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아베크 변주곡> 악보에는 “폴린 아베크 백작 부인에게 헌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인지, 슈만의 친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야기와 인물을 자주 상상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또한 상상 속의 인물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재미있는 점은 멜로디의 음 라-시♭-미-솔-솔이 아베크의 A-B-E-G-G에서 온 것입니다. 또 두 번째 멜로디는 이 이름을 거꾸로 한 G-G-E-B-A입니다. 이 테마가 곡 안에 숨어서 변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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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근을 싫어하는군요 저는 김치를 싫어합니다 - 제주에서 서양 식당하는 사람의 생각
임정만 지음 / 밑줄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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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미있는 책에 어찌 100자 평 하나 없단 말인가! 제주 이민자로서 구구절절 내 마음 그대로 글로 옮겨주셔서 감사한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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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음악은 말이 아니다’라는 레토릭은, 음악을 종교 없는 시대를 구제하는 새로운 종교로 삼으려는 세력과 새롭게 등장한 시민계급 청중을 상대로 음악으로 장사를 하려는 세력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데서 생겨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이 독일 낭만파에 의해 일종의 종교체험으로까지 드높아지면서 동시에 음악에서 ‘침묵’이 점점 신성시된다. 비평 또한 말의 무력함을 웅변적으로 내세우는 레토릭으로, 침묵하는 청중 형성에 가담한다. 나아가 바야흐로 분업의 시대에, 음악 행위가 ‘하는 것(작곡가/연주가)’과 ‘향유하는 것(청중)’과 ‘말하는 것(비평가)’으로 점차 분화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태어난 음악산업에는 청중이 자기주장을 별로 하지 않고 조용히 있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음악은 말할 수 없다……’라는 레토릭에는 다분히 19세기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있었던 셈이다. 1장에서도 시사했듯이 말을 초월한 음악 체험은 존재한다. 그러나 음악 속에서 특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추구할 때 어쩌면 우리는 전전세기의 사상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지도 모른다. 

음악은 언어를 초월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철두철미하게 언어적으로 영위하는 것이다.


유려한 음악은 사실 말로써 음미하고, 숙고하며, 수정을 거쳐 방향을 잡은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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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함과 물불을 가리지 않는 통제의 욕망, 무력한 분노가 바로 그 반응이다. 특히 우리는 무력한 분노를 대부분 타인에게 투영시키면서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 자신의 무력한 분노가 아니라 주변 환경이라고 느끼게 된다. 

무엇을 질병으로 불러도 되는지를 주입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해서 죽겠다고, 삶이 무의미해서 죽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불면에 시달린다고,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할 수 없어 괴롭다고, 술을 마시고 싶어 미치겠다고, 직장이 불만스럽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허용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질병의 표현 형태로 가능한 온갖 것들을 들먹인다.


  그럼에도 불면과 음주와 직장에 대한 불만 토로는 세기의 질병의 다양한 측면에 불과할 뿐이다. 세기의 질병, 즉 인생의 무의미함은 인간이 사물로 변한 데 그 원인이 있다.

피곤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염세주의자는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 피곤할수록, 절망에 젖어 있을수록, 염세적일수록 얻을 수 있는 자유는 줄어든다. ‘열정적인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퇴보에 빠지지 않고 전진하고 진보하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독립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는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의 이 오래된 명언은 자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친다. 예부터 자기 인식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성숙에 이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잠재적으로 우리인 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예술가만큼 객관적인 수단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 혹은 좀 더 훈련할 필요가 있지만 — 예술가와 같은 자발성을 갖춘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런데 예술가들의 처지는 정말 곤란하다. 성공한 예술가의 개성이나 자발성만 존중을 받기 때문이다. 작품을 파는 데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미친놈’ 아니면 ‘신경증 환자’ 취급을 받는다. 이때의 예술가는 혁명가와 비슷한 처지이다. 성공한 혁명가는 정치인이 되지만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는 범죄자다. 

게다가 어른들은 타인의 적대감과 거짓을 인식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은 타인에게서 부정적 속성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고, 어른들과 달리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별 이유도 없이’ — 그들이 뿜어내는 적대감이나 거짓을 아이들이 알아챈다는 아주 타당한 근거를 제외하면 —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서 이런 반응을 몰아낸다. 아이가 평균 성인의 ‘성숙도’에 도달하여 예의 바른 인간과 악당을 구분하는 타고난 능력을 상실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도 악당이 만천하에 드러난 범행을 저지르지 않으면 악당을 찾아내지 못한다. 


또 한편으로 교육은 아주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결코 ‘자기의 것’이 아닌 감정을 느끼도록 가르친다. 특히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무비판적으로 친절하며 미소를 지으라고 가르친다. 그래도 미처 교육이 다 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나중에 사회적 압력이 해결해 준다. 웃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눈에 ‘상냥한 사람’이 아니다. 웨이트리스, 세일즈맨, 의사가 되어 서비스를 팔려면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육체노동 말고는 팔 것이 없는 사회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 사람들과 제일 꼭대기 사람들만이 특별히 ‘상냥할’ 필요가 없다. 친절과 명랑, 그밖에 미소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전기 스위치처럼 켜고 끄는 자동 반응이 된다. 

우리 시대는 죽음을 아주 간단하게 부인함으로써 삶의 기본적 측면을 부정한다.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자각을 삶의 가장 강한 동력으로, 인간적 연대의 토대로, 기쁨과 열정에 강도와 깊이를 선사하는 경험으로 만드는 대신 이런 경험을 억압하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억압하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비합법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부인하려 애쓰지만 죽음의 공포는 생생하게 살아남는다. 하지만 억압되었기 때문에 번식력은 없다. 다른 경험들의 깊이가 부족하고, 우리의 삶이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 정신분석학자들 역시 — 결코 너무 슬프거나 너무 분노하거나 너무 흥분하지 않는 ‘정상적’ 인격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들은 ‘유아적’ 혹은 ‘신경증’과 같은 단어를 이용해 ‘정상’인의 전통적 모델에 맞지 않는 인성 유형이나 특징들을 비난하였다. 이런 식의 영향은 대놓고 욕을 하는 예전 방식보다 더 위험할지 모른다. 예전에는 비난을 받는 사람이 자신을 거부하는 어떤 사람 혹은 견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그에 반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누가 ‘과학’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인간 내면의 강인함은 자신에 대한 진리를 아는지의 여부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환상은 지팡이와 같다.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은 되지만 그를 더 약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온전하게 완성할수록, 다시 말해 ‘자신을 잘 꿰뚫어볼수록’ 더 강해진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은 인간의 힘과 행복을 목표로 하는 기본 계명이다. 

우리는 모든 에너지를 가지고 싶은 것을 갖는 데 쏟는다. 그런 행동의 전제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묻지 않는다. 전제 조건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현대인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정말로 스스로 원하는 것인지를 고민할 시간을 내지 않는다. 학교에 다닐 때는 좋은 성적을 받고 싶고, 어른이 되어서는 성공의 사다리에 더 높이 오르고 싶고, 돈을 벌고 명성을 얻고 싶고, 더 좋은 차를 사고 여행을 하고 싶다. 


현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원하는 게 마땅한 것만 원한다.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이는 인간이 해결해야 할 가장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이다. 완제품으로 제공된 목표를 우리의 것처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악착같이 회피하려는 바로 그 과제인 것이다. 

현대인은 모두가 ‘자신의’ 목표라고 우기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엄청난 모험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하지만 위험과 책임을 감수하고 자기 자신의 목표를 정하는 데에는 심각한 공포를 느낀다. 혼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증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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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감속노화 실천법
정희원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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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 수록 약간 뻔해지는 감은 있으나, 가독성도 좋고 주치의 제도가 없는데 진료 상담 시간은 턱없이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궁금증 해소에 도움되는 부분도 많다. 도움되는 운동이나 식단 같은 건 기억했다가 바로 실천하면 좋을 실용적인 책이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애쓰신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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