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는 없다.
다락님께 그림책을 권했다 실망을 안겨드리곤 하는 장본인으로서 ㅠㅠ
어딘가 죄송한 마음으로 변명 삼아 간단히 적어 봅니다.
그림책은 여러모로 취향 타는 영역이지요.
어른과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 사이, 어린이 사이에도 좋아하는 책이 엇갈리고요.
저 역시 남의 추천에 혹했다 실망하기도 해요.
정답은 없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좋은 그림책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림책을 읽어야 되는 이유는 없습니다.
타미에게 읽어줄 책을 찾으신다면 일단 타미가 좋아했던 책에서 출발해서 찾아보면 좋겠죠.
제가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역시 변명으로 제 생각을 적자면..
저는 어린이의 그림책 읽기와 어른의 그림책 읽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쪽이고,
어린이 스스로 그림책을 고르기는 어려우니까,
어른이 가능한 한 어린이의 눈을 염두에 두고 골라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물론 자기가 먼저 좋아야겠죠. 저는 결국 그렇게 되더라고요.
어떤 책은 자신 있게 골랐는데 반응이 뜻뜨미지근하고
어떤 책은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아이가 좋아하기도 해요.
시시한 책도 재밌게 읽어줘서 성공할 때가 있고요.
저는 어린이에게 그림책 읽어 주기가 (흔한 비유대로) 화분에 물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장면의 어떤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남을지 알 수 없다는 뜻에서 나온 비유겠지요.
어떤 꽃이 필지 모르고, 심지어 꽃이 안 필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물을 주는 것.
그런 마음으로 저는 읽어 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계속 죄송한 마음으로 (저 이제 추천 안 할게요 ㅠㅠ)
저의 경험을 메모해 봅니다.
저는 이 책을 초등학교 2~3년 아이들과 읽었어요.
표지의 느낌이 어떤지 (시원해요, 끈적거릴 것 같아요, 웃겨요, 수박 먹고 싶어요, 이거 수박씨예요?) 어떤 내용일 것 같은지 (수영하면서 먹을 것 같아요, 엄청 작은 사람들 얘기 같아요) 물어보고 읽기 시작했어요.
수박이 갈라지는 장면을 보고, 와 엄청 잘 익었나 보다, 하면 어떤 아이들은 아 수박 먹고 싶다, 그러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별 요령이랄 것 없이 책에 나오는 글자를 그대로 읽어 주었습니다. 석석석석 글자를 짚으면서 읽으면 아이들도 따라서 석석석석 세어가면서 읽었어요. 그러다 몰입했는지 해가 지는 장면에서 "아아 안 돼.."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더라고요. 다 읽고 다른 수영장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이 책은 7세~초등 2학년과 읽었어요.
흑백 그림에 얼의 스카프만 빨간색이어서 아이들이 잘 집중하더라고요. 사람 친구한테 자꾸 도토리를 얻어 오는 얼에게 엄마가 "얼, 얘기 좀 하자."고 할 때 약간 엄마들 말투로 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아아 얘 혼날 것 같아요." 했어요. "우리 엄마도 이럴 때 있는데 그러면 혼나는 거거든요." 그럴 때 같이 낄낄 웃고요. (엄마들 죄송...) 이 책은 얼이 집을 나서서 스스로의 힘으로 도토리를 구하는데 거기엔 친구가 준 빨간 스카프가 힘이 되었다는 것, 그런 성취 다음에는 얼이 스카프 없이 혼자 힘으로 도토리를 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숨은 주제인데, 저의 경우는 그런 주제에 대해 말하지 않고 읽어주기만 했어요. 화분에 물을 주듯이. 어떤 아이는 "근데 왜 (스카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다시 도토리를 찾으러 가요?" 묻기도 하더라고요. 그 이유에 대해선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고요.
그림책을 고르는 저의 딜레마는 '어른 취향'이 아니면서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어린이와 읽고 싶다는 데 있어요. 제가 어른이니까 딜레마죠;;; 그래도 저는 제가 좋아해야 어린이가 좋아한다는 믿음은 쭉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공부하는 만큼 어린이도 공부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다짐만;; ) 하고요. 아직 제 공부가 부족해서 다락님한테는 번번이 실팬가 봐요. 어어어엉엉엉. 저를 버리고 가세요. ㅠㅠ 저를 버리세요. ㅠㅠㅠㅠㅠㅠ
가만,
아니면 내가 너무 소개를 잘하나??? 괜히 막 혹하게??? (뭣이????????????)
여러 모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