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과 일한 지 어언 20년이 넘지만, 백인 남성이 한국에 일하러 와서 한국어 배우려고 하는 꼴은 한번도 못 봤다. 그나마 프랑스니까, 미국인이자 백인인 남성이 프랑스어를 쓰기는 하는 모양인데, 그런 그도 작가랑 대화할 때는 영어로 말하다 잘 안 통하자 결국 짜증을 냈다고...어떤 상황인지 그림처럼 그려져서 너무나 씁쓸하지만, 작가의 마지막 말에 동의한다.

사람은 각자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법이다. 나는 그를 나의 변두리 세계관으로 끌어와 헤아려 보았다. 나와 같은 변방의 사람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별것 아닌 이유로 그들은 쉽게 포기하고 스스로를 놓아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너무나 쉽게 그 잘못을 타인에게 돌릴 수 있겠다고.


  외국어를 배우고, 나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온 이들은 늘 변방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외국인과의 소통이 쉽지 않다고, 말이 잘 안 통한다고 이를 상대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영어를, 프랑스어를 못하는 본인 탓이라고 여기며 어떻게든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 변방에서 치열하게 일어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 전혀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서 모르는 언어로 무언가를 이루어 나가야 할 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모든 상황을 예민하게 감지해 나가며 목적에 이르는 정신적 힘을 갖추게 될 것이다. 정신승리라 할 수도 있겠지만, 힘든 변방인의 삶에도 이런 강점은 있어야 좀 덜 억울하겠다.


  세상은 제1세계의 논리와 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그 영향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스민다. 비록 그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기 쉽지만, 그들의 특권과 차별을 의식하고 이야기하는 일은 그럼에도 의미가 있다. 

- 이것은 작가가 한때 약자였어서 나온 말이 아니라, 약자였을 때 겪은 경험을 결코 잊지 않는 마음의 소유자라서 나온 말. 약자로 살다가 강자가 된 뒤 돌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한때 약자였던 경험과 당연하지 않은 배려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내 안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자주 상기한다. 세상에는 자신도 언젠가 약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가 세상을 가르는 본질일 수도 있다. 

- 아, 이거 진짜 레알임 ㅋㅋㅋ 나도 똑같은 경험을 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걔네한테는 그저 아시안일 뿐이여 그것도 북인지 남인지 모를...이상한 분단국가에서 온 아시안.

여성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쁜 외모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남들에게 예쁘지 않다고 비춰질 스스로의 외모가 고통스러운 채로, 프랑스에 왔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분홍색 발바닥과 빛나는 털은 고양이들 사이에서나 기준이 될 만하지, 강아지 무리에서 고양이는 그저 고양이일 뿐이다. 그런 기분이었다. 눈에 쌍꺼풀이 있거나 없거나, 피부가 하얗거나 아니거나, 그들에게 나는 그저 먼 곳에서 온 다른 사람이었다. 

-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시급한데...이런 희망이 비현실적인 건 알아.

프랑스에서는 집주인이 마음대로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고, 월세를 인상할 수도 없다. 법적으로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경우는, 집을 매매해야 하거나(세입자에게 구매 우선권이 있다), 본인이 입주해서 살아야 할 때뿐이다. 매매하는 경우 임대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고, 본인이 입주할 경우 최소한 6개월 전에 예고해야 한다. 세입자에게 법적으로 커다란 잘못이 있을 때는 계약 정지가 가능하나, 그런 경우에도 겨울에는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두었다. 월세 인상은 1년에 한 번 임대계약서에서 정한 기간에만 가능하다. 프랑스 통계청은 실제 월세 인상률을 분기별로 발표하고 있는데, 2012년부터 2021년까지의 비율을 살펴보면 0퍼센트인 경우를 포함해서 아무리 높아도 2.2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 그러네, 정말

집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집을 소유하는 거라는. 사고 나면 이후에는 집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수십 년을 빚 갚기에 맞추어 사는 삶이 과연 자유로운가? 그런 낙관은 시간이 무조건 내 편이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 같은 게 아닐까? 삶의 불안정성과 시간의 냉정함을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변화하지 않을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건 아닐까? 집도, 함께 빚을 갚는 상대와의 관계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니, 변하지 않도록 내가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집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변화가 두려운 사람들의 자기방어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하,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진짜 있다고?

그로부터 3주 후, 계약서를 쓰기 위해 만난 부동산 중개회사의 대표가 말했다. 다수의 지원서를 놓고 고민하던 집주인이 의견을 물어 왔을 때, 비교적 안정적이지 않은 재정 상태에도 우리를 추천한 것은 모두 지원서 때문이었다고. 모두들 그 집의 투자 가치와 가격 조정 가능성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만이 그 집에서의 일상과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었다고. 덕분에, 자신들의 일이 그저 ‘상품’이 아닌 누군가의 ‘삶의 장소’를 다루는 일임을 상기하게 됐다고. 누구보다 우리가 그 집에서 잘 살 것 같은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도와주고 싶었다고. 대표가 그 이야기를 하는데 사무실 여기저기서 각자 일을 하고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공감

집이 무슨 잘못인가. 그 안의 내용물인 사람이 문제고,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게 사람 아닌가. 글이 안 써져서 이사를 간다니, 그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사를 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집과는 상관이 없다고, 딱 잘라 대답했다. 하지만 형식은 내용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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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08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볼래요!!

치니 2023-09-09 00:24   좋아요 0 | URL
재미나게 읽으실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