낄낄대는 걸로 그런 영화 만들기에 작게나마 동참해주는 관객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관객들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 내내 신경 쓰였던 모양이네요.

한 작품 한 작품 더 해갈 때마다, 감독으로서 ‘이해 받지 못하는 혹은 이해할 수 없는’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변을 점점 더 많이 삽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 생각이 드는 정도가 아니죠, 아예 주인공 김태우씨 입을 통해서 대사로 열변을 토했으니까 그 장면에서는 마치 당신과 직접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던 걸요.

그런데 뭐,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영화 속 구감독이 다음 작품엔 꼭 200만 달성할테야, 라고 다짐하듯 무언가 다짐하실 만한 계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저만의 오버라고 해도, 안 팔리는 영화를 꿋꿋이 만드는 것에 대한 자괴감 비슷한 것이 혹시나 더해져서 그러신다면, 괜찮다고 우리는 충분히 재미있다고 해드리고 싶은데. ^-^; 이 정도로는 만족이 안되시는 건가요?

아무튼 영화 속에서 위에 언급한 '안 팔리는 영화 만드는 감독'이 갖는 강박 외에 또 하나 강박을 느꼈다면, 그것은 짝에 대한 거지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게 뭐니 라는 질문은 너무나 진부해서 민망할 지경이지만, 관심이 가는 사람에게는 항상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고 그에 대한 답이 내 답과 비슷한 사람이 짝이 되면 금상첨화. 그런 점에서 보자면 공형진(후배)과 제주도 화백(선배)이 이구동성으로 웅변하는 ‘좋은 짝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기’가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될 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되면 감독님 혼자 물어보고 답해주고, 결국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신 거 같아 보이는데, 뭐 이것도 좋습니다. 학생들이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고 아예 생각을 안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소 생뚱한 질문을 사유의 그물로 툭 던지고 몽롱하게 만들기보다는 질문과 그에 대한 본인의 답변 중 한 두 개를 던지고 그 답변에 대하여 같이 사유해보자는 상냥한 제스추어 같기도 하구요.

아무튼 저는 아직, 좋은 짝을 만난다고 새로운 삶 씩이나 살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훗. 감독님 또한 화면 속의 좋은 짝들이 어이없는 인생의 우연 속에서 필연이라고 우겼던 끈을 아주 쉽게 놓아버릴 수 있다는 암시를 주기도 했으니, 어차피 이것 역시 인간들의 환상과 가식의 중간 어디 쯤 있는 의미 찾기 게임일 뿐인가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연기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좀 더 수다를 떨어보자면,

홍상수 표 영화에서 오래 전부터 참여했던 김태우씨야 그렇다 치고, 엄지원 고현정씨는 각각 두 번째 참여인데 어쩜 그리 천연덕스럽던지요. 너무 천연덕스러우니까 살짝 징그러웠어요. 공형진씨도 그간 좋은 연기를 펼칠 자리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여서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물 만났다 싶었구요. 아내로 나온 정유미씨는 ‘가족의 탄생’에서 제가 홀딱 반한 캐릭터. 이번에도 역시 ~ 전 이런 타입의 여성을 좋아하나봐요. 그러니까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아주 생활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여성. 비쩍 마르고 연약한 것 같은데 은근히 당차 보이는, 그리고 외모가 귀여운 여성. 후후.

카메오로는 하정우씨와 작가 김연수의 연기가 너무 극명하게 비교되는 것이, 오히려 관점 포인트였달까요(감독님이 의도하신 건 아닐테지만). 하하. 김작가님, 정말 진땀이 듬뿍 나셨겠어요.

휴, 그나저나 늘 제주도에 가서 살고싶다는 꿈을 달고 사는 요즈음인데, 영화 속 제주도 풍경이랑 화백의 집이 어른어른 해서 종일 일 못하게 만드네요. (뭐든 핑계 대는 건 저도 감독님 뺨 치게 잘 댑니다.) 그런데 만약 제주도에 살면 이웃들과 거리를 좀 두고 살아야겠어요. 문을 그리 항상 열어두고 사니까 안 당해도 될 일을 당하지 않습디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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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09-05-1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전 작품들보다 착하고(?)편해진 느낌이었어요.
그게 더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흐흐

아는 만큼만 하면 좋겠지만
아는 만큼도 못하니
나는 아마 계속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면서 살 것 같아요.

무릎 꿇을 만한 남자에 공감할 듯 말듯 기억에 남았어요
그렇게 배가 나와있으면 꿇기 싫을 것 같긴 한데...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ㅋㅋㅋ

치니 2009-05-18 17:51   좋아요 0 | URL
저두요, 아는 만큼이나 하면 다행이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무릎 꿇을만한 남자, 흠흠. 저는 아직 내 말 잘 들어주는 남자에 만족하고 있는디. 헤- 배 나온 거는 예나 지금이나 별루 상관 없구요.
아무튼 짝! 찾아야 하는 걸까요? 굳이? ^-^;;

웽스북스 2009-05-1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오면서 니나랑 홍상수의 여배우들 얘기를 했었죠- 유독 고양이과가 하나도 없는 것 같죠- 해변의 여인에 나온 고현정도, 송선미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나온 엄지원도, 정유미도, 밤과낮의 박은혜도. 그래서 저는 혼자 문근영이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는 상상을 했어요. ㅎㅎ 김연수만큼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던데 말이죠-

치니 2009-05-19 13:17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좀 튀는 배우라면 예지원이 많이 튀는 듯 하네요. ㅎㅎ
문근영 양은, 만약 한다면 정말 기대 되는데요! 스스로도 몰랐던 자기 안의 다른 면을 보게 되지 않을까 막 그런 생각도 들고.

프레이야 2009-05-19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재미있는 편지에요.
필연이었다고 생각한 끈을 아주 쉽게 놓아버릴 수도 있다는 암시, 그걸
포착하셨군요. 그러고 싶은 인연이 분명 있지요.

치니 2009-05-19 13:18   좋아요 0 | URL
앗, 닉네임이 프레이야로 결정되었군요! :)
선선한 바람 냄새가 나는 닉네임입니다, 잘 어울리세요.

네 , 인연에 대해서도 이모저모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비로그인 2009-05-20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은 아니지만(아니라면서 또 말하는 건 뭐냐!) 홍상수의 영화를 어쩌다 보니 단 한 편도 보질 못했는데, 치니 님의 글을 읽으니 무척 보고싶어집니다. 전 사실 변 혁 감독의 `인터뷰' 같은 영화를 가장 좋아했어요.

치니 2009-05-20 13:15   좋아요 0 | URL
Jude님이 보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 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

변혁 감독의 인터뷰, 저는 (좋아하는 배우)심은하 때문에 봤던 기억이 나요. 영화도 수작이었고, 근데 요즘은 뭐 하실까요.

Alicia 2009-05-27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재밌어요. 저랑은 또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보셨네요.
감독은 정말 하고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음..'환상과 가식의 중간 어디쯤의 의미찾기'라는 말이 와닿아요.
근데 허무로 치닿지는 않고 뭔가 가슴안에 단단한게 남아요.
그게 홍상수의 힘일까요? ^^

전 김연수 보고 아찔아찔 조마조마 했더랬어요.ㅎㅎ너무 귀엽기도 하고요- :)

치니 2009-05-27 11:02   좋아요 0 | URL
네 , 홍상수의 힘, 그런 게 정말 있지 싶어요.
그제 정확히 어디서 비롯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안 보고는 못 베기게 하는, 그게 저에게는 홍상수의 힘이지 않나...^-^;; 항상 비슷비슷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도, 이 작자가 이번엔 또 무슨 구라와 썰을 풀까, 이런 게 궁금해 못견디겠는 마음이 되거든요.

김연수, 대사 없이 표정 연기하실 때가 가장 안심 되더군요. ㅋㅋ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을 리뷰해주세요.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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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만한 투로 글을 쓰는 사람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는 편이다.
오만하게 된 데에는 실력이라거나 자신감이 무척 높은 수준이라 자기도 모르게 그래졌을 경우와,
스스로 의식하면서 부러 오만을 떨어서 강력한 아우라를 가지려고 하는 경우가 있을텐데,
뭐 둘 다 크게 거부감이 드는 경우들은 아니니까.
그리고 오만한 글은 지나치게 빈정대지만 않는다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통쾌함을 선사할 때도 자주 있으니까.

그러나 오만 불손은 싫어한다.
키타노 다케시의 그것은 오만한 필체인지 오만 불손한 필체인지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독설가라고 자처하고 나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글에 대해 남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이 아주 노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젊지 않은 나이에 독설을 뿜어내는 것은, 자칫 노인네 똥고집이나 망발로 보일 수도 있다.
책은 정치,문화,연예,스포츠 계의 인사들을 열라 까대는 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과연 일본“학”씩이나 되는 수준인 지는 모르겠다.
이 책 이외에 일본학을 접해본 적이 없으니.
그 중 스포츠 이야기는 사실상 읽었어도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는 선수 이름이 이치로 야구선수 하나 뿐이었기에, 그가 왜 칭찬하고 왜 비난하는지 맥락을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적어도 작가로써 이런 내용으로 책을 내려면, 그것도 외국 사람이 본다는 경우의 수를 고려한다면, 인물에 대한 호오를 천명하는 것 뿐 아니라 그 배경도 적절히 알아먹게 써주었어야 했다. 이런 말을 해봐야 독설가 키타노는 콧방귀도 안 끼고, 그럼 책 보지 말아라 그러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하자면 , 다케시 아저씨 그냥 영화와 개그만 하고 책은 쓰지 마세요, 라고 전하고 싶다. 영화들은 모두 좋았는데, 쩝.

부러운 점은 딱 하나.
전직 정치인들 뿐 아니라 현직 의원이나 대통령 누구랄 것 없이 모두 도마 위에 올려다놓고 험상 궂은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사는 자유가 부럽다.

우리는 바로 금서 목록에 올라갈텐데.
역설적이게도 키타노는 일본이 자유로워져서 이 모냥 이 꼴이 되었으니 모두 군대를 보내고 옛날처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하니 참, 세상은 요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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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9-05-1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노 다케시의 오만한 표정이 싫지만은 않지만, 간혹 이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없다, 쿨한 척하면서도 뭔가 음흉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혹은 진정한 악인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가워서 무서울 때도 있고.
이 책 살짝 궁금하던 건데, 치니 님이 잘 설명해주셔서 더는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감사. ㅋㅋ&^

치니 2009-05-15 13:1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그리고 그 음흉스러움조차도 뭔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용 중에 여자는 개똥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미야자와 겐지랑 닮았고, 극우적인 생각도 일부 있어서 미시마 유키오랑 닮았다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맨 마지막에 일본의 위인 50명에 둘 다 넣었더라구요. ㅋㅋ

로드무비 2009-05-1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몇 편은 꽤 매력적인데 책은 읽고 싶지 않더라고요.
이럴 줄 알고?ㅎㅎ

치니 2009-05-16 16:55   좋아요 0 | URL
헤, 이쯤 되니 다케시 아저씨에게 좀 미안하네요.
그래도 우리 모두 영화는 매력적이라고 했으니까...

로드무비 2009-05-17 16:16   좋아요 0 | URL
치니 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기회가 되면(도서관에서) 한 번 읽어볼까요?
왠지 미안시러버서.ㅎㅎ
영화 리뷰 혹시 올리셨나 슬쩍 들렀다 갑니다.

2009-05-17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8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를 리뷰해주세요.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 일상에서 찾는 28가지 개념철학
황상윤 지음 / 지성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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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에서 '도덕' 과목을 배우다가 중, 고등학교에서는 '윤리' 과목을 배웠다. 또 대학 입시에 '논술'이라는 과목이 추가된 시점에 대학 입시를 치루기도 했다.  

도덕이고 윤리고 논술이고 배운답시고 배우고 (아니, 외운답시고 외운 거겠지만) 시험을 치뤄 대학에 갔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도덕과 윤리 이외에도 '철학'이라던가 '미학'이라는 걸 교양으로 더 배워야 했다. 그런데 이런 걸 배우자니 대학 수업에서 이전의 수업에서처럼 그저 선생님이 정답이라고 알려준 걸 달달 외운다고 시험 결과가 잘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 이외에도 많은 책들을 읽어야 되겠다는 강박은 생기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고 습득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는 심정이 들자 더욱 답답하기만 했다(답답하다는 핑계로 철학을 논한답시고 모여서 술만 먹었지).

이 책을 읽고보니 순서가 잘못 되었던 게 문제인 듯 하다. 

도덕이나 윤리는 '철학'이라는 학문의 한 부분이고 그 도덕이나 윤리라는 것이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운 것처럼 사회 규범을 익히는 것이라기보다는 많은 사고와 토론이 필요한 과제였던 것이니, 우선 철학의 역사를 배우고 도덕이나 윤리라는 가지를 들여다보아야 그나마 사색이라는 걸 할 수 있었겠는데, 거꾸로 배운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른가. 내가 알기로는 일반 학교에서 가르치는 방식은 제목만 '바른 생활'로 바뀌었을 뿐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 학생들에게 미리 정답을 가르쳐주고 무슨 무슨 철학자의 유명한 말은 이것이다 라는 식으로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도 그대로인 것 같다. 

이런 답답한 교육 현실 속에서 철학은 개념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수염을 기르고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두꺼운 알의 안경을 쓴 사람의 이미지를 한 채 '어렵다'라는 수식어 속에 갇혀 있는 상태이고, 저자인 황상윤씨는 그 점이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일상에서 소소한 철학의 의미를 찾아내어 철학에 많은 이들이 친근하게 다가서고 이로 인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똘레랑스를 일상화 하고 연대를 일상화 하는 이상향을 꿈꾸는 분인 듯. 

소박한 목적을 가지고 소박하게 씌였다 해도, 그리고 유쾌한 철학이라는 단서를 달은 만큼 우중충한 느낌 보다는 산뜻한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해도, 내용의 가벼움은 철학 좀 안다는 분들이 읽었을 때 아무래도 헛점으로 지적될 수 밖에 없고 범람하는 '가볍게 철학하기' 류의 책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 같지도 않아서 좀 아쉽기는 하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대학에서 그 유명한 마르크스의 책 한 권 조차 독파하지 못한 탓에 짤막하게 정리해 준 각 철학자들의 이론과 그것이 현대에 미치는 영향이 나름 조리 있게 적혀져 있어 내게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 16세인 아들조차도 '에이, 이건 우리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해준 거랑 다른 게 하나 없어서 뻔하고 재미 없어'라고 했으니 조금만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미 없는 책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 

철학, 질문만 있고 정답은 없는 학문. 소소한 일상에서 어떻게 대입하고 살아갈 지 역시 황상윤씨가 정답을 주는 건 아니니, 가볍거나 신선하지 않다고 너무 타박할 수만은 없는 것, 다만 이왕지사 이런 책이 자주 나오는 시대니 조금 더 신선하고 알차고 재미난 철학 책들이 다수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생각할 꺼리는 많은데 생각하기도 싫고 우선 배가 고파서요,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철학 씩이나, 라면서 철학을 무조건 피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잘 하는 것이랑 배가 고픈 것이랑 별개는 아니라는 점을 자상하게 알려준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만화로 표현한 니체의 사상 축약집 정도 되는데 참 재미나고 유익하게 읽었다. 철학을 가까이 하고 싶어도 너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죄송하지만) 황상윤씨 책 보다는 이 책이 더 효과 만빵일 듯.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건방진 내 아들은 저 따위로 말했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는 일독의 가치가 있을 거 같아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해당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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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0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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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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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0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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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1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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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2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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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Vicky Cristina Barcelon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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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이다. 이 원제는 영화 내용에 딱 맞게 참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만 우리 말 제목을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너무 길다는 의견이 있을 법도 하다. 

그렇다고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뭐냐. 으이그, 으이그. 그냥 우디 알렌 표 영화라는 걸 홍보 타이틀로 걸고 "바르셀로나에서 생긴 일" , "바르셀로나의 연인" 따위 식상한 제목을 쓴다면 반감은 없었을텐데. 

이런 제목은 외워지지도 않는다, 내 남자의 아내가 좋아 였는지 내 아내의 남자도 좋아 였는지...  

아무튼 우디 알렌 식 영화 중에서 그나마 쉽게 이해 되고 볼 거리가 많은 영화라는 평을 받는 이 영화는 어딘가 모르게 홍상수가 빠리에 가서 찍은 영화 <밤과 낮>과도 비슷한 데가 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본토를 떠나 외쿡으로 나가서 그 풍경을 열심히 영화에 삽입해주는 것은 나름 관객에 대한 (재미에 대한) 도리 정도로 보인달까. 그 이전에 배경이라고는 방, 길, 식당 정도로 두고 배우들의 입담으로만 영화를 채워넣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제는 좀 범 세계적으로 시원하게 볼 거리를 주는 것도 해주자, 라는 식의 도리. 

그렇게 배경은 달라졌으나 내용은 예전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 하겠고. 후후. 

쓰잘데기 없는 비교는 이제 관두고, 영화 내용을 살펴보자면, 사정은 이러하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 사람이 극의 중심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전 부인과의 극렬한 사랑과 싸움에 지친, 이성문제에 우유부단한 호색한 예술가. 그는 여느 남자가 그러하듯 참으로 심플한 사람이라 등장하는 세 여자를 고루 탐하기는 하지만 그 세 여자들의 욕구를 고루 충족시키는 방법도 잘 모른다. 다만 탐하고 취할 뿐. 

여자들은 다르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을 뿐 아니라, 내 남자가 싫었다가 좋아지기도 하고 질투를 하기도 했다가 쿨 해지기도 하고, 안정을 원하다가 곧 바로 모험을 원하고, 때로는 자신만의 영역으로 숨고 싶기도 하는, 극적이고 예상 불가한 마음의 변화가 그야말로 갈대와도 같다. 

비키는 헛 똑똑이.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을 행하기 보다는 자기가 되어야 하는 - 혹은 가져야 하는 - 것에만 중점을 두고 그에 맞춰 살다가 조그만 우연이라도 생기면 어쩔 줄을 모른다. 안정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욕망을 채우고 싶은데, 세상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이런 사람이 까딱 잘못하면 진짜 날라리들보다 쉽게 패가망신 하는 케이스. 

크리스티나는 무엇이든 불만족스러운 걸 찾아내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그러니까 그녀에게는 어떤 연인과의 관계도, 어떤 일도, 만족스러운 상황이 찾아올 리 없다. 이런 사람 세상에 의외로 많다. 오 불행을 자기 안에 안고 다니는 사람들이여, 삼가 위로를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전 부인인 마리아 엘레나. 얼마 전 읽은 '스타는 미쳤다'에 나오는 '경계성 성격장애'의 지존 되시겠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진저리를 칠 만큼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예측 불가능한 난동을 시도 때도 없이 부리지만, 예술적인 천재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매력으로 가득차 결국 버릴 수 없는 여자. 페넬로페 크루즈가 이 역할을 맡았고 크리스티나로 나온 스칼렛 요한슨은 함께 연기하는 모든 씬에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굴욕 씬이 줄줄이 나온다.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미안해요, 요한슨)  

다 보고나니, 순이 생각이 난다. 순이는 우디 알렌 아저씨랑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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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 2009-05-11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정말 심하지요. 원제 그대로 들여오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건 지나쳐요... 영화는 아직 못봤는데, 예고편만 봐도 스칼렛 요한슨이 불쌍했어요. 페넬로페 크루즈 옆에 있으니 너무 존재감 없더라구요.

치니 2009-05-11 09:12   좋아요 0 | URL
Kircheis님도 동감하시는군요, 흐흐. 예전부터 궁금한 것 중의 하나에요, 이상한 영화 제목들은 대체 누가 결정 내리는 건지...
페넬로페는 섹시미,지성미,야성미,연기력 모두 골고루 요한슨 코를 그냥 납작하게 해버리대요. 에구 요한슨, 어째.

니나 2009-05-1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도 잼있게 봤어요. 진짜 요한슨은 빛을 잃고... ㅋㅋㅋ 대문사진 페넬로페가 담배물고 있는 사진으로 바꾸고 싶었다는 ㅋㅋㅋ
비키에 대해서 쓰신 말-이런 사람이 까딱 잘못하면 진짜 날라리들보다 쉽게 패가망신 하는 케이스- 우우 예리하신데요. 그렇게까진 생각못했어요. 그리고 전 아무래도 크리스티나의 저 만족못하는 병에 공감했달까요 흐흐

치니 2009-05-11 15:35   좋아요 0 | URL
솔직히 (여기 요한슨이 절대 안 올거니까 하는 말인데요 ㅋㅋ) 요한슨이 헐리웃 최고의 스타가 될 만큼 매력지수가 높은지 잘 모르겠어요. 얼굴도 몸매도 제 눈에는 별루 안 이뻐서...헤.
페넬로페의 영화 속 사진들은 다 휘파람 불고 싶어지는, 뇌쇄적인...으.
(심지어 다리를 쫙 벌리고 아무렇게나 앉아서 담배 피는 모습도 넘 멋져!)
비키에 대한 건 제멋대로 속단해서 쓴 거여요, 태클 들어오면 책임 못질 말. ㅋㅋ
니나님도 예술적인 표현 욕구가 많아서 그럴 거에요, 자자 어서어서 표현해주세요 ~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를 리뷰해주세요.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오래 전에 유행했던 코메디에서는 고독을 "씹는다"는 표현을 썼다. 혼자가 되는 시간의 처절한 고독감을 견딘다는 것보다 잘근잘근 씹어서 만신창이가 되고 단물이 쪽쪽 빠지는 껌 같은 걸로 묘사한 건데, 이 책을 다 읽고나니 그 묘사가 참으로 그럴 듯 하다 싶다. 

유독 여성의 고독으로 여성의 심리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혼자 세상에 태어나서 혼자 떠난다는 사실을 놓고보면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 즉 모든 것에서 떨어져나와 일부러 고독을 즐겨야 하는 시간은 남녀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고독은 어떻게 즐겨야 하고 고독을 즐겼을 때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긍정을 얻는다는 믿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시종일관 (조금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그 방법과 당위성을 주입한다. 

여러가지 방법적인 측면의 이야기들 중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는 것, 특히 여자가 자기 삶의 정체성을 남자에게서만 찾으려 하고 혼자임을 두려워하는 것은 극복해야 할 문제이고 이것을 극복하는 순간 새로운 삶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데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혼자일 때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정신적 치유에 도움이 된다면 그저 혼자 지내면 될 일이지만, 소위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파트너를 운 좋게 만난다면 굳이 혼자 지낼 필요는 없다. 저자가 몇 번 언급했듯이 혼자가 되는 상황 자체를 무조건 피한다면 자신의 삶만 일그러질 뿐 아니라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지, 이상적인 파트너가 존재하는데도 굳이 물리치라는 건 아닌 듯 하다.  
그럼에도 '혼자여야 한다 vs 혼자가 아니어도 좋다'의 양쪽 균형감에 대한 설명은 다소 부족해보인다.

예컨대, 한 아이의 엄마로써 내가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은, 여성이 사랑을 경유하지 않고 모성을 획득하거나 자기 삶의 부족한 2%를 채우는 퍼즐 맞추기의 일환으로 아이를 갖는 것도 본인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 대안이라는 식으로 묘사된 부분이 그러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 중에서 원하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힘들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충일감을 높이려면 아이만은 갖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간절하다고 해서, 정자은행에서 기여 받은 아이를 갖는 것이 마치 좋은 해결책인 양 착각한다면? 이 책의 어떤 파트에서는 이런 식의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한 소지가 발견되는 걸 보면, 저자가 좋은 심리치유사일 지는 몰라도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시킬 수 있는 글쓰기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는 조금 의심스러워진다.  

굳이 반복하지 않아도 알아들을만 한 대목에서 재차 관련 사례들을 이것저것 언급하여 내 머릿속에는 사라와 제니와 다니엘....누구누구가 그랬대, 그래서 여자는 그렇게 살면 안된대 정도의 수다만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적도 많다. 한 마디로 읽다가 중심을 자꾸 놓친다는 것. 

아무튼 혼자건 둘이건 셋이건, 인생은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행복해야 살 만한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자, 이제 가슴을 활짝 펴고 고독이 찾아오면 당당히 씹어주고 함께인 것이 좋을 때는 그 공감대를 확실하게 누릴 수 있도록 평소에 마음 수련을 열심히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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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그녀와 함께 볼만한 한권의 책
    from 새우깡소년, Day of Blog 2009-05-19 23:28 
    연애를 하면서도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또 오래갔으면 하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처음에는 남자인 나로써도 혼자서 커피 마시고, 쇼핑하고,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걷는 등의 모든 일상등이 처음에는 낮설었지만 솔로였을때는 그러한 것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나를 위한 치유 방법을 몰라 허우적 거릴때는 그야말로 혼자서 푸는 방법, 남자이니깐 그러한 것들을 묵히면 될꺼야 라는 식의 방법으..
 
 
로드무비 2009-05-1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멋집니다요.ㅎㅎ

치니 2009-05-16 16:56   좋아요 0 | URL
흐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