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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평점 :
언제나 할머니가 되고 싶다. 어쩌면 어려운 꿈일 수도 있다. 게다가 나는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동네 어린이들이 만만하게 보고 집에 놀러올 수 있는 할머니. 그런데 주변에 그런 할머니가 없다. 그래서 꽤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런 할머니가 되는 것에.
사노 요코 할머니는 최초의 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노인이라 롤 모델 같은 건 없다면서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암에 걸린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수술한 다음 날 집에 와서 담배를 피우고, 이상한 요리를 하고, 한류에 빠졌다가 나오고, 관공서 사람들과 싸우고, 친구네 놀러 간다. 한편으로는 문득문득 치매의 전조 때문에 공포에 빠지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에 낙담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요양원의 엄마를 찾아가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결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성격 나쁜 사람일 거라면서 자기와 절교하고 싶어하고, 까다로운 친구에 대해 불평하고,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자꾸 주눅 들게 하는 한국인 친구와 절교하고(자신도 이제 40여 년 압제를 견뎠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는 걸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할머니이기 때문에 전철에서 온갖 사람들을 보며 저들도 식구가 있겠지, 그 식구에게도 엄마가 있겠지, 그 엄마는 어떻게 살았을까 연민을 느끼면서 피곤해할 때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182쪽)
품위와 재치는 같이 가질 수 있다. 통찰력과 호기심도 같이 가질 수 있다. 솔직하면서 예의 바를 수 있다. 사노 요코 할머니는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가 하나의 롤 모델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니 기운이 난다. 지치지 말고 싫증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좋은 할머니가 될 수도 있겠지. 사노 요코 할머니보다는 좀 덜 심술궂은 할머니가 되겠지만, 각자 생긴 대로 살자는 게 할머니 말씀, 나는 내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