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너무너무 예뻐서 조카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여섯 살 조카는 보는둥마는둥 세 살 조카는 처음엔 뚫어져라 보더니 세 장쯤 넘겼을까,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계속 한 번이라도 함께 재미있는 책읽기에 성공하고 싶어 시도해보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채로 혼자 세 번을 읽었다. 세 번을 '봤다'.
그리고 드는 생각.
아아, 나는 누가 나한테 그림책을 읽어줬으면 좋겠어.
역시 이 책에서도 뭘 느껴야하는지를 모르겠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누가 나한테 그림책 읽는 방향을 설정해주고 또 그에 맞게 지도해줬으면 좋겠다. 만 원 넘는 그림책인데 그냥 읽으면 딱- 아무 생각이 안나... Orz
이게, 내가 재미있게 읽어야 다른 사람(조카들을 포함)들에게도 반짝거리며 재미있다 말해줄 수 있는데, 내가 아무 느낌이 없으니 뭘 전달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림책의 책장을 넘기며 조카들 보여주면서도 그냥 '이거봐' , '수박이야', '수박 크다', '쩍 갈라졌어' 라고 설명하는 게 전부 다다. 내가 아이어도 내가 그림책 읽어주는 거 별로 안좋을 듯...
난..
역시 성인물 타입인가봉가...
이 책도 마찬가지. 그림책을 사랑하는 친구로부터 추천을 받고 읽었는데, 역시나 다 읽고 멘붕이 찾아온다. 그러니까 좋다 싫다 느낌이 아니라, '이건 대체 뭘 말하는걸까?' , '이건 뭐지?' 하는 느낌. 인간 친구로부터 빨간 목도리를 선물 받았는데, 왜 얼의 엄마는 그걸 받지 말라고 말할까? 다 읽고 멘붕이 찾아와, 그냥 또 머릿속에 생각이 싹- 없어져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이것은 독립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면서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친구의 설명을 덧입고 태어난 이 책은 좋은책인데, 그 느낌을 간직했다가 다시 보려고 해도 원점으로 돌아와...
친구님하, 미안. 나는 안되는것 같아요. ㅠㅠ
왜 나는 그림책 혹은 동화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생각이 싹- 달아날까. 백지가 된다 그냥 순수 백지.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거의 3주만에 일자산엘 갔다. 요즘 네이버뮤직 정기권 끊고 듣고 있는데, 덕분에 에이핑크의 앨범 전체를 들으며 산행(아니, 산책)을 했다. 일단 타이틀 곡 <LUV> 는 좋아서 요즘 내가 맨날 흥얼거리고 있는데, 다른 노래도 다 좋을까? 하며 들어보게 된 것. 다른 노래도 뭐랄까,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들로 되어있는 노래들도 아니고 또 음정도 어렵지 않아 듣기에 나쁘지 않구나, 으응, 괜찮네, 하면서 듣다가, 아아아아, 얘들아...하는 심정이 된 노래가 똭- 찾아들었는데, 그게 바로 <동화 같은 사랑>.
자, 내 귀에 딱 걸린 가사를 보자.
내가 너무 힘들 때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을 때
난 더 나이를 먹고 세상은 변하고 자꾸 무덤덤해져서
어릴 적 나의 소원은 동화 속에 나온 공주들처럼
사랑을 기다리다 구하려 나타나 그대를 기다려요
동화 같은 사랑 어느새 자꾸 잊혀지는 그 사람
유리구두 한 짝을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줄 사랑을 원하죠
동화 같은 사랑 잠든 날 깨워줄 마법 같은 사랑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게 입 맞추는 그대를 그려요 내 사랑
매일 내 꿈속에서 가슴 설레이게 하던 그 사람
지금 내 앞에 있는 날 보는 이 남자 혹시 그 사람이 맞나요
온 세상을 둘러봐도 완벽한 사랑을 찾진 못해도
언제나 그려요 언젠간 오겠죠 나의 첫사랑이
자꾸 궁금해져가 지금은 어딨을까 널 위한 사랑이
동화 같은 사랑 어느새 자꾸 잊혀지는 그 사람
유리구두 한 짝을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줄 사랑을 원하죠
동화 같은 사랑 잠든 날 깨워줄 마법 같은 사랑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게 입 맞추는 그대를 그려요 내 사랑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엉뚱섬이 사라지는 것에 눈물을 흘렸던 나이니만큼, 그러니까 딴지를 걸지말고 내버려둬야 하지만, 얘들아,
왕.자.는.없.어.
마법같은 사랑? 없어.
유리구두 한 짝... 그런거 없어.
아 이 노래가 너무 거슬리는거다 ㅠㅠ 그러면서 음을 따라 흥얼대. 동화 같은 사랑~ ♪♬ 잠든 날 깨워줄 마법 같은 사랑~ ♪♬
일자산의 푸른 잔디가 보였다. 초록초록한 잔디. 이들의 음색이 맑고 단순하고 쉬워서 뭔가 잔디같다, 는 느낌을 받다가 동화 같은 사랑, 이란 가사 때문에, 아아, 인공잔디 같구나, 했다. 잔디는 잔디이며 잔디만큼 푸르되, 만들어진 잔디로다. 꾸며진 잔디로다.
https://youtu.be/pq1ewDWBsDY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붙잡은지 일주일 째...더딘 독서....책 탓은 아니고...술 탓...) 이혼한 남자가 직장 동료와 파티에서 만나 하룻밤 자고, 아침에 일어나 또 충동이 일어 다시 또 자는(응?) 부분이 잠깐 나왔는데, 나는 그냥 이런 거에 이입이 잘 된다. 성인물 취향이라 정말이지 나는 어쩔 수가 없어....
어제 일요일 오후에는 여동생과 조카와 함께 백화점엘 갔었다. 택시를 타고 가면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늘상 막히는 곳인데, 어제는 막히지 않고 슝슝 가더라. 어어? 왜이렇게 차가 없지? 하다가 아아, 휴가갔나 보구나, 했다. 오늘 출근 길도 마찬가지. 평소의 월요일과는 다르게 조용하다. 다들 휴가 갔나보다. 다들 휴가갔어요?
아침에 출근하려고 옷을 차려입고는 세 살 조카에게 '이모 다녀올게' 라고 하자 아이가 울면서 손으로 자기를 가리킨다. 손바닥으로 자기 가슴을 치면서 자기도 데려가라 조른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네가 그러면 내가 어떻게 가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아른. 아이는 신발장으로 가 제 신발을 찾아들고서는 함께 가잔다. 하는 수 없이 세살 조카 여섯살 조카 그리고 우리 엄마가 함께 나와서는 나와 남동생의 출근길을 배웅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모'를 말하지 못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이모' 라고 나를 여러차례 불렀다. 며칠전부터 조카들을 안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는데, 어제와 오늘은 참 많이 조카들을 안았다. 여섯 살 조카를 안을 때는 아이가 많이 커서 무거운데, 다른 식구들이 무거운데 왜그렇게 안고있냐, 허리 다친다, 하는데, 나는 아직은 번쩍 들어 안아 올릴 수 있으니, 계속 안아주고 싶다. 안고 싶고, 안을 수 있다면, 안는 게 정해진 답인 것 같다.
그나저나, 남들이 휴가를 가서 그런가, 나도 일하기가 시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