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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 Like You Know It A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래요, 저 역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했던 말들과 행동들이 무수히 많아요.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도와주려고 하기도 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미워하기도 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하기도 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욕하기도 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심지어, 동정하기도 했어요.
그래요, 무엇보다도 당신의 영화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제껏 죽 다 봤어요.
실은 잘 알 것 같은데도 끝끝내 잘 모르겠는 그 느낌이 좋았던 것이라고 해두죠.
아니, 다른 건 다 몰라도, 당신이 당신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달라고, 혹은 전부 다 이해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는 않다는 것, 적어도 그건 안다고 생각했으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보러 다녔겠지요.
그런데 아마, 당신은 저처럼 아무 비판 없이 낄낄대는 걸로 그런 영화 만들기에 작게나마 동참해주는 관객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관객들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 내내 신경 쓰였던 모양이네요.
한 작품 한 작품 더 해갈 때마다, 감독으로서 ‘이해 받지 못하는 혹은 이해할 수 없는’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변을 점점 더 많이 삽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 생각이 드는 정도가 아니죠, 아예 주인공 김태우씨 입을 통해서 대사로 열변을 토했으니까 그 장면에서는 마치 당신과 직접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던 걸요.
그런데 뭐,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영화 속 구감독이 다음 작품엔 꼭 200만 달성할테야, 라고 다짐하듯 무언가 다짐하실 만한 계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저만의 오버라고 해도, 안 팔리는 영화를 꿋꿋이 만드는 것에 대한 자괴감 비슷한 것이 혹시나 더해져서 그러신다면, 괜찮다고 우리는 충분히 재미있다고 해드리고 싶은데. ^-^; 이 정도로는 만족이 안되시는 건가요?
아무튼 영화 속에서 위에 언급한 '안 팔리는 영화 만드는 감독'이 갖는 강박 외에 또 하나 강박을 느꼈다면, 그것은 짝에 대한 거지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게 뭐니 라는 질문은 너무나 진부해서 민망할 지경이지만, 관심이 가는 사람에게는 항상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고 그에 대한 답이 내 답과 비슷한 사람이 짝이 되면 금상첨화. 그런 점에서 보자면 공형진(후배)과 제주도 화백(선배)이 이구동성으로 웅변하는 ‘좋은 짝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기’가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될 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되면 감독님 혼자 물어보고 답해주고, 결국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신 거 같아 보이는데, 뭐 이것도 좋습니다. 학생들이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고 아예 생각을 안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소 생뚱한 질문을 사유의 그물로 툭 던지고 몽롱하게 만들기보다는 질문과 그에 대한 본인의 답변 중 한 두 개를 던지고 그 답변에 대하여 같이 사유해보자는 상냥한 제스추어 같기도 하구요.
아무튼 저는 아직, 좋은 짝을 만난다고 새로운 삶 씩이나 살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훗. 감독님 또한 화면 속의 좋은 짝들이 어이없는 인생의 우연 속에서 필연이라고 우겼던 끈을 아주 쉽게 놓아버릴 수 있다는 암시를 주기도 했으니, 어차피 이것 역시 인간들의 환상과 가식의 중간 어디 쯤 있는 의미 찾기 게임일 뿐인가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연기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좀 더 수다를 떨어보자면,
홍상수 표 영화에서 오래 전부터 참여했던 김태우씨야 그렇다 치고, 엄지원 고현정씨는 각각 두 번째 참여인데 어쩜 그리 천연덕스럽던지요. 너무 천연덕스러우니까 살짝 징그러웠어요. 공형진씨도 그간 좋은 연기를 펼칠 자리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여서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물 만났다 싶었구요. 아내로 나온 정유미씨는 ‘가족의 탄생’에서 제가 홀딱 반한 캐릭터. 이번에도 역시 ~ 전 이런 타입의 여성을 좋아하나봐요. 그러니까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아주 생활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여성. 비쩍 마르고 연약한 것 같은데 은근히 당차 보이는, 그리고 외모가 귀여운 여성. 후후.
카메오로는 하정우씨와 작가 김연수의 연기가 너무 극명하게 비교되는 것이, 오히려 관점 포인트였달까요(감독님이 의도하신 건 아닐테지만). 하하. 김작가님, 정말 진땀이 듬뿍 나셨겠어요.
휴, 그나저나 늘 제주도에 가서 살고싶다는 꿈을 달고 사는 요즈음인데, 영화 속 제주도 풍경이랑 화백의 집이 어른어른 해서 종일 일 못하게 만드네요. (뭐든 핑계 대는 건 저도 감독님 뺨 치게 잘 댑니다.) 그런데 만약 제주도에 살면 이웃들과 거리를 좀 두고 살아야겠어요. 문을 그리 항상 열어두고 사니까 안 당해도 될 일을 당하지 않습디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