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전거 탄 소년 - The Kid with A Bike
영화
평점 :
현재상영
B가 영화관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한 말은 '불쾌하다'였다.
익히 알고 있는 '인간이 지닌 모든 악은 영원히 구제불능이다'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일깨워줬기 때문이란다.
평소 인간에 대한 기대가 1%도 남아 있지 않다고 종종 주장하는 B이기에, 그리고 그 저간에 얼마나 많은 실망과 상처가 켜켜이 쌓여 있는지도 알기에, 고개를 끄덕여 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B는 인간을 포기했을까? 1% 남지 않은 그 기대 중에 '그래도 인간이란 종도 참 괜찮은 종이다'라고 여기게 할 만한 사람이 있다는 희망을 버렸을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 자신 바로, 그 지긋지긋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이 얼마나 힘겨운 모순이냐.
이토록 고통스러운 희망과 절망 사이에 있는 우리 어른은, 천진난만하게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을 가끔 그리워한다. 그땐 몰라서 좋았지, 하며. 아아, 그런데 그 작은 착각의 시절조차 갖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른이 되어도 인간으로 태어난 원망을 갖기 마련인데, 아이들의 그것이야 오죽할까.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 아무런 죄가 없지만 단 하나 있다면, 부모 잘못 만난 죄로 고통받는 그 아이들.
영화는 보여준다.
부모라면 당연한 천륜으로 자식을 책임지리라는 암묵적 동의가 번번이 깨어지는 이 비정한 세상 속에 사실은 그저 조금 더 강한 어른 인간이 (이 때의 어른은 생물학적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연약한 동물 (이 때의 동물은 아직 '인간'의 영혼으로 완성되지 않은 미성숙 개체인 아이다)을 품는 행위 또한,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일 것이며, 우리는 이 본능을 믿을 수 밖에, 다른 살아갈 도리가 없다는 것을.
사만다는 비정상적으로 선한 인간이 아니다.
사만다는 그 본능이 발휘되는 어떤 순간, 시릴이 도망치며 넘어졌을 때 시릴이 자신을 껴안는 그 필사적인 강도를 느낀 - 마지막 생명줄을 본능적으로 붙잡았던 그 순간을 그냥 넘기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마도, 시릴에게 자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뿌듯함이나 속죄와도 비슷한 위안감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냥, 모르겠지만, 이끌린 것이다. 시릴이라는 한 아이가 이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동앗줄이 운명처럼 그녀에게 드리워진 것이다.
어떤 특별한 강인함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녀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그 본능을 감지하고 운명을 받아들였으며, 용기를 내어 뚜벅뚜벅 자신이 할 바를 해낼 수 있었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졌다. 그래, 대놓고 말하자. 그러니까, 나는 인간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참으로 위험한 생각을 하게 만든 다르덴 형제들이다.
(언젠간, '불쾌하다'고만 말했던 B도 나와 같은 믿음을 가지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감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