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흐물흐물 퍼지기 시작하고,
출장은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마음만 바쁘지 손은 움직이기 구찮은 상태이고,
토요일부터 담이 결렸는지 등짝은 아파죽겠고...대략 애매한 화요일.

평소 회사 문앞에서 픽 하고 쓰러져보는게 꿈이라고 떠벌릴만큼 왠만한 스트레스나 피곤이 쌓여도 건강하다고 재고 다녔는데 허리와 등을 제대로 펴지 못하니 저절로 인상이 써지고 신경이 보통 쓰이는게 아니었다.
게다가 겉으로 봐도 아파 죽겠는거여야 무슨 유세를 떨어도 떨지,
이건 겉으로는 완전 멀쩡하니 그냥 공주병으로 치부될 억울함까지 보태진다.
그래도 진정 과로로 인한 아픔이라면야 유세를 떨었겠지만, 실은 이 증상이 토요일날 죽어라고 눠서 티비나 책만 보고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일어나지도 않은데 대한 벌이라고 내심 생각하는지라, 양심상 견디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우리 부서 대리님이 슬쩍 제안하시길,
본인이 지압을 어디서 잠깐 배웠는데 한번 해봐줄까나 하는 것이었다.
이 대리님으로 말하자면, 솔직히 그다지 친해지기가 어려운 상대이고 (라기보다는 내 입장에선 관리가 잘 안되는 타입, 상사로서의 역량 부족을 절절히 느꼈었다. ㅠㅠ) 입사 이래 여러가지 일로 좀 힘들었던 관계였는데 최근 들어서야 호전된 상태였다. 게다가 지압 받으려면 쭉 누워서 온 몸에 건드림을 당해야 하는데 성별도 남자공...

출장일까지 안 나으면 어쩌나 걱정이던 중이라,
일단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점심시간 이후에 받아보마 하긴 했지만, 소심한 나는 지난 수개월, 그러니까 대리님이 우리 부서에 입사한 지난 가을부터 어렵사리 지내온 기억들과 그에 따른 불편함, 둘만이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지압 당시에 내게서 저절로 나오게 될 신음소리 등을 떠올리며 걱정이 앞섰다.
아무래도 신음소리와 더불어 여러가지 자세들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 거 참 왠지 난감한데, 이걸 부끄러워하자니 마치 내가 더 음흉한 꼴이 되는거 같아서 그럴수도 없공.

평소 좀 뻔뻔한 나인지라 사실 이 정도로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좋아라만 할 지도 모르는데, 대상이 마침 그 대리님이고보니 저절로 마음이 움츠러든 거다.
사람이 사람을 들인다는 것, 그것도 마음으로 진정 들인다는 게 업무 위주로만 돌아가는 회사에서 쉬운 일이야 절대 아닐테지만,
나로서는 참 코드가 안 맞아도 많이 안 맞는다는 생각과 업무적인 답답함 때문에 같은 부서가 된 사실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는데, 뚝딱 지압을 해준다고 나서니...

아무튼 결론적으로 지압사의 기술은 훌륭했고, 설명도 자상했고, 내 마음과 뭉친 근육은 봄 시냇물처럼 졸졸 풀렸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뒷담을 하고 왠지 밉상으로 본 적도 많았는데...흑, 반성이 된다.
이런 이런, 간사하고 용렬한 마음이여,
그러니 아무리 상대가 미운 짓을 해도 내 쪽에서 이쁘게 봐 줄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이쁘게 봐 줄 구석들이 다 있는게다.
앞으로도, 마음밭 좀 이쁘게 해두고 똘레랑스를 가져야지, 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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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7-02-2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등이 아프다가 아니고 등짝이 아프다고 하실때부터 키득거리면서 읽었는데, 끝에 가서 완전 뒤집어졌어요. 맞아요. 똘레랑스! 크크크.

2007-02-27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2-2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 / 아무튼 손바닥처럼 마음이 홱홱 뒤집히는 이넘의 간사함을 좀 다스려야겠어요. 헤헤.
속삭이신 님 / 저야말로요, 스스로 참 못났다 싶은데도 잘 안되더라구요. 이쁘게 봐주는게... 으흐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당.

chaire 2007-02-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용렬한 건 마음이 아니라 몸인 거지요. 아니 정직한 게 몸인 건가요? 저도 킬킬거리며 웃었습니다. 신음을 내뱉으며 부르르 떠는(?) 과장님과 열심히 지압하시는 대리님의 풍경.. 근데, 지압이란 거 주는 이도 받는 이에게도 복이 되는 좋은 행위 같습니다. 하하. (저도 지압, 실력은 없지만, 해주는 거 받는 거 다 좋아하는 편이라)


superfrog 2007-02-2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카이레님은 오늘도 빈둥거리시는군요? 일은 언제 하실 거에욤?ㅋㅋ

rainy 2007-02-28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본명에 웃었던 것이 새삼 ㅋㅋ
지압을 받기 전 짧은 시간의 갈등이 넘 웃겨서
이 야심한 시각에 웃소 ㅋㅋ

치니 2007-02-2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aire / 정직한게 몸이다 , 맞는 말씀이네요. 신음소리를 마음껏 내지는 못하니까 숨을 참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다지요, ㅋㅋ 덕분에 오늘은 엄청 가뿐해졌어요!

Superfrog / 저는 종일 빈둥댈 시간도 없다가, 이제 짬이 나서 들왔어요, 흑.

rainy / 언니라면 아파 죽을 망정 나처럼 뻔뻔하게 그 앞에 누울 엄두도 못낼테지, 이럴 땐 뻔뻔한게 다행인건가. ㅋㅋ
 

전직원을 통틀어서 여직원이라고는 7명 뿐인 회사라 그런지, 아니면 근무 시간 내 휴식이라는 개념을 아예 도입하고 싶지 않은 사장님의 속사정 때문인지,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소위 여직원용 휴게실이란 것도 없고 그 비슷한 공간도 없다.

오래전 여직원만 몇백명이 되던 회사에서는 그 휴게실 내에서 들리는 온갖 뒷담화와 질리는 수다 때문에 오히려 멀리 하고 싶었건만, 가끔이나마 이렇게 한가한 오후에는 누구 눈치 안 보고 편안히 눠 있을만한 그때의 휴게실 안마의자가 살짝 그립기도.

 

상황은 열악할지언정 놀고픈 마음은 수를 찾아내는 법.

오늘부터 집에서 녹차를 싸오시는 대리님 이 분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경이롭다, 회사 일도 만만치 않은데 자전거를 사서 운동 겸 출퇴근도 하시고, 가사 일에 육아에, 영어 회화도 배우고 싶어하시고, 멀긴 하지만 재래시장이 가격 대비 질이 좋다고 부러 찾아가 찬거리를 준비하며, 아침상으로 생선구이도 가끔 드시고 온다. – 을 부추겨 녹차 세트를 들고서 초라하지만 쇼룸 비슷하게 차려놓은 작은 방으로 기어들어가 십여분의 휴식 시간을 내봤다.

 

대리님: 저는 항상 생각이 너무 많아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런데 시간은 없고 그래서 늘상 쫓기는 기분이야, 지금도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해요.

: (멍한 표정으루) 저는 항상 생각이 너무 없다는 기분인데. 하고 싶은 것도 그다지 많지 않고아무 할 일 없는게 제일 좋은데….헤헤.

대리님: 근데 생각만 많지 실천이 안되서요,…

: 그럼 그중에 제일 하고싶은 것부터 하면 안되낭….

대리님: 그게 그렇지가 않죠. 진짜 마음으로부터 젤 하고 싶은 거랑, 젤 해야 하는 거가 달라서요. 근데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할라믄 젤 해야 하는걸 해야되잖아요.

: (@@ 한 표정으루)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할라믄, 젤 하고 싶은 거 해야 되는거 아닌가이상하다….

 

휴식 마치고 책상으로 돌아와 또 컴과 놀면서 휴식하는데 ^-^;;; 아무래도 대리님 생각에 동의가 안된다.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렇다면 내가 젤 하고 싶은 거부터. 이게 단순한 내 머리로는 아무래도 맞는데… '원하는 방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마 첨부터 다른 의미인가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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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2-2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런 얘기 들으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그런 거구나... 입을 헤 벌리고 고개를 주억거려요..- -;; 아마 그럴 때 표정이 @@한 표정이겠죠. 큭. (근데 치니 님은 대리님보다 높으시구나.. 이런 맹한 생각 하며 읽었다지요..^^)

치니 2007-02-2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성공하는 사람들은 저와 같은 사람과는 아무래도 다른가봐요. 으 하지만 성공 안하고 맨날 하고싶은 것만 하고 놀고 싶어요, 헤헤.

mooni 2007-02-2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치니님. 왜 이렇게 웃겨주시는 거예요. ㅋ 멍한 표정으루와 @@ 한 얼굴, 완전 귀엽습니다...>.<

대리님은 도전하는 포즈를 취해서 자신이나 남한테 인정도 받고 싶고 그러면서도 또 실제 도전은 안해도 되서 피로도와 실패후유증은 확 줄이는, 매우 저렴하고 현실적인 타협안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뭐, 아닐지도 모르죠. 모르는 분이니...호호...근데 저도 회사에서 저런 상담(?) 자주 들어요. 심드렁한 얼굴로요. 속으론 으으~~ 일기는 방에서 혼자 쓰셔! 하고 생각하면서요. ㅋㅋ

sudan 2007-02-2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회사에서 여직원끼리 대화중에 @.@ 표정 지은 적 있어요. 억지로요. 속으로는 -_-;;; 표정이었기 때문에, 곤란했었어요. 그 직원이 말하기를 "난 지금이 너무 너무 행복해요. 집에서는 남편이 잘해주고, 애기가 너무 이쁘고, 회사에서는 회사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출근하는 게 정말 좋아요." 그러더라구요. -_-;;;

sudan 2007-02-22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그런데, 지금 좀 핀트가 빗나간 댓글이었군요. 저 '여직원끼리의 대화'가 저도 좀 오랫만이었기때문에, 끼어든다고 끼어든건데.

치니 2007-02-23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하연 / 웃겨요? 히히. 웃어주시니 감사할 따름. 톰 존스는 이제 삼분의 일 정도 남았어요, 곧 갑니다 ~
마하연님 말을 듣고보니, 그분이 그런 스타일인 거 같기도...@@ 피로도는 좀 높아보이지만요. 저는 뭐 상담을 자주 듣는 타입은 아니공, 어제 유난히 한가한 바람에 모처럼 대화랍시고 나눈거죠. 헷.

수단 / 음, 그 여직원은 정말 특이하네요. 왠만해선 그런 말 하는 사람을 최근 본 적이 없는데...진실이야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 표현을 서슴없이 한다는 자체도 특이해요. ㅋㅋ 빗나간 댓글이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울끼리 수다 떠는게 재미있기만 한뎅.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음이 불안하고 잠을 설치는 날들이 있다.

겨울이 멈칫 거리며 갈까 말까 태세를 갖추는,

성급한 사람들에게는 봄이라는 단어를 디밀어도 되겠다 싶은,

2.

마무리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새롭게 다가올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서성대고 또 서성대게 만드는 어중간한 2.

 

지리적/공간적 감각이라곤 제로에 가까운데도,

아침이면 매번 어설프게 동서남북을 따져보면서

침대 머리를 어디로 하고 잘까를 고민한다.

지난 밤 그토록 울렁이던 뱃속과 지끈하던 머릿속이 혹시나 그런 풍수지리와 관련이라도 되는게 아닐까 하는 또 다른 불안감을 더 얹으며.

칫솔질을 하는 손목은 시큰하고,

거울에 보이는 눈가는 퀭하다 못해 꺼지는 중.

나는 영락없는 이터널선샤인의 짐 캐리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다가, <FTA 폭주를 멈춰라>를 읽고, <톰 존스>를 읽다가 <허니와 클로버>도 다시 뒤적이고 싶고.

읽는 책마다 나만 모르는 이야기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거나

내겐 도무지 없는 재주로 세상이 빛나는 것 같거나 하여

마음은 또 들쑥날쑥이고 신경은 삐죽삐죽이다.

낙낙하고 차분하게 무엇에 몰입하지 못하니, 조금만 틈이 나도 시빗거리를 찾는다.

 

갈수록 생활은 그저 묵묵한 밥벌이 정도가 아니라, 소리 없는 절규 속에 발버둥 치는 뭉크의 그림 같고

무기력한 공상이나 낭만은 겉치레로도 위안을 주지 못한다.

한마디로 사는게 고단하다는건데,

어디에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도 참 병신 같아 보여서 창피하기도하고 또한 너무나 부질이 없다.

 

뭐 결론은 늘 그렇듯이, 대안은 있을 테니 대안을 어서 찾자 라는거다.

이렇게 밖에 못사는 이유는 다른 어디에도 없고, 내 마음 속에 있는거겠지.

풀 한포기라도 감동적이면 고단한게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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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7-02-05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몰랐는데 이런 이유들 때문에 2월이면 저도 서성거렸나봐요.
시간의 세례를 받다보면 흐흐흐, 거리는 날도 오겠죠? ^^ 화이팅 하세요!!

깐따삐야 2007-02-05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월, 6월, 11월을 별로 안 좋아한다지요. 왜 그런 달이 끼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애매모호해가지고는 사람 엉거주춤하게 만들고, 엉거주춤해 있는 사이에 훌쩍 가버릴 거면서 왜 끼어가지고는 버둥거리는지. 흠...

mooni 2007-02-0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 존스, 재밌나요...? 워낙에 분량이 버겁게 길기에, 수중에 넣어둘까 말까 망설이는 중인데요. ^^

Fox in the snow 2007-02-0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게 고단하죠..정말. 저도 요즘은 아침마다 불안해요. 그냥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한달한달이 불안한데, 그 이유를 저도 잘 몰라서 더 불안해요.

치니 2007-02-07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 / 하두 기운이 안나서 왜 그럴까 하고 끄적이다보니 저런 이유들이 저절루 나오더라구요. ^-^ 감사합니다 ~

깐따삐야 / 그러고보니 11월은 늘 더 불안했던 듯. 그래두 2월생이라 2월은 제게 정이 가는 달이에요,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

마하연 / 남루한 페이퍼에 이렇게 산뜻한 생뚱 질문, ^-^ 역시 센스쟁이 마하연님입니다. 톰 존스, 두께에 비한다면 꽤 술술 넘어가요. 어떤 사람들은 지루하다고 할만한 장광설도 좀 있기는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그것도 괜찮고. 근데 넣지는 마세요, 제가 보내드릴게요 ~ ^-^

Fox in the snow / 저 글을 쓰고 '음악'을 떠올렸어요. Fox in the snow님도 음악 좋아하시죠...불안한 영혼에게는, 음악이 그나마 가장 큰 위안이 되는거 같아요.

mooni 2007-02-0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 다정한 치니님♡♡♡ 너무 좋아요. 헤헤. 톰 존스 다 보시면 저 보여주세요. ^^ 치니님 덕분에 지루한 수요일이 반짝반짝해졌습니다. 지금. 치니님한테도 뭔가 즐거운 일이 생겼음 좋을텐데요. 호호.

근데, 남루한 페이퍼라고 하셔도 여러가지 정보가 있는걸요. 치니님 생일 2월이시군요! 언젠지 슬쩍 귀띔이라도 해주셔야 되요. 꼭. ^-^


치니 2007-02-0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하연 / 옙!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총1400페이지가 넘어요 ~), 최대한 빨리 보낼게요 ~ 마하연님 수요일이 반짝반짝 해졌다니, 저에게는 그것이 바로 즐거운 일!

2007-02-13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1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월은 참 이상해요.
아니, 생각해 보니 다, 다른 달들도 마찬가지.^^

치니 2007-02-1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 속삭이신 님, 고맙습니다. 그 책은 기억했다가 피해야겠어요. ㅋㅋ

로드무비님, 맞아요 생각해보면 달마다 특색이 ... 하루하루가 다 다르죠.
 
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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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책은 이십대 시절 구절마다 밑줄을 긋고 싶었던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두 권의 책만 읽어놓고도, 알라딘에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 대해 적혀져있는 페이퍼나 리뷰들을 훑어보던 중 <우생학>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글귀가 있었으나 내가 아는 러셀이 그런 찬성을 했을 리가 없을 것이라는 했다 하더라도 전체의 우생학을 두고 한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의 논리에 공감한다는 뜻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우격다짐을 근거 없이 하고 싶을 만큼 이 사람에 대한 내 호의는 뿌리가 깊다.

 

철저한 탐색이나 조사 없이 이렇게 줄기차게 가지고 있는 호의와, 글로 표현되었을 뿐인 인간 러셀이 갖는 매력에 대한 동경은 그럼 어디서 나오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당차게 주장하고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역설할 수만은 없는 일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타협했기 때문이다. 일정 부분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무수한 핑곗거리들을 대면서

어느 시점까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진실에 대한 의지도,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는 희망도, 거대 경제 논리에 밀려 사라지기가 일쑤다.

적어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라도 드는 정도의 논리라도 갖추고 있어 보이는, 나름 올곧은 자기주장 마저도, 주장을 위한 주장, 남에게 보이기 위한 노선의 표현, 들끓는 자기 안의 미해결 난제들의 무대뽀 적인 배설 등을 제외하고 나면 몇 개 남지 않는 현실에서,

문득 나를 돌아보면어설프게 주장이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잠시 들었던 손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게 무지한 것을 깨닫고 심히 창피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바쁘다. 바쁘니까, 논의하고 결정지어야 할 일들에 대한 숙고를 해보지 않아서 무지하고, 무지해서 별로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무기력하고, 무기력한 와중에 이런 나를 밥먹여주는 사회에 그나마 노동으로 보상하려 하지만, 사회는 소비자 없는 노동이 되풀이되어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다시 숙고하지 않은 소비를 해야 하고 그 소비의 대가로 또 노동을 해야 한다. 악순환, 그 자체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일은 물론, 개인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을만한 일에 조차도 사유하지 않고 시니컬한 노예로 살아가며, 이들 노예에게는 애석하게도 사유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새가 없다.

조금만 더 달리면 숨이 차서 쓰러질 거 같을지라도,

사유하느라 고삐를 늦추면 이 세계에서 도태되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떨며 지낸다.

그 점에서 현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러셀이 백여 년 전에 우려했던 것에서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못한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러셀의 시대로 돌아가서 그가 그토록 간절하게 반복적으로 들이대는, '게으른' 시간을 만들어 보고 그 시간을 사유에 써보는 것은 조금도 시대착오적이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소리를 해서, 매번 어이없다는 반응을 들어야 했다.

잠시라도 시간을 완전히 헛되이 쓰고 싶어, 정말 아.... 하지 않으면서!”

러셀처럼 똑똑하고 논리정연하게 말하지 못해서이지, <게으름에 대한 찬양>도 같은 맥락이었던 걸 영 몰라주니 원. 차라리 다음에는 철딱서니 없다, 나잇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대신, 입 다물고 이 책을 슬며시 권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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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 in the snow 2007-01-25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생학문제는 확실히 긍정적인 입장이었요. 물론 히틀러처럼 우성인자와 열성인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자의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요. 어떤 면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이야기인 것도 같아요. 지금도, 기형아검사를 하고 있고, DNA상에서 유전되지 말아야 할 형질들을 선택적으로 없애기도 하잖아요. 그런면에서 러셀은 미래학자죠.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지식인중 한명라고 생각해요. 촘스키나 제인구달이나 수잔손택처럼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치니 2007-01-2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ox in the snow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헤헤 동지를 만난 거 같은 기쁨이...
(사실 님과는 매번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 책은 러셀의 잡문이라면 잡문이라 할만한 글들도 꽤 있고, 여기저기 기고된 것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한편으로는 너무 큰 주제를 짧은 글에 담은거같기도 하고 약간 어설퍼보이기도 해요. 그래도 탕탕 주저없이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는 러셀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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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획일화 경향과 더불어 민주주의에 대한 그릇된 관념이 퍼져 있는 듯 하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똑같기를 요구하며, 따라서 어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게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우쭐댄다'고 받아들인다.
프랑스도 미국 못지 않게 민주적인 나라지만 이런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든, 법률가든, 성직자든, 정부 관료든, 프랑스에선 모두들 제각각의 유형들이다. 다른 직업에 대해 우월함을 내세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직업마다 그 나름의 전통과 기준이 있다.
미국에서는 모든 전문인들이 기업가란 틀로만 평가된다. 마치 오케스트라를 바이올린만으로 구성하라고 법령으로 정해 놓은 것과 같다. 사회는 다양한 기관들이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하나의 틀 또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보는 것이 낫냐, 듣는 것이 낫냐를 두고 눈과 귀가 서로 다투다가 동시에 두 가지는 못하니까 둘 다 하지 말자고 결정하는 경우를 상상해보라. 내가 보기엔 미국에서 이해된 민주주의가 바로 이렇다. 그것이 무엇이든 보편적이지 않은 탁월함에 대한 기묘한 질시가 만연해 있다.
물론, 운동 분야만은 예외다. 이 분야에선 귀족주의가 열렬하게 환호 받는다.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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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7-01-2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그토록 싫은 기분이 들었던 미국 여행에 대한 감상이 이것으로 대변되는구나.
또한 프랑스에서 편안한 마음이 되는 것도 이것으로 대변되는구나.
제대로 된 표현은 정말 멋지고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