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온천 달걀, 온천 달걀 들 해서 도전해보았는데 3연속 실패했다. 실온에 둔 달걀을 1) 다 끓은 물에 6분 30초 + 찬물에 4분 두기도 하고 2) 다 끓은 물에 15분 + 찬물에 3분  두기도 했으며 3) 끓는 물에 넣고 약불로 3분 + 불 끄고 3분 + 찬물에 3분도 두었으나 실패(사실 이 333 레시피는 그럴 듯해서 두 번이나 했다. ㅠㅠ)  앞의 두 번은 흐물거려 계란후라이를 했고, 망할 333 레시피로는 반숙이 되어 버렸다. 착한 남편이 "나 반숙 좋아해요."라며 먹어 주었지만 나는 이를 득득 갈며 신경질을 냈다. "이 블로그 저 블로그를 봐도 온천 달걀의 핵심은 레시피가 간단하다는 건데 난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그게 약오른다고요!" 그러자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온천 달걀 어렵다는 포스트를 찾아보면 어때요?" ...여보.

 

*

 

 

 

 

 

 

기회와 능력이 되면 한번 홍영우 선생님(할아버지♡) 찬양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 덤덤하면서도 귀엽고 익살맞은 그림은 물론, 군더더기 없는 입말까지도 옛이야기 그림책으로 100점이다. '옛이야기 그림책'이 비교적ㅠㅠ 시장이 괜찮은 데다 장르 자체의 매력이 있어서 화가들이 많이 도전하는데, 나는 지나치게 화려한 그림보다 홍영우 선생님의 소박한 그림이 좋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7세 남이 올 때마다 읽어달라고 하고 기쁘게도, 나 역시 읽을 때마다 좋다. 특히 <<딸랑새>> 으하하.  

 

 

고추의 한살이로 들여다본 고추밭 생태계 _  고추

 

때마침 고추 익는 가을이라 보고 있는 책이다. 그림이 아주 정감 있고 설명이 시시콜콜하지 않아서 좋다. 화자가 고추씨인데  "고추는 이렇게 자란단다~" 하는 것과 "나는 이렇게 자랐어."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고백하자면 나는 '생태 그림책'이란 타이틀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의 부제에 있는 '생태계'는 책의 내용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오늘 10세 남과 이 책을 보고 요앞 텃밭 울타리 밖으로 나온 빨간 고추를 구경했다.

 

 

캄펑의 개구쟁이

 

 

 워낙 유명한 책인데 내가 너무 늦게 보았다; 말레시아 작가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자전적으로 그린 만화다. 기후도 풍습도 다른 말레시아 얘기인데다, 지금부터 5,60년 전 이야기라 아무래도 좀 낯설겠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아무래도 좀 낯설었는데 어느 순간 응? 하고 이 애들 놀이의 규칙을 진지하게 이해해가며 "오, 재밌겠다!" 하고 있다. 정답다. 우습다. 세밀하다. 무심하다. 아름답다. 그런 만화책이다. (혹자는 그림책이라고 하기도.)

 

 

푸른 개

 

7세남 한 분이 요새 걱정이 있다. 글자를 익히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자연스럽게 익히려니 하고 여유 있던 부모님도 함께 걱정하는 것이, 글자를 모르는 것 때문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 고객이 유난히 이 책을 좋아한다. 어떤 책인가. 암만 부모가 말려도 기어이 성장을 이루어내는 아이의 무의식을 그린 작품이다. 원할 때마다 마음을 다해 읽어 주고 있다.

 

*

 

입을 게 없다고 외치며 옷을 샀다. 사 온 옷을 정리하면서 보니 옷장에 남색 꽃무늬 원피스가 네 벌, 남색 꽃무늬 블라우스가 두 벌, 남색 셔츠가 두 벌이다. 비슷한 비중으로 분홍색 티셔츠가 많다. 문제가 뭘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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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4-09-2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천가서 먹어야 진짜 온천달걀....이겠죠..(우히히히)

네꼬 2014-09-25 15:44   좋아요 0 | URL
온천탕에 넣었다 먹으리. (응?)

다락방 2014-09-2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이것이 온천달걀 어렵다는 페이퍼가 되겠네요? 온천달걀 어렵다 로 검색하면 이게 먼저 뜨겠죠? ㅎㅎ 물론 전 온천달걀이란 말을 여기서 처음 봅니다만. ㅋㅋㅋㅋㅋ

[푸른 개]는 저도 읽어볼게요. 전 `기어이 성장을 이루어내는`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마음을 다해 읽어주는 네꼬님이라니. 사랑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남색 꽃무늬 원피스도 좋고 분홍색 티셔츠도 좋네요. 뭐, 좀 많으면 어때. 많으라지, 뭘!

네꼬 2014-09-25 15:46   좋아요 0 | URL
우와 나 댓글 막 날아갔어. 폭풍같이 썼는데.

암튼 이 포스팅이 바로 온천달걀 어렵다는 포스팅이라니 다락님 천재란 내용이었어요. 천재씨!

2014-09-25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4-09-25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천달걀...이 있군요! ㅎㅎㅎㅎㅎ 첨 들어봅니다.

네꼬 2014-09-25 15:46   좋아요 0 | URL
아아 나도 안 들어본 거면 좋겠다. ㅠㅠ 약만 올라요.

휘모리 2014-10-14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푸른개를 읽었어요. 조금은 무서운 내용이였지만 또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얘기라 좋았어요.

네꼬 2014-10-19 22: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이 책의 좋은 점이 개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쿨하게 떠났으면 너무 서운했을 듯;;
 
하늘을 나는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의 삶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38
피터 시스 글.그림, 김명남 옮김 / 시공주니어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긴장을 해야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피터 시스의 그림책은 읽기에 앞서 어떤 결심을 해야 한다. 글자뿐 아니라 그림도 읽겠다는 결심. 책장을 성급히 넘기지 않겠다는 결심. 때때로 그림보다 섬세한 깨알같은 글자들도 최선을 다해 읽겠다는 결심.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당연히) 그림책 한 권 읽는 데 무슨 그런 노력이 다 필요한가 싶어 부담을 느낄 때가 있지만, 그만한 결심과 노력으로 책을 읽으면 언제나 그에 값하는 감동을 주는 것이 또 피터 시스의 그림책이다. 『마들렌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랬듯이, 『하늘을 나는 어린 왕자 』도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책이다.

 

'생택쥐페리의 삶'이라는 부제 그대로, 이 책은 생택쥐페리의 탄생부터 실종..(또는 사라짐)까지 일을 그린 작품이다. 첫 장에서 피터 시스는 생택쥐페리를 '모험가'라고 칭한다. 작가이자 비행사였던 생택쥐페리가 글을 쓰고 하늘을 난 원동력을 세상에 대한 영감, 모험심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인지 생택쥐페리가 작가로서의 이력보다는 비행사로서의 삶에 더 무게를 두어 소개된다. 앞서 썼듯 작은 글자가 많아도 포기하지 않고 읽으면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된다.

 

"(초기 비행기의) 프로펠러는 나무였고, 몸체는 천으로 덮여 있었다. 브레이크는 없었고, 무선통신 기기도 없었다. 자주 세워서 연료를 보충해야 했다. 게다가 툭하면 고장이 났지만, 고치기는 쉬웠다. 초기에는 외딴 곳에 떨어져서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경우를 대비하여 전령 비둘기를 싣고 다녔다."

 

아름다운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 그리고 나는 이런 대목에서 『어린 왕자』를 쓴 생택쥐페리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항공사들은 앙투안(생택쥐페리)에게 캅 쥐비에 있는 비행장을 돌보는 일을 맡겼습니다. 앙투안은 허름한 오두막집에 살았어요. 살림살이는 얼마 없었고, 손님은 더 없었지요. 한쪽은 바다고, 다른 쪽은 전부 사막이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장소인 듯 보였어요. 그러나 앙투안은 고독을 좋아했고, 수많은 별 아래에서 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때 그가 좋아한 고독은 분명, 반복되는 전쟁 속에 국가와 친구를 잃으면서 느낀 외로움과는 다른 것이겠지. 끝내 돌아오지 않은 마지막 비행을 그린 장면에서 피터 시스는 비행기 아래에 슬쩍 자전거 타는 아이를 달아 놓았다. 그것은 생택쥐페리가 어린 시절 만든 날개 달린 비행기와 연결된다. 그래서 생택쥐페리 뿐 아니라 피터 시스에 대해서도 다시금 사랑을 품게 된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더욱 사랑할, 영감으로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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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9-0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쁘기도 하지. 이쁜 리뷰에요, 네꼬님.
네꼬님이 지금보다 더 자주, 훨씬 자주, 이런 리뷰를 올려줘야 한다고 저는 주장하는 바입니다!

네꼬 2014-09-03 11:20   좋아요 0 | URL
어디가 이쁩니까? 눈? 코? 입? ㅎㅎ 다락님은 술꾼. 취중고백(방백이었지만) 잊지 않으리히히히.


마노아 2014-09-0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택쥐페리와 어린왕자, 그리고 네꼬님과 고양이가 모두 느껴지는 리뷰인 걸요! 아 조으다~

네꼬 2014-09-03 11:36   좋아요 0 | URL
끄아 마노아님. 제가 또 보기와 달리 옛날에 고독을 좋아해서 한때 "어린왕자" 팬이었지 말입니다? -_-a

Alicia 2014-09-03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리뷰 제목을 보고 가슴이 쿵 했어요. 혼자 있기 좋아하는 어른이 읽어도 좋은 책 맞지요? :)

네꼬 2014-09-03 11:37   좋아요 0 | URL
아아 고독을 좋아하지 않는 어른도 잠시 고독을 즐기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알리샤님, 기회 되면 한번 읽어보셔요.

아무개 2014-09-03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이렇게 읽는건데...그게 맞는데 저는 참 뭔가 많이 잘못 읽고 있는거 같아요.

다락방님 댓글처럼 자주 훨씬 더 자주 뵐수 있기를 ^^


네꼬 2014-09-03 11:38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저 사실 평소에는 덤벙덤벙 읽어요. 두 번 세 번 읽으면 더 좋은 책이니, 언제 기회 되시면 꼭 들추어 보시길요! (잘못이라도 좋으니 전 좀 읽어야 될 텐데... 먼 산.)

섬사이 2014-09-0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시스, 그림을 그리는 관점이랄까?? 하는 것도 참 독특해 보여서 한 번 보면 좀처럼 그 그림이 잊혀지지 않아요. 도서관에 선정도서목록에 올려두고 기다리고 있던 책이었는데 네꼬님 리뷰로 먼저 만나서 더 좋아요. 반가워요, 네꼬님. 보고싶었어요. ^^

네꼬 2014-09-11 11: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섬사이님. 보고 싶었어요. (응?) 히히. 피터 시스 그림은 일부러 찾아 보게 되진 않는데, 보면 참 안 잊혀요. 오래간만에 보니 좋아서, 다른 그림책도 찾아 보게 되었어요.
 

생선 가겟집 아들 수로 앞에 나타난 여우 씨는 어딘가 뻔뻔한 인상이다. 날씬한 몸매에 갈색 양복, 하얀 구두로 치장한 여우 씨가 막 인사를 하려는 듯, 모자를 잡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 듣고 싶은 말만 솔솔 쏟아질 듯한 얄미운 입매, 아름다운 스카프는 바람에 너풀거린다. 그를 감싸고 있는 분홍빛은 아름답고, 녹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공기는 어딘가 두렵기도 하다. 이 여우 씨가 뭐라고 하는가? “제가 이 생선 가게를 봐 드리겠습니다. 주인님은 어서 나가 실컷 놀다 오세요.” 그렇다, 수로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이다. 게다가 대가는 생선 한 마리 뿐이란다. 그림처럼 꼭 이렇게 생긴 여우가 이런 제안을 하는데 거절할 강심장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수로도 냉큼 가게를 맡기고 놀러 나가는데 여우는 곧 본색을 드러낸다. 일손이 필요하다며 하나 둘 식구를 데려오더니 엿새 만에 가게 생선을 바닥낸 것이다. 그러곤 말하길, “생선 한 마리씩! 게다가 주인님은 제가 식구들을 데려오는 것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인상대로 뻔뻔한 여우였다. 여기서 ‘인상’의 최소한 절반은 그림에서 온 것이다. 좋은 삽화가 ‘글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면, 「상냥한 여우 씨와 식구들」의 여우 그림은 좋은 삽화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접힌 부분 펼치기 ▼

 

 

 

 

펼친 부분 접기 ▲

김기정 동화집 『금두껍의 첫 수업』에는 열 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10여 년 간 쓰인 작품이 모인 자리다 보니, 주제도 내용도 아롱이다롱이다. 「금두껍의 첫 수업」처럼 아름답고 신 나는 환상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고, 「만보의 자장면」처럼 현실의 아이를 위로하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작품마다 그에 걸맞은 허구의 그림이 독자의 감상을 거들고 있다. 「무지의 상상력 대결」에서 도전장을 받고 가마에 올라탄 무지를 보라. “누군가한테서 도전을 받는 일은 절대 싫은 일이 아니”라는 무지가 마침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무지처럼 당당한 표정을 짓게 된다.

 

주로 화려하게 펼쳐지던 그림은 “한 아이가 떠났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시인과 선생님」에 이르러 갑자기 차분해진다. 단순하고 부드러운 선과 검은색만으로 표현된 인물은, 그림만으로도 문득 슬픔을 전한다. 엉뚱한 순간에 “니야아옹!” 소리를 내서 웃음거리가 되었던 꼬마 시인 입에 사랑스러운 고양이 얼굴을 그려 넣다니.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라 해도 이런 그림을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책에서 글과 그림의 어울림은 합이 잘 짜인 무술 겨루기 같다. 작가는 작품을 써서 보여 준다. 화가는 그것을 보고 그림을 그려 낸다. 작가는 흠칫 놀라면서 다른 작품을 보여 준다. 화가는 천연덕스럽게 또 그림을 그려 보인다. 이것도 그릴 수 있을까? 이것도? 작가는 신이 나서 쓴다. 화가도 아마 웃으면서 그릴 것이다. 그야말로 작가와 화가의 상상력 대결 아닌가.

 

 

 

 

 

 

 

 

 

* 마음대로 쓰래서 마음대로 썼다가 마음대로 썼다고 까인 원고를 마음대로 여기 올리는 나란 여자 자유로운 여자. (그런 거 아니잖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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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8-1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우리 네꼬님 원고를 깠담? 흥!! -_-

네꼬 2014-08-11 17:39   좋아요 0 | URL
까였어요. 까였다고. 흑흑. (쓰고 보니 어딘가 시원한 "까다"라는 말 )

치니 2014-08-1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이다뇨, 이런 주옥같은 글을 왜!

네꼬 2014-08-11 17:39   좋아요 0 | URL
이런 주옥같은 댓글이라니!

마노아 2014-08-1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이야말로 주옥!!

네꼬 2014-09-02 13:22   좋아요 0 | URL
크허. 불성실한 나 따위... ㅜ
 

며칠 전 남편의 외가에 다녀왔다. 연휴를 맞아 외할머니를 뵈러 간 길이었는데, 마침 그 전 주에 결혼한 신혼부부가 돌아온 날이라 친척들이 많이 모였다. 가게도 편의점도 먼 한적한 마을, 남편의 어린시절부터 있던 시골집, 마당의 개들이 계속 컹컹 짖고 자동차들이 들어서니 옆집 아저씨가 외삼촌께 무슨 일인가 물었다. 웃는 얼굴로 어른은 답하셨다. "오늘 이 집에 사람 하나 들어와요." 외삼촌 내외는 몇해 전 아들을 군대에서 사고로 잃으셨다고 한다. 둘째를 결혼시키면서 마음이 어땠을까. 그 얘길 전하는 형님도 듣는 나도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보는 외사촌동서가 더 귀하게 여겨졌다. 사람 하나가 그렇게 귀하다.

 

지난 주말엔 오래간만에 언니네 집엘 갔다. 가까운 친구가 이번 사고로 아이를 잃었다고 한다. 아이가 수학여행 한번 가면서 아주 살림을 새로 장만하려 든다고 농담을 했던 친구를, 언니는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났다. 아이 아버지는 사고 당시 아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 침착하게 어른들 하라는 대로 하고 있으라고 한 게 한으로 남았다. 아이 외할머니는 자식 잃은 딸을 위해 버티시는데 숟가락 드신 손이 덜덜 떨리더란다. 아이들의 친구들은 장례식장에 들어서서 친구 사진을 보자 마자 통곡을 하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언니도 무릎이 꺾였다고 한다. 어떤 아이가 울면서 엄마, 여기 내 친구 또 있어, 그러더란다. 언니가 친구 대신 학교엘 갔는데, 아이를 잃은 어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는 분식점에서 웃으며 나오는 교복 입은 아이들에게 뭐가 좋아 떠드냐고 소리를 지르더란다. 분식점 주인 아저씨는 멍한 얼굴로 그 아버지를 바라만 보더라고. 언니는 그 셋이 모두 이해 되어 울었다고 한다. 집에 와서 잠든 조카를 보고 또 울었단다. 보이는 게 달라졌다고, 이제 그 전과는 달라졌다고, 언니는 말하면서 울고 나는 들으면서 울었다. 

 

한달에 한두 번 신문을 모아 버린다. 바닥에 4월 15일자 신문이 있었다. 거기 쓰인 글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한가로운가. 내 세상도 이렇게 달라졌는데, 가족들은 어떨 것인가. 나는 감히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수백명을 한꺼번에 잃었다고 해서 슬픔이 하나가 아니다. 잃어버린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 달려 있는 슬픔은 얼마나 복잡하고 깊은가. 그래서 결국 얼마나 거대하고 무거운가. 그래서 명복을 빈다는 말도 한 번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차마 입이 떼지지 않는다.

 

 

 

 

 

 

*

하필이면 최근 서재에 쓴 게 어머니와 아이의 대화였다. 떠나간 아이들과 보낸 부모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겁이 나서 서재를 열어볼 엄두가 안 났다. 안부 물어준 용감하고 너그러운 친구들에게 염치가 없다. 보잘것 없는 나지만, 읽고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 늘 하는 결심이지만 어딘가 다르다. 분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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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5-1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왔어요.
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네꼬 2014-05-12 16:41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다락방님.
어디 안 갈게요.

moonnight 2014-05-1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네꼬님. ㅠ_ㅠ
네꼬님이 계셔서 참 다행이에요. ㅠ_ㅠ

네꼬 2014-05-13 10:27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같이 있어주는 사람들이 제일인 것 같아요. 고마워요.

마노아 2014-05-1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서로 제자리를 지켜요. 두눈 부릅뜨고 지켜봐요. 그리고 꼭 기억해요.
네꼬님, 잘 왔어요.

네꼬 2014-05-13 10:28   좋아요 0 | URL
기억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게 제일 어렵고 제일 필요한 일이지요. 마노아님 고마워요.

paviana 2014-05-13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보고 싶었어요. 우리 같이 울어요.

네꼬 2014-05-13 10:28   좋아요 0 | URL
파비님, 우리 같이 우는 게 벌써 몇 번째예요? 또 울어요. 같이.

아무개 2014-05-1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백명을 한꺼번에 잃었다고 해서 슬픔이 하나가 아니다. 잃어버린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 달려 있는 슬픔은 얼마나 복잡하고 깊은가. 그래서 결국 얼마나 거대하고 무거운가. "

아침부터 이 글귀에 마음이 먹먹하네요.
그렇죠..수백명을 한꺼번에 잃었다는것 보다, 그 한사람 한사람의 소중한 것들의 상실...
얼마나 크고 깊고 아플지....

네꼬 2014-05-13 10:30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그래서 이번 참사가 더 비극적인 것 같아요. 저는 슬픔에도 무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상상이 되지도 않습니다. 우선 같이 슬퍼할 수밖에요.

레와 2014-05-1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_ㅠ

네꼬 2014-05-13 10:30   좋아요 0 | URL
갑자기 눈물 날 때가 많죠. 계속 그럽시다, 응?

하양물감 2014-05-17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담한 글이지만 마음이 찡해옵니다.

신목 2014-05-1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ㅜㅜ
 
아무도 내 이름을 안 불러 줘 보리 어린이 9
한국글쓰기연구회 / 보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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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집에서 옷을 입을 때 허리띠를 맨다고 했는데 잘 안 돼서 어머니에게
"해주세요"
하고 말을 했다. 어머니께서 와서 허리띠를 매 주시면서
"상인아, 엄마 눈 속에 누가 있는지 봐라."
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머니 눈 속을 자세히 들다보니 내가 있었다.
"상인이 눈 속에는 엄마가 있단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어떻게 내 눈 속에는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 눈 속에는 내가 있을까?
'너무나 사랑해서 그럴까?'
하고 생각했다. (1995.6.8)

- 어머니 눈 속에는 내가 있고 내 눈 속에는 어머니가 있다 / 대구 옥포2학년 김상인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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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4-04-1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읽어도 언제나 좋은 책.

웽스북스 2014-04-1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다락방 2014-04-1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